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펌)[미군 최초의 한국계 여성 아파치헬기 조종사… 세라 전 중위]

그대 그리고 나/포항 2014. 12. 1. 12: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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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격 미션' 좋아 아파치(미사일 탑재 공격형 헬기) 선택… 實戰 없이 전역하면 자신에게 실망할 것

  • 최보식
    편집국
    E-mail : congchi@chosun.com
    선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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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 2014.12.01 05:34

    [미군 최초의 한국계 여성 아파치헬기 조종사… 세라 전 중위]

    "옷은 제복과 운동복뿐… 꾸미길 좋아하지 않으니
    한시간內 짐 싸 떠날 수 있어… 즐기기만 하는 삶은 심심할 듯"

    "기미·주근깨 많은 내 얼굴… 한국 여성, 치장에 관심 많아
    내게 '눈 쌍꺼풀 수술' 권해… 외모 말고도 自己 사랑해야"

    부대 앞 횡단보도를 건너오는 세라 전(Sarah Jeon·24) 중위는 작지만 단단해 보였다. 군모 아래 쌍꺼풀 없는 눈이 살아있었다.

    "군인은 체격이 커야 한다고 생각하지만 꼭 그렇지 않아요. 저는 운동을 즐기고 잘해요. 절 깔보다가 막상 달리기나 푸시업, 윗몸일으키기에서 제 실력을 보면 깜짝 놀라죠. '포기하지 마(Never give up)'라는 말을 저는 좋아해요. 미 전역에서 우수한 학생들이 모인 웨스트포인트(미국 육사)에서 저는 좋은 성적을 받았어요(졸업생 900여명 중 28등 졸업)."

    경기도 평택에 있는 '캠프 험프리'. 영어 간판의 미군 클럽과 옷가게, 환전소, 네일숍 등이 들어선 동네는 작은 이태원 같았다. 그는 지난 3월 주한미군에 배치됐다. 미군 최초의 한국계 여성 아파치헬기 조종사다. 아파치는 미사일 탑재까지 가능한 공격형 헬기로 아프가니스탄과 이라크 전쟁 때 그 위력을 보여줬다.

    세라 전 중위는 “여성은 신임을 받으려면 남성이 한 번 보여줄 때 두 번 더 보여줘야 한다”고 말했다
    세라 전 중위는 “여성은 신임을 받으려면 남성이 한 번 보여줄 때 두 번 더 보여줘야 한다”고 말했다. /최보식 기자

    ―'탱크 킬러'인 아파치헬기를 몰게 된 것은 본인의 선택이었나요?

    "예. 제가 아파치를 선택했어요. 웨스트포인트 졸업 후 미국 포트러커 비행학교에 들어가서 '아파치를 몰겠다'고 했어요."

    ―왜 그 선택을?

    "영화 '블랙호크다운'에 나오는, 병력과 물자 수송용 헬기는 마음에 들지 않았어요. 저는 공격 미션이 좋았어요. 헬기 중에서 아파치가 유일한 공격형 기종이죠. 생긴 것도 말벌처럼 멋있잖아요."

    ―여자 조종사가 공격형 헬기를 모는 것에 대한 우려는 없었나요?

    "제가 잘하면 그런 선입견을 깰 수 있다고 생각해요. 헬기 조종은 어떤 면에서 자동차 운전과 비슷해요. 여자라고 자동차를 못 모나요. 아파치에는 2명이 타죠. 뒤쪽이 주조종사, 앞쪽이 부조종사입니다. 현재 저는 부조종사예요."

    ―아파치를 몰고 사격도 해봤나요?

    "의정부 사격훈련장에서 30㎜ 기관포 등을 두 차례 쏴봤어요."

    ―이라크나 시리아 등 전투 현장에 배치될 수 있다는 걸 생각해 봤나요?

    "새롭게 나타난 무장세력 IS(이슬람국가)로 인해 아마 근무하는 동안 가게 될 것 같아요."

    ―실제 전투를 감당할 자신이 있나요?

    "저는 유니폼을 입은 군인이잖아요. 웨스트포인트 입학식 때 '국가를 위해 복무하겠다'고 선서를 했어요. 물론 전선(戰線) 투입 결정이 나면 좀 예민해지겠지요. 남자 친구와 가족과 헤어지게 되니까요. 하지만 실전 경험 없이 전역한다면 저 자신에게 실망할 거예요. 군 생활 동안 아무것도 하지 않은 게 되니까요. 후회하지 않으려면 전선으로 가야 해요."

    최보식 선임기자와 세라 전 중위 사진

    ―웨스트포인트 졸업 때 여러 병과(兵科) 중에서 왜 항공병과에 지원했나요?

    "보병에는 여생도를 잘 안 뽑아줘요. 요구되는 체력 기준을 통과해도 말이죠. 여성은 사무실에 앉아서 페이퍼워크를 해요. 저는 그렇게 하고 싶지 않아 항공병과를 택했죠. 하늘을 나는 것은 멋있으니까요. 컴퓨터로 작동하니 육체적 훈련 부담도 덜한 편이죠. 대학 4학년이 돼서 어떤 병과를 택해야 한다는 현실에 솔직히 당황했어요."

    ―그게 무슨 뜻인가요?

    "저는 웨스트포인트를 좋아했지, 그 뒤의 진로인 '군인이 되는 것'을 생각해본 적이 없었어요. 그때야 제가 직업 군인으로 살아야 한다는 현실을 깨닫게 된 거죠."

    ―웨스트포인트 진학은 누구의 영향을 받은 건가요? 가령 아버지가 군인이었다든가….

    "11세 때 '웨스트포인트에서 살아남기(Surviving in West Point)'라는 TV 다큐멘터리를 보고서 웨스트포인트가 제 꿈이 됐어요. 공부와 체력단련, 군사훈련, 짜인 스케줄의 생활…, 그런 도전이 너무 멋있게 보였어요. 사실 웨스트포인트는 아버지(49)의 꿈이기도 했어요. 아버지가 군인을 좋아했어요. 일찍 이민을 와 미 해병대에 사병으로 1년 반 근무했대요. 이 때문인지 두 살 아래 제 남동생도 지금 웨스트포인트 4학년이에요."

    ―웨스트포인트 입학이 쉽지 않았을 텐데.

    "SAT 성적과 운동 특기, 동아리 리더십, 봉사활동, 의원의 추천서 등으로 평가하죠. 저 때는 여생도가 약 15%쯤 됐어요."

    ―웨스트포인트에 막상 입학해보니 어땠나요?

    "고등학교를 마치고 곧바로 군인 비슷한 생활을 하게 된 거죠. 처음 7주 훈련 때는 육체적으로 고될 뿐만 아니라 그전과는 라이프스타일이 완전히 바뀌니 적응이 안 됐어요."

    ―'아이고 잘못 들어왔구나' 생각했나요?

    "제 꿈이었으니 후회한 적은 없었어요. 4주 훈련에 들어가기 전, 엄마와 딱 10분간 통화할 기회가 주어졌어요. 전화기를 드니 울음이 터져 나왔어요. 그때는 겨우 17세였고, 가족과 오래 떨어져 살아본 적이 없었으니까요."

    ―군대는 보통 남자의 세계라고들 하지요.

    "여성에 대한 선입견은 미군에도 있어요. 여군은 무거운 군장을 힘들어하고 체력이 안 된다는 거죠. 그런 선입견 속에서 여성 스스로도 '난 못 해'라며 한계를 지어요. 그렇지 않다는 걸 보여줘야 해요. 여성이 신임을 받으려면 남성이 한 번 보여줄 때 두 번을 더 보여줘야 합니다."

    열흘 전 그는 숙명여대 학군단의 초청으로 강연했다. "군인은 국가를 위해 봉사한다는 점에서 직장을 얻어 돈 버는 것과는 다른 길" "한계란 사람들의 편견에 맞춰 스스로 만드는 것일 뿐 '여자라서 못 하는 일'이란 따로 없다"…. 우리 사회에서 보면 '풋내기'인 24세짜리 여성이 이런 말을 한다는 게 인상적이었다.

    ―군인은 '직장을 얻어 돈 버는 것과는 다른 길'이라고 했는데.

    "매스컴 보도는 제 말을 멋있게 '메이크업(make-up)'해준 것이고…. 사실 미국 군인은 적지 않은 봉급을 받습니다. 해외 파견 수당도 있고요. 또 많은 기회와 혜택이 주어져요. 무엇보다 국민은 우리를 보면 '생큐 포 유어 서비스'라며 감사를 표시합니다. 이런 대접은 나라가 요구할 때 자신의 목숨을 내놓을 수 있기에 받는 것이지요. 이런 점에서 군인은 국가를 위해 봉사하는 직업이지요."

    ―본인의 일상생활은 어떻게 좀 다른가요?

    "저는 방에 가구를 들여놓고 꾸미는 걸 좋아하지 않아요. 한 시간 안에 내 방의 짐을 정리해 떠날 수 있어요. 의류회사를 하는 아빠가 제게 옷을 공짜로 주겠다고 하지만 별로 원치 않아요. 저는 제복과 트레이닝복뿐이에요. 지금은 돈을 몰라서 쇼핑을 안 좋아하는지도 몰라요. 하지만 돈만 많이 벌어서 골프 치고 좋은 레스토랑에서 음식 먹는 게 전부인 삶도 심심할 것 같아요."

    세라 전 중위가 모는 아파치헬기 사진
    세라 전 중위가 모는 아파치헬기.
    ―지금 한국 근무는 어떤가요?

    "거의 날마다 헬기를 몰거나, 위기 상황을 전제로 한 시뮬레이션 훈련을 합니다. 정비 수리 교육도 받아요. 일반 장교처럼 보고서 작성 업무도 있어요. 근무가 끝나면 개인적으로 체력단련도 해야 합니다. 주말에는 아무 일 안 하고 종일 잘 때가 많아요. 여기 올 때만 해도 한국어를 배우고 한국 친구들도 사귀겠다고 했는데 그럴 여유가 없어요."

    ―미국 캘리포니아에서 출생했는데, 주한미군에는 지원한 겁니까?

    "예. 부모님의 나라이니까요. 첫 근무지입니다. 웨스트포인트 동기생들도 주한미군으로 와 있어요. 여기서 남자 친구도 사귀었고요."

    ―남자 친구를 한국에서 사귀었다고요?

    "웨스트포인트 동기생이에요. 그는 보병인데 의정부 캠프에 있다가 다섯 달 전 미국 노스캐롤라이나로 돌아갔어요. 이번 크리스마스 휴가 동안 하와이에서 만날 거예요. 제가 2년간 한국 근무를 마치면 남자 친구와 같은 부대에 배치될 수 있기를 바라요."

    ―부대가 있는 여기 평택시는 마음에 들어요?

    "조그만 서울 같아요. 처음 왔을 때는 지금처럼 바쁘지 않아 부대 바깥에서 즐겼어요. 동료들과 노래방에도 가고."

    ―노래방 애창곡은?

    "미국 팝을 부르지만 한국 노래도 몇 곡은 알아요. K팝이나 아이돌 노래가 아닌, 좀 지난 백지영의 '총맞은 것처럼'은 부를 줄 알아요."

    ―그전에 한국에 와봤나요?

    "열 살 때쯤 할아버지와 이모 집에 한 달간 있었어요. 그때는 어려서인지 너무 재미있었어요. 지금은 좀 실망한 게 서울에 가봐도 할 게 없어요. 오직 먹고 마시기만 해요. 여성들은 화장하고 비싼 옷과 가방을 사는 데 관심이 많아요. 한국에서는 날씬한 몸매와 예쁜 외모가 중요한 것 같아요."

    ―그거야 미국도 마찬가지 아닌가요?

    "문화가 다른 것 같아요. 미국에는 자연스러운 것을 예쁘다고 하는데, 한국에는 성형수술을 자연스럽게 여겨요. 제게 '눈 쌍꺼풀 수술을 하라'고들 해요. 보세요, 제 얼굴에는 기미와 주근깨가 잔뜩이에요. 지난번 강연 뒤 매스컴에 난 사진을 보고는 '미국인처럼 엉덩이 크고 굵다'는 코멘트가 달렸어요. 한국 여성들은 날씬하고 눈 크고 코 높이는 게 예쁜 거잖아요. 저는 운동을 많이 해 근육이 있고 건강하죠. 아름다운 몸에 대한 개념이 많이 달라요."

    ―내가 보기에는 눈이 예쁜데, 쌍꺼풀 수술을 할 생각인가요?

    "아니요. 자기를 사랑해야 돼요. 조금 못생겨도 다른 것으로 멋있을 수가 있는데, 한국 여성들은 그런 확신이 없는 것 같아요."

    ―의무 복무 기간이 5년 남았다고 들었어요.

    "그 뒤 군대에 계속 남을지는 결정하지 않았어요. 로스쿨에 진학해 워싱턴DC에서 정부 일을 하고 싶은 마음도 있어요. 어떻게 될지 몰라요. 분명한 것은 지금은 군인으로서 살고 있다는 거죠."

    그는 어떨 때는 확실한 미국인 같았다가 또 어떨 때는 한국인 같았다. 그가 "청국장과 순두부를 제일 좋아하고 영내 숙소에서 혼자 된장이나 김치찌개를 끓여 햇반을 먹는다"고 했을 때는 후자 쪽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