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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맙다, 하모니카"

그대 그리고 나/포항 2014. 12. 30. 01: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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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맙다, 하모니카"

  • 입력 : 2014.12.29 03:05
      전제덕·재즈 하모니카 연주자 사진
      전제덕·재즈 하모니카 연주자

    "제덕씨, 저희 모두 지금 서 있어요!" 관객 누군가 흥분에 못 이겨 소리쳤다. 10년 전 나의 첫 하모니카 콘서트에서 들렸던 그 외침이 아직도 생생하다.

    나는 보진 못하지만, 객석을 알 수 있다. 관객이 내 공연에 어떤 반응을 보이고 있는지 모두 느낀다. 공연이 마지막에 이르자 열광한 관객이 모두 기립했다는 것도 실은 알고 있었다. 객석에서 내게 전하려고 한 것은 단순히 일어섰단 사실이 아니라, 자신들의 흥분과 감동이었으리라.

    그 뒤로 10년 동안 4장의 음반을 냈고 숱한 공연 무대에 올랐다. 언젠가 서울 예술의전당 콘서트홀에서 오케스트라를 이끌고 멋진 콘서트를 해보리라 막연하게 생각했는데, 그것도 벌써 2년 전에 이뤄졌다. '전제덕의 마음으로 보는 콘서트'라는, 내 이름을 건 공중파 TV 음악방송도 해봤다. 예전에 꿈처럼 여겼던 일들이 이미 현실이 됐거나, 되고 있다. 하모니카에 의지해 나는 참 멀리도 왔다.

    칼럼 관련 일러스트
    지난 27일에는 나의 오랜 음악 동료인 재즈 보컬 말로, 기타리스트 박주원과 합동공연을 마쳤다. 관객들의 열광은 익숙하면서도 언제나 새롭다. '살아있는(live)' 무대에 도달하기 위해 많은 날을 견디며 기다린다. 그러니 이 순간의 행복은 오로지 내 몫이다. 부와 명성은 불평등하지만, 시간은 누구에게나 공평하다. 시간을 열렬히 사랑하는 사람이야말로 진짜 부자일 것이다.

    조용히 하모니카를 꺼내 불어본다. 하모니카는 들숨과 날숨을 엮어 연주하는 거의 유일한 악기다. 들고 나는 호흡, 온전한 생명이 들어가야만 하모니카는 비로소 내 편이 된다. 나의 코 밑에서 나를 안심시키는 소리가 서서히 퍼진다. 이 쓸쓸하면서도 따뜻한, 한 뼘 크기밖에 되지 않는 조그만 악기가 내 인생의 동반자다. 속으로 되뇐다. "고맙구나 하모니카야, 다시 조금만 더 걸어가 보자."



    전제덕·재즈 하모니카 연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