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택배를 출항시키다/오희옥
통영에서 수천 마리의 멸치 떼가
집으로 배달되었다
종이 박수 모서리를 뚫고 출렁
마룻바닥으로 솓아졌다
멀미가 났을 것이다
해풍에 이마주름 말리시는 아버지
유자나무 열매에서도 지독한 비린내가 났다
내가 질색하며 뱉어버린 바다
토악질을 해도 늙지 않았다
해초에 몸을 감는 파도 따라
어망을 던지는 다버지
유자처럼 열굴에 곰보자국이 선명했다
그때, 신음하는 물결
뜨겁게 할퀴어 찢기는 파도에
잘게 부서지는 아버지를 보았다
목이 늘어진 아버지의 바다가
택배로 배달되었다
달팽이관 안에서 탁, 탁 그물 터는 소리
거실 바닥으로 좌르르 쏟아졌다
종일, 멀미가 났다
2 침엽의 생존 방식./ 박인숙
*활엽을 꿈꾼 시간만큼 목마름도 길어
긴 목마름의 절정에서 돋아난 가시들
*침엽은 햇살도 조금 바람도 조금
*마음을 말아 욕심을 줄인다
대리운전하는 내 친구 금자
*밤마다 도시의 휘청임을 갈무리 하는 사이
보도 블록 위에 포장마차로 뿌리 내린 민수씨
*그들은 조금 웃고 조금 운다
*바람 속에 붙박혀 시간을 견디는 일이
침엽의 유전자를 가진 자들의 몫이므로
뾰족이 가둔 눈물이 침엽의 키를 늘이고
세월을 새겨 가는 것
그들의 계절에는 극적인 퇴장
화려한 등장 따위는 없다
한가한 날 고작 흰 구름 몇 가닥
*바늘 끝에 걸쳐두거나
흐린 겨울 하늘이 너무 시릴 때
눈꽃으로 피사체를 만들어 보거나
혹한의 계절에도 홀로
*숲의 푸른 내력을 지키는 건 침엽이다
그들의 날카로운 생존방식이 숲을 깨우고
8바람의 깃털을 고른다
햇살도 이 숲에서 금빛으로 따끔 따끔 빛난다
3 주전리 바다/정명옥
어이, *오늘 바다가 참 가벼워
남편은 낚싯줄 휘리리릭 던져 손잡이를 걸어놓고
*내게 바다를 통째 들고 있으라는 거야
네 알았어요 바다가 장말 가볍네요
쉿 조용히 해 야광찌는 고기들이 육지로 올라오는 *초인종이야
햇살 쓴 물방울들만 입질을 하고
이윽고 들고 있던 바다가 기울이자
옥수수만한 고기들을 쏟아낸다
오래전 팔아먹은 결혼반지도 함께 딸려 나오고
어이, 바다를 놓아버려 고함친다
*파도는 뜨개질하듯 손놀림하고
*얼른 바다의 뚜껑을 담는다
별을 품은 칠성어들의 가장 배고픈 시간은 말이야
새벽안개가 몰려올 때지
그때까지 이러고 있어야 돼
나는 바다를 들었다 놓았다 두들려보다가 이글거리며
누워서 보는 바다는 스테인리스 주전자같고
불룩한 속 두우둥둥
주전자 안으로 흥건히 고여드는 핏물
서쪽 어디에선가 비명내지르며 거둬간다
어이, 이봐 낚싯즐이 암초에 걸렸나봐 어서 좀 풀어줘
대뜸 주전자 안을 뛰어들자
*낚싯바늘에 내 아가미가 걸려든다
4. 5원, 이팝나무/ 이규상
따듯한 밥 한 공기 먹여서
보낼 것을 그랬다
새벽이 오면
차디찬 손으로
뺨 한번 어루만지지 못할 것을
온기를 밥공기에 담아
먼 길 떠나는 내게 밥심으로
잘가라고 인사라도 할 것을 그랬다
그때부터였을까
어머니는 마당 한구석에
이팜나무를 심기 시작하더니
오월이면
보이는 땅한뼘이라도
배고픈 그 나무를
떠거운 눈물로 꽃피우셨다
씨레기같은 그 꽃이 지면
바람에 훨훨
산너머까지 밥짓는 연기처럼 흘러가
논두렁에 바짓가랑이 적시며
놀던 개구쟁이 아들을
다시 불러 주길 바랐다
다시 오월이 오고
어머니는 이팝나무가 되어
볍씨같은 꽃잎과 함께
어린 아들을
부르러 산너머로
흩어져 갔다
쌀밥보다 땨뜻했던
오월, 이팝나무는
마당 한가득
밥짓는 열기로
*여름을 불러온다
5 가을 야구/ 손택수
*딱, 파울인가 홈런인가?
알밤 떨어지는 소리에 청솔모가 뛴다
마이볼
뛰어 내려오던 청솔모
날아가는 공을 향해 점프를 하려는 순간
벌어진 눔망울도 걸음도 딱,
멈추었다
관중석에서 팔을 내밀어
공을 채어가듯이
알밤을 주워가는 사람들,
담장을 넘어와 숫제
경기장 안을 뛰어다닌다
망했다
코리안시리즈
-시창작 꿀팊- 좋은 시 읽고 쓰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