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습방/시모음

독자에게/보들레르 '악의 꽃' 권두시 관련 한국현대시

그대 그리고 나/포항 2015. 2. 5. 11:28

*독자에게/‘악의 꽃’ 권두시*

1연) 어리석음, 과오, 죄악과 인색에

정신은 얽매이고 몸은 들볶이니,

우리는 친숙한 뉘우침만 키운다

거지들이 몸에 이를 기르듯

 

2연) 우리의 죄는 끈질긴데 후회는 느슨하다

우리는 참회의 값을 톡톡히 받고

가뿐하게 진창길로 되돌아온다

비열한 눈물에 때가 말끔히 씻긴다고 믿으며

 

3연) 악의 베겟머리엔 <사탄 트리메지스트>,

흘린 우리의 넋을 흔들어 재우니,

의지라는 우리의 귀금속도

이 능숙한 연금술사 손엔 모조리 증발한다.

 

4연) 우리를 조종하는 줄을 쥐고 있는 건 저 <악마>!

우리는 역겨운 것에 마음이 끌려

날마다 <지옥>을 향해 한 걸음씩 내려간다.

겁도 없이 악취 픙기는 어둠을 지나,

 

5연) 늙은 갈보의 학대받은 젖퉁이를

핥고 물어뜯는 가난한 난봉꾼처럼

남몰래 맛보는 쾌락 어디서나 훔쳐

말라빠진 귤인 양 죽어라 쥐어짠다.

 

6연) 우리 뇌수 한 무리의 악마떼가

백만의 회충인 양 와글와글 엉켜 탕진하니,

숨 들이키면 <죽음>이 폐속으로

보이지 않는 강물처럼 콸콸 흘러내린다.

 

7연) 강간과 독약이, 비수와 방화가

비참한 우리 운명의 초라한 캔버스를

그들의 짓궂은 구상으로 아직 수놓지 않았다면,

아! 그건 우리의 넋이 그만큼 대담하지 못하기 때문!

 

8연) 그러나 승냥이, 표범, 암 사냥개,

원숭이, 전갈, 독수리, 뱀,

우리 악의 더러운 가축 우리에서

짖어대고 악쓰고 으르렁거리고 기어다니는 괴물들 중에서

 

9연) 제일 흉하고 악랄하고 추잡한 놈 있느니!

놈은 야단스런 몸짓도 큰 소리도 없지만

지구를 거뜬히 박살내고

하품 한 번으로 온 세계인들 집어삼키리;

 

10연) 그놈은 바로 <권태>!- 눈에는 무심코 흘린 눈물 고인 채

담뱃대 빨아대며 단두대를 꿈꾼다

그대는 안다, 독자여, 이 까다로운 괴물을,

-위선자 독자여,- 내 동류,- 내 형제여!

 

*인간은 죄악이 우글거리는 종족이라는 사실의 과감한 선언, 악이 사라진 이후의 권태를 감당할 수 있을 것인가? 어쩌면 악이 사라지지 않을 것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기 때문에...

*외국시 감상시 ‘번역투’ 초월 필수

 

*2연 관련시/때밀이 수건/최승호*

 

살이 얼마나 질긴지

때밀이수건에 먼저 구멍이 났다.

무명(無明)은 또 얼마나 질긴지 ->진리를 깨닫지 못하는 마음

돌비누 같은 경(經)으로 문질러도 ->경전

무명(無明)에 거품 일지 않는다.

주일(主日)이면

꿍쳐 둔 속옷 같은 죄들을 안고

멋진 옷차림으로 간편한 세탁기 같은 교회에

속죄하러 몰려가는 양(羊)들,

세탁비를 받으라 성직자여

때 밀어 달라고 밀려드는 게으른 양(羊)에게

말하라, 너희 때를 이젠 너희가 씻고

속옷도 좀 손수 빨아 입으라고,

제 몸 씻을 새 없는 성자(聖子)들이 불쌍하다.

그들의 때 묻은 성의(聖衣)는 누가 빠는지

죽음이 우리들 때를 밀러 온다

발 빠지는 진흙 수렁 늪에서

해 저무는 줄 모르고 진탕 놀다온 탕아를

씻어 주는 밤의 어머니

죽음이 눈썹 없이 아무 말 없이

우리들 알몸을 기다리신다.

때 한 점 없을 때까지

몸이 뭉그러져도 말끔하게 때를 문지르고 또 문지르는 죽음,

죽음은 때를 미워해

청정한 중의 해골도 씻고 또 씻고

샅샅이 씻어 몸을 깨끗이 없애 버린다

 

그렇다면 죽음의 눈엔 온몸이 다 때란 말인가?

 

 

6연) 우리 뇌수 한 무리의 악마떼가

백만의 회충인 양 와글와글 엉켜 탕진하니,

->관련 시

 

*몸/최승호*

 

몸 끙끙 앓는 하나님

누구보다도 당신이 불쌍합니다

우리가 암덩어리가 아니어야

당신 몸이 거뜬할 텐데

 

피웅피웅 회충떼처럼 불어나며

이리저리 힘차게 회오리치는

온몸이 혓바닥뿐인 벌건 욕망들

 

6연) ~

숨 들이키면 <죽음>이 폐속으로

보이지 않는 강물처럼 콸콸 흘러내린다.

->관련 시

 

*대낮/최승호*

 

콸콸콜 철관에서 폐수의 폭포가 힘차게 쏟아지고, 부글부글 거품의 소용돌이에 죽은 시궁쥐가 뜬다. 대낮의 장엄한 소용돌이, 도시 한 복판으로 검은 기관차가 무개차를 끌고 지나가고, 살아남은 태아들이 철뚝길에 나와 깔깔거리며 놀고 있다 산보다 높은 공장 굴뚝들, 굴뚝새는 이 여름 高山木에서 잎사귀들의 푸른 그림자가 층층이, 쌓여도 맑기만 한 물속, 山木魚 들여다보고 있을까.

 

-상반부는 영락없는 보들레르 스타일, 보들레르의 시를 계승하고 풍자, 시대상에 맞게 자신의 개성으로 변환

 

*이 시대의 죽음 또는 우화 /오규원*

 

죽음은 버스를 타러 가다가

 

걷기가 귀찮아서 택시를 탔다

 

나는 할 일이 많아

 

죽음은 쉽게

 

택시를 탄 이유를 찾았다

 

죽음은 일을 하다가 일보다

 

우선 한잔하기로 했다

 

생각해 보기 전에 우선 한잔하고

 

한잔하다가 취하면

 

내일 생각해 보기로 했다

 

내가 무슨 충신이라고

 

죽음은 쉽게

 

내일 생각해 보기로 한 이유를 찾았다

 

술을 한잔하다가 죽음은

 

내일 생각해 보기로 한 것도

 

귀찮아서

 

내일 생각해 보기로 한 생각도

 

그만두기로 했다

 

술이 약간 된 죽음은

 

집에 와서 TV를 켜 놓고

 

내일은 주말여행을 가야겠다고 생각했다

 

건강이 제일이지―

 

죽음은 자기 말에 긍정의 뜻으로

 

고개를 두어 번 끄덕이고는

 

그래, 신문에도 그렇게 났었지

 

하고 중얼거렸다

 

【군말】‘죽음’이라는 사람은 죽지 못해 산다. 그것은 남의 탓도, 또는 거창하게 말해 시대의 탓도 아니다. ‘죽음’(죽은 존재나 마찬가지의 삶을 살아가니까 시인이 붙여 준 이름이다.) 씨는 버스를 타러 가다가 걷기가 ‘귀찮아서’ 택시를 탄다. 그리고 할 일이 많아서 택시를 탔다고 자기를 합리화한다. 합리화(合理化)란 심리학에서 ‘어떤 일을 한 뒤에, 자책감이나 죄책감에서 벗어나기 위하여 그것을 정당화하는 것’을 말한다. 『이솝 우화』의 여우와 신 포도의 우화가 한 예이다. 술을 마시던 ‘죽음’ 씨는 ‘귀찮아서’ 내일 생각해 보기로 한 생각도 그만둔다. 그리고 집에 와서 TV를 보고, 건강을 위해서 주말여행을 가야겠다고 생각한다. 물론 그런 생각의 주체는 자신이 아니라 TV나 신문과 같은 대중 매체다. 이런 불구화된 ‘죽음’ 씨의 모습을 통해 시인은 우리에게 자신을 되돌아 볼 것을 요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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