떨지 않고 말하기
나선희 (방송인)
실력 있고 환자들에게 자상하기까지 해서 명성이 자자한 의사 선생님이 있다. 환자들의 궁금증에 언제나 친절하게 응대해주는 명쾌한 분이다. 그런데 자타가 공인하는 실력과 덕망을 갖춘 분도 쩔쩔매는 때가 있으니 바로 카메라 앞이다. 환자들 앞에서는 인지하기 그지없는 미소가 좔좔 나오는데 요놈의 카메라 앞에 서니 근육은 경련이 일어날 것 같고 진땀이 나는 것이다. 수차례 NG를 내고 겨우 방송을 마친 의사 선생님의 사례와 같은 경험을 누구나 하게 된다.
이는 순전히 ‘틀’ 때문이다. 사람은 평소 자기가 일하고 말하던 ‘틀’에서 벗어나게 되면 긴장을 하게 된다. 조명이 쏟아지고 카메라가 나를 향해 들이대고, 방청객은 ‘말 잘하나보자’하고 들여다보는 것 같은 경험해보지 않은 상황이 어색한 건 너무나 당연하다. 누구나 처음 겪은 일에는 당황스로운 것 아닌가. 당황하지 않고 잘하기 위해서는 그런 ‘틀’ (상황) 속으로 자주 들어가 보면 된다. 그러니까 회의 진행이 잘 안 되는 사람은 회의 진행을 자주해 보면 되고, 학교에서 발표가 어려운 학생은 수업 시간마다 일부러라도 발표를 해보면 되고, 시어머니 앞에서 주눅이 들어 목소리가 기어들어간다면 오히려 쓸데없는 소리라도 지껄여보면 되고, 방송에 입문한 신입 아나운서라면 한번이라도 더 진행하면 할수록 잘 할 수 있다.
나는 종종 이런 질문을 받는다.
“방송하고 강의 할 때 안 떨리세요?”
직업이 방송과 강의인 내가 매번 떨고 긴장한다면 이미 심장마비를 일으켰거나 심각한 사고가 나야 옳을 일이다. 하지만 내가 안 떨고 이 일을 할 수 있는 것은 매일 이 방송과 강의라는 ‘틀’ 에 들어오다 보니 사람들 앞에서 말하는 것이 밥을 먹고 숨을 쉬는 일처럼 자연스런 일상이 돼 버린 것이다.
커뮤니케이션 학자 맥크로스키는 사람들이 말을 할 때 떠는 이유를 두 가지로 정리했다. 첫째는 내가 말을 하고 난 후의 결과가 나에게 미치는 영향을 미리 걱정하기 때문이고, 둘째는 말할 내용에 대해 충분한 준비가 되어 있지 않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그렇다면 간단해진다. 사람들 앞에서 떨지 않고 말 잘하고 싶다면 긍정적인 자기 인식을 통해서 자신감을 얻고, 반복해서 어색하고 떨리는 상황에 직면하는 것이다. 그 두려운 상황에 정면 도전해 쌓는 것만이 방법인 것이다.
세상에서 가장 무서운 것은 사람들 앞에서 발표하는 것이라는 미국 토론토 대학의 조사 결과 내용을 접한 적이 있다. 비교적 의사소통에 자유 분망한 미국 사람들도 대중 앞에서 말하기를 두려워하는구나 싶었다. 하기 싫은 일을 안 하고 살 수 있으면 좋으련만 21세기는 소통의 시대이다. 사람들 앞에서 떨지 않고 당당하게 자기표현을 할 수 있는 것도 실력으로 평가받는 시대이며, 실력은 갈고 닦을 때 얻어지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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