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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고은, 문의마을에 가서

그대 그리고 나/포항 2017. 4. 29. 00:43

고은, '문의(文義) 마을에 가서'



배두섭





허무주의에서 역사의식으로의 과도기 문학




겨울 문의(文義)에 가서 보았다.
거기까지 닿은 길이
몇 갈래의 길과
가가스로 만나는 것을.
죽음은 죽을만큼 길이 적막하기를 바란다.
마른 소리로 한 번씩 귀를 닫고
길들은 저마다 추운 쪽으로 뻗는구나.
그러나 빈부에 젖은 삶은 길에서 돌아가
잠든 마을에 재를 날리고
문득 팔짱 끼어서
먼 산이 너무 가깝구나.
눈이여, 죽음을 덮고 또 무엇을 덮겠느냐.

겨울 문의(文義)에 가서 보았다.
죽음이 삶을 껴안은 채
한 죽음을 받는 것을.
끝까지 사절하다가
죽음은 인기척을 듣고
저만큼 가서 뒤를 돌아다본다.
모든 것은 낮아서
이 세상에 눈이 내리고
아무리 돌을 던져도 죽음에 맞지 않는다.
겨울 문의(文義)여, 눈이 죽음을 덮고 또 무엇을 덮겠느냐.


아래 서정주의 시를 설명하면서 고은 시인에 대한 언급을 잠깐 한 적이 있다. 고은은 서정주의 제자이면서도 그와는 전혀 다른 세계관을 가지고 있는 시인이다. 어찌보면 공통점이라고는 전혀 없는 고은을 서정주는 왜 추천을 했을까? 하지만, 그의 초기작을 보면 어느 구석에선가는 서정주와 유사한, 허무주의를 우리는 발견할 수 있다. 그 대표적인 예가 그의 첫 시집 『피안감성』(1960)에서 『신 언어의 마을』(1967)에 이르기까지는 허무주의와 한껏 빠져들어간 탐미주의의 모습인 것이다. 그래서일까? 그는 불완정하기까지한 정서의 움직임을 표출하고 있고, 그러하면서도 허무의 세계에서 벗어나려고 하는 몸부림의 모습을 보여주곤 한다. 그래서 당시 초기작들은 불안정한 정서 상태로 인해 매우 복잡하고, 관념적인 시들이 많이 나타나게 된다. 또, 다르게 생각하면 허무의 세계에서 벗어나려는 시인의 모습은 1970년대 이후의 시세계를 암시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럼 1970년대의 그 무엇이 그로하여금 세계관의 변화를 가져오게 했는가? 1970년대가 우리에게 주는 의미는 무엇인가? 이것에 대한 대답을 이승하교수(혹은 시인)의 입을 빌어, 좀 길기는 하지만, 얘기하고자 한다.

1970년대의 의미

문학사를 서술하는 데 있어서 시대구분의 문제는 서술자의 시대 인식의 관점에 따라 달라지게 마련이다. 근대문학의 기점을 어디에 두느냐와 시대를 어떻게 구분하느냐는 결국 문학사 서술자의 방법론에 귀속되는 문제임은 재론의 여지가 없다. 근년에 이르러 해방 이후의 문학을 어느 시점에서 끊어 문학사라는 조감도에 일목요연하게 담고자 했을 때, 10년 단위의 연대 구분은 누구에게나 편리한 잣대가 되어주었다. 그것은 해방 이후의 우리 문학이 10년 단위의 외적인 정치 변화와 거의 궤를 함께 해 온 감이 없지 않았기 때문이다.

1950년에 발발한 6.25동란과 1960년에 일어난 4·19혁명, 1970년에 있었던 한 노동자의 분신자살이 야기한 노동운동의 물결, 1980년에 일어난 광주민주항쟁, 그리고 1990년에는 동구권의 급변에 다른 세계 질서의 재편이 진행되어 그 연대의 초입에 일어난 사건들이 공교롭게도 모두 현대사의 중요한 전환점이 되었고, 이것들은 또한 문학에도 지대한 영향력을 행사하였다. 시라는 장르만큼 대사회적 관심을 즉자적으로 반영하는 것도 없지만 해방 이후 험한 비탈길만 골라서 달려온 듯한 대한민국의 제반 상황은 이 땅의 시인들로 하여금 드높은 언어의 성채 안에 머물게 하지 않았다. 이것은 흔히 첨예한 사회의식으로부터 일정한 거리를 두엇기 때문에 순수하다는 '순수시'의 경우도 마찬가지였다. 1970년대에는 삶의 현장 속으로 문학이 뛰어들어야 한다는 현실참여의 시나, 언어를 통해 삶의 본질적인 문제에 접근해야 한다는 순수 지향의 시나, 당대의 다수 국민, 즉 '우리들'이 고유하는 집단적 삶의 온갖 문제에 관심사를 표명하지 않을 수 없었다. 집단적 삶의 문제는 1970년대에 발표된 수많은 시 거의 전부를 한 두름으로 엮을 수 있는 새끼줄의 의미를 지니고 있다. 전후의 자학과 난해를 지양해 시에 일상성을 회복시키려는 작업은 이미 앞 연대의 김수영·신동엽에서부터 진행되어 온 것이지만 이 문제에 대다수 시인이 주목한 것은 1970년대에 들어서서의 일이다.

<중략>

1970년대의 가장 두드러진 사회적 변화는 정치와 경제 두 측면이 맞물린 상태로 전개되는데, 강압적인 통치체제로의 돌입과 이른 바 산업화라는 경제발전이 그것이다. 1972년 유신헌법이 확정되기 한두 해 전, 즉 1970년대 초에는 특히 정치상의 후퇴와 경제상의 발전을 상징하는 몇 가지 소식이 자상에 보도되는 바, 이는 10월유신을 위한 신호탄과도 같은 일이었다. 김지하의 시 「五賊」필화사건과 경부·호남고속도로의 개통은 1970년, 『다리』지 필화사건과 『사상계』의 폐간, 그리고 서울~부산 간 자동전화의 개통은 1971년의 주요 뉴스였다. 이러한 작업을 발판으로 펼쳐진 유신체제는 억압적인 정치상황을 거의 극단으로 몰아갔으나 통계치상으로는 눈부신 경제발전을 이룩하는 미증유의 국가 동원체제이기도 했다.

<중략>

파행적인 경제발전과 국토의 재개발은 노동자와 지식인의 각성과 연대를 위한 기폭제의 역할을 한 노동자 전태일의 분신자살 사건이나 광주 대단지 사건(1971) 이외에도 지역감정의 심화와 범죄율의 증가, 공해 등 각종 사회문제를 야기시켰는데, 1970년대의 시인들은 이러한 문제들을 수시로 형상화하였다. 독재치하였던 만큼 이런 문제들이 실정(失政)의 결과라고 위정자들을 질타한 몇몇 시인은 영어의 몸이 되기도 했다. 아무튼 1970년대는 시인들이 급변하는 세계와 사물에 대해 직접적인 언어나 상징적인 의장(意匠)으로써 수다한 질문을 던진 시대였다. 시인들은 문학의 현실참여를 주장하든 언어적 순수에 집착하든 이 시대가 주는 상처를 치유하려 했던 것이다.

- 이승하, '산업화 시대의 시인들', 『한국의 현대시와 풍자의 미학』, 문예출판사 중에서



이렇듯 험난한 70년대를 겪은 고은은 그간의 허무주의와 탐미주의에서 벗어나 생의 무상함과 역사와 현실이라는 좀더 구체적인 것에 대해 관심을 갖기 시작한다. 그러하면서 쓴 시가 바로 '문의 마을에 가서'이다. 그리고는 이후 『새벽길』(1978), 『조국의 별』(1984), 『네 눈동자』(1988) 등과 장편 서사시 『백두산』, 연작 장시 『만인보』 등을 통해 그의 시는 빛을 발하기 시작한다. 이런 그의 시력(詩力)을 본다면, 위의 작품 '문의 마을에 가서'는 70년대 이전의 허무주의에서 80년대 이후의 시로 가는 과도기의 작품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럼 이제 슬슬 작품을 분석해 보기로 하자.
우선 이 작품은 두 개의 연으로 이루어져 있다. 그리고 각 연은 '겨울 문의에 가서 보았다.'로 첫 행을 장식한다. 그리하여 독자의 시선을 잡아두고 있으며, 이후 '문의'(충북 청원군에 있는 마을 이름)에서 화자가 본 것은 무엇이며, 그로 인해 얻은 깨달음은 무엇인가를 얘기하고 있다.

겨울 문의에 가서 보았다. / 거기까지 다다른 길이 / 몇 갈래의 길과 가까스로 만나는 것을 / 죽음은 죽음만큼 이 세상의 길이 신성하기를 바란다.

화자는 '문의'라는 곳으로 가서 죽음을 만난다. 하지만 죽음으로 가는 길이 하나가 아님을, 여러 사연들과 사연들이 만나 죽음을 이룬다는 것을 깨닫는다. 그리고는 이러한 죽음들은 결코 헛되지 않고 '신성'하다고 믿는다.

마른 소리로 한번씩 귀를 달고 / 길들은 저마다 추운 소백산맥 쪽으로 뻗는구나. / 그러나 빈부에 젖은 삶은 길에서 돌아가 / 잠든 마을에 재를 날리고 / 문득 팔장 끼고 서서 참으면 / 먼 산들이 너무 가깝구나. / 눈이여 죽음을 덮고 또 무엇을 덮겠느냐.

이 부분에서 우리는 화자가 '문의'에서 본 것이 구체적으로 무엇인가를 알아차리게 된다. 그것은 소리없이 내리는, 아니 모든 것(눈)이 내려 앉은 적막한 마을에서 '죽음'을 본 것이다. 그렇다면 이 시에서 우리는 '눈'과 '죽음'의 상관성을 파악하는 데 주력을 다해야 할 것이다.

화자는 '눈'이 개개의 사물이 가지고 있는 개성성을 무화시키고, 모든 세상을 하나로 만들고 있음을 얘기하고 있다. 그것을 화자는 모든 사물의 '죽음'이라고 얘기하는 것이다. 또한 화자는 이러한 개개의 사물을 '빈부에 젖은 삶'이라는 표현을 통해서 당시 현실을 살고 있는 이들의 가장 큰 문제가 바로 '빈부'의 문제임을 부각시키고 있다. 그럼 '잠든 마을'은 무엇인가? 그것은 조금전에 언급했듯이 삶의 활동성이 사라진 마을, 즉 삶의 의욕을 상실한 적막한 마을을 의미한다고 볼 수 있다. 이러한 모든 현실적 문제들을 무력화시키는 것으로 화자는 '눈'이라는 소재를 택했고, 모든 산과 마을이 하나가 된 모습을 화자는 '먼 산들이 너무 가깝구나'라는 표현을 통해 형상화시키고 있다. 이러한 설명에 대해 "그렇다면 앞에서 얘기한 바 있는 고은의 초기시에 나타나는 '허무주의'와 다를 바가 없지 않는가?"라는 반문이 있을 듯 싶다. 하지만 우리는 이러한 질문을 하기 전에 1연의 마지막 행을 장식하고 있는 '눈이여 죽음을 덮고 또 무엇을 덮겠느냐.'라는 구절을 의미심장하게 봐야할 것이다.
화자의 이러한 독백 혹은 질문은, 다시 곱씹어보면, "눈이 죽음이외에 덮어야 하는 것이 또 무엇인가?"라는 물음으로 이해할 수 있다. 또, 우리는 "눈이 죽음까지 덮었다면 이제 더 이상 덮을 것이 없다."라는 뜻으로도 해석할 수 있다. 그리고 한번더 생각해보면, 이 말은 곧 "눈이 죽음까지 덮을 만큼 대단한 것이지만 끝까지 덮지 못할 그 무엇이 있다."라는 명제로도 이해할 수 있다. 그러하다면, 마지막 행은 위의 세가지로 해석될 수 있는 매우 다의적 표현이라 할 수 있다. 그래서일까? 화자는 2연의 마지막 행에서도 다시한번 묻는다. '겨울 문의여 눈이 죽음을 덮고 또 무엇을 덮겠느냐.'라고.

그렇다면 우리는 다시 생각해본다. 만약 '눈'이 일체의 모든 것을 덮는 '허무'의 상징이라고 한다면, 눈 덮인 '문의 마을'을 바라보는 화자를 덮었을까, 아니면 덮지 못했을까?
'눈'이 화자마저도 덮고 있다면, 화자는 모든 것이 허무라는 깨달음 자체를 할 수 없을 것이다. 화자가 그러한 사유를 할 수 있다는 것은 결국, 화자는 '눈'이 덮은 공간의 바깥에 위치하고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래서 화자는 2연에서 이렇게 얘기한다.

끝까지 사절하다가 / 죽음은 인기척을 듣고 / 저만큼 가서 뒤를 돌아다 본다.

'저만큼'이라는 시어는 '눈'과 화자의 거리감을 의미한다. 그리고 '인기척'은 죽은 자의 자취가 아닌 살아있는 자의 흔적이다. 따라서 죽음이 들은 '인기척'은 살아있는, 삶과 죽음의 의미를 사유하는 화자의 인기척이라 이해할 수 있다. 따라서 화자는 모든 것을 죽이는 '눈'의 영역 밖에서 눈을 바라보는 입장을 취하고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우리는 위의 질문들에서 하나로 범위를 축소할 수 있다. 그것은 "눈이 죽음까지 덮을 만큼 대단한 것이지만 끝까지 덮지 못할 그 무엇이 있다."이다.

그럼 '눈'이 덮지 못하는 그 무엇은 도대체 무엇인가? 이 시에서는 구체적으로 형상화되어 있지 않지만, '이 세상에 눈이 내리고 / 아무리 돌을 던져도 죽음에 맞지 않는다.'라는 표현으로 이야기하고 있다. 사실 이 구절도 해석이 두 가지로 가능한데, 하나는 '눈'이 덮으려 하고, 돌을 던져도 죽음에 이르지 않는다는 해석이고, 다른 하나는 화자가 죽음을 물리치려고 돌을 던져도 죽음은 까딱도 하지 않는다라는 해석이 그것이다. 하지만 우리는 위의 해석(눈이 죽음까지 덮을 만큼 대단한 것이지만 끝까지 덮지 못할 그 무엇이 있다)에 비추어보면 앞의 것이 타당하다는 것을 알게된다.

어쩌면 화자는 '문의 마을'에 가서 죽음과 허무를 보았는 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다시한번 되돌이켜 보니, 모든 것을 덮고 있다고 생각한 '눈'이 결코 모든 것을 덮고 있지 않음을 깨닫게 된다. 그리고 나서 화자는 죽음과 허무가 아닌 그 무엇을 찾기 위해 '길에서 돌아가 / 잠든 마을에 재를 날리'는 행위를 통해 '잠든 마을' 즉 현실로 돌아가게 된다. 비록 그가 하는 일이 '재를 날리'는 행위일 뿐이지만(이 대목에서 우리는 암울하고 우울한, 죽음의 예감을 느끼지만 결국 화자는 죽음보다는 그러한 암울한 분위기를 알 리는 행위를 선택하게 된다).

따라서 이 시는 삶의 허무를 느끼고, 눈 덮인 고요한 마을에서 죽음의 이미지를 느낀 화자가 도리어 삶의 궁극적 지향점(삶이라는 현실)을 깨닫게 된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 그리고 시인은 이 시를 통해 관념적이고 초월적인 이미지(自然, 禪思想, 죽음에 대한 모습 등)에서 사람과 사람이 사는 현실로 자신의 위치를 바꾸었다고 할 수 있다.

마지막으로 '文義'라는 마을의 명칭과 언어적 해석에 대해서는 문학계간지 《詩와詩學》(1994, 봄호)에 실린 장경렬 교수의 글 '文義 마을과 淸進洞, 또는 초월 세계와 인간 세계 - 고은의 70년대 시'에 실린 내용으로 대치하고자 한다.

<전략> 무엇보다는 우리는 "文義"가 함의하는 바에 논의의 초점을 맞출 수 있다. 주로 주변의 정황을 묘사한 1연에 의하면, "文義"에 "닿는 길"이 "몇 갈래" 있으며, "文義"로부터 길들은 "저마다 추운 쪽으로 뻗"어 있다. 이어서 2연에서 시인은 "죽음"과 만단다. "눈이 내리"는 "이 세상"에서 "삶을 껴안은 채 / 한 죽음을 받"기도 하고 또한 "저만큼 가서 디ㅜ를 돌아다" 보기도 하는 죽음과 만나고 있는 것이다. 말하자면, "文義"는 "죽음"이 있는 곳이며, "죽음"과 만날 수 있는 곳, 그러나 여전히 "죽음"과의 거리를 의식케 하는 곳이다.

문제는 "文義"가 고유 명사의 일종인 '지명'이라는 데 있다. 일반적으로 사람들은 고유 명사에 어떤 종류의 암시적이고 은유적인 의미를 부여할 수 있음을 인정하면서도 정작 이 '기호'가 지니는 축어적 의미는 간과해 버리는 경향이 있다. "文義"의 경우에도 예외는 아니다. 그러나 이 경우에는 약간의 주의가 요구된다. 일반적으로 고은에게는 지명을 한자로 밝히는 경향이 있긴 하지만, "文義"라는 지명을 한자로 밝힘으로써 무언가 여운을 남기고 있기 때문이다. 이와 관련하여, 한자어 "文義"는 보통 명사로도 쓰여 "글의 뜻"이라는 의미를 갖는다는 점에 주목할 수 있다. 만일 이러한 의미를 "文義"에 부여하면, "文義 마을"은 고은이 한때 그의 시집 제목의 일부로 삼았던 "언어의 마을"이란 표현에 대응되는 개념이 될 수 있다. 말하자면, '언어의 세계' 또는 '기호의 세계'에 대응되는 '의미의 세계'가 되는 셈이다.

만일 "文義"가 "죽음"이라는 궁극적인 '의미'를 담고 있는 '의미의 세계'라면, "몇 갈래의 길"은 이 세계에 이르기 위한 '기호' 또는 '언어'에 해당하는 것이리라. '기호'란 '의미'에 도달하기 위한 일종의 "길"이 아니겠는가, 말하자면, "몇 갈래의 길"이 "죽음"이 있는 곳에 닿는 길과 "가가스로 만나"고 있듯이, 몇 개의 '기호'가 궁극적 의미의 세계로 인도하는 초월적 기호와 "가가스로 만나"고 있는 것이다. 유추를 계속하여 "눈"은 '시'와 대응 관계를 이루는 것으로 볼 수 있다. 일상적인 "이 세상"을 비일상화하여 전혀 새로운 시각에서 보도록 유도하는 것이 "눈"이라면, '시'란 '언어'를 통해 세계를 비일상화하고 비일상화된 세계를 새로운 각도에서 보도록 하는 것이 아니겠는가?

결국 이 시는 죽음이라는 허무의식에서 벗어나, 화자가 추구하고자 하는 삶을 나아가기 위한 깨달음의 시이고, 진정으로 추구하고자 하는 것이, 결국은 '빈부에 젖은 삶'과 '잠든 마을'에 재를 날리며 의식의 죽음을 맞이한 이들에게 삶의 의미를 깨우쳐 주고자하는 것임을 깨달은 시라고 하겠다.

출처 : 이것 저것 요것 그것
글쓴이 : 배두섭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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