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습방/시모음

190226-최미경의 은밀한 사생활 7차시/묘사의 구조와 시점

그대 그리고 나/포항 2019. 2. 27. 11:59

4.묘사의 구조와 시점

 

시적 묘사가 대상의 지배적인 인상을 형상화하는 언술 행위라고 하더라도, 그 대상의 특성, 시점에 따라 달라질 수 밖에 없다. 가시적 공간의 서경, 서사와 비가시적 공간에 속하는 심리적 대상인 심상을 표현하는 묘사가 각각 객관적, 주관적 양상을 나타낸다거나. 시적 인식의 주체, 즉 시작을 하는 사람이 대상을 감지하는 시각에 따라 다양한 시점의 형태가 나타나는 것도 그 때문이다.

묘사가 해석보다 현시 顯示/나타내 보임,를 축으로 하는 언술형식이므로 형상화된 모든 대상의 세계는 언제나 회화성을 공통으로 갖고 있다. 그 회화성을 대상의 특성에 따라 분류해보면 대체로 서경, 서사, 심상의 구조로 드러난다.

 

1. 서경적구조란 서경이라는 말의 사전적 의미가 암시해주듯, 언어로 그려진 풍경화의 형태이다. 그리고 그 풍경화적인 공간은 일발적으로 고정시점, 이동시점, 회전시점 및 영상조립시점 등으로 구축된다.

 

**통영/백석**

 

통영장 낫대들었다

 

갓 한 닢 쓰고 건시 한 접 사고

홍공단 댕기 한 감 끊고 술 한 병 받어들고

 

화륜선 만져보려 선창 갔다

 

오다 가수내 들어가는 주막 앞에

문둥이 품바타령 듣다가

 

열이레 달이 올라서

나룻배 타고 판데목 지나간다 간다

 

*이동시점

*뿅간 통영여자를 보기 위해 간 통영의 엉뚱한 관광 시

 

**달 포도 잎사귀/장만영**

 

순이, 벌레 우는 고풍한 뜰에

달빛이 밀물처럼 밀려왔구나

 

달은 나의 뜰에 고요히 앉아 있다

달은 과일보다 향그럽다

 

동해 바다 물처럼

푸른

가을

밤.

 

포도는 달빛이 스며 고웁다

포도는 달빛을 머금고 익는다

 

순이, 포도 넝쿨 밑에 어른 잎새들이

달빛에 젖어 호젓하구나

 

*뜰의 고정시점

 

**추일서정 秋日抒情**

 

낙엽은 폴란드 망명정부의 지폐

포화에 이지러진

도룬의 가을 하늘을 생각케 한다

길은 외줄기 구겨진 넥타이처럼 풀어져

일광의 폭포 속으로 사라지고

조그만 답배 연기를 내어 뿜으며

새로 두 시의 급행차가 들을 달린다

포플라나무의 근골 사이로

공장의 지붕은 흰 이빨을 드러내인 채

한 가닥 꾸부러진 철책이 바람에 나부끼고

그 위에 세로팡지로 만든 구름이 하나

자욱한 풀벌레 소리 발길로 차며

호올로 황량한 생각 버릴 곳 없어

허공에 뜨우는 돌팔매 하나

기울어진 풍경의 장막 저쪽에

고독한 반원을 긋고 잠기어 간다

 

*회전시점

 

**역/한성기**

 

푸른 불 시그낼이 꿈처럼 어리는

거기 조그마한 역이 있다

 

빈 대합실에는 의지할 의자 하나 없고

이따금

급행열차가 어지럽게 경적을 울리며

지나간다

 

눈이 오고

비가 오고......

 

아득한 선로 위에

없는 듯 있는 듯

거기 조그만 역처럼 내가 있다

 

* 마음 속 풍경. 심상, 영상조립시점

 

**메시지/프레베르**

 

누군가 연 문

누군가 닫은 문

누군가 앉은 의자

누군가 쓰다듬은 고양이

누군가 깨문 과일

누군가 읽은 편지

누군가 넘어뜨린 여자

누군가 연 문

누군가 아직 달리고 있는 길

누군가 건너지르는 숲

누군가 몸을 던지는 강물

누군가 죽은 병원

 

*심상적 구조의 영상조립 시점. 머릿속 물상, 초현실적 기법, 주관적

 

**그곳/이상국**

 

나무들도 엉덩이가 있다

새벽 숲에 가면 군데군데 쭈그리고 앉아

볼일 보는 나무들을 볼 수 있는데

그런 날 아침은 산이 향기로 가득하다

 

내 사는 설악산의 엉덩이는 얼마나 깊고 털이 무성한지

내 그것과는 감히 견줄 수가 없다

또 어떤 날은 미시려을 넘어가며

달도 엉덩이를 보일 때가 있는데

그 모습이 하도 아름답고 섹시해서

나는 어둠 속에서 용두질을 할 때도 있다

 

모든 것들은 엉덩이가 있고

우리는 모두 그곳에서 홨는데

하늘은 발딛을 데가 없으므로

더러 구름이나 물체를 보내거나

오줌 소나기로 강을 닦아 놓고는

자신의 엉덩이를 비취 보고는 한다

 

**시 파는 사람 / 이상국**

젊어서는 몸을 팔았으나
나도 쓸데없이 나이를 먹은데다
근력 또한 보잘것없었으므로
요즘은 시를 내다 판다
그런데 내 시라는 게 또 촌스러워서
일년에 열 편쯤 팔면 잘 판다
그것도 더러는 외상이어서
아내는 공공근로나 다니는 게 낫다고 하지만
사람이란 저마다 품격이 있는 법
이 장사에도 때로는 유행이 있어
요즘은 절간 이야기나 물푸레나무 혹은
하늘의 별을 섞어내기도 하는데
어떤 날은 서울에서 주문이 오기도 한다
보통은 시골보다 값을 조금 더 쳐주긴 해도
말이 그렇지 떼이기 일쑤다
그래도 그것으로 나는 자동차의 기름도 사고
아이들에게 용돈을 주기도 하는데
가끔 장부를 펴놓고 수지를 따져보는 날이면
세상이 허술한 게 고마워서 혼자 웃기도 한다
사람들은 내 시의 원가가 만만찮으리라고 생각하는 모양이지만
사실은 우주에서 원료를 그냥 퍼다 쓰기 때문에
팔면 파는 대로 남는다는 걸 모르는 것 같아서다
그래서 나는 죽을 때까지
시 파는 집 간판을 내리지 않을 작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