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습방/시모음

190409-시의 여백

그대 그리고 나/포항 2019. 4. 10. 02:16

***황인숙 시 중심으로 ***

 

인물

황인숙 시인
출생
1958년 12월 21일 (만 60세)서울
학력
서울예술대학교 문예창작과 졸업
데뷔
1984년 경향신문 신춘문예 '나는 고양이로 태어나리라' 등단
수상
2018 제63회 현대문학상 시 부문  외 3건

-침울, 명랑, 자기부정의 시풍

 

**카페 마리안느**

 

"누군 저 나이에 안 예뻤나!"

스무 살짜리들을 보며 중년들이 입을 모았다

난,

나는 지금 제일 예쁜 거라고 했다

다들 하하 웃었지만

농담 아니다

눈앞이 캄캄하고 앞날이 훠언한

못생긴 내 청춘이었다

 

**묽어지는 나**

 

이상하다

거품이 일지 않는다

 

어젠 팔팔했는데

괜히 기진맥진한 오늘의 나

거품이, 거품이 일지 않는다

 

쓰지 않아도 저절로

소진돼버리는

생의 비누의 거품

 

**묵지룩히 눈이 올 듯한 밤**

 

이렇게 피곤한데

깊은 밤이어서

집 앞 골목이어서

무뚝뚝이 걸어도 되는 혼자라서

다행이라는 생각도 들지 않았다

죽을 것같이 피곤하다고

피곤하다고

걸음, 걸음, 중얼거리다

등줄기를 한껏 펴고 다리를 쭉 뻗었다

이렇게 피곤한 채 죽으면

영원히 피곤할 것만 같아서

그것이 문득 두려워서

 

죽고 싶도록 슬프다는 친구여

죽을 것같이 슬퍼하는 친구여

지금 해줄 예기는 이뿐이다

내가 켜 든 이 옹색한 전지 불빛에

생은, 명료해지는 대신

윤기를 잃을까 또 두렵다

 

**웃음소리에 깨어나리라**

 

낯선 집 낯선 가족 낯선 식사 자리에

돌연 내가 있다

어색해하는 건 나뿐

이들은 낯선 나를 개의치 않고

식사를 계속한다

하도 이상해서, 이게 꿈인가? 곰곰

생각해보니 꿈이 맞다

꿈인 줄 알면서도 어색하다

어찌나 어색한지 꿈같지 않다

그 세계 사람들은

얼마나 이상하게 사는 걸까?

난데없이 누군가 나타났다가

절로 사라지곤 하니

 

다음엔 한번 웃어보리라

커다랗게 깔깔깔 웃어보리라

그들이 깨어나리라

나를 빤히 바라보리라

 

봐라, 달이 오줌을 눈다

무덤 저편도 젖을 것이다

 

**산오름**

 

친구와 북한산 자락을 오른다

나는 숨이 찰 정도로 빨리 걷고

친구는 느릿느릿

긍이 기척이 이내 아득하다

나는 친구에게 돌아가 걸음을 재촉한다

그러기를 몇 번, 기어이 친구가 화를 낸다

산엘 왔으면, 나무도 보고 돌도 보고

풀도 보고 그름도 보면서 걷는 법이지

걸어치우려 드느냐고

아하!

친구처럼 주위를 둘러보며 걸으려는데

어느 새 휙휙 산을 오르게 되는 나다

땀을 뚝뚝 흘리며 바위에 앉아 내려다보면

멀리서 친구가 느릿느릿 올라온다

나무도 데리고 돌도 데리고

풀도 데리고 구름도 데리고

 

**흐린 날**

 

이 세상 몇 십 년 살아도

내 세상 같지 않다는 얼굴로

나이 지긋한 양반이 간다

회사 십 몇 년 다녀도

내 회사 같지 않다는 얼굴로

회사 지굿지굿한 양복쟁이가 간다

꽃눈 잔뜩 단 꽃나무들이

웅크리고 진눈깨비를 맞는다

이런 생각을 할 꽃는도 있으리라

"좋아, 이번이 아니라면 다음 생에는"

 

**알 수 없어요**

 

내가 멍하니 있으면

누군가 묻는다

무슨 생각을 그리 골똘히 하느냐고

 

내가 생각에 빠져 있으면

누군가 묻는다

그리 멍하니 있느냐고

 

거미줄처럼 얽힌 복도를 헤매다 보니

바다,

바닷가를 헤매다 보니

내 좁은 방

 

**그림자에 깃들어**

 

이방인들을 보면

왠지 슬프다

한 아낙이 오뎅꼬치를 문 금발 어린애들을

앞세워 지나가고

키 작은 서양 할아버지가 지나가고

회색 양복 서남아 청년이 지나간다

먼먼 땅에 와서 산다는 것

노인과 어린애

어느 쪽이 더 슬플까

 

슬픈 건 내 마음

고양이를 봐도 슬프고 비둘기를 봐도 슬프다

가게들도 슬프고 학교도 슬프다

나는 슬픈 마음을 짓뭉개려 걸음을 빨리한다

쿵쿵 걷는다

가로수와 담벼락 그늘 아래로만 걷다가

그늘이 끊어지면

내 그림자를 내려다보며 걷는다

그림자도 슬프다

 

**란아, 내 고양이였던**

 

나는 네가 어디서 오는지 몰랐지

항상 홀연히

너는 나타났지

주위에 아무도 없는 시간

그 무엇도 누구의 것이 아닌 시간

셋집 옥상 위를 서성이면

내 마음속에서인 듯

달 언저리에서인 듯

반 토막 작은 울음소리와 함께

네가 나타났지

 

너는 오직 나를 위해서인 듯 밥을 먹었지

네 밥은 사기그릇에서 방울 소리를 냈지

그리고 너는 물을 조금 핥았지

오직 나를 위해서인 듯

너는 모래상자를 사용했지

너를 붙잡아두고 싶었지만

그럴 수 없었지

너는 작은 토막 울음소리를 내며

순식간 몸을 감췼지

숨바꼭질을 하며 졸음은 쏟아지고

잠은 오지 않았지

 

그건 동트기 전이었지

우연히 나는 보았지

두 지붕 너머 긴 담장 위로

고단한 밤처럼 네가 걷는 것을

그 담장에는 접근 금지 경고판이 붙어 있지

너는 잠깐 멈춰

내 쪽을 흘깃 보았지

잠깐 비칠거리는 듯도 보였지

너는 너무도 고적해 보였지

오, 그러나 기하학을 구현하는 내 고양이의 몸이여

마저 사뿐히 직선을 긋고

담장이 꺾이는 곳에서

너는 순식간에 소실됐지

그 순간 사방에서 매미들이 울어댔지

그 순간 날이 훤해졌지

그 순간 눈물이 솟구쳤지

너는 넘어가버렸지

나를 초대할 수 없는 곳

머나먼 거기서 너는 오는 거지

너는 너무도 고적해 보였지

나는 너무도 고적했지

 

**우울**

 

나는 지금

알 수 없는 영역에 있다

깍지 낀 두 손을 턱 밑에 괴고

 

짐짓 눈을 치켜떠보고

가늘게도 떠보고

끔벅끔벅, 골똘애보지만

도무지 부팅이 되지 않는다

 

풍경이 없다

소리도 없다

전혀 틈이 없는

알 수 없는 영역을

내 몸이 부풀며 채운다

 

알 수 없는 영역에

하염없이 뚱뚱한 나

덩그러니 붙박여 있다

 

**못다 한 사랑이 너무 많아서**

 

하얗게

하얗게

눈이 시리게

심장이 시리게

하얗게

 

네 밥그릇처럼 내 머릿속

 

아, 잔인한, 돌이킬 수 없는 하양!

외로운 하양, 고통스런 하양,

불가항력의 하양을 들여다보며

 

미안하고, 미안하고

그립고 또 그립고

 

-이미지 양호,

-현대시 난해점, 대상의 비확연

 

**그 젊었던 날의 여름밤**

 

새벽에 전화벨이 울렸다

자냐고, Y가 물었다

아니, 전화 받고 있어

내 대답에 그는 큭큭 웃더니

그냥 나한테 전화하고 싶었다고 했다

무슨 일 있냐고 묻자

그냥, 그냥만 되풀이하다가

그냥,,,살고 싶지가 않아,,,라고 했다

그리고 그는 울고

나는 울음소리를 들었다

울다가 그는

툭,

전화를 끊었다

 

아직 젊었던 날의

시절은 기억나지 않지만 또 한 새벽에

전화벨이 울렸다

나, k인데,,,

오래 사귄 애인과 헤어졌다는 k는

어린 여자에게 가버린 애인에 대해

k를 못마땅해하던 애인의 가족에 대해

지운 아기에 대해

물거품이 돼버린 그림 같은 집과

토끼 같은 자식들에 대해

설움과 분노를 토했다

그리고 울먹이면서

죽고 싶다고 했다

잠 못 이루다 새벽에

전화로 나를 찾았던 Y와 K는

둘 다 별 연락없이 지내던

먼 친구였다

그 뒤 Y와 K가

어떻게 살았는지

나는 모른다

지금까지 살아 있다는 건 안다

나도 살아 있다

우리를 오래 살리는

권태와 허무보다 더

그냥 막막한 것들

미안하지만 사랑보다 훨씬 더

무겁기만 무거운 것들이

있는 것이다

 

**우수 습작시/당신에게/도경원**

 

여보, 우리 이렇게 생각하기로 하자

당신과 나

무대에 올라 연극을 하고 있지

그래서

일평생 해보지 않았던 연기를 하고 있다고

새벽에 눈을 뜨면 연극이 시작되지

우리 슬픔을 말아 올리듯

무대의 막이 오르면

어느 공사장 배경에

당신은 엑스트라 3으로

하루는 삽을 들고

하루는 밧줄을 당기지

나는 가난한 노가다의 아내 역할

해보지 않은 역이라 서툴고 힘이 들지

이 연극의 끝은 정해져 있지 않아

그래도 이럭저럭 연기생활 하다보면

당신과 나

새 배역을 만날 수 있지 않겠어?

생이 끝나기 전에

연기 대상 타게 될지 누가 알아

 

-무난한 습작시들은 일단 보관후 공모처 시풍과 일치하면 응모하여 등단

-미션은 직접 드러내지 않고 다른 단상의 시작으로 습작

 

**습작시 2/슬픔을 말아 올리다**

 

그 사내 그 때부터 슬픔이 드리워졌죠

슬픔이 눈앞을 가렸죠

머리핀을 꼿아봐도

삐죽삐죽 슬픔이 흘러내렸죠

 

그 아저씨 병약해 직장생활 때려치고

동네에 유아용품 취급 브랜드 대리점을 운영했죠

그의 아내는 끝도 한도 없는 살림살이에

손님 많을 시간대 점포 단독 주전선수->언어순화 및 자연스럽게 표현/운영 사장

아저씨는 허드렛 일꾼

그렇게 아웅다웅 살던 그해 겨울 1월 중순쯤-> x

가게 주전선수가 어젯밤 몸살처럼 삭신이 쑤셔대

딸 방에서 밤을 지새웠다며 병원에 가야겠다 해서

퇴근 샤터 내리고 전 식구 야간 응급실행

하루 묵으며 검사를 더 해야 한대서 세 식구만 집으로 썰렁히x

다음날 아침 10시쯤 가게로 온 전화 속 아내의 풀죽은 목소리x

"나 오래 못 산대 ,,,"

" 뚝 뚝 뚝 ,,," 전화 끊긴 소리, 목을 조른다

황급히 되달려간 전화

"여보, 다시 말해봐, 뭔 ,,,이 ,야 ,기야"

",,,,,"

"말해봐 ~~"

",,,,,위암 말기. 6개월 밖에 못산대 ,,,"

때려죽이고 싶은 전화는 또 뚝 뚝 뚝->언어선택 신중

                                        ->줄 글로 풀어쓰기 리얼하게

 

날 받아놓고도 식구들 먹고사는건 왜 그리 연연하던지

                                                  ->응근 슬쩍 당일의 매출과 관련한 일기편지를 좋아하데요/가게의 다이어리가 하루 한 장씩 찢어져 나가지 얼마나 아팠겠어요/대신 아파줄 수 없는 존재가 하나뿐이 아닌걸요

그 6개월은 빚 받으라 온 일수쟁이처럼 떡허니 찾아왔네

그 날이x 7월 스무하룻날 오후 7시 30분경->21일

해도 뉘엿뉘엿

한 인생도 뉘엿뉘엿

흰 보자기에 쌓이고 묶인 빼삭마른 나무등걸->가게 나와 앉아 있을땐 그래도 찍어 발라는데/조각을 당하듯 야워진 볼/말은 못해도 듣기는 한대서/그 동안 수고했다 고맙다 미안하다라고 웅얼대던 뒤늦은 독백들만 병실에 가득히 남겨진채로

후미진 뒤골목으로 해서 영안실로-.>황망히 영안실로 그 무엇이 바쁜지 누가 기다리는지

 

나무등걸만 봐도 눈가의 머리를 쓸어 올리고

슬픔 밖으로 기어오르려

오늘도 내일도

슬픔을 말아 올리는 중

 

**참고시**

1. 눈물은 왜 짠가/함민복

눈물은 왜 짠가

                - 함민복

 


지난 여름이었습니다 가세가 기울어
갈 곳이 없어진 어머니를 고향 이모님 댁에
모셔다 드릴 때의 일입니다. 어머니는
차시간도 있고 하니까 요기로 고깃국을
먹으러 가자고 하셨습니다

설렁탕에 다대기를 풀어 한 댓 숫가락
국물을 떠먹었을 때였습니다.
어머니가 주인 아저씨를 불렀습니다
어머니는 설렁탕에 소금을 너무 많이 풀어
짜서 그런다며 국물을 더 달라고 했습니다.

주인 아저씨는 흔쾌히 국물을 더 갖다
주었습니다 . 어머니는 주인 아저씨가
안 보고 있다 싶어지자 내 투가리에 국물을
부어주셨습니다.

나는 당황하여 주인 아저씨를 흘금거리며
국물을 더 받았습니다
나는 그만 국물을 따르시라고 내 투가리로
어머니 투가리를 툭,부딪쳤습니다 순간
투가리가 부딪치며 내는 소리가 왜 그렇게
서럽게 들리던지 나는 울컥 치받치는
감정을 억제하려고 설렁탕에 만 밥과
깍두기를 마구 씹어댔습니다.

그러자 주인 아저씨는 우리 모자가 미안한
마음 안 느끼게 조심,다가와 성냥갑 만한
깍두기 한 접시를 놓고 돌아서는 거였습니다.
일순, 나는 참고 있던 눈물을 찔끔 흘리고
말았습니다

. 나는 얼른 이마에 흐른 땀을 훔쳐내려
눈물을 땀인 양 만들어 놓고 나서, 아주
천천히 물수건으로 눈동자에서 난 땀을 씻어
냈습니다.

그러면서 속으로 중얼거렸습니다.
눈물은 왜 짠가

 

**쉬/문인수**

 

쉬/ 문인수

 

 

그의 상가엘 다녀왔습니다

환갑이 지난 그가 아흔이 넘은 그의 아버지를 안고 오줌을 뉜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생의 여러 요긴한 동작들이 노구를 떠났으므로 하지만 정신이 아직 초롱 같았으므로

노인께서 참 난감해하실까 봐 "아버지, 쉬, 쉬이, 아이쿠 아이쿠, 시원하시겄다아"

농하듯 어리광부리듯 그렇게 오줌을 누였다고 합니다.

 

온몸, 온몸으로 사무쳐 들어가듯 아, 몸 갚아드리듯 그가 그렇게 아버지를 안고 있을 때

노인은 또 얼마나 작게, 더 가볍게 몸 움츠리려 애썼을까요. 툭, 툭, 끊기는 오줌발, 그러나 길고 긴 뜨신 끈, 아들은 자꾸 안타까이 땅에 붙들어 매려 했을 것이고, 아버지는 이제 힘겹게 마저 풀고 있었겠지요.

쉬ㅡㅡ

 

쉬! 우주가 참 조용하였겠습니다.

 

- 시집『쉬!』(문학동네,2006)

........................................

 

 이 시는 많이 알려진 대로 정진규 시인의 부친 상가에 갔던 문인수 시인이 정 시인에게 들은 부친과의 회고담을 소재로 한 작품이다. 그 회고담은 '환갑이 지난 그가 아흔이 넘은 그의 아버지를 안고 오줌을 뉜 이야기'이다. 이를 듣는 순간 성능 좋은 촉수가 번득였고 이거 잘 하면 괜찮은 시가 한 편 되겠다는 생각이 퍼뜩 들어 곧장 대구로 내려와 단숨에 초고를 다듬었다. '생의 여러 요긴한 동작'들이 떠나버린 노구를 꼭 안고서 옛날 옛적 아버지가 자신에게 그랬듯이 "아버지, 쉬, 쉬이, 어이쿠, 어이쿠, 시원허시겄다아"며 농하듯 어리광부리듯 그렇게 오줌을 누이는 행위가 시인에겐 '몸 갚음'으로 포착되었던 것이다. 일화는 정진규 시인의 것이지만 비로소 시는 문인수 시인에게로 온 것이다. '툭, 툭, 끊기는 오줌발, 그러나 길고 긴 뜨신 끈'

 

 시에서 '뜨신 끈'으로의 비유는 문인수 시인 특유의 감각을 멋지게 살려낸 대목으로 이후 그의 모든 시에서 전매특허처럼 사용되고 있다. 지금껏 각자가 눈 오줌발의 길이를 끈으로 환산해 잇는다면 한라에서 백두까지 세 번은 왕복하고도 남으리라. 그 '길고 긴 뜨신 끈'은 생명의 존재를 증거 하는 한편 인간의 모든 욕망을 함의한 존재의 이유이기도 할 것이다. 늙은 아들은 그 끄나풀을 안타까이 땅에 붙들어 매려하고 그 아버지의 끈은 이제 '툭, 툭, 끊기'면서 힘겹게 마저 풀리고 있다. 그때 아들은 '쉬!' 추임새를 넣는다. 한번은 길게 또 한번은 짧게. 어릴 적 많이 들어본 이 단음절의 언어를 아들의 가슴에 안겨 다시 듣는다. 쉬이 누어보시라는 추임의 뜻 말고도 우주적 고요를 이끌어내는 말이기도 하고 또 이 밀교의 행위를 빤히 지켜보는 삼라만상을 향해 비밀유지를 당부하는 주술적 언어이기도 한 것이다. 아버지를 향해, 우주를 향해 그리고 신을 향한 절절한 울력의 소리였던 것이다.

 

 며칠 전 쓸개를 떼어내는 수술을 마치고 병원에 누워계신 구순 어머니가 링거 줄은 주렁주렁 달고 있지만 도무지 뭘 삼키려하지 않는다. 6일째 입을 꼭 다물고 곡기는 물론 물도 마다하신다. 수술 전에는 입술이 자꾸 마른다며 '물 한 모금 마시면 안 되겠냐'고 그토록 애절하게 물을 찾으셨건만, 안 된다는 간호사의 말을 받들어 그 부탁 들어드리지 못했는데 막상 금식이 풀린 지금 내 입술을 바짝바짝 마르게 하신다. 빨대를 꽂은 물병을 입에 갖다 대어도 도무지 빨 생각을 않으시고 멀건 죽을 티스푼에 떠서 드려도 입을 벌리지 않으신다. "아! 아~ 엄마 입 벌려봐" 어쩌다 열린 입에 퍼진 밥알 몇 개 넣어드리며 "그래 어이구 어이쿠 잘 드시네, 이제 밥도 먹고 기운 차려서 나가면 봄날 꽃구경도 가야지" 하지만 툭툭 끊기고 마는 뜨신 밥끈. 우주는 조용한데 이 시간 '쉬!'의 하위 버전 같은 '아!'를 하염없이 되내이며 입으로 힘없는 동그라미만 그린다. 

 

 

권순진


 

 

**가재미/문태준**

 

가재미 / 문태준  
 
 
 김천의료원 6인실 302호에 산소마스크를 쓰고 암투병중인 그녀가 누워있다 
 바닥에 바짝 엎드린 가재미처럼 그녀가 누워 있다 
나는 그녀의 옆에 나란히 한 마리 가재미로 눕는다 
가재미가 가재미에게 눈길을 건네자 그녀가 울컥 눈물을 쏟아낸다 
한쪽 눈이 다른 한쪽 눈으로 옮겨붙은 야윈 그녀가 운다 
그녀는 죽음만을 보고 있고 나는 그녀가 살아온 파랑 같은 날들을 보고 있다 
 좌우를 흔들며 살던 그녀의 물속 삶을 나는 떠올린다 
그녀의 오솔길이며 그 길에 돋아나던 내낮의 뻐꾸기 소리며 
가늘은 국수를 삶던 저녁이며 흙담조차 없었던 그녀 누대의 가계를 떠올린다 
두 다리는 서서히 멀어져 가랑이지고 
폭설을 견디지 못하는 나뭇가지처럼 등뼈가 구부정해지던
그 겨울 어느날을 생각한다 
그녀의 숨소리가 느릅나무껍질처럼 점점 거칠어진다 
나는 그녀가 죽음 바깥의 세상을 이제 볼 수 없다는 것을 안다 
한쪽 눈이 다른 쪽 눈으로 캄캄하게 쏠려버렸다는 것을 안다 
나는 다만 좌우를 흔들며 헤엄쳐 가 그녀의 물속에 나란히 눕는다 
산소호흡기로 들어마신 물을 마른 내 몸 위에 그녀가 가만히 적셔준다
 
**습작시 2의 문제점**

-거리조절의 문제 야기

-전지적 작가시점 x 3인칭 작가시점, 객관적 관찰자 시점이 필요

-6개월간 애기를 길고 지루하고 장황하게 하지 말고, 순간/찰나 포착 및 촌철살인 정신으로 축약할 필요 

 

 

**4/9 미션-가까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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