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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묵화(墨畫)/김종삼
물 먹는 소 목덜미에
*할머니 손이 얹혀졌다.
이 하루도
*함께 지났다고,
*서로 발잔등이 부었다고,
*서로 적막하다고,
2 나의 새/ 김조민
낮은 비행운이
우듬지로 내려앉는다
*수직 낙하하는 깃털 몇 개
*말을 잃은 눈빛이
*가시나무에 대롱거린다
안녕
나를 봐주세요
대답 없이
*낯선 시간에 잠겨 있다
*함께한 이별만큼
*아마득한 거리를 풀어놓는다
*새는 돌아오지 않고
지독한 감기에 걸린 것은
그후의 일이었다
3 사랑/ 이산하
*망치가 못을 친다.
*못도 똑같은 힘으로
*망치를 친다.
나는
*벽을 치며 통곡한다.
4 생(生)은 아물지 않는다/이산하
*평지의 꽃
*느긋하게 피고
*벼랑의 꽃
*쫓기듯
*늘
*먼저 핀다
*어느 생이든
*내 마음은
*늘 먼저 베인다
*베인 자리
*아물면, 내가 다시 벤다
*이산하 시인 (본명 이상백 1960~)
1960년 포항 영일 출생1982년 '이륭'이라는 필명으로 <시운동>에 연작시 '존재의 놀이'등을 발표하면서 등단1987년 장편대서사시 ‘한라산 ’필화사건으로 구속 이후 11년간 절필11년 만인 1998년 <문학동네>에 '날지 않고 울지 않는 새처럼'외 4편을 발표하면서 작품활동 시작.현재 대안연구공동체 ‘시인교실’ 교장. 문학웹진 ‘상상너머’ 편집주간
시집 <한라산>, <천둥같은 그리움으로> 등 다수장편동화 <할아버지의 모자>산문집 <적멸보궁 가는 길>소설 <양철북>
5추모 / 이산
*죽은 자 여럿이
*산 자 하나를
*따라가고 있다.
- <악의 평범성>(이산하, 창비, 2021)
6 빈틈/이산하
꽃이 나무의 상처라면
열매는 그 상처가 아문
생의 유일한 빈틈이다
난 지금
봄에 몸이 마르는 슬픔을
지독하게 겪고 있다.
이산하 시집 창비시선 453
『악의 평범성』
*7<제39회 중앙시조대상 천만원 수상작>
빈/서숙희
*빈, 하고 네 이름을 부르는 저녁이면
*하루는 무인도처럼 고요히 저물고
내 입엔 *셀로판지 같은
적막이 *물리지
어느 낮은 *처마 아래 묻어 둔 밤의 울음
*그 울음 푸른 잎을 내미는 아침이면
*빈, 너는 갓 씻은 햇살로
반듯하게 내게 오지
*심심한 창은 종일 구름을 당겼다 밀고
*더 심심한 나는 구름의 뿔을 잡았다 놓고
비워둔 내 시의 행간에
*번지듯 빈, 너는 오지
ㅡ코로나 초기 2020년 창작
ㅡ빈 / 다의적
ㅡ창~구름을 당겼다 밀고/활유법
8 바다책, 다시 채석강/문인수
민박집 바람벽에 기대앉아 잠 오지 않는다
*밤바다 파도 소리가 자꾸 등 떠밀기 때문인데
*무너진 힘으로 이는 파도 소리는
*넘겨도 넘겨도 다음 페이지가 나오지 않는다
*아, 너라는 冊
*깜깜한 갈기의 이 무진장한 그리움
ㅡ冊/채석의 형상 시각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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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 이별/ 이장근
이별은
*별이 되는 것
*이 한 칸 띄우고 별
*한 칸, 그래
*한 걸음 멀어졌을 뿐이다
*그 별도 아니고
*저 별도 아니고
*내 가장 가까운 곳에서
*빛나는 별
*너는 나의
*별이 되었을 뿐이다
,
10 낮달/ 유수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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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 살 무렵, 뚝방에 올라
*창공을 향해 한껏 던져 넣은 부메랑이
*돌아오지 못하고 빛의 그물에 걸려 있다
*눈 밝은 날은
*까마귀손이 쥐었던 땟물 자국 선명하다.
11소주병/공광규
*술병은 잔에다
*자기를 계속 따라주면서
*속을 비워간다
빈 병은 아무렇게나
버려져
길거리나
쓰레기장에서 굴러다닌다
바람이 세게 불던 어느 날밤 나는
문밖에서
*아버지가 흐느끼는 소리를 들었다
나가보니
*마루 끝에 쪼그려 앉은
*빈 소주병이었다
12 기타 시학
ㅡ시가 어려운 이유는 일상생활언어 사용 방식대로
시의 언어를 이해하기 때문
ㅡ시의 언어는 기호의 외연을 바탕으로 문맥에 의해 부여되는 새로운 의미나 정서의 덧씌우기로 새로운 의미를 창출하는 것, 즉 개념지시 차원을 넘어 언어의 상태를 지향하며 언어의 함축성을 강화한다는 것
ㅡ시적 언어의 중요 특질 중 하나가 내연적 기능 살리기
ㅡ시를 읽을 때는 언어가 상징하는 분위기, 상징성, 다의성을 고려한다.
ㅡ시에서는 여러 길을 통해 시의 애매성(뜻겹침, 불명확) 언어의 풍부함과 미묘함을 증가시키고 복잡성을 띠게 한다
ㅡ시의 어려움은 시의 특징이자 시의 즐거움이다
(현대시론, 김신정외 한국방송통신대학교출판문화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