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습방/시모음

190219-은밀한 사생활 6차시-시적 묘사

그대 그리고 나/포항 2019. 2. 19. 22:02

3. 시적 묘사

-묘사의 어룰림, 묘사와 언어의 절제, 묘사 속의 설명, 묘사와 장식적 수사

 

**정묘/박용래**

가.

싸리울 밖 지는 홰가 있었다

보리 바심 끝마당

허드렛군이 모여

허드렛불을 지르고 있었다

푸슷푸슷 튀는 연기 속에

지는 해가 있었다

뻐꾸기 소리

정소리

도리깨 꼭지에 지는 해가 또 하나 있었다.

 

나.

싸리울 밖 지는 해가 ㅡㅡㅡㅡㅡ있었다

보리 바심 끝마당

허드렛군이 모여

허드렛불을 지루고 있었다

푸숫푸숫 튀는 연기 속에

지는 해가 ㅡㅡㅡㅡㅡ있었다.

ㅡㅡㅡㅡㅡㅡ

ㅡㅡㅡㅡㅡㅡ로 우는 뻐꾸기 소리

징소리

도리깨 꼭지에 지는 해가 ㅡㅡㅡㅡㅡㅡ 있었다.

 

**가>는 객관적 묘사이다. 작가는 한 자리에 서서 싸리울 밖, 보리 바심 끝마당의 허드렛불, 도리깨 꼭지를 보면서 그 곳마다 있는 '지는 해'를 발견하는 놀라운 관철력을 보여준다. 이 작품의 아름다움은 보리 타작을 하는 농촌이면 어디에서나 볼 수 있는 저녁 풍경을 뻐꾸기 소리며 징소리 속에서 싸리울 밖"에 있는 ' 지는 해'와 '도리깨꼭지'에 '지는 해'. 이렇게 하나의 해가 다른 현상 속에 다른 모습으로 있음을 보여줌으로써 전혀 새로운 경험을 우리에게 안겨주는 데 있다.

 

**나>는 지는 해'가  '올올이 풀리고'있다든지, 연기 속에 '二重으로 풀리고'있다든지, '허드레/허드레로 우는 뻐꾸기' 라든지 하는 것은 객관적으로 관찰될 수 있는 사실이 아니라 작가의 심상에 그렇게 느껴졌다는 것이다. 그 심상이 구체화되어 있기 때문에 마치 객관적으로 관찰될 수 있는 사실이 아니라 작가의 심상에 그렇게 즈껴졌다는 것이다. 그 심상이 구체화되어 있기 때문에 마치 객관적 사실처럼 보일 뿐이다. 이것이 바로 주관적 묘사가 획득한, 개개인의 작가가 도달한 감각의 깊이에 따라 달라질 수 있는 심상 세계의 놀라운 깊이이다. 특히, '허드레/허드레로 우는 뻐꾸기'는 '허드레'라는 우리말이 저녁에 쓸쓸히 들리는 뻐꾸기 소리와 서로 어울려 일으키는 정서적 총격이다. '허드레'란 허름하고 낡아 함부로 쓸 수 있는 그렇고 그런 것을 지칭한다. 허드렛일이라는 말을 연상해보면 더 구체적 감각을 가질 수 있다. 지는 해가 싸리울타리에 걸려 올올이 풀리고, 허드렛불의 연기가 오르는 이른 저녁에 허드렛일을 하듯 울었다니 끔찍하리만큼 아름다운 이미지이다. 그 소리는 결국 허드렛일에 관한 우리들 개개인의 경험의 폭과 깊이에 따라 '허드레'라는 말의 내포를 우리 삶에서 찾아 읽어내는 능력에 따라 다를 수 밖에 없지만, 그러나 그 소리는 결코 단순하지 않고 點描/점묘의 세계와 어울려 깊고 미묘하게 울린다는 데 이 이미지의 아름다움이 있는 것이다.

 

**내 일곱 살 그루터기 오르면 트럭이 한 대 지나간다

시커먼 미군과 혀가 유난히 긴 군견

내 일곱 살 10개월

그 군용도로를 오가며 뿌려진다

계란꽃 질긴 줄기 힘들여 꺼꺼어

가슴털 껄끄러운 미군에게 주던 언니

미군 카메라 앞에서 초콜렛 꼬 쥐고 사진 찍히던 동생

내겐 단지 구경거리였다

난 일곱 살이었으니까

군용도로 밑으로 동네가 번쩍거리던 그때                    ->시적 거리가 멀다

그 길 따라서 숨어버린 언니가

내겐 더 이상 구경거리가 아니었다

난 이미 영어단어 몇 개쯤 알고 있었으니까

내 일곱살 그루터기에 앉아 있으면

저만치 앞의 내가 군견에게 쫓겨

달려오며, 아마도 울고 있는가 보다

 

**내 일곱 살 그루터기 오르면 트럭이 한 대 지나간다

시커먼 미군과 혀가 유난히 긴 군견

내 일곱 살 10개월

그 군용도로를 오간다

계란꽃 질긴 줄기 힘들여 꺾어

가슴털 껄끄러운 미군에게 주던 언니

미군 카메라 앞에서 초콜렛 꼭 쥐고 사진 찍히던 동생

나는 멀찍이 서서 구경했다

군용도로 밑으로 동네가 이상한 간판으로 번쩍거리던 그 때->독자를 이야기에 입장시킴

그 길 따라서 숨어버린 언니

내 일곱 살 그루터기에 앉으면

저만치 앞의 내가 군견에 쫓겨 달려온다

아마도 울고 있는가 보다

 

**패어진 가슴 복판, 바늘로 박혀 있는 유년을 털어낸다. (담배 한 개비 연소처럼) 푸르게 부서지는 기억 끄트머리. (아우성으로 달려오는 어린 시절,) 흔들리는 싸리꽃으로 살던 식구들, 희망동 산 2번지, 합성수지 피막, 타버린 구리선처럼 골목마다 (그을음으로 붙어있던) 배고픔, (중모리) 가위 소리로 겨웁게 하루를 끌고 다니던 아버지, 밤마다 기름종이 지붕 사이로 보던 별, 빈병 가득한 아버지 손수레 꿈에 보며 (헤아리던) 소원빌기. 여섯 살 (기억) 한가운데로 (나비처럼) 계고장 날아들던 날, 숨막히도록 안아주던 어머니 가슴, 희미하게 묻어나오던 눈깔사탕 내음, 볼우물 패이도록 담배 빨던 아버지, 뒷산 아타시아 배부르게 따먹고 내려오던 동네 언저리, 쓰러진 집 앞에서 울던 어머니. (뒹구는 구들 들어 흔드련 폭포로 쏟아질 싸리꽃 웃음,) 그날따라 무섭던 아랫동에 예배당 소리 높던 찬송가.

 

-바늘로 박혀 있는-은유

-담배 한 개비 연소처럼-뒤의 푸르게의 희미를 희석시키므로 생략

 

**휘발/최승호**

 

장의차연대가 파업을 해서

무덤 가는 길을 다 봉쇄하고

힘없는 시신들을 인질로 삼으면 어쩔 것인가

자의차들을 모두 폐차장으로 끌고 가서

찌그러떠린다고 해서

밀려오는 장례식들이 멈추는 것은 아닐 것이다

 

포이동 사거리 주유소 옆길

만발한 벚나무, 곷잎들 바람에 흩어진다

어느 날 물결나비들이

이 땅에서 다 사라져도

주유소 기름 저장 탱크에는 중동 사막에서

퍼 올린 석유가 남아 있을 것이다

그리고 어느날 내가 휘발해버린 그때에

더 이상 불안으로 덜덜거리는 중고중고의 혼이 나에게는 없을 것이며

재생 타이어처럼 재생될 뼈와 살도 없을 것이다

그렇지만 지금은 누구나 석유를 걱정한다

기름통이 바닥나기 전에 휘발유를

가득 넣다 보면 전쟁으로 석윳값은 떵충 뛰어 있고

휘발유 냄새 속에 오고 가는 얄따란 영수증과 만 원권 지폐들

옷에 기름때 절은 말총머리 아가씨는 사막을 건너가는 낙타들에게 나눠주듯

생수 두 병을 들고 걸어온다.

 

**습작시/빗속 오늘 아침**

 

아침 칙칙한 비

이불 속의 여자

쬐끔 더 꼬므락 대잖다

급히 해야 할 일

그의 손 슬며시 떼어놓고

빗속을 누빈다

비 맞는 일 속

일은 좋아합디다

일이 이젠 됐네 언능 다음 일정 봐봐한다

화요일마다 아침 10시부터 두시간 맞는 시의 샤워

메마른 가슴 촉촉히 보듬고

깨끗히 세례를 받은듯

 

봄도 배시시 그렇게 올 모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