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0324 마음무늬 숙제/내가 깃들었던 곳/다락방*
어릴적 고향집 안방엔 유일한 다락방이 있었다
안방 아랫목 왼쪽, 베니아판 큰 여닫이 문짝에 자물쇠는 나뭇쪼가리 못질해놓은 것, 빗대면 잠그는 것, 문틈이 보이게 세우면 여는 것
문을 열면 앞으로 경사진 사다리형 입구 중간엔 발디딤목이 가늘게 붙어있다. 바닥에 올라서자마자 왼편 그니까 안마당 쪽으로 채광창 한지붙인 여닫이 문이 다락방안으로 부지런히 빛을 글어드린다. 별도 조명은 쥐들 살이에 방해물이어라. 허리를 약간 숙게하여 인사를 받아먹는 다락방,
헛광이나 마찬가지, 다락방 바닥엔 쥣똥도 드문드문 있고 양말신은 발도장이 찍히는 느낌의 바닥에 백과사전이 나를 기다리고 있는데 그 속을 보니 인체의 상세도면이 총천연색으로 나오는데 혹한다 엄마가 먼지구데기에서 빨리 내려오란 소리도 들릴락말락한, 침 넘어가는 소리 꼴깍 꿀꺽 눈은 반짝반짝였다.
물 팔십프로로 이루어진 살들
그 살이 그 살인데
내 살은 그 살이 아니며
그 살은 내 살이 아니고
그 살은 그 살이라 궁금했던가 봅니다.
치기어린 국민학생 숫새앙쥐은밀히 깃들었던 곳
앙큼한 생쥐 부뚜막에 올랐습디다
아 아롱지는!
호리삐리짜리한 쥣똥과
발 땀, 인주 찍은 양말발도장이 머물렀던 그 다락방
일전 고향 친구가 안내하여 강화읍 관청리 250번지
그 다락방 더듬으러 간 적 있었다.
남산도 북산도 키가 줄고
해에 닿을 해나무란 느티나무도
볼품없이 익어지고
눈만 왔다하면 온동네 아이들 시끌버끌이 다 모여
가마니짝 깔고 신나게 눈썰매 타던 집 앞 언덕도
한 뼘으로 남고
일요일 설교대앞 아닌 어느 무더운 초여름
식구들 겨울양식, 고구마가 알배기전 쯤
맨머리, 런닝 차림의 아버지가 까딱까딱 똥지게 지던
아래밭도 흔적도 없고 그 주위의 감나무며 느티나무 참나무도 온데간데 없고 집들만 빼곡하다
인간들은 자연을 먹어치우는 잡식동물인가
아랫밭 중간쯤 좌측엔 담도 없는 돌기와집, 검은 돌을 얇게 가공하여 기와대신 언었던 집, 집 바로 위는 길, 길과 집 경계는 개나리 얼퀴설퀴 우거진 개나리 담. 봄에 깨어난 노란 병아리들이 개나리 꽃송이 떨어질 때 자기가 떨어진듯 놀라 목빼고 어미닭으로 달려가면 어미닭은 묵직하게 "구 구" 하며 "놀랐어, 내새끼" 하며 뽀뽀해주던 곳. 돌기와집 우측은 봄이면 울긋불긋 꽃대궐 가락이 절로 걸어나오는 곳.
벗꽃 흐드러지고 큰누님 속살결 희디흰 수국, 엄마같은 큰누님의 구리무향, 그 라일락향, 바람결에 할 일 없이 왔다갔다 하는, 아래 유치원애들 떼로 산책오던, 우리집을 잘 아는 같은 교인 원장 황쌤, 입장료를 대신하는 빈 말
"재철아 같이 놀자 " 합창하면 뭘 잘못이나한 듯 큰기와집 대문 뒷쪽 한 켠에 숨었다. 그애네는 우리집보다 잘 살고 옷도 어마무시해 그냥 게들이 싫었다. 게들이 나대는 숙기는 나에게는 멀었다. 큰기와집 앞에는 물 맛 소문난 큰 우물이 있었다. 밥 지을때쯤엔 동네 자연 반상회장, 그 외에는 무료한 애들의 동네 놀이터. 까맣게 깊은 곳을 내려다보면 거기에 우리들이 있었고 하늘이 있었고 침을 뱉으면 우리와 하늘이 접혔다 펴졌다 하며 춤도 추었으며 악을 쓰면 좀 지나고나서 그 악쓴게 답으로 돌아오기도 했다. 그때 우물에 빠졌던 하늘, 그리움 찰랑찰랑 흘리며 길어올리어 심히 갈증난 동심, 목축임 벌컥벌컥하렸는데
그 우물의 우자 조차도 온데간데 없다. 그 옆엔 선반같은 큰 돌이 누워있는데 여름 뜨거운 볕들을 머금고 있다가 얇은 하의를 입은 사내애들이 질펀히 앉을라치면 사람씨앗주머니 ㅂ ㄹ를 쏘기도 해 한번 데이면 붉게 부풀어 오르며 쓰라려 어기적 발걸음이게 했다.
멋 대가리없이 볼품없고 처음보는 동문이란 녀석, 저멀리서 단청을 휘날리는데 그것도 몹시 미웠다
어릴적 내집은 온데간데없이
동네 공영주차장으로 깔아 뭉개져
나의 무덤인듯 했다
사진의 out of forcuising 처럼 내 동심에 촛점이 맞추어져 선명히 부각되고 지금의 다른 현상들은 흐릿하게 뒤로 물러섰다.
이럴 줄 알았으면 궁틋고 출세하여 집 앞 저멀리부터
"ㅇㅇㅇ 생가" 란 팻말로, 뭉개지는 세월을 돼지로그(디지털+아나라그)식으로 가꿀 수 있었을텐데
세월은 인간들이 밥상에서 무얼 많이 흘리게 한다듯
나도 그 다락방을 흘리리(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