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꽃 바람 부는 산/김영혜
가자, 집에 가자 병원비 많이 나온다.
몇 번이나 내 손을 끌어 당기던 아버지는
한 모금의 물도 삼키지 못한 채
햐얀 입술을 태우다가 저세상으로 가셨다
굳어버린 혀엔
밷지내지 못한 말들이 고였다
세상에 병원비가 무서워
이 땅을 서둘러 떠나시다니
아버지 따라가지 못한 자식들
붉은 꽃바람이 온 산을 덮는다
2 고목의 기도/김영혜
한 생을 호미자루 들고 흙속에서
자식들 영글어가는 재미로 살았습니더
청춘이 닳아 헝겊 조각이 되어도
구멍 난 자식들 메워줄 곳 살피며 살았습니더,
알토란 같은 자식들한테
무지랑이 같은 어미 모습
부끄럽게 들킬끼봐
산 송장 같이 살았습니더
안 죽는 다는 말 빈말이고
늙어 빠진 질긴 목숨
어찌할 재간이 없으니
어쩌던지 염치없이
요양병원에 누워있지 말고
자식들 애태우지 말고
사는 날까지 몸 성히 살다가
미련 없이 곱게 따라 나설 테니
자는 잠결에 영감 곁에 가게 해주이소
부디 자는 잠결에 가게 해주이소
3김영혜 프로필
1971년 경남 진영에서 태어났다.
어릴 때부터 문학에 관심이 많아서
백일장에 나가 상을 받곤 했다.
시는 지천명을 넘어 아버지를 저 세상으로
떠나보낸 후 본격적으로 쓰기 시작했다.
2022년 계간 <문학사계>에서 신인상을 받고
문단 활동을 시작했다.
현재 서울디지털대학교 문예창작학과에 재학 중이고
경남 진주에서 텃밭을 일구며
흙내음 물씬 풍기는 자연과 더불어 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