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식당/프랑시스 쟘*
우리 집 식당에는 윤이 날 듯 말 듯한
장롱이 하나 있는데, 그건
우리 대고모들의 목소리도 들었고
우리 할아버지의 목소리도 들었고
우리 아버지의 목소리도 들은 것이다
그들의 추억을 언제나 간직하고 있는 장롱,
그게 암 말도 안 하고 있다고 생각하면 잘못이다
그건 나와 이야기를 나누고 있으니까.
거기엔 또 나무로 된 뻐꾹시계도 하나 있는데,
왜 그런지 소리가 나지 않는다
난 그것의 까닭을 물으려 하지 않는다
아마 부서져버린 거겠지.
태엽 속의 그 소리도
그냥 돌아가신 우리 할아버지들의 목소리처럼
또 거기엔 밀랍 냄새와 잼 냄새, 고기 냄새와 빵 냄새
그리고 다 익은 배 냄새가 나는
오래된 찬장도 하나 있는데, 그건
우리한테서 아무 것도 훔치지 말아야 한다는 것을
알고 있는 충직한 하인이다.
우리 집에 많은 남자들이, 여자들이
왔지만, 아무도 이 조그만 영혼들이 있음을 믿는 사람은
없었다, 그래 나는 빙그레 웃는 것이다
방문객이 우리 집에 들어오며, 거기에 살고 있는 것이
나 혼자인 듯 이렇게 말할 때에는
-안녕하신지요, 쟘氏?
*기물器物과 사람의 차이는 없다. 윤이 날 듯 말 듯한 장롱은 우리 조상들의 목소리를 들은 존재이고, 마무 뻐꾹 시계는 돌아가신 할아버지들의 목소리처럼 소리가 나지 않는다. 옛 냄새의 오래된 찬장은 충직한 하인의 모습으로 형상화. 그래서 집을 방문하는 사람들이 나 혼자 집에 있는 듯, ‘안녕하신지요, 쟘氏?’ 라고 인사할 때 나는 빙그레 웃어줄 뿐이다. 마치 존재의 비밀을 아는 사람이 함부로 지껄이지 않는 것처럼.
-백석의 시 ‘목구木俱’에도 오래된 기물에는 정령이 있다고 믿는다
*가구의 힘/박형준*
얼마 전에 졸부가 된 사람이 있다 *순탄한 시작 우수
그 사람은 나의 외삼촌이다
나는 그 집에 여러 번 초대받았지만
그때마다 이유를 만들어 한번도 가지 않았다
어머니는 방마다 사각 브라운관 TV들이 한 대씩 놓여 있는 것이
여간 부러운 게 아닌지 다녀오신 얘기를 하며
시장에서 사온 고구마순을 뚝뚝 끊어 벗겨내실 때마다
무능한 나의 살갗도 아팠지만
나는 그 집이 뭐 여관인가
빈방에도 TV가 있게 하고 한마디 해주었다
책장에 세계문학전집이나 한국문학대계라든가
니체와 왕비열전이 함께 금박에 눌려 숨도 쉬지 못할 그 집을 생각하며,
나는 비좁은 집의 방문을 닫으며 돌아섰다
가구(家具)란 그런 것이 아니지
서랍을 열 때마다 몹쓸 기억이건 좋았던 시절들이
하얀 벌레가 기어나오는 오래 된 책처럼 펼칠 때마다
항상 떠올라야 하거든
나는 여러 번 이사를 갔었지만
그대마다 장롱에 생채기가 새로 하나씩은 앉아 있는 것을 보았다
그 집의 기억을 그 생채기가 끌고 왔던 것이다
새로 산 가구는
*사랑하는 사람의 눈빛이 달라졌다는 것만 봐도
금방 초라해지는 여자처럼* 사람의 손길에 민감하게 반응하지만 *표현 굿
먼지 가득 뒤집어쓴 다리 부러진 가구가
고물이 된 금성 라디오를 잘못 틀었다가
우연히 맑은 소리를 만났을 때만큼이나
상심한 가슴을 덥힐 때가 있는 법이다
가구란 추억의 힘이기 때문이다
세월에 닦여 그 집에 길들기 때문이다
전통이란 것도 그런 맥락에서 이해할 것-
하고 졸부의 집에서 출발한 생각이 여기에서 막혔을 때
어머니의 밥 먹고 자야지 하는 음성이 좀 누그러져 들려왔다
너무 조용해서 상심한 나머지 내가 잠든 걸로 오해하셨나
나는 갑자기 억지로라도 생각을 막바지로 몰고 싶어져서
어머니의 오해를 따뜻한 이해로 받아들이며
깨우러 올 때까지 서글픈 가구론(家具論)을 펼쳤다
-한국일보 신춘, 사유를 밀고 감이 우수
-성찰론의 시로 촘촘한 구성이 훌륭. ‘오래된 늙은 가구가 가지는 추억의 힘에 대한 몽상’이 시의 특징. 시는 졸부가 된 외삼촌과 가난하고 무능한 시인의 대비. 새로 산 가구(눈빛만 봐도 초라해지는 여자)와 오래된 가구(상심한 가슴을 덥히는 존재)를 대비하며 전개. 무한 애정의 대상은 후자. 가구는 집의 기억을 가지고 있다. 서랍을 열 때마다 하얀 벌레(잊혀진 기억)가 기어나와야 하며, 생채기를 볼 대마다 살았던 집이 떠올라야 한다. 가구란 오래된 책과 같다. 세월에 닦여 그 집에 길든다. 손때묻은 금성 가디오가 우리의 가슴을 뎁히듯 가구란 추억의 힘. 전통이란 그런 맥락. 여기까지 이르자 생각이 막힌다. 어머니의 밥 먹으라는 음성, 그것은 좋은 핑계거리를 제공. 억지로라도 생각을 막바지로 몰고 싶어져서 깨우러 올 때까지 서글픈 가구론을 펼친다 여기서 서글프다고 했지만, 이 서글픔은 진정 따사롭고 깊이 있는 서글픔이다.
'연습방 > 시모음' 카테고리의 다른 글
프랑시스 쟘 시와 한국 시-3 (0) | 2015.02.12 |
---|---|
프랑시스 쟘 시와 한국시 -2 (0) | 2015.02.12 |
말라르메/ (0) | 2015.02.05 |
취하라/보들레르 (0) | 2015.02.05 |
독자에게/보들레르 '악의 꽃' 권두시 관련 한국현대시 (0) | 2015.02.05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