연습방/시모음

181002- 시 숲/신현림 시인의 에세이 수록 시

그대 그리고 나/포항 2018. 10. 3. 21:39

저자 신현림

저서 (총 66권)
신현림 시인, 사진작가. 사진과 그림, 텍스트를 융합하며 장르의 경계를 넘나드는 전방위 작가로서 특유의 솔직한 화법에 신선하고 파격적인 상상력을 더해, 독특하면서 매혹적인 작품을 만들어낸다. 20만 부 베스트셀러 『딸아, 외로울 때는 시를 읽으렴』을 비롯해 시집 『지루한 세상에 불타는 구두를 던져라』 『세기말 블루스』 『해질녘에 아픈 사람』 『침대를 타고 달렸어』 『반지하 앨리스』를 냈고, 『나의 아름다운 창』 『신현림의 너무 매혹적인 현대미술』 『미술관에서 읽은 시』 『만나라, 사랑할 시간이 없다』 등의 책을 펴냈다. 최근 독립출판사 ‘사과꽃’을 설립하여 학연·지연을 떠나, 정직한 시대의식을 품은 시의 재발견이란 취지로 ‘한국 대표시 다시 찾기 101’ 시리즈를 선보이고 있다. 사진가로서는 첫 전시회 [아我! 인생찬란, 유구무언]을 시작으로 일본 교토 게이분샤 서점과 갤러리에 판매되는[사과여행]과 [사과, 날다] 등의 전시회를 열었고, [사과밭 사진전]으로 2012년 ‘울산 국제사진페스티벌 한국 대표작가 4인’에 선정되었다. 도서출판 사과꽃 대표로 『한국 대표시 다시 찾기 101』 프로젝트를 진행중이다

**구찌베니/권미강**

 

색동치마에 반짝이 스웨터 입은

엄마의 아침 마무리는 구찌베니였다

자식들 먹여 살리려 장사한다며

앉은뱅이 거울 앞으로 입 내밀고

구찌베니를 빨갛게 돌리는 엄마

 

오미자보다 더 붉은 입술을

오므렸다 폈다 환하게 웃는 엄마는

가게 천장을 울리는 큰 목청으로 흥정하고

노을이 질 때까지 뱉어낸 붉은 구찌베니

 

저녁 밥상 콩나물이 되고 조기구이가 되고

돼지고기를 넣은 김치찌개가 되는 구찌베니

우리들도 입슬을 오므렸다 펴며

배부른 웃음을 흘렸다

 

유년의 장날은

온통 구찌베니향으로 가득 찼다

 

**어머니의 악기/박현수**

 

늙으면 악기가 되지

움직일 때마다 캐스터네츠 소리를 내지

아버지가 한때 함부로 두드렸지

잠시 쉴 때마다

자식들이 신나게 두드렸지

황토 흙바람 속에서도 두드렸지

석탄먼지 속에서도

쿨럭, 거리며 두드렸지

뼈마디마다

두드득, 캐스터네츠는 낡아갔지

이제 스스로 연주하는 악기가 되어

안방에서 찔끔

배란다에서 찔금, 박자를 흘리고 다니지

 

백과사전백과사전 검색결과 썸네일 캐스터네츠 (castanets)

  • 딱딱한 나무나 상아 등의 재질로 된 2개의 판으로 만든 딱딱이. ('밤'이라는 뜻의 스페인어 castao에서 유래). | 손에 끼고 서로 맞부딪쳐 소리를 내며 스페인, 발레아레스 제도, 남부 이탈리아에서는 민속악기로서 무용수들이 연주한다.

  •  

     

  • **강가에 내려갼 적이 있다. 조원규**

  •  

  • 물 냅새를 맡고 싶어

    좀은 계단으로 강가에 내려간 적이 있다

  •  

    휘어진 모래톱

  • 부드러운 변방에 서서

    눈을 감고 냄새를 맡았지만

  •  

    물가에서 또 다른 냄새가 그리워

  • 어디로 더 가야 하지

     

  • 다리도 계단도 없을 곳이라면

    아득히 귀를 열고 선 내게

  •  

    흘러드는 물은 멀어지는 물살은

  • 기슭이라고 그토록

     

  • 어디든 닿고 싶어서

  •  

  •  **밤눈/김광규**

  •  

    겨울밤

    노천역에서

    전동차를 기다리며 우리는

    서로의 집이 되고 싶었다

    안으로 들어가

    온갖 부끄러움 감출 수 있는

    따스한 방이 되고 싶었다

    눈이 내려됴

    바람이 불어도

    날이 밝을 때까지 우리는

    서로의 바깥이 되고 싶었다

     

    **나의 기도/윤중목**

     

    처음으로 여인의 벗은 몸을 만졌을 때처럼

    처음으로 파도치는 바다를 보았을 때처럼

    처음으로 백범일지를 읽었을 때처럼

     

    다시금 심장의 고동소리가 듣고 싶다

    매 순간 두근대고 살고 싶다

     

    **강릉 가는 길/윤후명**

     

    삶을 이어가기에는 감자가 아리고

    사랑을 나누기에는 물고기가 비리고

    죽음을 이루기에는

    산과 바다가 죽음보다 길쭘하여

    그리운 사람들 모두 어디로 가는지

    물어보고 싶던 날이 있었다

    뒷산 호랑이가 나무되어 걸어 내래ㅕ와

    처녀 데려가 살았다는 옛곳

    옥수수수염 같은 고향길

    그렇건만

    삶과 죽음이 새삼 서로 몸을 바꿔

    사랑을 더듬는 모습 속에

    더욱 갈 길 아득하여

    어디인가 어디인가

    어디인가 멀뚱거리기만 하였다

     

    **봄날 강변/신동호**

     

    세월이 멈췄으면 하지 가끔은

    멈춰진 세월 속에

    풍경처럼 머물렀으면 하지 문득

     세상이 생각보다

    아름답다는 것을 느꼈을 때일 거야

    세상에는 생각보다 아름다운 사람이

    많다는 것을 느꼈을 때일 거야. 아마

    예전에 미처 알지 못해서가 아니야

    떠나온 곳으로 돌아가면 또다시

    아름다움을 느끼기엔 나무나 빠른 세월이

    기다리고 있다는 것을 알기 때문이야 분명

    마음은 발걸음보다 항상 뒤쳐져 걷지만

    봄날 강변에 앉아보면 알게 되지

    머얼리 기차가 지나갈 때

    눈부신 햇살 아래

    오래 전 정지된 세월의 자신은

    얼마나 아름다웠던가 순간

    기차는 굴속으로 사라져버리고

    강변의 아름다움으로부터 자신은 떠나지만

    변하지 않은 풍경으로 남아 있을 게야

    마음의 지조처럼

    여전히 기다릴 게야 오래도록

     

    **내 젊음의 초상/헤르만 헤세**

     

    지금은 벌써 전설이 된 먼 과거로부터

    내 젊음의 초상이 나를 바라보며 묻는다

    지난날 태양의 밝음에서부터

    무엇이 반짝이고 무엇이 불타고 있는가를

    그때 내 앞에 비추어진 길은

    나에게 많은 번민의 밤과

    커다란 변화를 가져왔다

    나는 그 길을 이제 두 번 다시 걷고 싶지않다

     

    그러나 나는 나의 길을 성실하게 걸어왔고

    그 추억은 보배로운 것이었다

    실패도 과오도 많았다

    하지만 나는 그것을 후회하지 않는다

     

    **비로소/이서화**

     

    비로소 보이는 것들이라는

    글귀를 읽을 때마다

    반드시 도달해야 할 어떤 곳이 있을 것 같다

    그 비로소는 어떤 곳이며 어느 정도의 거리인가

    비로소까지 도달하려면

    어떤 일과 어떤 현상, 말미암을 지나고

    또 오랜 기다림 끝에 도착할 것인가

    팽팽하게 당겨졌던 고무줄이

    저의 한계를 놓아버린 그곳

    싱거운 개울이 기어이 만나고 만

    짠물의 그 어리둥절한 곳일까

    비로소는 지도도 없고

    물어물어 갈 수도 없는 그런 방향 같은 것일까

    우리는 흘러가는 중이어서

    알고 보면 모두 비로소

    그곳 비로소에 이미 와 있거나

    무심히 지나쳤던 봄꽃,

    그 봄꽃이 자라 한 알의 사과 속 벌레가 되고

    풀숲에 버린 한 알의 사과는 아니었을까

    비로소 사람을 거치거나

    사람을 잃거나 했던

    그 비로소를 만날 때마다

    들었던

    아득함의 위안을

    또 떠올리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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