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시의 묘사와 진술
-모든 시는 묘사와 진술로 어우러진다
묘사와 진술은 시를 구성하는 가장 중요한 두 축
-좋은 시는 묘사와 진술의 절묘한 조화에서 탄생
-묘사는 가시적, 회화적, 제시적, 감각적
묘사 위주의 시는 산뜻하지만ㄴ 깉이가 덜함
비유, 상징 등도 모두 묘사를 잘 하기 위한 수단
-진술은 해석적, 고백적, 사고적
진술 위주의 시는 깊이는 있으나 관념적
2 점묘/박용래
싸리울 밖 *지는 해가 *올올이 풀리고 있었다
보리 *바심 끝마당
*허드렛군이 모여
*허드렛불을 지르고 있었다
*푸숫푸숫 튀는 연기 속에
*지는 해가 이중으로 풀리고 있었다
*허드레,
*허드레로 우는 뻐꾸기 소리
징소리
*도리깨 꼭지에 지는 해가 또 하나 울울이 풀리고 있었다.
-바심/타작
-박용래/눈물의 시인
3 저녁 눈/박용래
*늦은 저녁때 오는 눈발은* *말집 호롱불 밑에 붐비다*
늦은 저녁때 오는 눈발은 *조랑말 발굽 밑에 붐비다
늦은 저녁때 오는 눈발은 **여물 써는 소리에 붐비다
늦은 저녁때 오는 눈발은 **변두리 빈터만 다니며 붐비다
-늦은 저녁때 오는 눈발은/두운 붐비다/각운
4 여울목 한나절/유 재영
*허리 가는 바람이 자꾸만 간지러워
*뿔대 말간 달팽이 천천히 옮겨가고
장다리 푸른 꽃대엔 봄을 *물고 앉은 새
*낮달도 풀물이 든 여울목 한나절은
*피부 하얀 햇빛들이 레이스를 짜고 있다
호밀밭 지나서 오는 *메아리도 은빛이다
-유재영 시인은 대표적 이미지스트
5 어머니/이우걸
*아직도 내 사랑의
*주거래 은행이다
*목마르면 대출하고
*정신 들면 갚으려 하는
*갚다가
*대출하다가
*대출하다가
*갚다가 ...
-진술시
5 다시 또 봄이 와서/박진형
1
아우야, 니가 만약 효자가 될라 카머
너거무이 보자마자 다짜고짜 안아뿌라
그라고 젖 만져뿌라, 그라머 효자된다
너거무이 기겁하며 화를 벌컥 내실기다
다 큰기 와이카노, 미쳤나, 하실끼다
그래도 확 만져뿌라, 그라며 효자된다
2
참 심심한 봄날이었지요 팔순 어미 보러 가서 다짜고짜 왼쪽 젖가슴 만지고는 시치미 딱 떼고 만원짜리 한 장 꺼내어 <어무이 젖값이니더> 그러자 울어미 기겁도 하지 않고 <야야, 이족도 마져 만져 도고> 하지 않겠습니까 도리없이 오른쪽 젖가슴도 만져주고 배춧닢 한 장 더 보태 드렸지요
겨울 안개 자욱한 오름 지나자
울 어미 젖무덤에 또 다시 봄이 와서
뾰족하니 새로 돋는 초록 젖니 보며
오오래 소리 죽여 울었지요
-1은 효자가 될려면.이종문 시
-결어/오오래 소리 죽여 울었지요
6 경계/장철문
*냉이꽃이 탱자나무 울타리를 넘는다
한발 한발
뚤레 뚤레
사방 곁눈질을 한다
한발이 저도 모르게
경계를 넘자마자
*막무가내다
*떼로 몰려가서 까르르 까르르 웃는다
급기야 탱자나무 울타리도 *하얗게 자지러지고 만다
-작은 냉이꽃이 탱자나무 울타리를 넘는다/역발상이 좋다
7 딱따구리 소리/김선태
*딱따구리 소리가 **딱따그르르
숲의 고요를 맑게 깨우는 것은
*고요가 소리에게 환하게 길을
*내어주기 때문이다. 고요가 제 몸을
*짜릿짜릿하게 빌려주기 때문이다
*딱따구리 소리가 또 한 번 *딱따그르르
숲 전체를 두루 울릴 수 있는 것은
숲의 나무와 이파리와 공기와 햇살
숲을 지나는 계곡의 물소리까지가 서로
*딱, 하나가 되기 때문이다.
-진술과 묘사가 잘 어우러진 좋은 시
8 견디는 힘, 그건/노창선
*안으로 안으로 다져진 외로움의 힘
*내공이 크면 클수록
*대나무 껍질은 단단해진다
*아주 단단한 야성이 되어
*죽도도 되고 *죽창도 된다
*우우우 세상을 *울릴 만한
명도도 되고 명창도 된다
9 엣 마을을 지나며/김남주
*찬 서리
나무 끝을 나으는 까치를 위해
홍시 하나 남겨둘 줄 아는
*조선의 마음이여
10 저것이 완성일까/김선굉
지는 *후박나무의 잎을 바라본다
아주 느리게 *시간이 개입하고 있었다
잎은 천천히 떨어졌으며
무슨 표정과도 같이
마치 무슨 *순교와도 같이
몇 차례 의젓이 몸 뒤짐으며
툭, 하고 떨어졌다
저것은 그러면 완성일까
어떤 완성일까
아니면 도 다른 완성으로 가고 있는 걸까
툭, 툭, 떨어져 쌓여 몸 뒤척이는
저 마른 잎들의 근심은
-진술시
11 금환일식/서숙희
태양은 순순히 *오랏줄을 받았다
팽팽하게 차오르는 *소멸을 끌어안아
일순간
대명천지는 *고요한 무덤이다
입구와 출구는 아주 없으면 좋겠다
시작과 끝 또한 없으면 더 좋겠다
캄캄한 절벽이라면 *아, 그래도 좋겠다
*빛을 다 파먹고 스스로 갇힌 어둠둘레
*오린 듯이 또렷한 금빛 맹세로 남아
한목숨
네 흰 손가락에
*반지가 되고 싶다
-2007김*천 정완영 *백수 문학상 찬만원 수상작. 한자 천을 풀어 백수라 함
12 조국/정완영
행여나 다칠세라 너를 안고 줄 고르면
떨리는 열 손가락 마디마디 애인 사랑
손 닿자 애절히 우는 서러운 내 가얏고여.
둥기둥 줄이 울면 초가삼간 달이 뜨고
흐느껴 목메이면 꽃잎도 떨리는데
푸른 물 흐르는 정에 눈물 비친 흰 옷자락.
통곡도 다 못하여 하늘은 멍들어도
피맺힌 열두 줄은 굽이굽이 애정인데
청산아 왜 말이 없이 학처럼만 여위느냐.
13 파리똥/임보
세상을 이미 떠난
어느 대가의 시(詩) 한 편을 놓고
기라성 같은 비평가들이
화려한 논란을 쏟아냈다
문제가 된 것은
시행(詩行)의 중간에 찍힌
하나의 피리어드(종지부(終止符))였다
수식어와 피수식어를 갈라놓음으로
시정(詩情)의 미적 확대를 의도적으로 꾀했다.
[비평가 A]
의미의 연결에 포즈(pause)를 줌으로
이미지의 자동화를 방지한 낯선 장치다.
[비평가 B]
복잡다단한 현대 도시 소시민의 순간적인
의식의 단절을 시각화한 것이다.
[비평가 C]
일상적 구문의 해체로 심리적 갈등 곧
정서의 와해를 표출하려 했다.
[비평가 D]
알다가도 모를 현학적인 해설들이
작품보다 더 어렵게 지상을 수놓았다
거기에 왜 마침표가 들어가야 하나?
아무리 해도 이해를 못한 한 숙맥 시인이
출판사에 찾아가 대가의 친필 원고를
가까스로 찾아보았다
원고에 분명 마침표가 찍혀 있었다
(그러나
그 마침표의 생산자는 대가가 아니라
한 마리의 불손한 파리였던 것을
세상은 아무도 몰랐다)
ㅡ 『지상의 하루』(2017, 임 보 시선집)
14 장미와 가시/김영희
*눈먼 손으로
*나는 삶을 만져 보았네
*그건 가시투성이였어
가시투성이 삶의
몸을 만지며
*나는 미소 지었지
*이토록 가시가 많으니
*곧 장미꽃이 피겠구나 (끝)
*늦은 저녁때 오는 눈발은 *말집 호롱불 밑에 붐비다*
늦은 저녁때 오는 눈발은 *조랑말 발굽 밑에 붐비다
늦은 저녁때 오는 눈발은 **여물 써는 소리에 붐비다
늦은 저녁때 오는 눈발은 **변두리 빈터만 다니며 붐비다
-늦은 저녁때 오는 눈발은/두운
-붑비다/각운
4여울목 한나절/유 재영
*허리 가는 바람이 자꾸만 간지러워
*뿔대 말간 달팽이 천천히 옮겨가고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