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습방/시모음

면목동/유희경

그대 그리고 나/포항 2014. 7. 8. 01:16

<유희경, 면목동>

 

아내는 반 홉 소주에 취했다 남편은 내내 토하는 아내를 업고 대문을 나서다 뒤를 돌아보았다 일없이 얌전히 놓인 세간의 고요

 

아내가 왜 울었는지 남편은 알 수 없었다 어쩌면 영영 알 수 없을 지도 모른다 달라지는 것은 없으니까 남편은 미끄러지는 아내를 추스르며 빈 병이 되었다

 

아내는 몰래 깨어 제 무게를 참고 있었다. 이 온도가 남편의 것인지 밤의 것인지 모르겠어 이렇게 깜깜한 밤이 또 있을까 눈을 깜빡이다가 도로 잠들고

 

별이 떠 있었다 유월 바람이 불었다 지난 시간들, 구름이 되어 흘러갔다 가로등이 깜빡이고 누가 노래를 불렀다 그들을 뺀 나머지 것들이 조금 움직여 개가 짖었다

 

그때 그게 전부 나였다 거기에 내가 있었다는 것을 모르는 건 남편과 아내뿐이었다 마음에 피가 돌기 시작했다 이야기는 이렇게 시작되었다

 

 

가난하지만 서로를 보듬어 가는 어느 부부를 보고서, 사랑이 무엇인지를 배우는 젊은 시인의 감수성이 너무 보기 좋은 시다. 아내가 왜 그렇게 술에 취했는지, 혹은 아내가 왜 울었는지 남편은 알지 못한다. 그렇지만 남편은 그냥 혹은 마냥 아내를 업는다. 그녀의 마음은 업지 못한 듯 보이지만, 그녀를 업었으니 아내의 마음마저 업은 것 아니겠는가. 그저 말없이 덮어 주는 것, 혹은 업어 주는 것은 백 마디의 밀어보다도 더 사랑의 본질에 가까운 법이니까 ‘미끄러지는 아내를 추스르며 빈 병이 되는 남편’과 그 등에서 편안해 하는 아내를 보면서, 유희경은 시인으로 제대로 탄생한다. 그의 말대로 ‘마음에 피가 돌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유희경 시인뿐만 아니라 모든 사람이 자신만의 삶을 살아 내고 그것을 표현할 수만 있다면, 인간은 서로에게 상상력의 원천이 될 수 있다. 모든 사람의 행동이나 표현에는 ’전달과 노예의 언어‘가 아니라 자신만의 고유한 ’심금을 교류할 수 있는 언어‘가 작동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 지점에서 ’단독성=새로움=상상력‘이란 기묘한 삼위일체가 성립한다. 단독적인 것만이 새롭게 느껴지고 우리의 상상력을 자극한다. 그리고 상상력이 풍부한 사람만이 단독적이고 새로운 삶을 살아 낼 수 있다. 김수영이 ’시적 인식이란 새로운 진실의 발견‘이라고 강조한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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