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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을의 노래/김대규 다람쥐야, 쳇바퀴를 돌려라 /손택수

그대 그리고 나/포항 2021. 11. 1. 23:24
가을의 노래 ------- 김대규

​어디론가 떠나고 싶으면 가을이다
떠나지는 않아도
황혼마다 돌아오면 가을이다

사람이 보고싶어지면 가을이다
편지를 부치러 나갔다가
집에 돌아와 보니
주머니에 그대로 있으면 가을이다

가을에는
마음이 거울처럼 맑아지고
그 맑은 마음결에
오직 한사람의 이름을 떠나보낸다

주여! 라고 하지 않아도
가을엔 생각이 깊어진다
한마리의 벌레울음소리에
세상의 모든 귀가 열리고
잊혀진 일들은
한잎 낙엽에 더 깊이 잊혀진다

누구나 지혜의 걸인이 되어
경험의 문을 두드리면
외로움이 얼굴을 내밀고
삶은 그렇게 아픈거라고 말한다
그래서 가을이다


산자의 눈에
이윽고 들어서는 죽음
사자들의 말은 모두 시가 되고
멀리 있는 것들도
시간속에 다시 제자리를 잡는다

가을이다
가을은
가을이란 말 속에 있다 

* 다람쥐야, 쳇바퀴를 돌려라 - 손택수

다람쥐의 건망증은 참으로 위대하다
다람쥐가 땅속에 묻어놓고 잊어버린
도토리들이 자라서 상수리나무가 되었다면
상수리나무가 이룬 숲과
숲이 불러들인 새울음소리,
모두가 다 다람쥐의 건망증 덕분이 아닌가
한겨울 눈이라도 내리면
파묻어논 양식을 도무지 찾지 못해
부르튼 두 손을 부비며 떨고 있었을 다람쥐
그 차디찬 시장기에 가슴 한쪽이 찌르르 아파오긴 하지만
다람쥐의 건망증 때문에 세상은
그나마 간신히 돌아가고 있는 것은 아닌가
양볼이 뽈통하게 튀어나오도록 양식을 거두고
언젠가 고 작은 손이 부르트도록
땅속 깊이 심어놓은 한 톨 위에 올라가 무심히
뛰어놀고 있는 다람쥐,
제가 본 세상을 온전히 기억하고 싶어
자신의 기억 한쪽을 애써 지워버렸나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