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리 이야기**
문정희
잠시 반짝이다 결국 깨어지는 유리가
사랑을 닮았다는 생각을 하지 않을 수 없다
모래를 끓여 유리를 만드는 동안
천 도의 불꽃으로 타오르던 사랑이
거짓말처럼 얇은 한 조각 파편으로 남을 때
산을 향해 돌거나
해를 향해 돌거나
결국 어딘가를 향해 돌고 도는 작은 심장을
유리로 한번 들여다보고 싶을 때가 있다
어찌하여 나는 유리를 믿지 못하는가
유리처럼 먼 곳을 투시해보고 싶은 목숨일 뿐인가
내 안의 신을 향해
내 안의 해를 향해
긑없이 묻는 것이 전부인가
망원경이 되어 별자리를 바라보고
하늘 중에서도 깊은 하늘을 항해하다
그만 깨지고 마는 유리를 닮은
내 사랑은 어찌하여 이리도 슬픈 두께여야 하는가
**물이 불과 흙을 만나 저토록 단단하게 응축되었어도 보라, 유리는 깨진다. '천 도의 불꽃으로 타오르던 사랑이/거짓말처럼 얇은 한 조각 파편'이 된다. 사랑은 흙과 같은 실체가 아니기 때문이며, 불과 같은 정념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러나 유리가 한 조각 파편으로 '신'과 '해'를 향해 돌다가 끝내 내 몸속을 떠돌 때, 그것은 사랑의 무한함을 증거하는 '작은 심장'이 된다. 사랑의 세계에 신이 있다면 그는 사랑의 영원성을 증거하는 보증자일 것이다. 그 세계에 해가 있다면 그것은 사랑의 편재(遍在)를 증명하는 확정성의 원리일 것이다. 나는 그 둘에게 끝임없이 질문을 건네지만, 나 자신이 유리에 빗대어지는 '슬픈 두께'임을 알고 있다. 나와 내 사랑은 저렇게 깨질 것이지만, 그것은 사랑의 실패이자 사랑의 완성이다. 그 파편이 바로 나 자신이기 때문이다. 나는 실패함으로써만 완성된다.
-문정희 시집 '카르마의 바다' 148~149쪽. 권혁웅 시인 해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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