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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설대비/김선우, 대결/이상국

그대 그리고 나/포항 2021. 1. 29. 16:28
**입설단비(立雪斷臂) /김선우**

 
2조(二祖) 혜가는 눈 속에서 자기 팔뚝을 잘라 바치며

달마에게 도(道) 공부 하기를 청했다는데

나는 무슨 그리 독한 비원도 이미 없고

단지 조금 고적한 아침의 그림자를 원할 뿐

아름다운 것의 슬픔을 아는 사람을 만나

밤 깊도록 겨울 숲 작은 움막에서

생나뭇가지 찢어지는 소리를 들으며

그저 묵묵히 서로의 술잔을 채우거나 비우며

 

다음날 아침이면 자기 팔뚝을 잘라 들고 선

정한 눈빛의 나무 하나 찾아서

그가 흘린 피로 따듯하게 녹아 있는

동그라한 아침의 그림자 속으로 지빠귀 한 마리

종종 걸어들어오는 것을 지켜보고 싶을 뿐

작은 새의 부리가 붉게 물들어

아름다운 손가락 하나 물고 날아가는 것을

고적하게 바라보고 싶을 뿐

 

그리하여 어쩌면 나도 꼭 저 나무처럼

파묻힐 듯 어느 흰눈 오시는 날

마다 않고 흰눈을 맞이하여 그득그득 견디어주다가

드디어는 팔뚝 하나를 잘라들고

다만 고요히 서 있어 보고 싶은 것이다

 

작은 새의 부리에 손마디 하나쯤 물려주고 싶은 것이다

 
― 시집 『도화 아래 잠들다』(창비, 2003)

**대결 ― 이상국(1946∼ )**

큰눈 온 날 아침

부러져 나간 소나무들 보면 눈부시다 그들은 밤새 뭔가와 맞서다가 무참하게 꺾였거나 누군가에게 자신을 바치기 위하여 공손하게 몸을 내맡겼던 게 아닐까 조금씩 조금씩 쌓이는 눈의 무게를 받으며 더 이상 견딜 수 없는 지점에 이르기까지 나무는 무슨 생각을 했을까 저 빛나는 자해 혹은 아름다운 마감 나도 때로 그렇게 세상 밖으로 나가고 싶다

**착한 것보다 나쁜 것이 확실히 힘이 세다. 착한 것은 천천히 지속되며 은은하지만 나쁜 것은 순간에 강하며 강렬하다. 사람뿐만 아니라 마음이나 의도, 사건에서도 마찬가지다. 그래서 오랜 시간 착한 사람이 더 많았음에도 불구하고, 세상은 착한 방향으로는 잘 흘러가지 않았다.

나쁜 것들의 결정타가 워낙 강렬하기 때문에 우리는 자꾸 착함의 존재를 잊게 된다. 잊으면 잃게 되는 법. 그래서 우리는 잊지 않고 잃지 않기 위해 시를 읽는다. 우리와 다름없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