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썩은 짐승 시체/보들레르 관련 시

그대 그리고 나/포항 2015. 2. 5. 11:14

*썩은 짐승 시체/보들레르*

 

그토록 따스한 이 아름다운 아침에

우리가 본 물건이 생각나는가, 귀여운 그대여,

오솔길 구비 조약돌 섞인

강 벌 위에 더러운 썩은 짐승 시체가.

 

음탕한 계집처럼 공중에

가랑이를 벌리고, 지글지글 타며 독액 흘리며

데면데면하고 뻔뻔스럽게

발산물로 꽉찬 배때기 열어제치고 있었지.

 

태양은 그 썩은 것 위에

알맞게 익히려는 듯 내리쪼이며,

그것이 한데 맺어 지닌 일체를

골백배로 불려 대자연에게 돌려주려는 듯.

 

하늘은 그 희한한 잔해

꽃이 피어오르듯이 굽어보고 있었지.

하도 악취가 진동하여

너는 풀밭에 실신하여 쓰러질 듯했지.

 

그 썩는 배 위에 파리데 웅웅거려,

거기서 검은 구더기떼 쏟아져 나오며

그 산 누더기를 따라

텁텁한 점액처럼 흘러내리더구나.

 

그 모든 것 파도처럼 오르내려,

혹은 팔딱팔딱 내달으니, 몸뚱이가 마치

흐릿한 바람결에 부풀어

골백으로 불아나며 살아가는 듯.

 

그 세계 흐르는 물과 바람처럼

야릇한 음악을 들려주나니,

혹은 키질꾼이 율동적으로

키 안에 넣고 까부는 낟알 같더라.

 

~~

 

바위들 뒤에 불안스런 암캐 놈이

성난 눈으로 우리를 노려보고 있었지.

그 해골에서 놓친 고깃덩이

놈이 되찾을 기회를 노리면서.

~~

그때는, 오 나의 미녀여,

너를 입맞춤으로 뜯어먹을 구더기에게 말하라.

우리 파괴된 사랑의 원형과

그 거룩한 본직을 내가 간직했다고!

~~

 

-썩은 짐승 시체는 우리의 미래, 보들레르의 냉철한 현실인식 능력을 과시. 아름답고 사랑스런 미녀의 미래 역시 동일. 기형도의 ‘죽은 구름’, 최승호의 ‘썩는 여자’, 이성복의 ‘파리’등에 영향

 

*파리/이성복*

 

초가을 한낮에 소파 위에서 파리 두 마리 교미한다 처음엔 쌕쌕거리며 서로 눈치를 보다가 급기야 올라타서는 할딱거리며 몸 구르는 파리들의 대낮 정사, 이따금 하는작거리는 날개는 얕은 신음소리를 대신하고 톨보숭이 다리의 꼼지락거림은 쾌락의 가는 경련 같은 것일테지만 아무리 뜯어보아도 표정 없는 정사, 언제라도 손벽쳐 쫓아낼 수도 있겠지만 그 작은 뿌리에서 좁은 구멍으로 쏟아져 들어가는 긴 생명의 운하 앞에 아득히 눈이 부시고 만다.

 

-종족보존이란 생명 현상을 시적으로 잘 표현

 

*죽은 구름/기형도 *

 

구름으로 가득찬 더러운 창문 밑에

 

한 사내가 쓰러져 있다, 마룻바닥 위에

 

그의 손은 장난감처럼 뒤집혀져 있다

 

이런 기회가 오기를 기다려온 것처럼

 

비닐 백의 입구같이 입을 벌린 저 죽음

 

감정이 없는 저 몇 가지 음식들도

 

마지막까지 사내의 혀를 괴롭혔을 것이다

 

이제는 힘과 털이 빠진 개 한 마리가 접시를 노린다

 

죽은 사내가 살았을 때, 나는 그를 몇 번인가 본적이 있다

 

그를 사람들은 미치광이라고 했다, 술과 침이 가득 묻은 저

 

엎어진 망토를 향해, 백동전을 던진 적도 있다

 

아무도 모른다, 오직 자신만이 홀로 즐겼을 생각

 

끝끝내 들키지 않았을 은밀한 성욕과 슬픔

 

어느 한때 분명 쓸모가 있었을 저 어깨의 근육

 

그러나 우울하고 추악한 맨발 따위는

 

동정심 많은 부인들을 위한 선물이었으리

 

어쨌든 구름들이란 매우 조심스럽게 관찰해야 한다

 

미치광이, 이젠 빗방울조차 두려워 않을 죽은 사내

 

자신감을 얻은 늙은 개는 접시를 엎지르고

 

마루 위엔 사람의 손을 닮은 흉측한 얼룩이 생기는 동안

 

두 명의 경관이 들어와 느릿느릿 대화를 나눈다

 

어느 고장이건 한두 개쯤 이런 빈집이 있더군,

 

이따위 미치광이들이 어떻게 알고 찾아와 죽어갈까

 

더 이상의 흥미를 갖지 않는 늙은 개도 측은하지만

 

아무도 모른다, 저 홀로 없어진 구름은

 

처음부터 창문의 것이 아니었으니

 

 

*썩는 여자/최승호*

 

그녀는 지하생활자가 되어 간다

지하철을 타고 지하상가의 많은 물건들을

방에다 가득 채우는 그녀의 머리에

끈끈한 음지식물들이 자라는 것을

나는 보고 있다 그녀는

지하생활자가 되어 간다 습기시멘트 냄새,

하수구의 악취,

그녀의 살가죽은 눅눅하고 퀴퀴하게

속으로부터 썩으며 곪고 있지만 아직

구멍이 난 것은 아니다 새끼들을 치고

부엌에 나타나 뻘뻘거리는

쥐며느리, 바퀴벌레, 그리마

축축한 벽지를 들고 일어나는 곰팡이

그녀의 싸움은 결국 곰팡이들의 승리로 끝날 것이다

밤이면 관 속에 누워 있는 여자,

천장 위에 이사온 사람들이 못질하는 소리,

그녀는 조금씩 시체를 닮아 가는 모양이다

발가락들은 헐어 진물을 흘리고

화장품은 더 이상 그녀의 주름살을

덮어 주지 않는다 때때로 그녀도 책을 읽는다

늙은 학자의 흰 수염처럼 하얀 벌레들이 기어나오는 책

그러나 정말

어떻게 살아야 할지를 모르겠다고 중얼대다 잠든다

컴컴한 문명 속의 이 문둥이 여자

그 어디

햇볕 좋은 땅 위로 데려가

그녀의 머리에 끈끈하게

거머리처럼 자라난 음지식물들을 말려 죽여야 할까

- 최승호 『고슴도치의 마을』, <썩는 여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