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습방/시모음

청년이었던 당신에게/손정순

그대 그리고 나/포항 2017. 12. 9. 12:48


 청년이었던 당신에게/손정순
비닐 천막 속에서 당신의 풀어진 손마디 꼬옥, 잡아봅니다 막걸리를 벌컥, 들이키고 쓰러진 
당신의 붉은 손가락 끝에서도 흰 목련이 피었던가요? 눈이 맑은 청년은 죽지 않는 것이라구요 
싸늘한 죽음을 옆구리에 하나씩 둘러찬 역사驛舍에는 가는 비가 내립니다 
삼삼오오 아무렇게나 쓸려가는 저 꽃잎들이여, 우리 어느 역 어느 광장의 바다에서 다시 환생하여 
이마에 붉은 꽃 가득 피울 수 있을까요? 
그날도당신은취했었죠33번째입사원서를찢으며이제고향따위속이는거짓원서는다시쓰지않아도
된다며힘차게움켜쥐던그주먹그웃음소리는차라리통곡이었죠대리가되면보란듯이목련꽃핀
고향집에도내려가동네막걸리잔치도벌이고먼저간오월녀석에겐소주잔뜩먹이는걸로
살아남은자의슬픔조금덜어보겠다던그32번째행운그무지개빛꿈이정말한여름밤의꿈이될줄은미처
생각지못했어요 
광장에는 어느새 요란한 빗소리 들리고, 전광판 속으로 낯익은 건물들이 흔들립니다 청년은 벌써 죽고, 
시들어가는 목련꽃 옆에서 수천의 청년이 또 가방을 꾸리는데 어디로 흘러가는지 
까물거리는 심지만이 불안한 밤을 밝힙니다 
당신은 아시나요, 이렇게 잠 못 드는 이유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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