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속, 울퉁불퉁하고/프랑시스 쟘*
광속, 울퉁불퉁하고 단단히 다져진 땅 위에
마디에서 잘리고 쪼개어진,
진흙 묻은 참나무 가지들을 싣고
달구지가 자고 있었다
요란하게 붕붕대며 돌아가던 탈곡기는
끈기 있게 기다리고 있는 황소들 가운데서
멈춰 서 있고, 잡동사니 조그만 조각들이
땅 위에 흩어져 있었다.
그 때 광의 들보 위에 있는 둥우리에서
하나님의 닭인 제비 새끼들이
아래로 떨어졌다.
그러자 두 소작인이 느리지만 능란하게
다른 이들 어깨 위에 뛰어올라,
가를 둥글게 높인 양철조각 하나를
못으로 천장에 붙였다.
거기에 그들은 밀짚을 채우고
떨어진 제비새끼들을 올려 놓았다.
그 때 어미 제비가 겁 먹은 듯, 하늘 위로
길게 선을 그리며 날아올랐다.
그러나 조금씩 어미 제비는
둥우리로 돌아왔다.
나는 쇠스랑과 번들거리는 보습 옆에 앉아 있었는데,
다사로운 슬픔이 내 마음 속에 스며들었다.
그건 마치 내 영혼 깊숙이
잿가루가 약간 흩날리는 햇빛이 숨어 있는 것 같았다.
그러나 너무나도 예뻐 소녀들에게 주고 싶은
새끼 돼지 여덟 마리가 나타났다.
겨우 석 주일이나 될까 한 돼지새끼들이었다.
그것들은 염소 모양 등을 곧추 세우고
서로 싸우는 것이었다.
그 조그만 발들이 티각태각했다 *백석 시 ‘연자간’ 중 게모이(강아지들 장난 치듯)
주름지고 축 늘어진 젖통에
빳빳한 털을 한 암퇘지가 진흙 투성이로
땅에 주둥이를 쑤셔박고 있었다.
그 아름다운 여름 날, 내겐
우리 가난한 삶이 그의 모든
존엄성을 나타내고 있는 것 같았다.
그래, 내가 앉아 있는 등 없는 의자 옆으로
슬프고 말 없는, 아름다운 농부들이
어둡고 신선한 그늘 속으로 수레를 밀며 지나갔을 때,
난 그들에게 아무 말도 하지 않고
고개만 숙였을 뿐이었다.
-광 속, 그리고 광 주변의 농기구와 인간, 가축과 새들이 어울려 살아가는 모습을 사실적으로 묘사한, 다사로운 슬픔과 가난한 삶이 주는 존엄성이 드러나는 시이다. 1연에서 달구지, 탈곡기, 황소는 똑같은 존재로 섞여 있다. 2-4연에는 하나의 작은 스토리가 드러난다, 떨어진 새끼 제비들의 둥지를 인부들이 만들어주는 이야기다. 어미 제비는 겁 먹은 듯 날아 올랐다가 다시 적응하고, 그것을 본 나는 안쓰러움과 따뜻함에 다사로운 슬픔을 느낀다. 생후 삼칠일 된 돼지새끼들이 땅에 주둥이를 쑤셔박는 어미 돼지 옆에서 예쁜 발로 티격태격 싸우고, 거건 가난의 존엄성 같은 것이다(5-6연) 이윽고 나는 내 옆으로 지나는 농부들에게 고개만 숙이고 말없는 인사만 보낸다. 그것은 그 삶에 대한 존중
흡사한 시가 ‘백석/연자간(연자방앗간)’
달빛도 거지도 도적개도 모다 즐겁다
풍구재도 얼럭소도 쇠드랑볕도 모다 즐겁다
도적괭이 새끼락이 나고 *새끼발가락
살진 쪽제비 트는 기지개에 길고
홰냥닭은 알을 낳고 수리치고
강아지는 겨를 먹고 오즘 싸고
개들은 게모이고 쌈지거리하고 *장난치듯
놓여난 도야지 둥구재벼 오고 *다리 묶어 들다
송아지 잘도 놀고
까치 보해 짖고
신영길 말이 울고 가고 *신행길
장돌림 당나귀도 울고 가고
대들보 우에 베틀도 채일도 토리개도 모도들 편안하니
구석구석 후치도 보십도 소시랑도 모도들 편안하니
**두 편의 시엔, 한 편의 동화를 보는듯한 평화롭고 한가한 농촌 풍경이 드러난다. 다양한 동물과 기물, 사람들의 모습을 그리고 있는 것은 농촌의 배경이나 살림살이의 상황을 보다 효과적으로 드러내기 위한 것, 공동체는 사람만이 아니라 동물과 주변의 사람들도 포함하는 공동체다. 쟘 시 1연 달구지, 탈곡기, 소가 함께 놓여 있는 공간의 모습과, 백석 시 1연, 풍구와 얼룩소가 구성이 유사, 5연 새끼 돼지들의 앙증스런 싸움은 백석 시 4연, ‘개들은 게모이고 쌈짓거리하고/놓여난 도야지 둥구재벼 오고’와 흡사한 장면, 백석은 쟘 시를 참조, 한국의 풍경으로 환치, 백석 시에서 두드러진 점은 댓구와 음악성.
‘난 그들에게 아무 말도 하지 않고/고개만 숙였을 뿐이었다’ 의 정서는 송찬호 시에서 드러남
*접시라는 이름의 여자/송찬호*
한 때는 저 여자도 불의 딸이었다 *열정적, 야망의
불꽃이 그녀의 일생일 줄만 알았고
사랑만이 오직 불순물처럼
그녀의 일생에 끼여들 것으로 알았다
여자는 언제나 열심히 접시를 닦는다
거품 속에서 여자는 잠시 행복해진다
거품 속에서 잃어버린 반지를 찾은 것처럼
접시의 당초무늬가 퉁퉁 불은 그녀의 손을 어루만진다 *대상을 주체화, 주체의 역전, 모더 니즘 기법
그런 그녀가 잠시 외출 나와 창가의
내가 즐겨 앉는 테이블에 앉아 책을 읽는
것을 보았다 잠시 나는 점잖게 미소만 띄워보냈다
여자의 손톱 밑에서 양파 냄새가 배어나오고
설사 그녀가 읽는 책 속에서 내가 싫어하는 카레 요리가
쏟아져나온다 했을지라도 그렇게 나는 미소만 띄워보냈을 뿐이다*앞행 ‘띄워 보냈다’의 탄력화
여느 성미 급한 손님처럼
종업원을 불러 이렇게 소리치지도 않았다
여기 이 먹다 버린 지저분한 접시 좀 빨리 치워주시지 않겠습니까? *모더니즘 기법
단지 나는 맞은편에 조용히 다가가
넌지시 이렇게 속삭였을 뿐이다
부인, 지금 집에서는 위급 상황이 발생했답니다
오후 여섯시, 마요네즈 군대가 쳐들어온다 *식당의 분주
토마토 군대가 쳐들어온다
그 끔찍한 남편과 아이들이 쳐들어온다
*英詩의 자기화 특출 시인
*열정의 화신이 손가락이 /퉁퉁 불은‘ 생활인이 됨, 꿈많던 소녀 시절고 돌아갈 시간은 있다. 그 때 나의 시선은 말없이 미소만 띄워보낼 분, 소외된 자의 상처받은 마음을 위로, 감싸주는 시선, 쟘과 송찬호의 이런 말없는 응시가 유사
'연습방 > 시모음' 카테고리의 다른 글
송수권 시 모음 (0) | 2015.02.12 |
---|---|
프랑시스 쟘 시와 한국 시-3 (0) | 2015.02.12 |
프랑시스 쟘 시와 한국시-1 (0) | 2015.02.12 |
말라르메/ (0) | 2015.02.05 |
취하라/보들레르 (0) | 2015.02.05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