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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김혜순

그대 그리고 나/포항 2014. 7. 8. 23:45

첫 / 김혜순

 

 내가 세상에서 가장 질투하는 것, 당신의 첫,
 당신이 세상에서 가장 질투하는 것, 그건 내가 모르지.
 당신의 잠든 얼굴 속에서 슬며시 스며 나오는 당신의 첫.
 당신이 여기 올 때 거기에서 가져온 것.
 나는 당신의 첫을 끊어버리고 싶어.
 나는 당신의 얼굴, 그 속의 무엇을 질투하지?
 무엇이 무엇인데? 그건 나도 모르지.
 아마도 당신을 만든 당신 어머니의 첫 젖 같은 것.
 그런 성분으로 만들어진 당신의 첫.

 당신은 사진첩을 열고 당신의 첫을 본다. 아마도 사진 속 첫이 당신을 생각한다. 생각한다고 생각한다. 당신의 사랑하는 첫은 사진 속에 숨어 있는데, 당신의 손목은 이제 컴퓨터 자판의 벌판 위로 기차를 띄우고 첫, 첫, 첫, 첫, 기차의 칸칸을 더듬는다. 당신의 첫. 어디에 숨어 있을까? 그 옛날 당신 몸속으로 뿜어지던 엄마 젖으로 만든 수증기처럼 수줍고 더운 첫. 뭉클뭉클 전율하며 당신 몸이 되던 첫. 첫을 만난 당신에겐 노을 속으로 기러기 떼 지나갈 때 같은 간지러움. 지금 당신이 나에게 작별의 편지를 쓰고 있으므로, 당신의 첫은 살며시 웃고 있을까? 사진 속에서 더 열심히 당신을 생각하고 있을까? 엄마 뱃속에서 몸을 웅크리고 매달려 가던 당신의 무서운 첫 고독이여. 그 고독을 나누어 먹던 첫사랑이여. 세상의 모든 첫 가슴엔 칼이 들어 있다. 첫처럼 매정한 것이 또 있을까. 첫은 항상 잘라버린다. 첫은 항상 죽는다. 첫이라고 부르는 순간 죽는다. 첫이 끊고 달아난 당신의 입술 한 점. 첫. 첫. 첫. 첫. 자판의 레일 위를 몸도 없이 혼자 달려가는 당신의 손목 두 개. 당신의 첫과 당신. 뿌연 달밤에 모가지가 두 개인 개 한 마리가 울부짖으며, 달려가며 찾고 있는 것. 잊어버린 줄도 모르면서 잊어버린 것. 죽었다. 당신의 첫은 죽었다. 당신의 관자놀이에 아직도 파닥이는 첫. 

 당신의 첫, 나의 첫, 영원히 만날 수 없는 첫.
 오늘 밤 처음 만난 것처럼 당신에게 다가가서
 나는 첫을 잃었어요 당신도 그런가요 그럼 손 잡고 뽀뽀라도?
 그렇게 말할까요?

 그리고 그때 당신의 첫은 끝, 꽃, 꺼억.
 죽었다. 주 긋 다. 주깄다.
 그렇게 말해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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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이라는 말에 당신은 누구를, 또는 어떤 순간을 떠올리셨나요?  ‘첫’이라는 말이 되돌려주는 냄새, 소리, 맛, 빛깔, 온도, 감촉은 바래지도 시들지도 않은 채 여전히 싱싱합니다. 그 무엇으로도 대체할 수 없고 끝내 닿을 수도 없는 순결한 기원. 그래서 ‘첫’은 관형사나 접두사가 아니라 아주 특별한 고유명사로, 과거형이 아니라 늘 현재형으로 우리 마음속에 빛나고 있을 것입니다. 영원히 밖으로 나가고 싶지 않았던 최초의 방, 그 문지방을 넘는 순간 이미 문 밖의 생(生)은 시작되었지요. 다시는 돌아갈 수 없는 ‘첫’을 향해 매순간 걷고 있는 나와 당신의 발자국소리……

 

나희덕 시인.

 

 



 

 

김혜순
Kim Hye-soon.jpg
출생 1955년
경상북도 울진군
직업 작가, 평론가, 교육인
국적 대한민국 대한민국
장르 시, 문학평론

김혜순(1955년 ~ )은 대한민국의 시인이다. 경상북도 울진에서 태어나 강원대학교 국어국문학과와 건국대학교 국어국문학과 및 동대학원 국어국문학과를 졸업했다. 현재 서울예술대학 문예창작과 교수로 재직중이다.

 

약력[편집]

1978년동아일보》 신춘문예 평론 부문에 〈시와 회화의 미학적 교류〉가 입상하여 비평 활동을 시작했고, 1979년 계간 《문학과지성》가을호에 〈담배를 피우는 시인〉외 4편을 발표하면서 등단했다. 1997년 제16회 「김수영문학상」, 2000년 제1회 「현대시작품상」, 제15회 「소월시문학상」, 2006년 제6회 「미당문학상」, 2008년 제16회 「대산문학상」을 수상했다.

 

<이광호 시평>

시는 당신에 대하 나의 질투로부터 시작된다. '내가 세상에서 가장 질투하는 것, 당신의 첫'이다. 첫번째 의문, 왜 '처음'이 아니라 '첫'이란 불완전한 단어일까? 몃아인 '처음'과는 달리 관형사인 '첫은 그 자체로는 불안정한 말이다. '첫'은 무언가의 앞엣 붙어서야 그것의 처음으로서의 성격을 만들어주는 관형사이디. '첫'은 그러니까 모든 명사 앞에 붙어서, 그 명사들을 처음의 자리로 디돌려 놓는다. 그래서 '첫'을 명사처럼 사용한다면, 주체화할 수 없는 것을 주체화하는 것이다. 차라리, 그 '첫'은 일종의 동사이다. '첫'은 죽은 명사들을 처음의 상태로 활성화하는 에너지 자체이다. 그래서 '첫'은 실체를 알 수 없고, 붙잡을 수 없고, 소유할 수 없다. 그래서 '첫'은 지독한 질투의 대상이다. '첫'은 과거와 기원을 호출하느 관형사이지만, '첫' 자체의 운동 방식은 언제나 절단과 결별의 그것이다. '첫은 항상 잘라버린다. 첫은 항상 죽는다. 첫이라고 부르는 순간 죽는다. '첫'은 절단하고 결별하고 자신을 죽여서 '첫'이 된다. 그러나 '첫'의 이름 안에는 '첫'이 살고 있지 않다. '첫'은 언제나 '첫'의 자리로부터 도주한다. 그래서 '당신의 첫, 나의 첫, 영원히 만날 수 없는 첫'이다. 만날 수 없는 당신의 '첫'은 '끝'이다. '첫 첫 첫 첫'하고 발음하다 보면, 그것은 일종의 의성어가 된다. 실체 없는 동사적 움직임으로서의 '첫'은 내용 없는 시니피앙의 무중력 놀이가 되어버린다. '죽었다. 주 긋 다, 주깃다'의 놀이처럼, '첫, 첫, 첫'의 무한놀이는 '끝, 꽃, 꺼억'의 무한놀이와 뒤섞인다.

  이 시는 '당신의 첫'에 관한 질투의 시이면서, 하나의 '시론'으로 읽을 수 있다. 다른 방식으로 말한다면, 김헤순의 모든 시들은 일종의 시론이거나 '메타시'이다.이미 박제된 명사로서의 시에 대해 다른 차원의 활력을 불어넣는. 시에 대한 '첫 시,' 시에 대한 '끝 시'로서의 메타시 말이다. 이제 김혜순의 이번 시집이 첫 시집이라는 처음의 놀리로 돌아갈 수 있다. 김혜순의 낱낱의 시들은? 그 시들 역시 '첫 시'일 것이다. 그것은 그 낱낱의 시들이 이룩하는 결별과 신생의 이행만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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