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2021.02.11 21:49 / 수정 2021.02.11 23:12
보도본부신동욱 기자
tjmicman@chosun.com
소설가 이청준의 홀어머니는 가난에 치여 집까지 팔았지만, 외지에서 공부하던 아들에겐 숨겼습니다. 아들이 고향에 다니러 오자, 어머니는 주인 허락을 얻어, 내 집인 양 밥해 먹이고 하룻밤 재워 보냅니다. 신새벽 눈 쌓인 산길을 걸어 아들을 읍내까지 배웅하고 돌아섭니다.
눈길엔 모자가 걸어온 발자국이 고스란히 남아 있습니다. 어머니는 아들의 온기가 밴 아들의 발자국만 밟고 옵니다.
이청준이 그 황망한 사연을 십몇 년 뒤에야 알고서 쓴 것이 귀향소설의 백미 '눈길'입니다.
고향이란, 어머니란, 가만히 되뇌기만 해도 가슴이 젖어오는 이름입니다.
섣달 그믐날, 시인의 어머니가 큰아들 재울 방에 불을 지피고, 이불 호청을 빨아 풀을 먹입니다. 오는 잠 쫓으며 곱게 가래떡을 썹니다.
"이번 설에는 내려오겠지… 밥상 한편에 식어가는 떡국 한 그릇. 어머니는 떡국을 뜨다, 목이 메이신다"
"아이고 좋다. 아이고 좋다"
어제 요양병원 마당에 비닐을 둘러친 면회실에서 두 딸을 마주한 어머니는 노랫가락이 절로 납니다.
"강바람에 치맛폭을 스치며 군인 간 오라버니…"
모녀는 서로 체온을 나누고 싶지만 비닐에 가로막혔습니다.
"이것 좀 풀어달라 해"
"만지고 싶은데… 지금은 이렇게 밖에 못 만나…"
모녀는 비닐 위로 손을 맞댑니다. 짧은 만남, 또다시 긴 이별에 눈물을 훔칩니다.
코로나 이산과 망향의 명절을 벌써 두 번째 맞습니다. 의료진들은 방역 최전선을 지키느라 설에도 방호복을 벗지 못합니다. 노부모들이 계신 요양시설은 발길이 끊기다시피 했습니다. 설 대목은 꽁꽁 얼어붙었고, 실업자는 역대 최악으로 치솟았습니다. 하늘마저 미세먼지로 부옇습니다.
어쩌면 우리 모두는 세월에 떠내려가면서 고향을 잃어버릴 수밖에 없는 운명일지도 모릅니다.
토머스 울프와 이문열의 자전소설 '그대 다시는 고향에 가지 못하리'처럼 말입니다. 그래도 부모님 계시고 고향이 있다는 것은, 각박한 세상을 살아가는 힘이고 위안이고 행복입니다. 그 놀라운 기적이, 오히려 어느 명절보다 더 절절하게 가슴에 와 닿는 오늘, 섣달 그믐밤입니다.
2월 11일 앵커의 시선은 '그대 고향에 가지 못하리' 였습니다.
**떡국 한 그릇/ 박남준**
섣달 그믐
어머니의 한숨처럼 눈발은 그치지 않고
대목장이 섰다는 면 소재지로
어머니는 돈 몇푼 쥐어들고
집을 나서셨다
사고싶은 것이야 많았겠지요
가슴이 아팠겠 지요
섣달 그믐 대목장날
푸줏간도 큰 상점도 먼 발치로 구경하고
사라며 동태 둬 마리 대목장에
봐 오시네
집에 다들 있는 것인지
돈 들일것 있느냐고
못난 아들 눈치 보며
두부전 명태전을 부치신다
곤명이 내려오면 맛보이신다고
밤도 내어 오신다
배도 내어 오신다
헝님의 방에는 뜨끈 뜨끈 불이 지펴지고
이불 호청도 빨아서 곱게 풀을 멕이셨다
이번 설에는 내려 오겠제
토방 앞 처마끝에 불을 걸어 밝히시고
오늘 잠 잘으시며 떡대를 곱게 써신다
늬 형은 떡국을 참 잘 먹었어야
지나는 바람소리
개 짖는 소리에 가는 귀 세우시면
게 누구야, 아범이냐
못난 것 같으니라고
에미가 언제 돈보따리 싸들고
이년에 몇번 있는 것도 아니고
설날에 다들 모여
떡국이나 한 그릇 하자고 했더니
새끼들 허고 떡국이나 해먹고 있는지
밥상 한편에 식어가는 떡국 한 그릇
어머니는 설날 아침 떡국을 뜨다
목이 메이신다
목이 메이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