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습방/시모음

네가 그리우면 나는 울었다/실천문학사, 강은교/서언

그대 그리고 나/포항 2017. 3. 19. 00:04

**서언**

 

언제부터인가

서정적인 이야기가 가득한

사랑에 관한 시가 무척이나 좋아졌다

 

그 안에서 만났던 그림도 살아있었다

무엇인가를 이야기했다

 

그것이 아팠던지

아프던지

아플 수 있던지 

이따금이라도 사람사는 이야기이고

삶에 꼭 필요한 그으름이고 

눈물이기 때문이 아닐런지

 

사랑타령이면

웃기는 사람이네 라고 말할 사람

수두룩 하지만

 

이제는 그게 좋다

나이들수록 더 뻔뻔해 지는 걸까

 

사랑에 관한 시는

시간의 흐름속에

더욱 더 애착이 가고

고마워지며 귀가 기운다

 

사랑이 좋다

삶이 좋다

그리고 그 시가 좋다

 

고은 님의 삶에 대한 시가

기억에 남는다

비록

우리가 가진 것이 없더라도

우리가 아는 것이 없더라도

여기 사는 동안

우리가 무엇을 가지며

무엇을 안다고 할 수 있겠는가  

다만 잎새가 지고 물이 왔다가 갈 따름이다

 

가슴이 저린다

이것이 삶이다

그리고 시다

 

네가 그리우면 나는 울었다

그러한 시들의 모임이다

 

차가운 겨울바람 속에 얼어있던 마음을

시가 깨운다

 

삶 / 고은




비록 우리가 가진 것이 없다 할지라도
바람 한 점 없이 지는
나무 잎새를 바라볼 일이다.
또한 바람이 일어나서
흐득흐득 지는 잎새를 바라볼 일이다.

우리가 아는 것이 없더라도
물이 왔다가 가는
저 오랜 썰물 때에 남아 있을 일이다.

젊은 아내여
여기서 사는 동안
우리가 무엇을 가지며
무엇을 안다고 하겠는가.
다만, 잎새가 지고
물이 왔다가 갈 따름이다.

 

네가 그리우면 나는 울었다.

                                     고정희

길을 가다가 불현듯
가슴에 잉잉하게 차오르는 사람
네가 그리우면 나는 울었다

목을 길게 뽑고 두 눈을 깊게 뜨고
저 가슴 밑바닥에 고여 있는 저음으로 첼로를 켜며
비장한 밤의 첼로를 켜며
두 팔 가득 넘치는 외로움 너머로
네가 그리우면 나는 울었다

너를 향한 그리움이 불이 되는 날
나는 다시 바람으로 떠올라
그 불 다 사그러질 때까지

어두운 들과 산굽이 떠돌며
스스로 잠드는 법을 배우고
스스로 일어서는 법을 배우고
스스로 떠오르는 법을 익혔다

네가 태양으로 떠오르는 아침이면
나는 원목으로 언덕 위에 쓰러져
따스한 햇빛을 덮고 누웠고
달력 속에서 뚝, 뚝,
꽃잎 떨어지는 날이면
바람은 너의 숨결을 몰고와
측백의 어린 가지를 키웠다

그만큼 어디선가 희망이 자라오르고
무심히 저무는 시간 속에서
누군가 내 이름을 호명하는 밤,
나는 너에게 가까이 가기 위하여
빗장 밖으로 사다리를 내렸다
수없는 나날이 셔터 속으로 사라졌다


내가 꿈의 현상소에 당도했을 때
오~ 그러나 너는
그 어느 곳에서도 부재중이었다

달빛 아래서나 가로수 밑에서
불쑥불쑥 다가왔다가
이내 바람으로 흩어지는 너,
네가 그리우면 나는 울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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