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습방/시모음

190110-박상순 시인 특강/포은 어울마루

그대 그리고 나/포항 2019. 2. 15. 21:25

 -슬픈 감자 200그램-

슬픈 감자 200그램을 옆으로 옮깁니다

슬픈 감자 200그램을 신발장 앞으로 옮깁니다

그리고 다음날엔

슬픈 감자 200그램을 거울 앞으로 옮깁니다

 

슬픈 감자 200그램을 옷장에 숨깁니다

어젯밤엔

슬픈 감자 200그램을 침대 밑에 넣어두었습니다

오늘밤엔

슬픈 감자 200그램을 의자 밑에 숨깁니다

 

슬픈 감자 200그램은 슬픔니다

슬픈 감자 200그램은 딱딱하게 슬픕니다

슬픈 감자 200그램은 알알이 슬픕니다 

 

슬픈 감자 200그램은

 

인물

박상순 시인, 출판인
출생
1962년 11월 25일 (만 56세)
학력
서울대학교 서양화
데뷔
1991년 계간 '작가세계' 등단
수상
2013 제14회 현대시작품상  외 2건
경력
2006 문학에디션 뿔 대표  외 3건
 
 

-시적 언어와 음악적 요소들의 만남-

 

*메시지 전달적 시가 아닌 미술적, 음악적, 개별적 존재의 의미의 시

*미술학도의 문학소년화-독서 선호, 종로시립도서관 애용

-군제대 귀가 차 속에서 문학매진 결심

*현 출판사 믿음사 편집장 재임

*미술은 비문자적 비논리적으로 문학과는 물과 기름 관계

* 아끼는 시집-첫 시집/거친 맛

*그림, 동화 번역등 실험적 창조성 구가

*경계를 초월하는 것이 아닌 미술이나 문학은 관련성이 있는 개성

*예술적 음악적 소양이 있는 문학인이 바람직

*작품의 구성-1. 구체적 사건 연급 2. 언어의 자발적 표현-러브 아다지오 3, 현학적-왕십리 올댓

*해설집 비선호. 독자에 있는는 그대로 날 것을 먹을 권리 존중

*신춘심사 소회-1. 기본기 2. 발전 가능성 3.관습적 타성에 젖은 것보단 새로움 추구

 

 

 

 

 

 

**소박하고 따듯하며 인간적인 품성이 마음에 들었으나 그의 시세계는 쉽게 이해난해 했다.

그의 시세계를 곰씹어 보고자 그의 시집 "슬픈 감자 200그램" 뒷편의 시인의 말을 옮겨보고자 한다

 

 슬픈 도구가 있다면 나는 그것으로 세상에서 가장 따듯한 봄날을 그리고 싶다. 나의 도구는 구체적이거나 실제적인 것을 통해 더 구체적이거나 더욱 실제적인 것으로

항할 것이다. 그러나 내가 처음에 이 길을 선택했던 이유처럼, 나의 도구는 언어이고. 이미지와 소리와 문자이고, 나 자신이고, 문제인, 오래된, 낡은 집이어서 어쩔 수 없이, 차선책인 나 자신만의 미비한 독자성에 기댈 수 밖에 없다. 하지만 미비한 개인에게도 사실이나 진실을 밝히는 것은 어렵기도 하지만, 가슴에 묻어두고 가야하는 것 또한 진실일 수 밖에 없다. 때로는 참이, 거짓이나 침묵, 헛것들을 만나 진실이 된다. 나에게 사진과 행위, 동작이나 동세는 진실을 비껴서는 것이기도 하지만 뒤집고, , 버리고, 되돌아서는 작용점으로써 실제적인 곳으로 도구를 끌고 가려는 마음과 같다. 하나의 작품은 발단의 연유나 종결의 의미를 넘어서는 곳에 있다. 그러나 세상은 지각이나 감각 또는 인지의 결과와는 다른 것일 수 있고, 나는 그 한계 안에 있다. 허구처럼 보이는 사건들과 이미지로서의 환영을 교차하면서, 미미한 나의 문제와, 절박하게. 침통하게, 그러나 따듯하게 대변하고자 했지만, 더 즉물적으로 그것을 드러내고자 한다면 어떠한 의미도 배제해야 한다. 문제들은 즉물적인 것들을 통해 마침내 미적으로 환상을 만들며 소멸한다. 따라서 그런 즉풀성을 통해 구조에서 구축으로, 시선에서 포착으로의 이동이 필요하지만 나의 도구는 아직, 거리보다는 관계에 놓여 있다. 그래서 아직은 상황과 감정이 햇빛 속의 먼지처럼 떠돈다.

 언어 공간을 여는 길은 경계의 확장이나 출구를 통한 방법이 아니라 공간을 먼저 확정하는 데 있다. 그러나 시선이나 표현을 넘어서는 시적 대상이나 상황을 현재와 같은 고정된 무대에서는 기대하기 어렵다. 대상의 동태를 내 안에 옮겨, 다시 바깥과 잇는 과정에서의 호흡과 박동의 차이, 잡음에 관한 것들, 그리고 매체가 경직된 내용을 생성하기 전에 방향의 역전을 꾀했지만, 의미를 단순하게 확정하는 경향을 가진 구체제와의 관계를 생각하면 심란하다. 그런 심란함은 자연을 차용하거나 정서적 상황에 머물게 한다.

 다시 기회가 주어진다면 차라리 의지나 욕망 안에서 자유로울 수 있을까. 떠돌거나 격동하는. 내 십장에 박힌 기억을 열고, 두려움을 감춘 채 세상의 만은편에서 나를 바라보고 있는 것들도 가볍게 날려 보내는, 그런 봄날뿐인 봄날을 만들 수 있을까

 주어진 기회라고는 단지 예술밖에 모르는 미미한 크기의 나는, 그래도 이 세상에 한 점으로서나마 잠깐의 숨을 쉬며, 그 숨으로 오늘은 겨우 200그램짜리 감자들을 내놓는다. 그러나 이것이 유동이나 불확정성에 관한 포착, 연결구조를 열면서도 위에서 닫아버리는 구축이라면 좋겠다. 그래서 내일 오후쯤에는, 나의 언어가 예술적 기술과 비장함을 딛고, 맑고 투명한, 또는 어둡고 칙칙한, 그런 등등의 물체를 가진, 햇빛 속의 하루로 바뀐다면 좋겠다. 더 어려운 일이지만 그 반대로도 늘 가능하다면 좋겠다.

 당나귀. 기린. 대장, 좀 이쁜 누나, 고독, 고래. 시금치에게 미안하다. 아직은 밤이니 내일 저오까지는 우리 모두, 무사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