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습방/시모음

191015-시의 여백/ 이 대흠 시 중심

그대 그리고 나/포항 2019. 10. 20. 17:31

인물

이대흠 시인
출생
1967년 2월 4일 (만 52세)전남 장흥군
데뷔
1994년 '창작과비평' 등단
수상
1999 작가세계 신인상

* 상황을 시 창작 소재로 삼다

 

**남편과 나편**

 

동네에서는 부꾸러워 배우러 다니지 못했다며

한시간 거리인 나주에서

한글 배우러 다니는 남평 할머니

 

버스 타고 오시냐는 말에 빙그레 웃기만 하더니

받아쓰기 시간에 속마음을 다 들켰다

 

우리나라를 우리나라로

아버지를 아버지로

어머니를 어머니로 똑바로 잘 썼는데

남편을 쓰랬더니

또방또박

나편이라고

바르게 틀렸다

 

남편을 써보라니까요

다시 말해도 어떻게 영감님을 남의 편이라고 하냐며

그건 잘못된 말이라고

끝까지 나편이란다

 

**나다**

 

어머니는 내게 전화할 때 '나다'라고 하신다

말하는 나와 말 듣는 나 사이가 구별되지 않는다

예전에 전화할 땐 '엄마다'라고 하셨는데

일흔 넘은 어머니는 '나다'란 말 외엔 하시지 않는다

 

그 말을 들을 때마다 내 뭄이 어머니의 일부였다는 사실이 떠오른다

어머니는 육체가 가는 걸 느끼며, 나였던 모든 것을 생각하셨을까

 

나다, 나다, 나다, 라는 어머니의 말을 듣다보면

다른 집 아이들은 물론이고

강아지나 새새끼, 병아리나 고도리, 두엄 더미의 민들레끼

다 나여서, 나는 어느새 어미가 되고 만다

 

탯줄이 잘리면서부터 나는 

어미였던 기억을 잊으려 했구나!

 

오래전부터 나의 태양이 뜨고 나인 바람이 분다

꽃인 내가 피고 물인 내가 흐른다

나는 돌이고, 날씨고, 사랑이다

목숨인 나는 죽음이다

 

어머니 가신 후 나는

널 속에 누워 이렇게 말하리

 

나다!

 

**당신은 북천에서 온 사람**

 

당신은 북천에서 온 사람

이마에서 북천의 맑은 물이 출렁거린다

그 무엇도 미워하는 법을 모르기에

당신은 사랑만 하고

아파하지는 않는다

 

당신의 말은 향기로 시작되어

아주 작은 씨앗으로 사라진다

 

누군가가 북천으로 가는 길을 물으면

당신은 그의 눈동자를 들여다본다

거기 이미 출렁거리는 북천이 있다며

먼 하늘을 보듯이 당신은

물의 눈으로 바라본다

 

그러는 순간 그는

당신의 눈동자 속에 풍덩 빠진다

 

북천은 걸어서 가거나

헤엄쳐 갈 수 있는 곳이 아니라

당신 눈동자를 거치면

바로 갈 수 있지만

사람들은 그곳에 들어가지 못하고

걷거나 헤엄을 치다가

되돌아나온다

 

당신은 북천에서 온 사람

사랑을 할 줄만 알아서

무엇이든 다 주고

자신마저 남기지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