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습방/시모음

**시이소오/문정희**

그대 그리고 나/포항 2014. 8. 16. 18:18

**시이소오**

 

                        문정희

 

 

어둠이 내려오는 저녁 공원에서

혼자 시이소오를 탄다

이쪽에는 내가 앉고 저쪽에는 어둠이 앉는다

슬프고 둔중한 힘으로 지그시 내려앉았다가

다시 허공으로 치솟는다

 

얼마를 더 가야 하는 것일까

한없이 무거운 슬픔의 무게를

자꾸 땅으로 내동댕이친다

피 흐르는 무릎을 안고 버둥거린다

어둠은 한 마리 짐승처럼 나를 바라보고 있다

 

나는 다시 시이소오를 탄다

추락은 예비되어 있고

상처는 훈장처럼 늘어가지만

이쪽에는 내가 앉고 저쪽에는 어둠이 앉는다

 

 

**시소는 처음부터 혼자서는 탈 수 없는 물건이다. 혼자만의 시소란 없는 무게로 허청댈 수밖에 없는, 어떤 결핍의 구조를 가시화한다. '한없이 무거운 슬픔의 무게'가 거기에 엊혀 있다. 시소(seesaw)는 본래 '본다'와 '보다'가 결합된 말이다. 내 앞에 놓인 그는 오르내리면서 보였다가 보이다가 한다. 그러니 시소는 과거와 현재를, 부재와 현전을 결합한 사물이다. 처음부터 하나로 세는 둘이 있어야 시소놀이를 할 수 있으므로 시소는 사랑의 구조를 가시화하는 사물이기도 하다. 거기에 내가 혼자 앉아서 '자꾸 땅으로 내동댕이'침을 당한다. 둘을 셀 수 없는 하나만이 있기 때문이다. '어둠은 한마리 짐승처럼 나를 바라보고 있다/나도 짐승의 눈을 응시한다.' 이것은 내가 아무것도 보고 있지 않으며, 그래서 저 시소의 구조 안에서 내가 '보았다는 것을 보고있음'을 말한다. 나는 내 눈앞에서 부재를 보고 있는데 그 부재야말로 현전을 전제로 하는 것이다. 내 앞에는 아무도 없지만, 누구든 거기에 있어야만 했다. 그것이 이상한 역전을 불러온다. 나는 어둠(아무도 없음)을 본다, 그리고 나서 어둠이 나를 본다. 늦은 저녁의 시소는 내가 사랑의 자리에 앉았음을 표시해준다. 이곳이 물의 발원지다. 우물처럼 물이 솟아나와 고이는 곳이다. '피 흐르는 무릎'을 내려놓는 곳이다.

-문정희 시집 '카르마의 바다' 156~158쪽 권혁웅 시인 해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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