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펌/12월17일신동욱 앵커의 시선 ㅡ황혼 이혼

그대 그리고 나/포항 2021. 12. 17. 23:25

펌/12월17일신동욱 앵커의 시선 ㅡ황혼 이혼

45년을 함께 산 노부부에게 연이어 치매가 찾아옵니다.

"하나보단 둘이 낫지. 심심치도 않고"

할아버지는 바다를 좋아했던 할머니와 마지막 이별 여행을 떠납니다. 서정주 시인은 치매 걸린 아내의 손톱 발톱을 10년 넘게 깎아주며 수발했고, 늘 손을 잡고 다녔습니다. 밥도 먼저 푼 고봉밥은 아내 앞에 놓아주고 나중에 훑은 밑밥은 자기가 먹었습니다.

"그녀 먼저 숨을 거둬 떠날 때에는, 그 숨결 달래서 내 피리에 담고, 내 먼저 하늘로 올라가는 날이면, 내 숨은 그녀 빈 사발에 담을까"

미당은 예순두 해를 함께한 아내가 앞서 떠나자 곡기를 끊고 두 달 뒤 따라나섰습니다. 김종길 시인도 아흔한 살에 70년 가까이 해로한 아내가 세상을 뜨고 열흘 만에 뒤따라갔지요. 노시인이 노래했던 '부부'입니다.

"오십 년이 넘도록 하루같이 함께 붙어 다니느라 비록 때 묻고 이 빠졌을망정, 늘 함께 있어야만 제격인 사발과 대접"

그런데… 지난해 서울에서 갈라선 부부 다섯 쌍 중에 한 쌍이 황혼이혼이라는 쓸쓸한 통계를 받아 들었습니다. 20년 전엔 백에 셋도 안되던 것이 2013년 10퍼센트를 넘어섰고 이제는 20퍼센트까지 돌파한 겁니다. 그러면서 결혼 4년이 안 된 '신혼 이혼'마저 추월했습니다.

일본에서 황혼이혼을 상징하는 '나리타의 이별'도 처음엔 신혼이혼을 가리켰습니다. 신혼여행에서 돌아온 부부가 나리타공항에 내리자마자 이혼한다는 얘기였지요.

젊은 층의 이혼 풍조를 꼬집던 이 말의 용도가 2천년대 들어 바뀌었습니다. 부부가 막내 결혼식 치르고 공항에서 신혼여행 떠나보낸 뒤 헤어진다는 겁니다. 황혼이혼은 아무래도 아내 쪽에서 더 원하는 경우가 많다고 합니다.

그래서 일본에는 '퇴직 남편 생존법'이 나돈 지 오래입니다. 요리와 청소, 장보기를 배운다. 아내 말에 귀 기울이며 작은 일에도 고맙다고 말한다. 눈을 맞추며 아내의 이름을 불러준다…

"부부 사랑은 주름살 속에 산다"는 말이 있습니다. "3주 동안 서로 연구하고, 3개월 동안 사랑하고, 3년 동안 싸우고, 30년 동안은 참고 견딘다"고 하지요. 그렇게 부대끼다 보면, 말로 하지 않아도 통하는 애틋한 끈이 두 사람을 이어줍니다. 그래서 "곯아도 젓국, 늙어도 영감" "효자보다 악처가 낫다"고 하는 것이겠지요.

서로가 서로에게 빚이 있다면 할부금 갚듯 정 주고 사는 것이 부부 아닐지요. 제가 이런 생각을 하는 게 갑자기 날씨가 추워져서인지도 모르겠습니다.

12월 17일 앵커의 시선은 '황혼 이혼' 이었습니다.

**관련 시**

1ㆍ내 아내----- 서정주  

 나 바람 나지 말라고
아내가 새벽마다 장독대에 떠 놓은
삼천 사발의 냉숫물

 내 남루(襤褸)와 피리 옆에서
삼천 사발의 냉수 냄새로
항시 숨쉬는 그 숨결 소리

 그녀 먼저 숨을 거둬 떠날 때에는
그 숨결 달래서 내 피리에 담아

 내 먼저 하늘로 올라가는 날이면

내 숨은 그녀 빈 사발에 담을까

2ㆍ부부/김종길

놋쇠든, 사기든, 오지이든

오십 년이 넘도록 하루같이 함께

붙어 다니느라 비록 때묻고 이 빠졌을망정

늘 함께 있어야 제격인

사발과 대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