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습방/시모음

저 할머니의 슬하/문인수

그대 그리고 나/포항 2014. 4. 6. 03:01

**저 할머니의 슬하**

 

                                      문인수

 

할머니 한 분이 초록 애호박 대여섯 개를 모아놓고 앉아 있다

삶이 이제 겨우 요것밖엔 남지 않았다는 듯

최소한 작게, 꼬깃꼬깃 웅크리고 앉아 있다.

귀를 훨씬 지나 삐죽 올라온 지게 같은 두 무릎, 그 슬하에

동글동글 이쁜 것들, 이쁜 것들,

그렇게 쓰다듬어보는 일 말고는 숨쉬는 것조차 짐 아닐까 싶은데

노구를 떠난 거동일랑 전부

잇몸으로 우물거려 대강 삼키는 것 같다. 지나가는 아낙들을 부르는 손짓,

저 허공의 반경 내엔 그러니까 아직도

상처와 기억들이 잘 썩어 기름진 가임의 구덩이가 숨어 있는지

할머니, 손수 가꿨다며 호박잎 묶음도 너풀너풀 흔들어 보인다.

 

***슬하라는 말, 참 서늘하지 않나요. 난전의 할머니들, 여뀌풀 같은 그분들은 지나가는 사람들과 일일이 눈을 맞추는 가운데서도 채소며 과일은 얼마나 정갈하게 닦아놓는지. 귀를 두 무릎 사이에 묻은 채, 그분들은 호박 대여섯 개, 자신이 낳은 초록의 아이들을 슬하에 두고 있습니다. 그뿐인가요, 자주 쳐다보는 허공 중에도 생의 고통과 아픈 상처를 발효시킨 가임의 구덩이를 파놓은 분들이시지요, 자나온 그 난산의 생을 생각해 보세요. 모성은 반경이 참 넓다는 생각을 합니다. 그래, 모성이 못 낳을 것이 무엇이겠습니까? '귀를 훨씬 지나 삐죽 올라온 지게 같은 두 무릎'이 지탱하는 얼마남지 않은 생에서도 '꼬깃꼬깃 웅크리고 앉아' 끊임없이 무엇을 낳아 '너풀너풀 흔들어 보'입니다.

 

                        <쉬! 우주가 참 조용하였겠습니다/손진은 옮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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