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 눈동자 속의 물**
김혜순
내가 아침에 일어나 슬픈 노래를 부르면
컵의 물도 슬퍼지고 변기의 물도 슬퍼지고
꽃대궁 속으로 쿨럭거리며 올라가던 꽃병의 물도 슬퍼지고
입속에 물을 가득 품은 채 참고 있는
수도꼭지 속의 물도 슬러지고
창밖으로 날아가는 새들을 보고 날아오른다고
하지마라 그건 내가 떨어지고 또 떨어지고
한없이 떨어지고만 있는 것이니
天空 萬空에 떨어질 줄밖에 모르는 대지를 타고 가는 것이니
흐르는 물은 흐르면서 몸을 씻지만
이렇게 슬픈 노래는 내 몸에 고여서
흘러 나가지도 못하네 배수구 마개가 울고
그 아래 파이프들이 우네
나는 흘러가려고 태어난 몸
흘러가 당신 몸속의 물이 되려고 태어난 몸
지평선이 없어도 좋아 딛고 설 땅이 없어도 좋아
나는 오직 가기만 햐면 돼
나는 당신 몸 깊은 곳에서 쉬지도 않고, 넘치지도 않고, 속삭이지도 않고
당신 눈동자 속의 물처럼 물끄러미 있으려고 태어난 몸
이 슬픈 노래는 어디서 흘러왔는가
내 썩는 몸 위로 왜 자꾸 오는가 어느 곳에 숨었다가
내 컵의 물을, 내 꽃병의 물을 울리는가
한강 둔치에 물 가득 차올라
도로 표지판 하나 보이지 않고
그 아래, 그 강바닥 깊은 아래
땅속 동굴을 흐르는 차가운 물소리
천장이 흔들리고 기둥이 젖어들고
솥들이 녹스네 두 눈을 크게 뜨고 앞가슴을 내밀고
숨을 참고 나가야지 썩지 않으려면 나프탈렌이라도 먹어둬야 할까
열쇠를 찾아 이곳을 나가야지
**이광호 시평**
당신은 누구인가? 일인칭 화자가 간절한 음색으로 호명하는 사람, 그러나 아직 이름을 가지 못한 사람, 혹은 이름을 모르는 사람, 이름을 잊은 사람, 이름이 지워진 사람, 이름을 부를 수 없는 사람, 이름이 필요 없는 사람, 내가 꿈꾸는 사람, 여성인 '나'의 남성적 타자일 뿐만 아니라. '내'가 부르고 '내가'듣는 몸, '나'를 말하게 하는 이름 없는 몸, '당/신', '(당)신.'
나는 당신에게 '물'이다, 물은 어디에나 있고 어디든 흘러들어가며, 흘러나온다. 물은 모든 타자들의 틈에 스며든다. 형태가 없고, 머물지 못한다. 문제는 물의 메타포가 아니라, 물의 존재 방식, 혹은 물의 언술 자체이다. 그런데 어떤 물은 고여 있거나 갇혀 있다. 갇힌, 그래서 썩어가는 물은 슬픈 노래를 그 안에 품고 웅웅거린다. 물은 '흘러가려고 태어난 몸'이기 때문에. '당신 몸속의 물이 되려고 태어난 몸'이기 때문에.
물은 또한 '당신 몸을 속속들이/다 더듬'고, '당신 땀구멍까지 다 껴안아줄 수는 있어도/당신을 잡을 수는 없다.' 욕조에 담긴 물은 썩는다. '당신이 나를 다 잊어서 내가 죽는다.' 이 썩음은 물의 죽음을 말하는 것일까? 당신에게 스며들 수 있는 물은 살아 있는 물이고, 당신을 소유할 수 없는 물은 흘러나가고 잊혀져야 한다. 썩은 물은 물의 존재 방식 자체에 이미 예비된 사건이다. '당신 눈동자 속의 물'은 물끄러미' 그 속에서 살아 있고, 잊혀진 물은 그러나 '미쳐서 썩지 않는다.' 그래서 물은 결국 땅속을 흐르거나 '하수구'의 생을 산다. 검고 썩은 물은, 그 썩음의 방식으로 새로운 존재 이전을 꿈꾼다. 죽었으나 죽지 않고, 썩었으나 썩지 않는 물, 당신 몸에 스미는 매 몸, 내 몸의 꿈, 내 몸-꿈의 존재 방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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