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습방/시모음

시의 숲/최미경

그대 그리고 나/포항 2017. 11. 30. 23:55

<20170309 뱃머리 첫 강의>

**시인 서정춘**


-시인약력: 

1941 전남 순천 출생. 1968년 『신아일보』로 등단. 시집 『죽편』 『봄, 파르티잔』 『귀』 『물방울이 즐겁다』 등이 있음.

 

오피니언칼럼
`칸칸이 밤이 깊은` 삶 -서정춘의 삶과 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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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7.03.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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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햇빛이 강렬하게 쏟아진다. 대나무는 마디마다 어둠을 품고 있다. 어둠이 가득하겠지만, 그 어둠은 절망과는 거리가 멀다. 그 어둠은 대나무처럼 푸른 어둠일 것이므로.  
▲ 햇빛이 강렬하게 쏟아진다. 대나무는 마디마다 어둠을 품고 있다. 어둠이 가득하겠지만, 그 어둠은 절망과는 거리가 멀다. 그 어둠은 대나무처럼 푸른 어둠일 것이므로.

봄이 되면 `죽편`이란 시가 떠오른다. 봄과 특별히 관련도 없는데도 말이다. 대나무의 푸름이 봄의 싱그러움을 연상시키기 때문일까, 아니면 이 시를 봄에 읽었기 때문일까? 분명하지 않은 것 사이에서 분명히 장담할 수 있는 건, 여러분도 분명 이 시를 좋아하게 될 거란 거다. 어쩌면 여러분도 나처럼 봄이 되면 이 시를 떠올리게 될지도 모르겠다. 그러니 오늘은 저를 믿고 따라오시기 바랍니다!

`죽편`이란 시를 쓴 서정춘은 1941년 전남 순천에서 가난한 마부의 아들로 태어났다. 그 가난 덕분에 매산중고 야간부를 다녀야 했다. 아버지의 친구이자 한때 빨치산이었던 `외팔이 장씨`의 서가에서 정지용, 백석, 이용악, 오장환 등의 시를 읽었다. 구상 시인의 친구이자 동경 제대 출신 조율사인 `삐아노 최씨`에게서 정식 시인으로 인정받아 술을 한 상 얻어먹기도 했다고 한다. 그때가 고등학교 다닐 때였다고 시인은 말한다.  

서정춘은 1959년 겨울, 순천을 떠났다. 그 때를 다음과 같이 회상하고 있다.



어리고, 배고픈 자식이 고향을 떴다 

아가, 애비 말 잊지 마라 

가서 배불리 먹고 사는 곳  

그곳이 고향이란다 

―`30년 전―1959년 겨울`전문 



“아가, 애비 말 잊지 마라”라고 한 사람은 시인의 어머니이기보다는 아무래도 할머니겠다. `애비`는 시인의 아버지였을 것이다. 매정하게 보일지 모르겠지만, 그의 아버지는 아들이 행여나 고향으로 다시 돌아오게 될까봐 걱정을 했나보다. 먹고 살 길이 막막한 고향에서 가난은 대물림 될 것이 뻔했을 테니까. 그래서 “배불리 먹고 사는 곳”을 고향으로 여기고 살라는 말을 했을 것이고, 어린 손자의 손을 붙잡은 할머니 역시 그 말을 반복할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그런 말 밖에 할 수 없는 시인의 아버지와 할머니의 삶은 얼마나 지난했던 것일까, 어린 아이를 떠나보내며 이들은 소리도 없이 얼마나 크게 울어야 했을까, 그리고 30년 후 늙어버린 아이가 떠올린 이 말은 또 얼마나 그를 울렸던 것일까?

시인이 상경하여 어디서에서 무엇을 했는지 알려진 바는 없다. 다만 1968년 신아일보 신춘문예를 통해 등단했다. 등단은 했지만 학력이 낮다는 이유로 취직을 하지 못한 채 전전하다 소설가 김승옥의 소개로 동화출판공사에 취직하게 된다. 시인은 그 직장을 1996년까지 다녔다. 그리고 퇴직하면 쓸쓸해질 것 같아 그동안 써온 시를 묶었다. 등단 후 29년 동안 써온 시는 고작 70여 편, 그런데 거기서 다시 반을 버리고 35편만으로 시집을 묶었다. 1년에 한 편을 쓴 셈인데, 게을러서가 아니라 시에 대한 그의 결벽증 때문이다.  

그 시집이 `죽편`이다. 이 시집이 나왔을 때, 시단에서는 “`죽편`읽어봤는가?”라는 인사말이 돌았을 정도라고 한다. 과장처럼 들린다고? 신경림 시인의 말이니 믿어도 좋다. 그래도 못 믿겠다면 자, 이제 `죽편1`을 읽어보시라. 



여기서부터, ------ 멀다 

칸칸마다 밤이 깊은 

푸른 기차를 타고 

대꽃이 피는 마을까지 

백년이 걸린다 

―`죽편1―여행`전문 



자, 준비 되었다면 이제 여행을 떠나야겠다! 목적지는 대나무 꽃이 피는 마을이고, 교통수단은 `기차`다. 그런데 그냥 기차가 아니라 `푸른 기차`며 게다가 이 기차는 “칸칸마다 밤이 깊”다. 불꺼진 기차라니, 어찌된 영문일까? 이 시의 제목이 `죽편(竹篇)`이라는 것을 염두에 둔다면 `기차`가 대나무의 은유라는 것을 알 수 있을 것이다. 사시사철 푸른 대나무는 마디져 있으므로 그 마디마디가 기차의 한 `칸`이다. (재밌게도 시인은 이 마디를 표현하기 위해 말줄임표 그러니까, “……”대신 “------”을 사용했다.) 그리고 대나무의 마디와 마디는 막혔으니 밤처럼 어두울 밖에.

이제 기차가 출발한다! 그런데 목적지까지 얼마나 걸리냐, 고? 기차가 출발했으니 이제 말할 수 있겠다. 내가 미리 말을 했다면 당신은 아마 이 기차를 타려고 하지 않았을 것 같다. 자그마치 100년이다. 대나무가 백년을 살면 꽃을 피운다는 속설이 있다. 그렇다면 이 여행은 우리가 아는 식의 여행, 일상에서 잠시 벗어났다 돌아오는 그런 여행하고는 거리가 멀다. 시인은 대나무가 자라 대나무 꽃을 피울 때까지, 대나무의 일생 전체를 여행에 비유하고 있다.  

여기서 조금 더 의미를 밀고 나갈 수도 있겠다. 여행이 대나무의 일생이라면, `대나무`는 또 무엇을 의미하는 걸까? 대나무의 일생이란 곧 시인의 삶을 의미하는 것이 아닐까. 고등학교를 마치고 고향을 떠나 타지에서 살아온 시인의 삶, 그 고단하고 지난했을 삶을 시인은 “칸칸마다 밤이 깊”다고 말하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 공강일<br /><br />서울대 강사  
▲ 공강일

서울대 강사

비록 `밤이 깊`긴 하지만, 그 어둠이 무섭거나 절망적이지만은 않았을 것 같다. `푸른 기차`의 밤이니 깊은 밤의 어둠도 푸른 어둠일 테니 말이다. 푸른 기차의 여행은 곧 푸른 대나무의 삶이며, 이것은 다시 시인의 푸른 삶이다. 시인의 푸른 삶, 청운(靑雲)! 그에게 청운의 꿈이란 시가 아니었을까. 겨울에도 푸름을 잃지 않고 꼿꼿한 대나무처럼 한편의 시를 완성하기 위해 4년간 80번을 고쳐 쓰는 그의 삶 말이다. 그러니 `대꽃을 피우는 마을`이란 시인의 고향이기도 하겠지만, 시인의 시가 만개할 어떤 시기로 볼 수도 있겠다.  

여기서 이 말을 해두는 것이 좋겠다. 청출어람! 이미지는 언어에서 나왔지만, 언어로 감당할 수 있는 수준의 것이 아니다. 이미지는 우리의 언어와 우리의 인식과 우리의 빈약한 지식과 앎을 초과하여 작동한다. 이미지는 그 끝을 알 수 없는 심연을 간직하고 있다. 또한 언어가 만드는 이미지는 언어에서 나왔음에도 언어를 뛰어넘어 언어가 나아가지 못하는 지점을 점유한다. 철학보다 더 높은 차원으로 날아오른다. 이러한 이미지로 하여 시는 여전히 유효하다.

  

  



< 저작권자 © 경북매일 무단전재 및 재배포금지 >



<좆된 시, 좆도 아닌 시, 빼도 박도 못할 시!!!>



시인 서정춘은 가방끈도 졸라 짧고, 정말 좆도 아인데 시인이 되었다. 

내가 아는 세상에서 가장 가난한 시인 중에 한 명인 그는, 내가 아는 세상에서 가장 작은 사람인 그는 왜 시인이 되었나?

그는 왜 시인이 되어서도 시는 안 쓰고 술만 마시며 딴짓거리를 하고 돌아다녔나?

그는 왜 신경림 시인의 시집 <농무>는 만들어줬으면서, 등단을 하고서도 28년 동안 자신의 시집을 내지 않았나?

그런데도 그는 우찌 시인들이 가장 좋아하는 시인 중의 한 명이 되었나?

나이 일흔 셋인 그는 아직도 좆(시)이 서기는 서나?

그는 아직도, 여전히, 배가 고픈가?

그는 왜 하필 헤세이티에서 여는 일일시인학교 첫 번째 시인이 되었나?

 

 **봄, 파르티잔/서정춘**

 

꽃 그려 새 울려 놓고

지리산 골짜기로 떠났다는

소식

 

-파르티잔; 빨치산

 

**봉선화-1950/서정춘**

 

너는 가난뱅이 울아비의 작은 딸

 

나의 배고팠던 누님이 아이보개 떠나면서

보고 보고 울던 꽃

 

석양처럼 남아서 울던 꽃 울던 꽃

 

**어린 꿈-대대포 언덕의 어린 날의 꿈/서정춘**

 

재가 가난한 농사꾼의 아이였을 때

어린 내게는 아직 일러 농사 일도 없어서

심심찮은 밥벌이로 남의 소나 먹이다가

언덕에 풀어져 잠이 든 꿈에

하늘을 파랗게 쳐다보는 사람을 보고

쫓아와 주는 학이 있었습니다

빨그랑 햇덩이를 머리에 찍어 달고

목청 터지게 울음 울어

소 있는 내 곁에

신神같이 내려앉아 주었습니다

나는 소 고삐 말아 쥔 채

다락 같은 학을 타고 하늘 높이

소를 몰아 날아올랐었지만

내 황홀했던 어린 날의 가장 어린 꿈이 되고

어른이 된 지금도 그 꿈이 그리워

숨이 가파오른 채 이 시를 씁니다

 

**백석 시집에 관한 추억/서정춘**

 

아버지는 새 봄맞이 남새밭에 똥 찌글고 있고

 

어머니는 어덕배기 구덩이에 호박씨 놓고 있고

 

땋머리 정순이는 떽끼칼 떽끼칼로 나물 캐고 있고

 

할머니는 복구를 불러서 손자 놈 똥이나 핥아 먹이고

 

나는 나는 나는

 

몽당손이 몽당손이 아재비를 따라

 

백석 시집 얻어보러 고개를 넘고

 

**나와 나타샤와 흰 당나귀/백석**

 

가난한 내가

아름다운 나타샤를 사랑해서

오늘밤은 푹푹 눈이 나린다

 

나타샤를 사랑은 하고

눈은 푹푹 날리고

나는 혼자 슬쓸히 앉어 소주를 마신다

소주를 마시며 생각한다

나타샤와 나는

눈이 푹푹 쌓이는 밤 흰 당나귀 타고

산골로 가자 출출이 우는 깊은 산골로 가 마가리에 살자

 

눈은 푹푹 나리고

나는 나타샤를 생각하고

나타샤가 아니올 리 없다

언제 벌서 내 속에 고조곤히 와 이야기한다

산골로 가는 것은 세상한테 지는 것이 아니다

세상 같은 건 더러워 버리는 것이다

 

눈은 푹푹 나리고

아름다운 나타샤는 나를 사랑하고

어데서 흰 당나귀도 오늘밤이 좋아서 응앙

응앙 울을 것이다

 

**30년 전-1959년 겨울/서정춘**

 

아가, 애비 말 잊지 마라

가서 배불리 먹고 사는 곳

그곳이 고향이란다

 

**죽편(篇)1-여행/서정춘**

 

여기서부터 -멀다

칸칸마다 밤이 깊은

푸른 기차를 타고

대꽃이 피는 마을까지

백년이 걸린다

 

**첫사랑/서정춘**

 

가난뱅이 딸집 순금이 있었다

가난뱅이 말집 춘봉이 있었다

 

순금이 이빨로 깨트려 준 눈깔사탕

춘봉이 받아먹고 자지러지게 좋았다

 

여기, 간신히 늙어버린 춘봉이 입안에

순금이 이름

아직 고여 있다

 

*20170316 포은도서관 강의실 첫 참석

 

-되돌릴 수 없는 것들-

 

나의 쓸쓸함엔 기원이 없다

너의 얼굴을 만지면 손에 하나 가득

가을이 만져지다 부서진다

쉽게 부서지는 사랑을 생이라고 부를 수 없어

나는 사랑보다 먼저 생보다 먼저 쓸쓸해진다

적막한, 적막해서

아득한 시간을 밟고 가는

너의 가녀린 그림자를 본다

네 그림자 속에는 어두워져가는 내 저녁의 생각이 담겨있다

영원하지 않은 것들을 나는 끝내 사랑할 수가 없어

네 생각 속으로 함박눈이 내릴 때

나는 생의 안쪽에서 하염없이 그것을 바라만 볼 뿐

네 생각 속에서 어두워져가는

내 저녁의 생각 속에는 사랑이 없다

그리하여 나의 쓸쓸함엔 아무런 기원이 없다

기원도 없이 쓸쓸하다

기원이 없어 쓸쓸하다

 

-겨울산/황지우-

 

너도 견디고 있구나

 

어차피 우리도 이 세상에 세들어 살고 있으므로

고통은 말하자면 월세같은 것인데

사실은 이 세상에 기회자들이 더 많이 괴로워하지

사색이 많으니까

 

빨리 집으로 가야겠다

 

-첫사랑/우순애-

 

한여름 밤

불꽃놀이 축제

그중에

불발탄

 

-경희궁 연애시/신현림-

 

당신의 몸이 얼었군요

이리 오세요 함께 따뜻한 돌계단에 앉아요

쌀알 같은 봄볕을 받으며 몸을 녹여요

 

우리에게 남은 봄날은 얼마일까요

이렇게 환한 날이면 가슴이 아팠는데

이젠 아프지 않아요

내일이란 없으니 고마워만 할래요

천천히 경희궁길을 걸으니

나라 잃어 이리저리 떠도는 설움 같다 할까요

그런 무력감, 잘망감이 씻겨지네요

 

정말 뭐든 잘 될 거란 막연한 기대는 위험해요

바다에 가고프면 바로 가고

친구 만나고프면 바로 만나고

당신 보고프면 바로 말하고

기를 모아 더는 머뭇거리지 않으니

 

길에 고운 쌀이 환히 쌓여갑니다

 

-이런 시/이상-

 

내가 그다지 사랑했던 그대여

 

내 한 평생에 차마 그대를 잊을 수 없소이다

 

내 차례에 평생 못 올 사람인 줄 알면서도

 

나 혼자는 꾸준히 생각하리다

 

자, 그러면 내내 어여쁘소서

 

-부끄러움/최룡선-

 

생각하면

난, 노을이 된다

 

-특급열차를 타고 가다가-

 

이렇게 서둘러 달려갈 일이 무언가환한 봄 햇살 꽃그늘 속의 설램도 보지 ㅗㅅ하고

날아가듯 달려거 내가 할 일이 무언가

예순에 더 몇 해를 보아온 같은 풍경과 말들

종착역에서도 그것들이 기다리겠지

 

들판이 내려다 보이는 산역에서 차를 비리자

그리고 걷자 발이 부르틀 때까지

복사꽃숲 나오면 들어가 낮잠도 자고

서매 잡는 이 있으면 하룻밤즘 술로 지새면서

 

이르지 못한들 어떠랴 이르고자 한 곳에

풀씨들 날아가다 떨어져 몸을 묻은

산은 파랗고 강물은 저리 반짝이는데

 

-단추를 채우면서/천양희-

 

단추를 채워 보니 알겠다

세상이 잘 채워지지 않는다는 걸

단추를 채우는 일이

단추만의 일이 아니라는 걸

잘못 채운 첫단추, 첫연애 첫결혼 첫실패

누구에겐가 잘못하고

절하는 밤

잘못 채운 단추가

잘뭇을 깨운다

그래, 그래 산다는 건

옷에 매달린 단추의 구멍찾기 같은 것이야

단추를 채워보니 알겠다

단추는 잘못 채워지기 쉽다는 걸

옷 한 벌 입기도 힘들다는 걸

 

-북회귀선에서 온 소포-

 

때늦게 내리는

물기 많은 눈을 바라보면서

눈송이들의 거사를 바라보면서

 

내가 앉아 있는 이 의자도 언젠가는

눈 쌓인 겨울나무였을 거라는 생각을 했다

 

추억은 그렇게

아주 다른 곳에서 아주 다른 형식으로

영혼이 되는 것이라는 괜한 생각을 했다

 

당신이 북회귀선 아래 어디쯤

열대의 나라에서 오래전에 보냈을 소포가

 

이제 다 도착을 했고

 

모든 걸 가장 먼저 알아채는 건 눈물이라고

난 소포를 뜯기도 전에 눈물을 흘렸다

 

소포엔 재난처럼 가버린 추억이 적혀 있었다

 

하얀 망각이 당신을 덮칠 때도

난 시퍼런 독약이 담긴 작은 병을 들고

기다리고 서 있을 거야

 

날 잊지 못하도록, 내가 잊지 못했던 것처럼

떨리며 떨리며

하얀 눈송이들이

추억처럼 죽어가고 있었다

 

-네 이름/김민성-

 

네 이름 석자 적는다

그저 바라본다

 

아, 너보다 시적인 건 없었다

 

 

**20170323 시집/굽은 길들이 반짝이며 흘러갔다/나무옆 의자/뱃머리 수강

-"아버지'를 테마로 만든 시 집

*옆에 있는, 잘 알고 있는 시제로 시창작

*현학적이 아닌 쉬운 시어 사용

 

-효자폰/이창수-

 

아버지는 휴대전화로 하루를 보낸다

1번을 누르면 장남이 2번을 누르면 큰딸이

숫자를 누르면 육남매가 차례로 받는다

아무리 많이 써도 요금이 안 나온단다

작은 누나 통장에서 요금이 빠져나가는 걸 모르면서

돈 먹는 집전화보다 낫다고 하신다

어머니는 아버지의 전화기가

종종 세탁기에서 나온다고 푸념이다

기계란 자고로 물과 멀어야 한다는 지론과 달이

세탁기에서 나온 전화기를 생각하면

당신의 생각에도 녹이 낀 것 같다

엊그제는 아들딸들이 전화를 잘 받지 않는다며

효자폰을 신형으로 바꿔야겠다고 혀를 차신다

아버지의 푸념을 듣고 놀란 강아지들이

눈을 크게 뜨고 아버지를 보고 있다

 

-시작메모; 몇 해 전부터 아버지가 휴대폰을 사달라고 졸랐다. 마을에서 휴대전화가 없는 사람은 당신밖에 없다며 싼 거라도 사달라고 하셨다. 작은 누나가 선뜻 자기가 사주겠다고 했고, 아버지에게 작은 누나는 천하에 없는 효녀가 되었다, 휴대폰을 손에 넣은 아버지는 우리들에게 시도 때도 없이 전화를 걸었다. 아버지가 하루 세 차례 안부를 물어 우리가 안부전화를 걸 필요가 없어졌다, 전화요금 많이 나오지 않느냐고 했더니 집전화는 요금이 나오는데 휴대전화는 요금이 안나와서 너무 좋단다. 추석에 그 이유를 알게 되었다. 작은 누나 통장에서 전화요금이 빠져나간 것이다. 누이는 전화요금 폭탄을 맞아 파산 직전이라고 하소연을 하면서도 아버지에게 말하지 말라고 했다, 그래서 아버지 전화를 잘 받지 않게 되었는데 아버지는 우리가 전화를 안 받는게 전화기 성능이 좋지 않은 이유라 생각하고 전화를 새걸로 바꿔 달라고 하신다.

 

-애비는 잡초다/이진우-

 

아무리 때리고 쓰러뜨리고

차고 짓밟아봐라.

팔을 꺾고 다리를 분지르고

등을 짓이겨봐라.

우리는 포기를 모른다

화살촉 같은 날씨와

가시밭 같은 땅에

피와 뼈로 집을 짓고

너희를 길러낸 우리다

 

너희가 덜떨어졌다 늘 비웃는 우리가

네 애비고

내일의 너희다

 

너희가 쉽게 가졌다 쉽게 버리는 양심 때문에

어두운 골목 그늘에서

하늘에 대고 울부짖고

땅에다 속을 모조리 게워내고도

다시 일어서는 애비,

너희가 절대 닮고 싶어 하지 않는

우리가 바로 온 지구를 뒤덮은 잡초,

너희를 품어줄 거대한 무덤이다

 

-시작메모: 잡초에도 이름이 있지만 대개 없애야 할 무엇, 이름조차 알기 싫은 존재로 취급된다. 세상에 이름을 떨치지 못해 화초가 되지 못한 평범한 아버지들 역시 잡초 신세. 이런 당신들과 나의 아버지의 고집불통이 우리를 존재하게 하였다.

 

-따뜻한 봄날/김종해-

 

대티고개 너머 구덕산에서

어버지가 지게로 지고 오신 나뭇단 꼭대기에

진달래꽃이 꽂혀 있다

젊은 아버지가 장난삼아 지게 위에 쓴 시는

눈부시고 아름다웠다

어머니는 진달래꽃만 곁에 두고

솔가지를 꺾어 아궁이에 넣었다

활활 타오르는 불꽃은 어머니의 얼굴 위에

황홀하고 발그레한 무늬를 수놓았다

시보다 아름다운 무늬가

젊은 어머니를 뜨겁게 했다

물은 설설 끓고 가마솥 위에 떡시루

김은 하얗게 장지문을 적시는데

떡은 다 악었다, 떡은 다 악었다.

절구통에 떡 칠 일 빼놓고도

젊은 아버지는 할 일이 많으시다

따뜻한 봄날

부엌강아지 같은 어린 아들이

할 일 많은 아버지 옷깃에

자꾸 걸치적거린다

 

-시작메모: 비좁은 방 한 칸에 밤이 되면 우리 가족 모두 가지런히 누워 함께 잠잔다.윗목에서부터 아버지, 형, 누나, 나, 엄마의 순서로 누워서 잠을 잔다. 어린 나는 너무 눈치가 없다. 아버지와 엄마는 언제 사랑을 나눌까. 철이 없어서 그런 생각마저도 나는 할 수 없다. 걸치적거리는 어린 아들 때문에 아버지가 불쌍하다.

 

-아버지/함민복-

 

등에

번지는

오줌의

온기에

미소

번지는

아가!

하며

뒤돌아보았을

지금은

당신

 

-시작메모: 생인손을 앓았다. 나를 업고 용하다는 점쟁이를 찾아 이웃마을로 가다가 고갯마루에서 피고름을 빨아 뱉던 아버지가 생각난다. 나는 아버지를 업어 준 기억이 없다.

 

-참 많은 세월 흘렀어요/이은봉-

 

아버지가 세상을 뜬지도 벌써 13년이다

참 많은 세월 흘렀어도 가끔은

후적후적 걷던 아버지가 보고 싶을 때 있다

그때마다 귀퉁이가 깨진 거울을 들여다본다

 

거울 속에는 아버지의 얼굴을 한

웬 중늙은이가 서 있다 귀퉁이가

깨진 얼굴을 하고 아버지 하고 부르면

오냐, 하고 그가 어색하게 대답을 한다

 

이 낯선 중늙은이 아버지를 어쩌나

어머니의 몸짓을 하고, 또 다른 중늙은이

아내가 엉덩이를 툭 친다 낯익은 어머니와 함께

머리가 허옇게 센 아버지가 거기 서 있다.

 

-시작메모: 여동생들이 후적후적 걷는 내 모습을 보고 아버지를 보는 것 같다고 할 때가 있다. 정말 그런가, 아ㅓ지가 보고 싶으면 나도 거울 앞에 서서 늙어가는 내 모습을 바라본다. 아내는 거울을 바라보는 내 모습도 아버지같다고 한다.

 

-니 뭐 하고 있노?/문형렬-

 

니 시방 뭐 하고 있노

나이가 적나, 뭐가 슬프노

싸락눈 사이로 어머니 산에 묻고

돌아와 소리없이 흐느끼는데

아버지, 옛 모습 그대로 흰 두루막 입고

금방이라도

더나실 듯 찾아와

꾸짖으신다

울지 마라

형도 누이도 못 온다고 니가 아무리 캐도

그럴 리 없다고 기다리는 모습이 하도 애처로버서

그만 데리고 왔다

먼저 떠난 니 형도, 누이도 다 잘 있다

땅에서는 하고 싶었던 말도

천상에서는 눈 녹듯 없다

그리워하지 마라

맘에 두지 마라

니 뭐하고 있노, 무릎 꿇고 살아라

돌아서시는 아버지 뒤따라

꿈길에서 무릎걸음으로 달려 나가니

물, 불, 훍, 바람

새벽달이 환하다

 

-시작메모:

싸락눈 지나가고, 꽃잎 지나가고, 그 사이로 붉고 푸른, 희고 검고 누런 오색 그리움이 쓰윽 얼굴을 내민다. 아뿔싸 ,,,,,

 

-새벽에 잠이 깨어/공광규-

 

전날 술을 마신 것도 아닌데

새벽에 잠이 깨서 다시 잠이 오지 않는다

학교 근처로 방을 얻어 나가 사는

아들과 딸 생각이 자꾸 난다

자식들도 내가 젊었을 때처럼

잡히지 않는 미래와 불안을 덮고 잘 것이다   >진술

밖에는 고양이가 새벽을 울고 간다

직장에서 쫒겨나

밤이슬을 맞으며 불꺼진 자취방을 찾아가던--->묘사

내가 생각나서 안쓰럽다

갑자기 기침이 난다

평생 기침이 심해서

무를 달여 먹고 배르 삭혀 먹던

서늘한 아버지 기침 소리를 닮아서 놀란다

아버지도 이렇게

집을 나가 사는 나와 동생을 생각하면서

새벽잠을 뒤척였을 것이다

 

-시작메모:  떨어져 사는 자식들을 생각하다가 가끔 잠을 설칠 때가 있다. 자다가 새벽에 깨어 한참 생각을 하돠 보면 잠이 안 올 때도 있다. 20대 초반의 자식들도 잡히지 않는 미래때문에 이것저것 생각이 많을 것이다. 이런 밤이면 기침이 심했던 아버지 생각이 난다.

 

-시에는 진술시와 묘사시 두 종류, 진술과 묘사를 적절히 배합해야 좋은 시

시는 메시지 전달적 기능을 배제하고, 사물 혹은 존재의 언어를 지향해야 함=언어의 사물화,예)나는 너를 사랑한다->나는 네 창문을 지켜보는 새벽별,

 감정환기적 진술, 묘사를 써야 함

 

-국수/이재훈-

 

국수를 좋아하셨다

그것뿐이다

 

성실한 교사이자

건축노동자이자

노인들의 벗이자

신의 뜻에 결박당했던

당신은

물리도록 국수만 드셨다고 한다

 

칠십이 넘어

집 한 칸 겨우 마련해 이사하는 날

부스러질 것 같은 누런 원고뭉치들이

책장 깊숙한 곳에서 쇳소리를 냈다

원고에는 나와 닮은 청년이 울고 있었다

 

젊었을 때 소설도 쓰셨어요?

 

아버지는 후루룩 국수를 드셨다

몇 젓가락이면 금세 비워지는 국수처럼

아련한 청춘이 빨리 비워지길 바라신 것일까

늦은 오후 당신의 삶이 국수처럼 말려 올라갔다

 

국수를 좋아하셨다

지금껏 내가 아는 것은 그것뿐이다

 

-시작메모: 아버지가 은퇴하셨다, 집을 정리하다가 아버지의 청춘과 만났다.

 

-지붕/김성규-

 

나의 죄를, 허물을 너에게 덮으니

하나의 지붕이 만들어졌다

지붕 아래서

아버지, 어디로 갈까요

 

지붕을 버리고

빗물에 밥 말아 먹으며

어디로 갈까요

집을 떠나

허물을 벗는 나무 사이로

걸어도, 술처럼 흐르는 비

 

이 세상 어디에도

걸어도 걸어도 멈추지 않는 비

하늘을 본다

눈물 흘리며

깨진 기왓장 같은 허물을

내 머리 위에 씌워주는 아버지

 

-시작메모: 어버지를 벗어나고 싶어 많은 방황을 했다. 그러나 아버지가 씌워준 마음의 지붕이 아니라면 그 많은 슬픔을 어떻게 견뎠으랴.

 

-몫/이능표-

 

어려서 아버지께서 들려주시길

하늘 아래 저마다 이 있단다

바람의 몫 구름의 몫 강물의 몫

사람의 몫 동물의 몫 실물의 몫

아비의 몫 어미의 몫 아들의 몫

자라서 다시 한 번 들려주시길

하늘 아래 저마다 목이 있단다

사람의 목 구름의 목 강물으 목

사람의 목 동물의 목 식물의 목

아비의 목 어미의 목 아들의 목

돌이켜 다시 한 번 들려주시길

하늘 아래 저마다 못이 있단다

바람의 못 구름의 못 강물의 못

사람의 못 동물의 못 식문의 못

아비의 못 어미의 못 아들의 못

 

-시작메모: 아버지는 측량 기사였다. 평생 가족과 떨어져 홀로 객지생활을 하셨으므로 어린시절 나는 아버지를 가끔 엄마 만나러 오는 손님을로 알았다. 술을 드시면 엉엉 우시곤했다

 

-아버지는 옛날 사람/장석주-

엣날이 간 세월이 아니라 오는 세월이면

아버지는 돌아올 사람, 지금 돌아오는 사람,

가는 것은 세월이고,

지금 문고리를 잡고 있는 나다.


아버지가 문밖에 헛기침을 한다.

문 안 것들은 다 슬픔으로 뚱뚱해진다.

금생은 문을 여닫는 일로 바쁘다

이쪽과 저쪽으로 갈라지는 금생

이쪽은 저쪽을 망각하고 저쪽은 이쪽을 기억한다

아버지와 나는 엣날 사람

엣날은 마른 시간


조금과 보름 사이로

바닷물이 육지를 밀며 들어오는 것은

우리가 나를 먹는 탓이다.

모란꽃을 모른 채 모란꽃밭 위로 나는 나비 몇 점들

옛날은 자꾸 돌아와서

또 엣날 속에서 저문다


아버지는 젊은 옛날 사람

아버지, 아버지, 나는 자꾸 늙어요.

저 거울로 저 무릉으로 밀려 들어가요

아버지는 무지개같이 젊어서 돌아오고

하늘의 거울로 떠서 늙어가는 우리를

낱낱이 비춰내는 것이다.


아버지는 내가 미처 완성하지 못한 문장이다.
지금도 그 미완성인 원고를 마저 쓰기 위해 고심한다.


금생 [今生] 지금 살고 있는 이 세상

 

<20170331 포은 도서관>

 

*시집/뿔을 적시며/이상국/창비 관련,

-창비는 따듯한 시집 출간, 문지는 현대적 시집 출간

 

**혜화역 4번 출구**

 

딸애는 침대에서 자고

나는 바닥에서 잔다

그애는 몸을 바꾸자고 하지만

내가 널 어떻게 낳았는데....

그냥 고향 여름 밤나무 그늘이라고 생각한다

 

나는 바닥이 편하다

그럴 때 나는 아직 대지의 소작이다

내 조상은 수백년이나 소를 길렀는데

그애는 재벌이 운영하는 대학에서

한국의 대 유럽 경제정책을 공부하거나

일하는 것 보다는 부리는 걸 배운다

그애는 집으로 돌아오지 않을 것 같다

 

내가 우는 저를 업고 별하는 아래서 불러준 노래나

내가 심은 아름드리 은행나무를 알겠는가

그래도 어떤 날은 서울에 눈이 온다고 문자 메시지가 온다

그러면 그거 다 애비가 만들어 보낸 거니

그리 알라고 한다

모든 아버지는 촌스럽다

 

나는 그정에 서울 가면 인사동 여관에서 잤다

그러나 지금은 딸애의 원룸에 가 잔다

물론 거저는 아니다

자발적으로 아침에 숙박비 얼마를 낸다

나의 마지말 농사다

그리고 헤어지는 예화역 4번 출구 앞에서

그애는 나를 안아준다 아빠 잘 가

 

*번개 시제- 사랑*

 

간지럽다

웃읍다

오골거린다

그래도 하고 싶다

오 내 사랑

 

-합평과 퇴고-

간지럽구나 바람아

그만 흔들어

그래도 오거라

오 내 사랑

*간지럽다, 웃읍다, 오골거린다의 주어가 없음

*거리가 너무 멀다- 시적 거리 별도 스터디 요망

-한 줄 요약: 앞으로 ‘(시적) 긴장감’이라는 단어를 보면 ‘팽팽함’으로 이해하자. 
● 긴장감(팽팽함)은 언제 발생할까?
앞서 살펴봤듯이, 긴장감(팽팽함)은 겉뜻과 속뜻이 다를 때 나타나. 예를 들어, 어떤 시에서 ‘북어’가 명태를 건조한 것이 아니라 무기력한 현대인을 의미한다면? 겉뜻과 속뜻이 멀리 떨어져 있으니 시적 긴장감이 있다고 할 수 있어.


반어와 역설을 통해 긴장감을 높일 수도 있어. 도저히 상대방을 잊을 수 없으면서 ‘잊었다’라고 말한다든가, 사랑이 깊어서 이별이 되었다는 식의 표현은 겉으로 드러난 뜻과 속으로 의도한 뜻이 다르기 때문에 긴장감(팽팽함)이 있어.
-정서적거리란 시적화자(서정적 자아)와 시적대상과의 거리(긴장감).
즉 '긴장감이 높다'는 의미는 '거리감이 멀다'는 의미이며
'긴장감이 낮다'는 '거리감이 가깝다'라는 의미

-시적 거리감:

  시인이 시를 쓰고자 할 때 시를 쓰는 이유, 시를 통해 가장 말하고 싶었던 부분을 가리켜 시적 대상이라 한다. 그런데 시를 쓰고자 할 때 이 시적 대상이란 것을 어떻게 바라보아야 하는가 하는 점은 자못 중요하다. 이런 점에 연유한 것이 시적 대상과 심리적 거리에 관한 문제이다.

  한 사람의 죽음을 놓고 이야기 할 때, 죽은 자와 친밀한 관계에 있었던 사람은 대개 자신과 가까이 지내던 이의 죽음이라는 점에서 과민반응을 보이게 마련이다. 반대로 죽은 자와 별다른 친분이 없었던 사람은 이 죽음에 대해 무덤덤한 반응을 보이게 된다. 같은 사람의 죽음이라도 그 죽음을 바라보는 이의 심리적 거리에 따라 죽음의 의미는 달라지게 되는 것이다.


시적 대상을 너무 가까니 놓고 바라보게 되면 오히려 대상의 실체가 잘 드러나지 않는다. 이 시의 경우 절망이라는 현상에만 집착한 나머지 ‘절망’의 실체가 잘 드러나지 않았고 이로 인한 감정 과잉 현상은 읽는 이로 하여금 감정 억제의 결과를 낳게 했다.

  절망 앞에 선 화자의 심경이 독자에게 잘 전해지는 시, 바로 다음과 같은 경우가 아닐까.

 

시의 내용처럼 시인 기형도의 유년 시절은 가난과 배고픔의 기억으로 가득 차 있다. 이러한 비극의 체험은 절망 앞에 선 “위험한 가계”의 위태로운 역사를 시로 나타나게 한 원인이 되었다. 그런데 이 작품은 앞선 시의 절망적 어조와는 사뭇 달라서 담담하게 읽어 내려가는 내레이션에 가깝다. 이 시는 대략 세 가지로 구분지을 수 있는 언술 형태를 띠고 있다. 소개한 작품에 붙여 놓은 일련 번호는 그 구분에 의한 것이다. 

  ①의 경우 : 서사적 진술. 사건의 정황이나 국면을 서술하는 또는 설명하는 역할을 한다. 희곡의 ‘해설’이나 ‘지문’에 해당하는 부분이라고 볼 수 있다. 이러한 부분은 주관적 감정이 배제된 객관적 언술에 해당하는 것으로, 곧 3인칭 시점에 가깝다.

  ②의 경우 : 상상적(문학적) 진술. 사건을 이미지화 한다. 문학적 체험의 공간으로 능동적 글읽기를 유도하는 역할을 한다. 또한 ①과 ③의 건조한 문체 중간중간에 끼어 시적 긴장감을 유발한다. 상상적 시점 혹은 중립적 시점으로 볼 수 있다.

  ③의 경우 : 대화체. 현장감을 극대화시키는 역할을 한다. ①에 비해 주관적이고 1인칭에 가깝다. 

 1

  ②그해 늦봄 아버지는 유리병 속에서 알약이 쏟아지듯 힘없이 쓰러지셨다. ①여름 내내 그는 죽만 먹었다. ③올해엔 김장을 덜 해도 되겠구나. ①어머니는 남폿불 아래에서 수건을 쓰시면서 말했다. ③이젠 그 얘긴 그만하세요 어머니. ①쌓아둔 이불에 등을 기댄 채 큰누이가 소리질렀다. ③그런데 올해에는 무들마다 웬 바람이 이렇게 많이 들었을까. ①나는 공책을 덮고 어머니를 바라보았다. ③어머니. 잠바 하나 사주세요. 스펀지마다 숭숭 구멍이 났어요. 그래도 올겨울은 넘길 수 있을 게다. 봄이 오면 아버지도 나으실 거구. 風病에 좋다는 약은 다 써보았잖아요. ①마늘을 까던 작은누이가 눈을 비비며 중얼거렸지만 어머니는 잠자코 이마 위로 흘러내리는 수건을 가만히 고쳐 매셨다.


  2.

  ③아버지. 그건 우리 닭도 아닌데 왜 그렇게 정성껏 돌보세요. ①나는 사료를 한줌 집어던지면서 가지를 먹어 시퍼래진 입술로 투정을 부렸다. 농장의 목책을 훌쩍 뛰어넘으며 아버지는 말했다. ③네게 모이를 주기 위해서야. ②양계장 너머 뜬, 달걀 노른자처럼 노랗게 곪은 달이 아버지의 길게 늘어진 그림자를 이리저리 흔들 때마다 나는 아버지의 팔목에 매달려 휘휘 휘파람을 날렸다. ③내일은 펌프 가에 꽃 모종을 하자. 무슨 꽃을 보고 싶으냐. 꽃들은 금방 죽어요 아버지. 너도 올봄엔 벌써 열살이다. ①어머니가 양푼 가득 칼국수를 퍼담으시며 말했다. ③알아요 나도 이젠 병아리가 아니예요. 어머니, 그런데 웬 칼국수에 이렇게 많이 고춧가루를 치셨을까.


  3

  ①방죽에서 나는 한참을 기다렸다. ②가을 밤의 어둠속에서 큰누이는 냉이꽃처럼 가늘게 휘청거리며 걸어왔다. ③이번 달은 공장에서 야근 수당까지 받았어. 초록색 추리닝 윗도리를 하나 사고 싶은데. 요새 친구들이 많이 입고 출근해. 나는 오징어가 먹고 싶어. 그건 오래 씹을 수 있고 맛도 좋으니까. ①집으로 가는 길은 너무 멀었다. ②누이의 도시락 가방 속에서 스푼이 자꾸만 음악 소리를 냈다. ③추리닝이 문제겠니. 내년 봄엔 너도 야간 고등학교라도 가야 한다. 어머니. 콩나물에 물은 주셨어요? 콩나물보다 너희들이나 빨리 자라야지. ①엎드려서 공부하다가 코를 풀면 언제나 검댕이가 묻어나왔다. ③심지를 좀 잘라내. 타버린 심지는 그을음만 나니까. ①작은누이가 중얼거렸다. ③아버지 좀 보세요. 어떤 약도 듣지 않았잖아요. 아프시지 전에도 아무것도 해논 일이 없구. ①어머니가 누이의 뺨을 쳤다. 약값을 줄일 순 없다. 누이가 깎던 감자가 툭 떨어졌다. ③실패하시고 나서 아버지는 3년 동안 낚시질만 하셨어요. 그래도 아버지는 너희들을 건졌어. 이웃 농장에 가서 닭도 키우셨다. 땅도 한 뙈기 장만하셨댔었다. ①작은 누이가 마침내 울음을 터뜨렸다. ②죽은 맨드라미처럼 빨간 내복이 스웨터 밖으로 나와 있었다. 그러나 그때 아버지는 채소 씨앗 대신 알약을 뿌리고 계셨던 거예요.


  4

  ③지나간 날들을 생각해보면 무엇하겠느냐. 묵은 밭에서 작년에 캐다 만 감자 몇 알 줍는 격이지. 그것도 대개는 썩어 있단다. ①아버지는 삽질을 멈추고 채마밭 속에 발목을 묻은 채 짧은 담배를 태셨다. ③올해는 무얼 심으시겠어요? 뿌리가 질기고 열매를 먹을 수 있는 것이면 무엇이든지 심을 작정이다. ②하늘에는 벌써 튀밥 같은 별들이 떴다. ③어머니가 그만 씻으시래요. ②다음날 무엇을 보여주려고 나팔꽃들은 저렇게 오므라들어 잠을 잘까. ①아버지는 흙 속에서 천천히 걸어나오셨다. ②봐라. 나는 이렇게 쉽게 뽑혀지는구나. 그러나, 아버지. 더 좋은 땅에 당신을 옮겨 심으시려고.


  5

  ③선생님. 가정 방문은 가지 마세요. 저희 집은 너무 멀어요. 그래도 너는 반장인데. 집에는 아무도 없고요. 아버지 혼자, 낮에는요. ①방과 후 긴 방죽을 따라 걸어오면서 나는 몇 번이나 책가방 속의 월말고사 상장을 생각했다. 둑방에는 패랭이꽃이 무수히 피고 있었다. 모두 다 꽃씨들을 갖고 있다니. 작은 씨앗들이 어떻게 큰 꽃이 될까.나는 풀밭에 꽂혀서 잠을 잤다. ①그날 밤 늦게 작은누이가 돌아왔다. ③아버진 좀 어떠시니. ①누이의 몸에서 석유 냄새가 났다. ③글쎄, 자전거도 타지 않구 책가방을 든 채 백장을 돌리겠다는 말이냐? ②창문을 열자 어둠 속에서 바람에 불려 몇 그루 미루나무가 거대한 빵처럼 부풀어오르는 게 보였다. ①그리고 나는 그날, 상장을 접어 개천에 종이배로 띄운 일을 누구에게도 말하지 않았다.


  6

  ①그해 겨울은 눈이 많이 내렸다. ②아버지, 여전히 말씀도 못 하시고 굳은 혀. 어느 만큼 눈이 녹아야 흐르실는지. ①털실 뭉치를 감으며 어머니가 말했다. ③봄이 오면 아버지도 나으신다. 언제가 봄이에요. 우리가 모두 낫는 날이 봄이에요? ①그러나 썰매를 타다보면 빙판 밑으로는 푸른 물이 흐르는 게 보였다. 얼음장 위에서도 종이가 다 탈 때까지 네모반듯한 불들은 꺼지지 않았다. ②아주 추운 밤이면 나는 이불속에서 해바라기 씨앗처럼 동그랗게 잠을 잤다. 어머니 아주 큰 꽃을 보여드릴까요? 열매를 위해서 이파리 몇 개쯤은 스스로 부숴뜨리는 법을 배웠어요. 아버지의 꽃 모종을요. 보세요 어머니. 제일 긴 밤 뒤에 비로소 찾아오는 우리들의 환한 家系를. 봐요 용수철처럼 튀어오르는 저 冬至의 불빛 불빛 불빛.

                                                    -기형도, 「위험한 가계․1969」


  


 


  이처럼 서로 다른 성격의 언술 형태가 어느 정도 일정하게 배열되어 있는 이유는 시적 대상과의 거리감을 적절한 상태로 유지하기 위함이다. 즉, 이 작품의 대상이 되는 작자의 유년 체험은 작자에게 있어서는 직접적인 체험이 되므로 자칫 너무 가까운 거리 설정이 될 수 있고, 그 체험의 시간적 거리감은 오히려 지나치게 먼 거리 설정이 될 수도 있는 바, 이러한 극단적 거리감을 최소화하기 위해 서사적 진술, 상상적 진술, 대화체를 섞어 놓은 것이다. 따라서 ①의 경우는 자기 체험의 가까운 거리를 해소하기 위해, ③의 경우는 시간적 원근감을 해소하기 위해 의도적으로 배치된 장치들이다. 이러한 구조 속에서 ②의 경우처럼 시적 진술이 요소에 배치되어 저울추의 역할을 하면서 작품 전반의 무게 중심을 이루고 있는 것이다.


*등단 요령- 계획적이어야 한다. 주관사의 취향 분석 필수, 신춘 계간지에 도전,각 쟝르의 시 제출, 스토리 필수

**상강 霜降**

 **상강霜降**

 

나이 들어 혼자 사는 남자처럼

생각이 아궁이 같은 저녁

누구를 제대로 사랑한단 말도 못했는데

어느새 가을이 기울어서

나는 자꾸 섶이 죽을 수 밖에 없는 것이다

 

-섶; 벼 밑둥

 

**고래 아버지**

 

아버지는 고래를 본 적이 없었다

그래도 옛날에는

고래등 같은 기와집에 살았다고 했다

나도 고래를 한 번도 본 적이 없었다

초등학교 지절 자연교과서 에서나 보다가

키브이가 나오며 겨우 보았는데

크고 힘차고 신비스러웠지만

내가 생각했던 것 보다는 훨씬 작았다

아버지도 실제 고래를 보았더라면

옛집 자랑을 그렇게 않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아버지가 걸핏하면

고래등 간은 집을 들먹였던 것은

우리나라 모든 아버지들이 그랬던 것처럼

식민지를 머슴처럼 살고 나서

집은 전쟁으로 불타버리고

여름 제사에 이밥을 먹으면

배탈이 날 정도로 가난했지만

우리가 그래도 밥술이나 먹었다거나

본래 이렇게 살 가문이 아니라는 거였다

멀이 있거나 보지 못한 것은 대부분 아름다다

아버지도 고래가 되었다

 

**즐거운 편지/황동규**

 

내 그대를 생각함은

항상 그대가 앉아 있는 배경(背景)에서

해가 지고 바람이 부는 일처럼 사소한 일일 것이나

언젠가 그대가 한없이 괴로움 속을 헤메일 때에

오랫동안 전해오던 그 사소함으로

그대를 불러보리라.

 

진실로 진실로

내가 그대를 사랑하는 까닭은

내 나의 사랑을 한없이 잇닿은

그 기다림으로 바꾸어버린 데 있었다.

밤이 들면서 골짜기엔 눈이 퍼붓기 시작했다.

내 사랑도 어디쯤에선 반드시 그칠 것을 믿는다.

다만 그때

내 기다림의 자세를 생각하는 것 뿐이다.

그 동안에

눈이 그치고 꽃이 피어나고 낙엽이 떨어지고

또 눈이 퍼붓고 할 것을 믿는다.

 

**아내와 부적**

 

아내의 옷가게가 문을 닫던 날

매장이 텅 비자

더욱 환해진 불빛 아래

구석구석 숨어 있던 부적들이

민망한 듯 뻘쭘하게 웃는다

이 손바닥만한 도시에 대형마트가 문을 열고

손님을 진공청소기처럼 빨아가는 데에는

혼자 힘으로는 역부족이어서

그렇다고 그냥 당할 수만은 없어

발길이 뚝 끊긴 가게에서 아내는

그들과 힘을 합쳐 싸웠던 것이다

 

우리야 간판을 내리면 그만이지만

이제 저들은 누가 거두느냐는 걱정 끝에

사람들에게 희망이 있는 한

밥은 굶지 않는다고 저들은

멈칫거리는 아내의 등을 민다

 

**먼 배후**

 

좋아하는 계집아이네 집 편지통에

크리스마스 카드를 던져놓고

멀리서 지켜보던 때가 있었다

 

나는 카드를 따라 그애의 안으로 들어가고 싶었다

 

그러나 해가 져도 그애는 나타나지 않았고

오랫동안 밖에서 서성거리던 나는

언젠가 그애가 멀리 시집갔다는 소식을 들었다

여자애들은 그렇게 시집을 갔다

 

아주 많은 세월이 지났고

또 나는 그의 무엇하나 건드리지 않았지만

사철나무 울타이에 몸을 감추고

누군가를 기다리던 한 소년을 생각하면

지금도 마음이 아리다

 

-스토리가 있는 시가 좋은 시. 스토리 시작/좋아하는~ 스토리 끝/시집갔다는 소식을 들었다

 

**참 쓸쓸한 봄날**

 

토요일 오후 진전사 갔습니다

오랜 폐사지에 절을 지었더니

신라에서 부처님이 오셨대서 일부러 갔습니다

늘어지게 키브이를 보거나

먼 집안 아이 청첩도 마다하고

아카시아꽃 분수같은 둔전리

깊어가는 물소리 따라

적광보전에 참배하고

적잖이 시주도 하였습니다

그리고 대문 터 막국숫집 모두부에

소주 한잔 하고 오다가

음주단속에 결렸습니다

 

참 쓸쓸한 봄날입니다

 

**마음에게**

 

마음이여

쓸데없이 돌아다니다가

피곤하니까 동아온 저를 데리고

나는 자전거처럼 가을에 기대섰다

 

구름을 보면 둥둥 떠다니기도 하고

강가에 가면 흘러가고 싶은 마음이여

대로 세상으로부터 모욕을 당하고

내가 어떡하면 좋겠냐고 하면

늘 알아서 하라던 마음이여

 

저는 늘 내가 아니고 싶어했으나

내가 아닌 저도 없었던 마음이여

그래도 아직 사용하지 않은 슬픔이 있고

저 산천에는 기다리는 눈비가 있는데

 

이까짓 지나가는 가을 하나에

저나 나나 속을 다 내보이지는 못하고

오늘 하루쯤 같이 지내면 어떠냐니까

그렇게 하자며

내 어깨에 제 몸을 기대는 마음이여

 

**그대, 여전히 봄이오-나무에게/최미경 쌤**

 

봄이 오니 알았소

그대

아직 그 자리더군요

거기

그대로더군요

잎도 가지도 하나도

늙지 않았소

입술도 손목도 하나도 변하지 않았소

여전히 그대 내겐 봄이오

단 한 순간도

아닌 적이 없었소

그러나 그대

부디 꽃피려 애쓰지 마오

그저그대가 내 봄이오

내 남은 봄이오

 

<20170406 장석남 시>

1965년 인천 출생, 1987 경향신문 등단

강의 관련 시집; 새떼들에게로의 망명, 지금은 간신히 아무도 그립지 않을 무렵, 왼쪽 가슴 아래께에 온 통증, 젖은 눈/가장 재미 

 

**뻐꾸기 소리**

 

깜빡

낮잠 깨어나

창호지에 우러나는 저 봉숭아 꽃빛같이

아무 생각 없이

창호지에 우러나는 저 꽃빛만 같이

 

사랑도 꼭 그만큼쯤에서

그 빛깔만 같이

 

**송학동 1**

 

계단만으로도 한동네가 되다니

 

무릎만 남은 삶의

계단 끝마다 베고니아의 붉은 끌이 위태롭게

뱃고동들을 받아먹고 있다

 

저 아래는 어디일까 뱃고동이 올라오는 그 곳은

어느 환혼이 섭정하는 저녁의 나라일까

 

무엇인가 막 쳐들어와서

꽉차서

사는 것이 쓸쓸함의 만조를 이룰 때

무엇인가 빠져나갈 것 많을 듯

가파름만으로도 한생애가 된다는 것에 대해

돌멩이처럼 생각에 잠긴다

 

**번개 시재/계단**

가파름만으로 말하는 너

희망이 오르는

추억이 내리는

오르고 있나

내리고 있나

시방

 

 **봄밤-둘/장석남**
봄밤엔 바람나네

內外없이 바람나네

방들을 헐고 바람들 들이네

봄밤에 나는 바람난 숨결들에 반하네

늙은 살구나무의 밤샘 신음에

개나리 울타리가 노랗게 앓네

봄밤에 나는 바람난 國境이네

내외없이, 憂國忠情없이

바람난 국경이네

그러나 봄밤 밖으로 나가지 못하고 앓고 있네

 

**새의 자취**

 

나는 오늘

봄나무들 아래를 지나왔다

푸르고 생기에 찬 햇잎사귀들 사이로

바람은 천년의 기억 속을 들락거리고

나는 그곳을 지나

집으로 왔다

 

저낵 내내 나는

창문 가를 서성거리고 있다

책꽂이 앞을 서성거리고 있다

먼 곳에

누군가를 떼어놓고 온 양 나는

그런 일도 없으면서

서성거리고 있다

 

아이 우응 소리가 들린다

갑자기 심장이 오그라지면서

나는 왠지

내가 지나온 그 나무들 위에

바람만이, 햇살들만이 그 새살 같은 잎들을

흔들고 있었다고는 생각할 수가 었다

 

그 속에

새가 한 마리 오랫동안

오랫동안

내가 그곳을 지나치는 동안에도

앉아 있었을 것이라는 생각이

울음 없이

울음 없이 젖은 눈을 굴리면서

앉아 있었을 것이라는 생각이

그런 생각이 명치를 적셔온다

 

새는 자기가 깃들였던 자리를 찾았던 것일지

새는

새는

그 찬란한 이파리들을

자기가 그리던 새끼들의

온갖 눈빛들이라고 생각하며

앉아 있었던 것일지

 

바람 한번 지나면

온 찬란함이

아이 울음으로 뒤바뀌는

폭풍 같은 고요를 삼키는 나무

밑을 지나온 것이다

 

미망未忘으로 길어지는

나무 그림자를

푸드덕 빠져나가는 새

 

새는 날아갔으나

여전히 그 자리에 있는 새

 

미명이 가깝도록 나는 그 언저리를

작은 숨결들과 함께

서성이고 있다

 

**未明에**

 

겨울나무가 우두커니 서 있었다

지붕들은 조용히 헝클어져 있었다

바람들이 디딜 것이 마땅찮아 맨발일 때

헐벗은 풀들이 몰려와 맨살로 흔들려주고 있었다

발등에 얼굴을 비춰보면서

겨울나무가 우두커니 서 있었다

죽었는지 살었는지 우두커니는 서 있어도

가출한 하늘에는 자리를 비켜주며 서 있었다

 

**어지러운 발자취**

 

이제 저 어지러운 발자취들을 거두자

거기에 가는 시선을 거두고

물가에 서 있던 마음도 거드자

나를 버린 날들 저 어지러운 발자취들을 거두어

멀리 바람의 길목에 이르자 처음부터

바람이 내 길이었으니

내 심장이 뛰는 것 또한 바람의 한

사소한 일이었으니

 

**숨의 사랑**

 

어제는 창경궁 후원에 많은 키 큰 나무들이

꽃피는 걸 보았습니다

담장들은 지붕을 얹은 채 키를 낮추고

내 숨이 분홍빛으로

그 큰 나무들에게 올라가는 것을 보았습니다

바람이 불거나 바람 속에 초생달이 걸린 때면

그 숨의 사랑은

그곳으로도 가리라

 

숨결들

다시 동아와

꽃핀 창경궁 후원이 몸에 가득했습니다

 

**옛 노트에서**

 

그때 내품에는

얼마나 많은 빛들이 있었던가

바람이 풀밭을 스치면

풀밭의 그 수런댐으로 나는

이 세계 ㅏ깥까지

얼마나 길게 투명한 개울을

만들 수 있었던가

물 위에 뜨던 그 많은 빛들 좇아서

긴 시간을 견디어 여기까지 내려와

지금은 앵두가 익을 무렵

그리고 간신히 아무도 그립지 않을 무렵

그때는 내 품에 또한

얼마나 많은 그리움의 모서리들이

옹색하게 살았던가

지금은 앵두가 익을 무렵

그래 그 옆에서 숨죽일 무렵

 

**그믐**

 

나를 만나면 자주

젖은 눈이 되곤 하던

네 새벽녘 댓돌 앞에

밤새 마당을 굴리고 있는

가랑잎 소리로서

머물러보다가

발갛게 사라지는

그믐달

처럼

 

**근황**

 

12월 가고 신년이 되니 새로 이사온 우리집뜰 앞에

알 수 없는 꽃들이 피었습니다

벌써 진 몇몇 꽃 끝에서는

풋열매가 열렸고

그 속에서 새소리 들립니다

그 나무의 꿈길이 이승으로 오고 있습니다

깨끗한 바람이 묵은 거미줄을 흔들고 새 상표처럼 뜬

낮달은 깊은 시선으로 빈 나무가지 사이를 흐릅니다

나 그 사이에 서 있습니다

내 눈에 신 열매가 익고 있습니다

 

**왼쪽 가슴 아래께에 온 통증**

 

죽은 꽃나무를 뽑아낸 일뿐인데

그리고 꽃나무가 있던 자리를 바라본 일뿐인데

목이 말라 사이다를 한 컵 마시고는

다시 그 자리를 바라본 일 뿐인데

잘뭇 꾼 꿈이 있었나?

 

인제 꽃이름도 잘 생각나지 않는 殘像들

지나가는 바람이 잠시

손금을 펴보던 모습이었을 뿐인데

 

인제는 다시 안 올 길이었긴 하여도

그런 길이었긴 하여도

이런 날은 아픔이 낫는 것도 섭섭하겠네

 

**水墨정원90-번짐**

 

번짐.

목련꽃은 번져 사라지고

여름이 되고

너는 내게로

번져 어느덧 내가 되고

나는 다시 네게로 번진다

번짐.

번져야 살지

꽃은 번져 열매가 되고

여름은 번져 가을이 된다

번짐.

음악은 번져 그림이 되고

삶은 번져 죽음이 된다

죽음은 그러므로 번져서

이 삶을 다 환히 밝힌다

또 한번-저녁은 번져 밤이 된다

번짐

번져야 사랑이지

산기슭의 우두막 한 채 번져서

봄 나비 한 마리 날아온다

 

20170413 강의 주제:사랑에 빠진 시인의 시,박목월, 유치환/연인 이영도, 랭보, 퍼시 비시 셀리

 

**임/박목월** 

 

내사 애달픈 꿈꾸는 사람

내사 어리석은 꿈꾸는 사람

 

방마다 홀로

눈물로 가는 바위가 있기로

 

기인 한밤을

눈물로 가는 바위가 있기로

 

어느 날에사

어둡고 아득한 바위에

절로 임과 하늘이 비치리요

 

-내재율. 김성태 작곡/이별

 

**박꽃/박목월**

 

흰 옷자락 아슴아슴

사라지는 저녁답

썩은 초가지붕에

하옇게 일어서

가난한 살림살이

사근사근 속삭이며

박꽃 아가씨야

박꽃 아가씨야

짧은 저녁답을

말없이 울자

 

-묘사시

-子 박동규 서울대 교수, 시인, 수필가 "어머니 눈사람"

-아슴아슴 ;정신이 흐릿하고 몽롱한 상태를 나타내는 말

-저녁답 : '저녁때'의 경상도 방언

 

**길처럼/박목월**

 

머언 산 굽이굽이 돌아갔기로

산 굽이마다 굽이마다

절로 슬픔은 일어....

 

보일 듯 말 듯한 산길

 

산울림 멀리 울려 나가다

산울림 홀로 돌아 나가다

....어쩐지 어쩐지 울음이 돌고

 

생각처럼 그리움처럼...

 

길은 실낱 같다

 

**번개 시제/그 사람**

 

없어요

없어요

그런 사람

잊혀지지 않는 사람

허공을 가르는 사람

없다 없다 하면서도

가슴에 꽁꽁 포장해 놓은 사람

그 사람

 

<유치환으로부터 이영도여사에게>

 

사랑하는 정향!

바람을 그칠 생각없이 나의 밖에서 울고만 있습니다

나의 방 창문들을 와서 흔들곤합니다

어쩌면 어두운 저 나무가, 바람이, 나의 마음 같기도 하고

유리창을 와서 흔드는 이가 졍향, 당신인가도 싶습니다

당신으 마음이리다

주께 애통히 간구하는 당신의 마음이

저렇게 정작 내게까지 와서는 들리는 것입니다

 

나의 귀한 졍향, 안타까운 정향!

당신이 어찌하여 이 세상에 있습니까?

나와 같은 세상에 있게 됩니까?

울지 않는 하느님의 미련이십니까?

정향! 고독하게도 입을 여민 정향!

종시 들리지 않습니까!

마음으로 마음으로 우시면서

귀로 들으시지 않으려고 눈 감고 계십니까?

내가 미련합니까?

미련하다 우십니까:

지척 같으면서도 만리길입니까?

끝내 만리길의 세상입니까?

아예 당신과는 생각마저도 잡을 길 없는 세상으로

 

**무제/이영도**

 

오면 민망하고 아니 오면 서글프고

행여나 그 음성 귀 기우려 기다리며

때로는 종일을 두고 바라기도 하니라

 

정작 마주 앉으면 말은 도로 없어지고

서로 야윈 가슴 먼 창만 바라다가

그대로 일어서 가면 하염없이 보내니라

 

**탑/이영도**

 

너는 저만치 가고 나는 여기 섰는데

손 반 번 흔들지 못 한 패

돌아선 하늘과 땅

애모愛慕는 사리舍利로 맺혀

푸른 돌로 굳어라

 

-유치환 인생 졸업시 창작 시

 

**그리움/유치환**

 

파도야 어쩌란 말이냐

파도야 어쩌란 말이냐

임은 뭍 같이 가딱 않는데

파도야 어쩌란 말이냐

날 어쩌란 말이냐

 

-기ㅅ빨 나부끼는 그리움/교보문고/시 그림집

 

**동백꽃/유치환**

 

그대 위하여

목 놓아 울던 청춘이 이 꽃 되어

천년 푸른 하늘 아래

소리없이 피었나니

 

그날

한 장 종이로 꾸겨진 나의 젊은 죽음은

젊음으로 말미암은 마땅히 받을 벌이었기네

 

원통함이 설령 하늘만 하기로

그대 위하여선

다시도 다시도 아까울리 없는

아아 나의 청춘의 이 피꽃

 

**밤바다/유치환**

 

너의 편지에

창밖의 저 바람소리마저

함께 봉하여 보낸다던 그 바람소리

잠결에도 외로와 깨어 이 한밤을 듣는다

 

알 수 없는 먼 먼데서 한사코

적막한 부르짖음 하고 달려와

또 어디론지 말리나 ?????날 이끌고 가는

고독한 저 소리!

 

너 또한 잠 못 이루는대로 아득히 생각

이 한밤을 꼬박이 뜨고 밝히는가

 

그리움을 모르는 이에겐

저 하늘의 푸름인들 무슨 뜻이리

 

진정 밤 외로운 바람은

너와 나만을 위하여 있는 것

 

아아 또 적막한 부르짖음하고 저렇게

내게로 달려오는 정녕 네 소리!

 

**별/유치환**

 

가슴을 저미는 쓰라림에

너도 말 없고 나도 말 없고

마지막 이별을 견디던 그날 밤

옆 개울물에 무심히 빛나던 별 하나!

 

그 별 하나이

젊음도 가고 정열도 다 간 이제

뜻않이도 또렷이

또렷이 살아나

 

세월은 흘러가도

머리칼은 희어 가도

말끄러미 말끄러미

무덤가까지 따라 올 그 별 하나!

 

**낮달/유치환**

 

쉬이 잊으리라

그러나 잊히지 않으리라

가다 오다 돌아보는 어깨 너머로

그날밤 보다 남은 연정의 조각

지워도 지지 않는 마음의 어룽

 

-어룽댄다

 

**거리에 비가 내리듯/폴 베를렌느**

 

거리에 비가 내리듯

내 마음에 눈물 흐른다

 

가슴 속에 스며드는

이 셀레임은 무엇일까

 

대지에도 지붕에도 내리는

빗소리의 아름다움이여

답답한 마음에

아! 비 내리는 노래소리여

 

울적한 마음을 따라

까닭 모를 눈물이 내린다

웬일인가 원한도 없는데

이 슬픔은 어디에서 오는가

 

이건 진정 까닭 모르는

가장 괴로운 고통

사랑도 없고 증오도 없는데

내 마음 한없이 괴로워라

 

**감각/아르투르 랭보**

 

여름날 푸른 석양녘에 나는 오솔길을 걸어가리라

밀 이삭에 찔리며 여린 풀 밟으며

꿈꾸듯 대딛은 발걸음

나는 산뜻한 풀잎들을 발에 느끼며

들바람이 나의 맨머리를 씻게 하리라

 

아무 말도 하지 않으리

아무 생각도 하지 않으리

그러나, 맘 속에 솟아오르는 끝없는 사랑

나는 가리라

멀리 더 멀리 마치 보헤미안처럼

자연속을 여인과 함께 가듯

행복에 젖어

 

**사랑의 철학/퍼시 비시 셀리**

 

샘물은 강물과 하나 되고

강물은 바다와 하나 되며

하늘의 바람은 끊임없이

다정한 정으로 뒤섞인다

세상에 홀로인 것 없으니

만물이 신의 섭리 따라

한 마음오로 만나 섞이기 마련이라

내가 왜 그대와 섞이지 못하랴

 

보라 산이 높은 하늘과 입맞추고

파도가 서로를 껴앉는다

누이꽃이 아우꽃을 경멸하면

누이꽃은 용서받지 못하리라

햇빛이 대지를 얼싸안고

달빛은 바다와 입맞춘다

허나 달디단 이 모든 것 무슨 소용있으랴

그대 내게 입맞추지 않으면

 

**가을 노래/폴 베를렌느**

 

가을 날 바이올린의 긴 흐느낌

끊기지 않는 우소로

내 마음

괴롭히네

 

종소리 울릴 때

창백하고

곧 숨막혀

옛날들 기억나

눈물 흘리네

 

그리고 휩쓸어 가는 모습

바람에

이끌려 가네

여기저기로

낙엽처럼

 

**20170420 40세 이전 졸업 요절 시인 시선**

 

**기도 祈禱/김민부**

 

새들은 제 몸무게만큼

나뭇가지를 흔들다 가고

여자는 제 영혼의 무게만큼

날 흔들다 가고 ....

가을이여

떫디 떫은 나의 피를

향그럽게 익히소서

저 항아리 속의 죽은 달빛과 포도를

발효시키듯이....

 

**서시/김민부**

 

나는 때때로 죽음과 조우한다

조락凋落한 가랑잎

여자의 손톱에 빛나는 햇살

찻집의 조롱속에 갇혀 있는 새의 눈망울

그 눈망울 속에 얽혀 있는 가느디가는 핏발

내가 살고 있는 아파트의 창문에 퍼덕이는 빨래...

죽음은 그렇게 내게로 온다

어떤 날은 숨 쉴 때마다 괴로웠다

죽음은 내 영혼에 때를 묻치고 간다

그래서 내 영혼은 늘 정결하지 않다

 

*조락凋落; 시들어 떨어짐

 

**강변/임홍재**

 

강가의 모래톱에 서면

작은 모래알의 꿈처럼

고향엘 가고 싶어라

그윽한 골짜기

바위에서 부서진 모래처럼

다시 어머니 품에 안기고 싶어라

진달래 산천

불알 친구는 없어도

맑은 물 새 소리가 남아

고향을 지키는 고향엘 ...

그리움의 냄새로

온통 그리워지는 마음을 안고

고향엘 가고 싶어라

 

**바느질/임홍재**

 

한평생 닳고 닳은

눈물의 화강석

맑은 귀를 틔워

어머니 바느질을 하신다

눈썹마다 푸른 신경神境이 돋아

아린 빛살에 찔리며

구멍 뚫린 자루를 깁는다

 

그슬린 등피燈皮너머

풀빛 연한 시간이

바늘귀에 뜨이고

죽은 은어 떼가 물구나무 서서

목숨의 한 끝을 말아올리는 밤

어머니 십팔문 반 옥색 고무신으로

눈물에 익은 달빛을 퍼 올리다

 

잠든 내 유년...

술래처럼 실을 물고

물구나무 선 방

가난한 식솔들의 목마름이

목화실에 뜨이고 뜨이고....

 

청보리 목잘려 간 황토 영마루

떠나간 할머니 상복 깁던 바늘로

어머니 바느질을 하신다

뼈마지마다 일어서는

몸살을 안고

채워도 채워도 채울 길 없는

허기虛飢를 깁는다

 

눈이 내리는데, 눈이 오는데

우리들의 마음속에 간직한 씨앗 하나

긴박한 눈물에 익어

맑은 하늘 아래 사랑으로 채우고

목화 다래가 될까!

속곳까지 찢긴 바람이여,

귀먹은 바늘귀여

 

불씨 다독여 인두를 묻고

반월성 성마르에 달이 오르듯

고운 선線 빋어내어

어머니 바느질을 하신다

 

바람은 청솔바람

대숲에 머물고

댓잎소리 우수수

한지漢紙에 스미는 밤

머리칼 올올마다 성에가 찬데

한평생 닳고 닳은 곧은 바늘로

바느질을 하신다

 

-85년 서울 신춘. 가난, 병앓이, 어머니를 소재

 

**사랑가 1/이경록**

 

그대 며칠 전 팔백 리 밖 아화 안말에서 띄워 보낸 사랑한다는 말 한마디, 오늘 아침 동남풍과 함께 닿아 내 몸의 숨구멍을 타고 흘러들어온다. 흘러들어와 그 말의 숨결이 내 심장의 피를 덥히며 온 몸을 흐른다. 팔백 리 밖 사람아, 그대 사랑한다는 말의 하늘 길로 또 내 말을 보낸다

오늘 밤 금강이나 추풍령 상공에서 내 말은 사랑한다, 사랑한다고 소리치며

떠돌매 가리라, 잠 못 들고 뒤척이는 이 나라의 사랑하는 마음들아, 한 마디씩 씨 받아 팔 괴고 잠들어라

 

-73년 매일 신춘, 중앙대 문창과졸, 정호승 친구

 

**빈혈/이경록**

 

밤이 되면 내 몸에서 피가 빠져 나갑니다.

피는 어디로 가나.

피는 공중으로 공중으로 흘러서 하늘로 갑니다.

하늘나라, 피가 가는 그 곳은 언제나 내 죽음의 집입니다.

 

피가 빠진 몸은 홀로 꿈을 꾸다가 차게 굳어서 흑연이 됩니다.

연鉛이 된 몸,

연의 꿈.

연이 눈물을 흘립니다.

내 피는 하늘에서 별이 됩니다

 

**사랑가3/이경록**

 

1

그대 나를 위해서 마침표라도 되어다오

아니, 쉼표가 되어다오

쉼표가 되어 내가 긋는 사랑의 궤적,

그 위에 인印으로 찍어다오

아침에도 찍고

저녁에도 찍어다오

내가 돌아와 뜯어보는 아화阿火 팔백 리 밖 사람아

찍어다오

숨쉴 때마다,

그대 내 육신의 구석구석까지 찍어다오

 

내 생의 작문, 도막도막 구절,

그대 찍는 쉼표 앞에 놓이게 되리라

여기서도 쉼표

저기 가도 쉼표

이 세상은 쉼표

시각마다 쉼표

 

2

나는 마침내 한 개의 마침표가 되겠다

그대여

모든 그대의 쉼표가 쉼표로써 끝나고

어미 <.......겠다>와 함께 종결로 올 때

나는 그 끝에 쓰러져 마침표가 되겠다

끝없는 죽음

그 백면白面을 나 혼자 만나겠다,

그대여

 

**소곡小曲/임홍재**

 

램프가 타고 있네

밤의 밑바닥에서

별하나 지켜

천 년을 살며

생모래의 귀를 틔운

바람 속의 열매가

가을의 중심에

내려앉고 있네

죽는 길이 험할수록

죽음이 값진

청옥빛 열매가

바람길을 열고 있네

 

**황토黃土맥질-유년의 눈물/임홍재**

 

누런 시래기 몇 두름 엮어 달고

어머니가 황토 맥질을 한 날은

하염없이 눈물 나더라

 

흉년이 들어 흉년이 들어

굶기를 식은죽 먹듯 하던 누이야

 

삼백 날 머슴살아

등살터진 지게에 한 바람만 지고 오는

아버지를 부르지 말자.

 

찔레ㅣ꽃 덤불처럼 어우러진 매운 빋을

기리고 오는 아버지 마음이야

오죽하리야 오죽하리야

 

황토맥질을 하고

시래기 몇 두름뿐으로 겨울을 맞는

우리를 차마 하늘이 저버리랴

 

바람벽 구수한 내음 넉넉하고

달빛도 흐들히 내려

굴뚝새 깃을 접는데ㅣ

아궁이에 맹물이 쫄아붙어도

청솔이나 그득 시피자

 

어머니가 홍토 맥질을 한 날은

굴어도 굶어도 배만 부르고

강물처럼 가슴이 뿌듯해

바람벽 껴안고 밤내 울었다

 

**목마와 숙녀/박인환**

 

한 잔의 술을 마시고

우리는 버지니아 울프의 생애와

목마를 타고 떠난 속녀의 옷자락을 이야기한다

목마는 주인을 버리고 거저 방울 소리만 울리며

가을 속으로 떠났다 술병에서 별이 떨어진다

상심한 별은 내 가슴에 가벼웁게 부서진다

그러한 잠시 내가 알던 소녀는

정원의 초목 옆에서 자라고

문학이 죽고 인생이 죽고

사랑의 진리마저 애증의 그림자를 버릴 때

목마를 탄 사랑의 사람은 보이지 않는다

세월은 가고 오는 것 한때는 고립을 피하여 시들어가고

이제 우리는 작별하여야 한다

술병이 바람에 쓰러지는 소리를 들으며

늙은 여류작가의 눈을 바라다보아야 한다

.....등대에.....

불이 보이지 않아도

거저 간직한 페시미즘의 미래를 위하여

우리는 처량한 목마 소리를 기억하여야 한다

모든 것이 떠나든 죽든

거저 가슴에 남은 희미한 의식을 붙잡고

우리는 버지니아 울프의 서러운 이야기를 들어야 한다

두 개의 바위 틈을 지나 청춘을 찾은 뱀과 같이

눈을 뜨고 한 잔의 술을 마셔야 한다

인생은 외롭지도 않고

거저 잡지의 표지처럼 통속하거늘

한탄할 그 무엇이 무서워서 우리는 떠나는 것일까

목마는 하늘에 있고

방울 소리는 귓전에 철렁거리는데

가을 바람소리는 재 쓰러진 술병 속에서 목 메어 우는데

 

**기다리는 마음/김민부**

 

일출봉에 해 뜨거든 날 불러주오

월출봉에 달 뜨거든 날 불러주오

기다려도 기다려도 님 오지 않고

빨래 소리 물레 소리에 눈물 흘렸네

 

봉덕사에 종 울리면 날 불러주오

저 바다에 바람 불면 날 불러주오

기다려도 기다려도 님 오지 않고

파도 소리 물새 소리에 눈물 흘렸네

 

-17세에 한국신춘 등단, 방송계에 근무

-장일남 작사

 

**석류/김민부**

 

불 타오르는 정열에

앵도라진 입술로

남 몰래 숨겨운

말 못할 그리움아

이제야 가슴 뻐개고

나를 보라 하더라

나를 보라 하더라

 

-15세에 동아신춘,

 

**균열 龜裂/김민부**

 

달이 오르면 배가 곯아

배 곯은 바위는 말이 없어

 

할 일 없이 꽃 같은 거

처녀 같은 거나

 

남 몰래 제 어깨에다

새기고들 있었다

 

징역 사는 사람들의

눈 먼 사투리는

 

밤의 소용돌이 속에

파묻힌 푸른 달빛

 

없는 것, 그 어둠 밑에서

흘러가는 물 소리

 

바람 불어....., 아무렇게나 그려진

그것의 의미는

 

저승인가 깊고 깊은

바위 속의 울음인가

 

더구나 내 죽은 후에

이 세상에 남겨질 말씀쯤인가

 

<20170427 노래가 된 시. 편한 일상 시어>

 

**푸르른 날/서정주**

 

눈이 부시게 푸르른 날은

그리운 사람을 그리워하자

 

저기 저기 저 가을 꽃 자리

초록이 지쳐 단풍 드는데

 

눈이 내리면 어이 하리야

봄이 또 오면 어이 하리야

 

내가 죽고서 네가 산다면!

네가 죽고서 내가 산다면!

 

눈이 부시게 푸르른 날은

그리운 사람을 그리워하자

 

**봄눈 오는 골목에서/서정주**

 

봄눈 오는 골목에서 생각해 보니

사랑에 에누릴랑 못하겠습네

대밭 속에 둘이 숨어 싸각이거나

솔밭 속에 둘이 숨어 서성일망정

그 에누린 죽어도 못하겠습네!

 

봄눈 오는 골목에서 생각해 보니

내 사랑에 먹칠일랑 못하겠습네

다락 같은 내 색시를 걸어 놓고서

산에도 바다에도 뜬구름에도

먹칠하고 말잔 말은 못하겠습네!

 

**자화상/서정주**

 

애비는 종이었다

밤이 깊어도 오지 않았다

파뿌리 같은 늙은 할머니와 대추꽃이 한 주 서 있을 뿐이었다

어매는 달을 두고 풋살구가 꼭 하나만 먹고 싶다 하였으나....

흙으로 바람벽 한 호롱불 밑에 손톱이 까만 에미의 아들

갑오년이라든가 바다에 나가서는 돌아오지 않는다 하는

외할아버지의 숱 많은 머리털과

그 크다란 눈이 나는 닮았다 한다

 

스물세 해 동안 나를 키운 건 팔할이 바람이다

세상은 가도가도 부끄럽기만 하더라

어떤 이는 내 눈에서 죄인을 읽고 가고

어떤 이는 내 입에서 천치를 읽고 가나

나는 아무것도 뉘우치진 않을란다

 

찬란히 튀워 오는 어느 아침에도

이마 위에 얹힌 시의 이슬에는

몇 방울의 피가 언제나 섞여 있어

볕이거나 그늘이거나 혓바닥 늘어뜨린

병든 수캐마냥 헐떡거리며 나는 왔다

 

**부치지 않은 편지/정호승**

 

풀잎은 쓰러져도 하늘을 보고

꽃 피기는 쉬워도 아름답긴 어려워라

시대의 새벽길 홀로 걷다가

사랑과 죽음의 자유를 만나

언 강바람 속으로 무덤도 없이

세찬 눈보라 속으로 노래도 없이

꽃잎처럼 흘러흘러 그대 잘 가라

산을 입에 물고 나는

눈물의 작은 새여

뒤돌아보지 말고 그대 잘 가라

 

**새벽편지/정호승**

 

죽음보다 괴로운 것은

그리움이었다

 

사랑도 운명이라고

용기도 운명이라고

 

홀로 남아 았는

용기가 있어야 한다고

 

오늘도 내 가엾은 발자국 소리는

네 창가에 머물다 돌아가고

 

별들도 강물 위에

몸을 던졌다

 

**이별노래/정호승**

 

떠나는 그대

조금만 더 늦게 떠나준다면

그대 떠난 뒤에도 내 그대를

사랑하기에 아직 늦지 않으리

 

그대 떠나는 곳

내 먼저 떠나가서

나는 그대 뒷모습에 깔리는

노을이 되리니

 

옷깃을 여미고 어둠 속에서

사람의 집들이 어두워지면

내 그대 위해 노래하는 별이 되리니

 

떠나는 그대

조금만 더 늦게 떠나준다면

그대 떠난 뒤에요 내 그대를

사랑하기에 아직 늦지 않으리

 

**그대 있음에/김남조**

 

그대의 근ㄴ심이 있는 곳에

나를 불러 손잡게 하라

 

큰 기쁨과 조용한 갈망이

그대 있음에

내 맘에 자라거늘

 

오 그리움이여

그대 있음에 내가 있네

 

나를 불러 손잡게 해

그대의 사랑 문을 열 때

내가 있어 그 빛에 살게 해

 

사는 것의 외롭고 고단함

그대 있음에

사람의 뜻을 배우니

 

오 그리움이여

그대 있음에 내가 있네

나를 불러 그 빛에 살게 해

 

**시계/김남조**

 

그대의 나이 90이라고

시계가 말한다

알고 있어, 내가 대답한다

그대는 90살이 되었어

시계가 또 한 번 말한다

알고 있다니까,

내가 다시 대답한다

 

시계가 나에게 묻는다

그대의 소망은 무엇인가

내가 대답한다

내면에서 꽃피는 자아와

최선을 다하는 분발이라고

그러나 잠시 후

나의 대답을 수정한다

사랑과 재물과 오래 사는 일이라고

 

시계는 즐겁게 한판 웃었다

그럴 테지 그럴 테지

그대는 속물 중의 속물이니

그쯤이 정답일 테지...

시계는 쉬지 않고 저만치 가 있었다.

 

-2017년 정지용 문학상 수상작

 

-추천 도서/황현산 문학평론가/밤이 선생이다

*삶을 깊이 있고 윤택하게 만들어주는 요소들은 우리가 마음을쏟기만 한다면 우리 주변 어디에나 숨어있다. 매우 하찮은 것이라고 하더라도 내 삶을 구성하는 것 하나하나에 깊이를 뚫어 마음을 쌓지 않는다면 저 바깥에대한 지식도 쌓일자리가 없다, 정신이 부지런한 자에게는 어디에나 희망이 있다.

 

*우리가 사물을 바라보며 마음의 깊은곳에 그 기억을 간직할 때에만 사물도 그 깊은 내면을 열어보인다. 그래서 사물에 대한 감수성이란 자아의 내면에서 그 깊이를 끌어내는 능력이며, 그것으로 세상과 관계를 맺어 나와 세상을 함께 길들이려는 관대한 마음이다. 제 깊이를 지니고 세상을 바라볼 수 없는 인간은 ....

 

**가을편지/고은**

 

가을엔 편지를 하겠어요

누구라도 그대가 되어 받아주세요

낙엽이 쌓이는 날

모르는 여자가 아름다워요

 

가을엔 편지를 하겠어요

누구라도 그대가 되어 보내주세요

외로운 여자가 아름다워요

 

가을엔 편지를 하겠어요

모든 것을 헤매인 마음 보내드려요

낙엽이 사라진 날

헤매인 여자가 아름다워요

 

**세노야 세노야/고은**

 

세노야 세노야

산과 바다에

우리가 살고

산과 바다에

우리가 사네

세노야 세노야

기쁜 일이면

저 산에 주고

슬픈 일이면

내가 받네

세노야 세노야

기쁜 일이면

바다에 주고

슬픈 일이면

임에게 주네

세노야 세노야

산과 바다에

우리가 살고

산과 바다에 우리가 가네

 

-세노야 세노야; 한려수도 일대에서 들리는 멸치잡이 어부가의 앞소리

 

**문의 文義 마을에 가서/고은**

 

 

겨울 문의에 가서 보았다

거기까지 다다른 길이

몇 갈래 길과 가까스로 만나는 것을

죽음은 어느 죽음만큼

이 세상의 길이 아득하기를 바란다

마른 소리로 한 번씩 귀를 달고

길들은 저마다 추운 소백산맥 쪽으로 뻗어간다

그러나 굽이굽이 삶은 길을 에돌아

잠든 마을에 재를 날리고

문득 팔짱 끼고 서서 견디노라면

먼 산이 너무 가깝다

눈이여 죽음을 덮고 또 무엇을 덮겠느냐

 

겨울 문의에 가서 보았다

죽음이 삶을 꽉 껴안은 채

한 죽음을 무덤으로 받는 것을

끝까지 참은 뒤

죽음은 이 세상의 인기척을 듣고

저 만큼 가서 뒤를 돌아다본다

지난 여름의 부용꽃인 듯

어쩌면 가장 겸허한 정의인 듯

모든 것은 낝아서

이 세상에 눙이 내리고

아무리 돌을 던져도 죽음에 맞지 않는다

겨울 문의여 눈이 죽음을 덮은 다음

우리 모두 다 덮을 수 있겠느냐

 

-문의: 충북 청원군의 한 마을로 지금은 대청댐에 수몰

 

20170504 동시/동안 童眼으로 쓴 시

 

**시를 잡아라/신현득**

 

풀잎에 파란색이 있듯이

풀에는

풀로 된 시가 숨었다

 

도랑물에 졸졸졸

소리가 나듯

물 속에는

물로 된 시가 숨었다

 

꽃 속에는

향기로운 냄새가 있듯

꽃에는

끛으로 된 시가 숨었다

 

아이들아

너희 눈으로

풀잎의 시를 찾아내어라

 

너희 귀로

물 속의 시를 들어라

 

꽃 속의 시를 냄새 맡아라

 

아이들아

들판을 달리는 나비를 잡듯

시를 잡아라

 

**봄비/최만조**

 

봄비가 그림을 그린다

 

새싹은

파랗게 칠하고

 

진달래는

빨갛게

칠하고

 

개나리는

노랗게

칠하고

 

봄비가 그림을 그린다

 

**못/김숙분**

 

못은 망치에

얻어맞는다

 

고통을

이겨내며

벽에 조금씩 박힌다

 

그때 비로소

못은 힘을 갖는다

 

무거운 액자와

시계를

거뜬히 든다

 

**분꽃이 피면/이문구**

 

우물가에 핀

분꽃을 보고

꼬부랑 할매

저녁 채비 하시네

눈이 어두워

시계는 못 봐도

분꽃이 피면

해거름녘

쌀뜨물을 받아서

분꽃에 주시네

 

**들길에서/이문구**

 

발짝 소리 날아가는

바람받이 들길에

벼이삭 줍다 말고

들비둘기 달아나고

살얼음 낀 논배미에

마른 풀 우는 바람 소리

걸음걸이 다그쳐도

길이 줄지를 않네

 

**당옥이/한정동**

 

보일 듯이 보일 듯이

보이지 않는

당옥 당옥 당옥 소리

처량한 소리

떠나가면 가는 곳이

어디이드뇨?

내 어머님 가신 나라

해 돋는 나라

 

잡힐 듯이 잡힐 듯이

잡히지 않는

당옥 당옥 당옥 소리

구슬픈 소리

날아가면 가는 곳이

어디이드뇨?

내 어머님 가신 나라

달 돋는 나라

 

약한 듯이 강한 듯이

떠 연한 듯이

당옥 당옥 당옥 소리

적막한 소리

흘러가면 가는 곳이

어디이드뇨?

내 어머님 가신 나라

별 돋는 나라

 

나도 나도 소리 소리

너 같을 진대

달나라로 해나라로

또 별나라로

훨훨활활 떠다니며

꿈에만 보고

말 못 하던 어머님의

귀나 울릴걸

 

-1925.5월호 <어린이>에 게재

-발표시 제목은 두루미(당옥이)

 

**반달/윤극영**

 

푸른 하늘 은하수

하얀 쪽배엔

계수나무 한 나무

토끼 한 마리

돛대도 아니 달고

삿대도 없이

가기도 잘도 간다

서쪽 나라로

 

은하수를 건너서

구름 나라로

구름 나라 지나선

어디로 가나

멀리서 반짝반짝

비추이는 것

샛별 등대란다

길을 찾아라

 

**햇빛은 쨍쨍/김종원**

 

햇빛은 쨍쨍 모래알은 반짝

모래알로 떡해 놓고

조각돌로 소반 지어

누나 엄마 데려다가

맛있게도 냐음냐음

 

햇빛은 쨍쨍 모래알은 반짝

호미 들고 괭이 메고

뻗어 가는 메 캐어서

엄마 아빠 데려다가

맛있게도 냐음냐음

 

햇빛은 쨍쨍 모래알은 반짝

돌아가신 사촌 누이

눈동자가 그리워서

종일토록 강변에서

섧게도 울었어라

 

-동아일보 1926.7.8

-소반; 작은 상

-메; 땅속 죽기를 먹는 메꽃

 

**오빠생각/최순애**

 

뜸북 뜸북 뜸북새

논에서 울고

뻐꾹 뻐꾹 뻐꾹새

숲에서 울 제

우리 오빠 말 타고

서울 가시며

비단 구두 사 가지고

오신다더니

 

기럭 기럭 기러기

북에소 오고

귀뚤 귀뚤 귀뚜라미

슬피 울건만

서울 가신 오빠는

소식도 없고

나뭇잎만 우수수

떨어집니다

 

-1925.11월호 <어린이>

 

**가을/최순애**

 

답싸리나무

한 아름

고염나무

한 포기

뜰 앞에서

조으는

암칽 한 마리

우리 짐 마당은

고요합니다

 

서리 맞아

시들은 풋고추 하나

햇볕보고

다시 사는 호박순 아기

우리 집 가을은

고요합니다

 

-1927.1월호 <어린이>

 

**너를 부른다/이원수**

 

나뭇잎이 손짓하며

너를 부른다

운동장 느티나무

가지마다 푸른 잎새

바람에 한들한들

너를 부른다

 

꽃이파리 꽃잎마다

너를 부른다

울타리엔 찔레꽃

향기마저 피우며

바람에 하늘하늘

너를 부른다

 

순희야

순희야

 

양담배 양사탕

상자에 담아 들고

학교엔 안 나오고

행길로만 도느냐

우리도 목에이며

너를 부른다

 

-1946 발표작

 

**바람에게/이원수**

 

바람아

빈 산과 들을 지나

차가운 강물처럼 내려오느냐

우리들 벗은 종아리에

엷은 옷 속에

너희들은 달려드너냐

 

해마다 겨울이면

연을 날리며 너를 맞던

우리들

이제 더러는 거리에 장사치 되어

바람 속에 가냘픈 소리 외치고

더러는 짐안 걱정 노나 가져

공부 대신 근심에 빠져 있다

 

차가운 바람아

너마저 나무 끝에 우지 마라

우리를 휩싸고 소리소리 질러라

자라는 우리

너희들과 싸우며

슬픔 속에서도

봄맞이 준비해 가련다

 

-1948년 <소년>

 

**장맛비에게/김은영**

 

장맛비야 그만 와라

식구 많은 우리 집

방 안에 빨래가 가득 찼다

 

장마시야 그만 멈춰라

날마다 옷이 젖어

이제 갈아입을 옷 없다

 

장맛비야 제발 가라

날마다 찾아오는

너를 보기 귀찮다

 

장맛비야 좀 쉬어라

방학 때는 오지 마라

너도 방학 좀 해라

 

**달팽이와 놀아나다/서정춘**

 

어딜 가니

 

몰라

 

멀리 가니

 

모올라

 

가기는 가니

 

(!!)

 

-입 말의 시

 

**눈물만 나지/김혈탄**

 

누나야 봄 왔다

산으로 가자

개나리 진달래

꺾으러 가자

꺾어서 무덤에

꽂아나 보자

행여나 엄마가 보러 오시나

 

아서라 아서라

보고만 오지

꺾어서 꽂으면

엄마 온다네

꺾으면 꽃 죽고

나비나 울지

엄마야 온다던

눈물만 나지

 

-1931.4.25 매일신보

 

**빗방울의 발/이상교**

 

바닥으로 떨어지는

소리만 들어 보아도

나는 알지

 

빗방울 방울마다

우리 눈엔 보이지 않는

발 한 개씩을 달고 있다

또닥또닥, 똑똑똑, 탁탁탁

투덕투덕...

발소리

 

드디어 증거를 찾아냈다!

 

화분 궁둥이 궁둥이마다

흙이 잔뜩 튀었다

비 온 지난 밤 사이

발로 탕탕탕 물탕을 튀기며

돌아다녀서

 

맨발로 탕탕탕

돌아다녀서

 

<20170629 뱃머리 종강/백일장-시제/발, 틈 중 택1>

*시제/발**

 

집이 건축물만이 아니란걸

사람의 몸도 집이란걸

 

그 집의 뿌리는 발

하나도 아닌 둘

그것도 이동식 특별 스타일

 

사전 통지도 허락도 없이 늘상

끌려 다닙니다

그래도 투정 한번 없답니다

햇볕 구경도 힘듭답니다

수고의 땀방울도 제때 못닦아 냅니다

제일 가까운 친구는 꼬리한 냄새

박대도 않한답니다

 

분연의 임무만 뿌듯해한답니다

그가 없으면 집이 무너진다는

 

*사실적 서술 지양,어휘력 과용 자제  

 

**어차피 詩를/최미경 쌤**

 

치열했던 그대의 삶보다 치열하지 못하고

정정했던 그대의 사랑보다 애틋하지 못하다

그런데 그런데도 우리는 왜 시를 쓰는가

우리는 왜 시를 쓰고자 하는가

시를 쓰는 순간 우리는 문득 생산자가 된다

추상의 언어로 감정의 한 폭을 객관화시키고

무형의 언어로 그대 삶의 한 국면을 유형화시키는

그 순간 바로 그대가 시를 쓰는 순간이자 생산자가 되는 시간이다

지극히 시적인 그대 생의 통증들이 유형의 객관물로 몸을 바꾸는 찰나

그대는 생산자만이 갖는 어쩌면 주물주가 갖었을지도 모르는 감동을 온 몸으로 받아들이는 것

그대들이 시를 쓰는 이유를, 그리고 내가 시를 놓지 못하는 이유를 감히 정리해봅니다

 

**20170907-2학기 포은 초일-동시**

**지우개/박혜선**

 

지우개는

엉덩이가 아닐까?

                              *연갈이의 묘미및 한 숨 돌리기  굿

지워보면 안다

 

돌돌 말려

똥 나오는 곳

 

지우개는 온몸이 엉덩이다

 

**우리 엄마/박혜선**

 

어스름한 저녁

엄마보다 먼저

대문을 들어서는 흙냄새

 

엄마가 자고 일어난 자리에

소르르

흙이 떨어져 있다

 

**숨은 그림 찾기/신민규**

 

여기숨어있는것이무얼까요

어린이여러분잘찾아보세요

빨리빨리눈이핑핑돌기전에

한번본거또보고얼른찾아요

다찾으면오징어구워즐게요

오징어먹다남기면마빡한대

 

숨은 글씨: 기린, 이빨, 아기, 이리, 똥, 고구마

 

-계간지/동시마중 등단. 기발하고 특이한 소재

 

**z교시/신민규**

 

식물은 뿌리, 줄기, 잎, 꽃, 열매로 이뤄져 있다

뿌리는 식물체를 지지하고 물과 양분을 꾸벅한다

즐기는 꾸벅을 지탱하고 물과 꾸벅이 이동하는 꾸벅

잎은 꾸벅을 이용하여 꾸벅을 꾸벅

꾸벅은 꾸벅과 꾸벅이 꾸벅

꾸벅 꾸벅 꾸벅꾸벅 신민규 귀로 나가! 번쩍

 

-수업시간 조는 모습의 재밌는 표현. 미적 표현, 언어 유희, 말놀이

 

** 서 있는 물/김금래**

 

바다가 되기 싫은

물이 있지

 

가던 길 멈추고

고요히

 

생각에 잠기는

물이 있지

 

세상 물들이 모두

바다로 갈 때

 

나무속으로 들어가

팔 벌리고 서있는 물이 있지

 

잎으로 꽃으로 피는

물이 있지

 

**까만 밤/정유경**

 

빨강, 노랑, 파랑이

폭 껴안아

검정이 되었대

 

깜깜한

오늘 이 밤엔

 

무엇, 무엇, 무엇이

꼬옥

껴안고 있을까?

 

-"까만 밤" 동시집의 대표 시, 시집 명은 대표 시로 하던가, 대표 시어로 선정

 

**아름다운 위반/이대흠**

 

기사 양번/ 저짱으로 조깐 돌아서 갑시다

어칳게 그란다요 버스가 머 택신지 아요?

아따 늙은이가 물팍이 애링께 그라제

쓰잘데가 읎는 소리 하지 마시오

저번챀에 기사는 돌아가듬마는....

그 기사가 미쳤능갑소

 

노인네가 갈수록 눈이 오둡당께

저번챀에도

내가 모셔다드렸는디

 

-이율배반적 비틀기 제목이 좋다

-장면 전환, 차 안과 하차후로 연갈이 좋다

 

**좋아 세 마리/장영복**

 

시장에 팔려 나온 강아지를 보더니

누나가 한 마리 키우자고, 또 떼를 쓴다

마당 있는 집 생기면 키우자고, 엄마는 또 달랜다

누나는 얼른 돈 벌어서 마당 있는 집을

엄마하테 사주겠다고 큰소리쳤다

그러면 강아지를 두 마리나 사준다고 엄마도 큰소리쳤다

누나가 두 마리는 안 된다고 했다

세 마리는 되어야 한댔다

좋아 세 마리

엄마는 얼른 누나에게 손가락을 내밀었다

크흐흐흐흐흐

마녀처럼 웃었다

 

**깨알 같은 잘못/이창숙**

 

졸업이구나, 너희들과 헤어지게 되어 아쉽다

선생님, 그동안 우리들이 속 썩여서 미안해요

너희들이 속은 무슨 속을 썩여

그냥 말 좀 안 듣고

숙제 안 해 오고

귀청 떨어지게 떠들고

쌈박질 좀 하고

수업 시간에 뛰쳐나가고

음, 와장창 유리창 깨고

다른 선생님한테 걸려서 귀 잡혀 들어오고

꼬박꼬박 대들고

봄날 병아리들처럼 비실비실 졸고

욕 좀 하고

몰래 침 뱉고

무릅 까져서 피 질질 흘리고

음음, 높은 곳에서 떨어져 간 떨어지게 하고

입 아프게 설명해도 단체로 멍 때리고

저번에는 참, 다섯 분이 한꺼번에 땡땡이도 치셨지?

아무튼, 고런 일들밖에 없었는걸 뭐

그러네요

헤헤헤헤

히히히히

 

-예쁜 제목

 

**어이없는 놈/김개미**

 

102호에 다섯 살짜리 동생이 살고 있거든

오늘 아침 귀엽다고 말해 줬더니

자기는 귀엽지 않다는 거야

자기는 아주 멋지다는 거야

 

키가 많이 컸다고 말해 줬더니

자기는 많이 크지 않았다는 거야

자기는 원래부터 컸다는 거야

 

말이 많이 늘었다고 말해 줬더니

지금은 별로라는 거야

옛날엔 더 잘했다는 거야

 

102호에 다섯 살짜리 동생이 살고 있거든

자전거 가르쳐 줄까 물어봤더니

자기는 필요 없다는 거야

자기는 세발자전거를 나보다 더 잘  탄다는 거야

 

 

**자기 시를 직접 평가 받기 중요

**시 쓰기-1. 무엇을/주제, 왜 2.문장력/필사를 통해 향상 3. 기술/상징적 제목, 연갈이 등

 

*20170914-부모와 자녀가 꼭 함께 읽어야 할 시-도종환 시집 발췌 시*

**기도 1/나태주**

 

내가 외로운 사람이라면

나보다 더 위로운 사람을

생각하게 하여 주옵소서

 

내가 추운 사람이라면

나보다 더 추운 사람을

생각하게 하여 주옵소서

 

내가 가난한 사람이라면

나보다 더 가난한 사람을

생각하게 하여 주옵소서

 

더욱이나 내가 비천한 사람이라면

나보다 더 비천한 사람을

생각하게 하여 주옵소서

 

그리하여 때때로스스로 묻고

스스로 대답하게 하여 주옵소서

 

나는 지금 어디에 와 있는가?

나는 지금 어디로 향해 가고 있는가?

나는 지금 무엇을 보고 있는가?

나는 지금 무엇을 보고 있는가?

나는 지금 무엇을 꿈꾸고 있는가?

 

**내 아들아/최상호**

 

너 처음 세상 향해

눈 열려

분홍 커튼 사이로 하얀 바다 보았을 때

 

그때처럼 늘 뛰는 가슴 가져야 한다

 

까막눈보다 한 권의 책만 읽은 사람이

더 무서운 법

 

한 눈으로 보지 말고 두 준 겨누어 살아야 한다

 

깊은 산 속 키 큰 나무 곁에

혼자 서 있어도 하안한 자작나무같이

내 아들아

 

그늘에서 더욱 빛나는 얼굴이어야 한다

 

**땅/안도헌**

 

내게 땅이 있다면

거기에 나팔꽃을 심으리

때가 오면

아침부터 저녁까지 보랏빛 나팔소리가

내 귀를 즐겁게 하리

하늘 속으로 덩굴이 애쓰며 손은 내미는 것도

날마다 눈물 젖은 눈으로 바라보리

재게 땅이 있다면

내 아들에게는 한 평도 물려주지 않으리

다만 나팔꽃이 피었다 진 자리에

동그랗게 맺힌 꽃쓰를 모아

아직 터지지 않은 세계를 주리

 

 

**저녁에/김광섭**

 

저렇게 많은 중에서

별 하나가 나를 내려다본다

이렇게 많은 사람 중에서

그 별 하나를 쳐다본다

 

이렇게 정다운

너 하나 나 하나는

더이상 무엇이 되어

다시 만나랴

 

-1연 댓구가 좋다. 별하나와 나, 나(이렇게 많은 사람 중에서)와 그 별하나

-노래 제목: 어디서 무엇이 되어 다시 만나랴

 

**바닷가에서/오세영**

 

사는 길이 높고 가파르거든

바닷가

하얗게 부서지는 파도를 보아라

아래로 아래로 흐르는 물이

하나 되어 가득히 차오르는 수평선

스스로 자신을 낮추는 자가 얻는 평안이 거기 있다

 

사는 길이 어둡고 막막하거든

바닷가

아득히 지는 일몰을 보아라

어둠 속에서 어둠 속으로 고이는 빛이

마침내 밝히는 여명

스스로 자신을 포기하는 자가 얻는 충족이 거기 있다

 

사는 길이 슬프고 외롭거든

바닷가

가물가물 멀리 떠 있는 섬을 보아라

홀로 견디는 것은 순결한 것

멀리 있는 것은 아름다운 것

스스르 자신을 감내하는 자의 의지가 거기 있다

 

 

**하루/고은**

 

저물어 가는 것이 얼마나 다행이냐

하루가 저물어

떠나간 사람 생각하는 것이

얼마나 다행이냐

 

오 하잘것없는 이별이 구원일 줄이야

 

저녁 어둑발 자욱한데

떠나갔던 사람

이미 왔고

이제부터 신이 오리라

저벅저벅 발소리 없이

 

신이란 그 모습도 소리도 없어서 얼마나 다행이냐

 

**부모/김소월**

 

낙엽이 우수수 떨어질 때

겨울의 기나긴 밤

어머님하고 둘이 앉아

옛이야기 들어라

 

나는 어쩌면 생겨나와

이 이야기 듣는가?

묻지도 말아라, 내일 날에

내가 부모 되어서 알아보랴?

 

**어머니 3/김시천**

 

내가

그러진 않았을까

 

동구 밖

가슴살 다 열어 놓은

고목나무 한 그루

 

그 한가운데

저렇게 큰 구멍을

뚫어 놓고서

 

모른 척 돌아선 뒤

잊어버리진 않았을까

아예, 베어버리진 않았을까

 

**늙지 않는 절벽/강형철**

 

어떤 세월로도 어쩔 수 없는 나이가 있다

 

늘 "내새끼"를 끼고 다니거나

그 새끼들이 물에 빠지거나 차에 치일까

걱정만 몰고 다니는

 

그 새끼들이 오십이 넘고 육십이 되어도

도무지 마음에 차지 않아

눈썹 끝엔 이슬만 어릉대는

 

맛있는 음식물 앞이거나 좋은 풍광도

입 밖의 차림새, 눈 밖의 풍경

앞가슴에 손수건을 채워야 안심이 되는

 

어머니란 나이

 

눈물로만 천천히 잦아드는

마을 입구 정자나무 한 그루

그래도 끝내 청춘일 수 밖에 다른 도리가 없는

 

**이 세상의 밥상/황지우**

 

병원에서 한 고비를 넘기고 나오셨지만

어머님이 예전 같지않게 정신이 가물거리신다

감색 양복의 손님을 두고 아우 잡으로 온

안기부나 정보과 형사라고 고집하실 때

아궁이에 불지핀다고 안방에서 자꾸 성냥불을 켜시곤 할 때

내 이 슬픔을 어찌 말로 할 수 있으랴?

내가 잠시 들어가 고생 좀 했을 때나

아우가 밤낮없는 소배생활을 하고 있을 때

새벽 교회 찬마루에 엎드려 통곡하던

그 하나님을

이제 어머님은 더 이산 부르실 줄 모른다

당신의, 이 영혼의 정전에 대해서라면

내가 도망쳐 나온 신전의 호주를 부르며

다시 한 번 개종하고자 하였으나

할렐루야 기도원에 모시고 갔는데도 당신은

내내 멍한 얼굴로 사람을 복받치게 한다

일전엔 정신이 나셨는지 아내에게

당신의 금십자가 목거릴 물려주시며

이게 다 무슨 소용 있다냐, 하시는 거다

당신이 금을 내놓이시든 십자가를 물려주시든

어머님이 이쪽을 정리하고 있다고 느껴

맬겁시 당신께 버럭 화를 냈지만

초후에 십자가마저 내려놓으신 게 섬뜩했다

어머니, 이것 없이 정말 혼자서 건너가실 수 있겠어요?

 

전주예수병원에 다녀온 날, 당신 좋아하시는

생선 반찬으로 상을 올려도 잘 드시질 않는다

병든 노모와 앉은 겸상은 제사상 같다

내가 고기를 뜯어 당신 밥에 올려드리지만

당신은, "입맛 있을 때 너나 많이 들어라"하신다

 

목에 가시도 아닌 것이 걸려 거실로 나왔는데

TV에 베로나 월드컵 공이

살아서 펄펄 날뛰고 있다

 

<20170920-이상국 시 중심>

 

-강원도 출신, 풀/숲 냄새 소재, 소박하고도 깊은 맛의 시

-출처 시집, 창비/어느 농사꾼의 별에서, 뿔을 적시며, 달은 아직 그 달이다

 

**리필**

 

나는 나의 생을

아름다운 하루하루를

두루마리 휴지처럼 풀어쓰고 버린다

우주는 그걸 다시 리필해서 보내는데

그래서 해마다 봄은 새봄이고

늘 새것 같은 사랑을 하고

죽음마저 아직 첫물이니

나는 나의 생을 부지런히 풀어 쓸 수밖에 없는 것이다

 

**다음 노래**

-산목련에게

 

누구를 사랑하지 않고는 살 수 없지만

                                                      ->연갈이로 한 숨 쉬며 의미를 다지게 하는 기법

사랑한다고 다 가질 수는 없으니

 

비 오다 그친 아침

 

젖은 몸으로 만난 그대..........산목련

 

기다려다오

 

내 이허접한 생을 마치고

 

어느날 밤처럼 스며들어

 

그대와 한 이불을 덮는다면

 

어느 산이 알겠느냐........반어법적 강조가 기발. 그 산에 있으며 어느 산이 알겠느냐 라고 흥큼

 

**있는 힘을 다해**

 

해가 지는데

왜가리 한 마리

물속을 들여다보고 있다

 

저녁 자시러 나온 것 같은데

 

그 우아한 목을 길게 빼고

아주 오래 숨을 죽였다가

가끔 있는 힘을 다해

물속에 머릴 쳐박는 걸 보면

 

사는 게 다 쉬운 일이 아닌 모양이다

 

**마음에게**

 

마음이여.........................................마음/저 와 주체인 몸/나를 이원화

쓸데없이 돌아다니다가

피곤하니까 돌아온 저를 데리고

나는 자전거처럼 가을에 기대섰다.........표현이 좋다

 

구름을 보면 둥둥 떠다니기도 하고

강가에 가면 흘러가고 싶은 마음이여

때로 세상으로부터 모욕을 당하고

내가 어떡하면 좋겠냐고 하면

늘 알아서 하라던 마음이여

 

저는 늘 내가 아니고 싶어했으나

내가 아닌 적도 없었던 마음이여

그래도 아직 사용하지 않은 슬픔이 있고

저 산천에는 기다리는 눈비가 있는데

 

이까짓 지나가는 가을 하나에

저나 나나 속을 다 내보이지는 못하고

오늘 하루쯤 같이 지내면 어떠냐니까

그렇게 하자며

내 어깨에 제 몸을 기대는 마음이여

 

-내 마음이 내 마음이 아니다

 

**헤화역 4번 출구**

 

딸에는 침대에서 자고

나는 바닥에서 잔다

그애는 몸을 바꾸자고 하지만

내가 널 어떻게 낳았는데...

그냥 고향 여름 밤나무 그늘이라고 생각한다

 

나는 바닥이 편하다

그럴 때 나는 아직 대지의 소작이다

내 조상은 수백년이나 소를 길렀는데

그애는 재벌이 운영하는 대학에서

한국의 대 유럽 경제정책을 공부하거나

일하는 것보다는 부리는 걸 배운다

그애는 집으로 돌아오지 않을 것 같다

 

내가 우는 저를 업고

별하늘 아래서 불러준 노래나

내가 심은 아름드리 은행나무를 알겠는가

그래도 어떤 날은 서울에 눈이 온다고 문자메세지가 온다

그러면 그거 다 애비가 만들어 보낸 거니 그리 알라고 한다

모든 아버지는 촌스럽다

 

나는 그전에 서울 가면 인사동 여관에서 잤다

그러나 지금은 딸애의 원룸에 가 잔다

물론 거저는 아니다 자발적으로

아침에 숙박비 얼마를 낸다

나의 마지막 농사다

그리고 헤어지는 헤화역 4번 출구 앞에서

그애는 나를 안아준다 아빠 잘 가

 

**단풍**

 

나무는 할 말이 많은 것이다

 

그래서 잎잎이 제 마음을 담아내는 것이다

 

봄에 겨우 만났는데 벌써 헤어져야 한다니

 

슬픔으로 몸이 뜨거운 것이다

 

그래서 물감 같은 눈물 뚝뚝 흘리며

 

계곡에 몸을 던지는 것이다

 

** 뿔을 적시며**

 

안경쟁이 아들과 함께

아내가 부쳐주는 장떡을 먹으며 집을 지킨다

아버지는 나를 멀리 보냈는데

갈 데 못 갈 데 더듬고 다니다가

비 오는 날

나무 이파리만한 세상에서

달팽이처럼 뿔을 적신다

 

**그늘**

 

누가 기뻐서 시를 쓰랴

새들도 갈 데가 있어 가지를 떠나고

때로는 횡재처럼 눈이 내려도

사는 일은 대부분 상처이고 또 조잔하다

그걸 혼자 버려두면 가엾으니까

누가 뭐라든 그의 편이 되어주는 것이다

나의 시는 나의 그늘이다

 

**누가 기뻐서 시를 쓰랴*/정희성**

 

꽃이 마구 피었다 지니까

심란해서 어디 가 조용히

혼자 좀 있다 오고 싶어서

배낭 메고 나서는데 집 사람이

어디 가느냐고

생태학교에 간다고

생태는 무슨 생태?

늙은이는 어디 가지도 말고

그냥 들어앉아 있는게 생태라고

꽃이 마구 피었다 지니까

심란해서 그러는지도 모르고

봄이 영영 올 것 같지 않아..................늙은이의 마지막 일지도 모를 봄의 의미

그런다고는 못하고

 

*위시 1행의 싯구에서 따 온 제목

 

**살구꽃**

 

살구꽃이 피었습니다

서문리 이장네 마당

짚가리에 기대어 피었습니다

지난 겨울

발 시려운 새들 찾아와

앉았다 간 자리마다

붉은 꽃이 피었습니다

 

-묘사시와 진술시.묘사시에는 주관적 묘사시와 객관적 묘사시가 있다.

-은유로 쓴 시가 좋은 시

 

**이 별에서 내리면**

 

이 별에서 내리면

다른 별은 없을까

이렇게 푸른 별이

하늘에 단 하나뿐이고

때가 되면 아무런 대책도 없이 내려야 한다면

우리가 더 가난해지거나

시 같은 건 안 써도 좋으니

또 다른 별에서 만날 수는 없는지

이보다는 훨신 못하더라고

내리는 사람끼리 모여 사는

별은 없을까

 

**아버지가 보고 싶다**

 

자다 깨면

어떤 날은 방구석에서

소 같은 어둠이 내려다보기도 하는데

나는 잠든 아이들 얼굴에 볼을 비벼보다가

공연히 슬퍼지기도 한다

그런 날은 아버지가 보고 싶다

 

들에서 돌아오는 당신의

모자나 옷을 받아들면

거기서 나던 땀내음 같은 것

그게 아버지 생의 냄새였다면

지금 내게선 무슨 냄새가 나는지

 

나는 농토가 없다

고작 생각을 내다 팔거나

소작의 품을 팔아 돌아오는 저녁으로

아파트 계단을 오르며

 

나는 아버지의 농사를 생각한다

그는 곡식이든 짐승이든

늘 뭔가 심고 거두며 살았는데

나는 나무 한그루 없이 이렇게 살아도 되는 건지

아버지가 보고 싶다

 

**상강霜降 무렵**

 

누군가는 길어도 마흔 전에

생을 마감하는 게 좋을 것 같다* 지만                        ->요시다 켄꼬오의 수필집 <도연초>에서

나는 이미 거기를 지나온 지 오래

 

이웃집에 그늘이 든다 하여 기르던 오동을 베어내고

그 그늘에서 봉황을 기다리던 가을

 

살려고만 하면 누가 못 살겠는가

나는 나에게 좀더 다정할 수도 있었으나

기다리던 다정은 언제 오는가

 

가을 하나를 건너는 데도

나무 이파리들에겐 몇 대代의 적공積功이 필요한데

재대하는 아들은 스물세살

부모님 계신 가산家山의 퉁갈은 장끼 눈처럼 붉다           ->청밀의 덩클, 양양 방언

그래도 생은 모른다

언젠가 한번 다녀가라는 여자도 있었고

깨알 같은 시로 세상을 걱정하며

그때야 무슨 말을 못했겠는가

 

깨끗하구나 처연이여

맑은 날 하늘에 몸을 씻고

벌래들은 땅속으로 들어가고

나는 바짓가랑이를 걷고 다시 푸른 저녁을 건넌다

 

**남루襤樓**

 

지난해 봄 시집을 묶으며

몸을 전부 비웠는데 아직 말이 남았다

누가 시킨 것도 아닌데 한때 가 찾으면             ->시

자다가도 벌떡 일어나던 시절이 있었다

그에게 속을 다 내보이고도 부끄러운 줄 모르거나

어쩌다 제 맘에 드는 생각을 해내고는

길 가다 혼자 웃은 적도 있었다 그러나 생은           ->엇박자 행갈이로 강조 효과

날마다 상처를 밀치고 올라오는 새살 같은 것인데

나의 시는 남루와 같아서

어느날 설악 깊은 꼴짝기 데리고 가

나뭇가지에 걸어놓고 몰래 돌아오고 싶다

 

**신발을 찾아 신다**

 

친구 어머니 문상을 했다

 

그 나이 되도록 어머니가 살아 계셨다니 얼마나 고마웠을까

 

사십여년 전 겨울, 나의 어머니는 바람 불고 추운 이승을 떠나셨고 출렁거리는 차일 아래 굴건제복을 하고 엎드렸으나 나의 곡소리가 처량하지는 않았다. 그때 사람들은 문종이나 초, 쌀, 소주를 들고 와 조문했지만 오늘 나는 지폐로 부조를 했고 죽음은 그때보다 훨씬 품위 있고 슬픔은 세련되었다

 

나에게 지금 어머니가 살아 계신다면 어머니를 늘 기쁘게 해드렸을까?

 

이런 쓸데없는 생각을 하다가 나는 생전 어머니 걱정대로 신발이 바뀔까봐 조심스럽게 찾아 신고 장례식장을 나왔다

 

<20170927 정희성 시 >

 

**그리운 나무**

 

사람은 지가 보고 싶은 사람 있으면

그 사람 가까이 가서 서성대기라도 하지

나무는 그리워하는 나무에게로 갈 수 없어

애틋한 그 마음을 가지로 뻗어

멀리서 사모하는 나무를 가리키는 기라

사랑하는 나무에게로 갈 수 없어

나무는 저리도 속절없이 꽃이 피고

벌 나비 불러 그 맘 대신 전하는 기라

아아, 나무는 그리운 나무가 있어 바람이 불고

바람 불어 그 향기 실어 날려 보내는 기라

 

**새우젓 사러 광천에 가서**

 

주일날 새우젓 사러 광천에 갔다가

미사 끝나고 신부님한테 인사를 하니

신부님이 먼저 알고,예까지 젓 사러왔냐고

우리 성당 자매님들 젓 좀 팔아주라고

우리가 기뻐 대답하기를, 그러마고

어느 자매님 젓이 제일 맛있냐고

신부님이 뒤통수를 긁으며

글쎄 내가 자매님들 젓을 다 먹어봤겠느냐고

우리가 공연히 얼굴을 붉히며

그도 그렇겠노라고

 

**내가 아는 선배는**

 

술만 취하면 그 얘기였다, 그날도 시장 근처 늘 가던 술집에서 거나하게 마시고 취한 김에 주모를 불러 영화배우 허장강이 하던 식으로, 마담 우리 심심한데 뽀뽀나 한번 할까, 하고 농담 반 진담 반으로 을렀던 것인데 여자가 그날따라 선선하게 문단속하고 갈테니 요 앞 여관에 먼저 가 기다리라고 하더란다. 그래 얼씨구나 싶어 그 여자와 잠자리에서 같이 먹을 요량으로 바나나 두 개 홍시 두 개 귤 몇 개인가를 사 비닐 봉지에 담아들고 콧노래 흥얼대며 들어가 잠자리 펴놓고 기다리는데, 한 시간이 지나고 두 시간이 지나도 금방 온다던 사람이 안 오는 거라. 그래 주섬주섬 바지를 꿰어입고 나가보니 술집은 벌써 불이 꺼져 썰렁하고 달만 휘영청 밝은데 전봇대 밑에다 오줌을 깔기며 닭 쫓던 뭐 모양으로 멍하니 하늘만 올려다 보다 그길로 곧장 집에 들어갔던 것인데, 그때까지 잠도 안자고 기다리던 자식놈이 손에 들린 비닐봉지를 받아들고 아빠 이게 뭐야 하면서 애비 한입 먹어보라 소리도 안 하고 게눈 감추듯하는 모양을 보고, 무어라 말은 못하고 내 그놈의 집 두 번 다시 가나 봐라 입슬을 깨물며 눈물을 삼켰다는 것이다

 

**맞수**

 

바둑판을 무겁게 만든 건 이유가 있어서일 게다, 장기를 잘 두던 앞 집 친구 일남이와 마주 않으면 저녁 먹으라고 부르러 울 때까지 일어설 줄을 몰랐는데 그걸 늘 못 마땅히 여기던 아버지가 하루는 장기판 앞에 나를 불러 앉혔다, 열 판이면 열 판 아버지는 외통수에 몰려 쩔쩔 매었고 일수불퇴인지라 물려달라는 말도 못하고 내가 오줌 누러 갔다 와도 얼굴이 벌개진 채 그냥 그 자리에 않아 끙끙 앓으며 장기알만 만지작거리시는 것이었다, 나는 별 생각없이 남들이 늘 하는 대로 따먹은 상이나 마 따위를 딸그닥거리며, 장기 두는 사람 어디 갔나, 하고 약을 올렸던 것인데 그 순간 눈에서 불이 번쩍 하며 장기판이 그만 박살이 나고 말았다. 이 놈의 자식 하라는 공부는 안하고,,, 나중에 혼자 있을 때 가만히 생각해보니 장기판이 너무 가벼워서 장기를 오래 두다보면 사람도 그렇게 경망스러워지는가 보다 싶어, 그다음부터는 아버지하고 장기는 안 두고 바둑 두기로 마음에 다짐을 두었던 것이다.

 

** 태백산행**

 

눈이 내린다 기차 타고

태백에 가야겠다

배낭 둘러메고 나서는데

등뒤에서 아내가 구시렁댄다

지가 열 입곱 살이야 열 아홉 살이야

구시렁구시렁 눈이 내리는

산등성 숨차게 올라가는데

칠십 고개 넘어선 노인네들이

여보 젊은이 함께 가지

앞지르는 나를 불러세워

올해 몇이냐고

쉰 일곱이라고

그 중 한 사람이 말하기를

조오흘 때다

살아 천 년 죽어 천 년 한다는

태백산 주목이 평생을 그 모양으로

허옇게 눈을 뒤집어쓰고 서서

좋을 때다 좋을 때다

말을 받는다

단골집 귀때기 새파란 그 계집만

괜스레 나를 보고 늙었다 한다

 

**희망**

 

그 별은 아무데서나 보이는 것은 아니다

그 별은 어둠속에서 조용히

자기를 들여다볼 줄 아는 사람의 눈에나 모습을 드러낸다

 

**한 그리움이 다른 그리움에게**

 

어느 날 당신과 내가

날과 씨로 만나서

하나의 꿈을 엮을 수만 있다면

우리들의 꿈이 만나

한 폭의 비단이 된다면

나는 기다리리, 추운 길목에서

오랜 침묵과 외로움 끝에

한 슬픔이 다른 슬픔에게 손을 주고

한 그리움이 다른 그리움의

그윽한 눈을 들여다볼 때

어느 겨울인들

우리들의 사랑을 춥게 하리

외롭고 긴 기다림 끝에

어느 날 당신과 내가 만나

하나의 꿈을 엮을 수만 있다면

 

**시를 찾아서**

 

말이 곧 절이라는 뜻일까        ->詩의 글자풀이

말씀으로 절을 짓는다는 뜻일까

지금까지 시를 써오면서

시가 무엇인지

시로써 무엇을 이룰지

깊이 생각해볼 틈도 가지지 못한 채

헤매어 여기까지 왔다

경기도 양주군 화엄사엔

절 없이 절터만 남아 있고

강원도 어성전 명주사에는

절은 있어도 시는 보이지 않았다

한여름 뜨락에 발돋움한 상사화

꽃대궁만 있고 잎은 보이지 않았다

한 줄기에 나서도

잎이 꽃을 만나지 못하고

꽃이 잎을 만나지 못한다는 상사화

아마도 시는 닿을 수 없는 그림인 게라고

보고 싶어도 볼 수 없는 마음인 게라고

끝없이 저자 거리 걷고 있을 우바이

그 고운 사람을 생각했다

 

**숲**

 

숲에 가 보니 나무들은

제가끔 서 있더군

제가끔 서 있어도 나무들은

숲이었어

광화문 지하도를 자니며

숱한 사람들을 만나지만

왜 그들은 숲이 아닌가

이 메마른 땅을 외롭게 지니치며

낯선 그대와 만날때

그대와 나는 왜

숲이 아닌가

 

**저문강에 삽을 씻고**

 

흐르는 것이 물뿐이랴

우리가 저와 같아서

강변에 나가 삽을 씻으며

거기 슬픔도 퍼다 버린다

일이 끝나 저물어

스스로 깊어 가는 강을 보며

쭈그려 앉아 담배나 피우고

나는 돌아갈 뿐이다

삽자루에 맡긴 한 생애가

이렇게 저물고 저물어서

샛강 바닥 썩은 물에

달이 뜨는구나

우리가 저와 같아서

흐르는 물에 삽을 씻고

먹을 것 없는 사람들의 마을로

다시 어두워 돌아가야 한다

 

**가을날**

 

길가의 코스모스를 보고

가슴이 철렁했다

나에게 남은 날이

많지 않다

선득하니, 바람에 흔들리는

코스모스 그림자가 한충 길어졌다

 

**이른 봄 저녁 무렵**

 

이른 봄 저녁 무렵

새로 나온 이시영 시집을 읽으며

그 행간에 자리잡은

적요에 잠겨 눈을 지그시 감다가

문득 놀라 창문 열고 내다보니

언제 지었을까

아직 새 잎 돋지않은 가문비나무 우듬지에

억기설기 얽어놓은 까치 둥우리

새는 보이지 않고

나뭇가지 사이로 드러나는 하늘빛 고요

옳거니!

세상의 소랑이 나를 눈감게 하고           ?

저 고요가 나를 눈뜨게 하느니

 

**꽃자리**

 

촉촉이 비 내리던 봄날

부드러운 그대 입술에

처음 내 입술이 떨며 닿던

그날 그 꽃자리

글썽이듯 글썽이듯

꽃잎은 지고

그 상처 위에 다시 돋는 봅

그날 그 꽃자리

그날 그 아픈 꽃자리

 

**파문**

 

내가 빚은 사랑의 노래가

그녀의 술을 익게했네

그녀가 스며든 내 시속에

작은 파문이 일어나네

 

**사랑**

 

사랑아 나는 눈이 멀었다

멀어서

비로소 그대가 보인다

그러나 사랑아

나도 죄를 짓고 싶다

바람 몰래 꽃잎 만나고 오듯

참 맑은 시냇물에 봄비 설레듯

 

**차라리 시를 가슴에 묻는다**

 

발표 안 된 시 두 편만

가슴에 품고 있어도 나는 부자다

부자로 살고 싶어서

발표도 안 한다

시 두편 가지고 있는 동안은

어느 부자 부럽지 않지만

시를 털어버리고 나면

거지가 될 게 뻔하니

잡지사에서 청탁이 돠도 안 주고

차라리 시를 가슴에 묻는다

거지는 나의 생리에 맞지 않으므로

나도 좀 잘 살고 싶으므로

 

**그대 귓가에 닿지 못한 한마디 말**

 

한 처음 말이 있었네

채 눈 뜨지 못한

솜털 돋은 생명을 가슴 속에서 불러내네

 

사랑해

 

아마도 이 말은 그대 귓가에 닿지 못한 채

허공를 맴돌다가

괜히 나뭇잎만 흔들고

후미진 내 가슴에 돌아와

혼자 울겠지

 

사랑해

 

남몰래 울며 하는 이 말이

어쩌면

그대도 나도 모를

다른 세상에선 꽃이 될까 몰라

아픈 꽃이 될까 몰라

 

<<10월 12일 시집/시를 잊은 그대에게-공대생의 가슴을 울린 시 강의/정재찬 발췌 시>>

 

-아내가 내 곁을 떠난 지(1999년)지 꼭 2년이 됐다. 그동안 아내는 나에게 소중한 것들을 알게 해줬다.....

이 시집에 실린 여든아홉 편의 시들 모두에 아내의 입김이 스며 있다. 나는 그것을 여실히 느낀다. 느낌은 진실이다

-김춘수, <거울 속의 천사>후자 중에서

-시집 발간 2년후 2003년 시인 세상을 뜨다

 

**강우/김춘수**

 

조금 전까지 거기 있었는데

어디로 갔나

밥상은 차려놓고 어디로 갔나

넙치지지미 맵싸한 냄새가

코를 맵싸하게 하는데

어디로 갔나

이 사람이 갑자기 왜 말이 없나

내 목소리는 메아리가 되어

되돌아온다

내 목소리만 내 귀에 들린다

이 사람이 어디 가서 잠시 누웠나

옆구리 담괴가 다시 도졌나, 아니 아니

이번에는 그게 아닌가 보다

한 뼘 두 뼘 어둠을 적시며 비가 온다

혹시나 하고 나는 밖을 기웃거린다

나는 풀이 죽는다

빗발은 한 치 앞을 못 보게 한다

왠지 느닷없이 그렇게 퍼붓는다

지금은 어쩔 수 없다고

 

**바람/김춘수**

 

자목련이 흔들린다

바람이 왔나 보다

바람이 왔기에

자목련이 흔들리는가 보다

작년 이맘때만 해도 그렇지가 않았다

자목련까지는 길이 너무 멀어

이제 막 왔나 보다

저렇게 자묵련을 흔드는 저것이

바람이구나

왠지 자목련은

조금 울상이 된다

비북비죽 입술을 비죽인다

 

**목련후기/복효근**

 

목련꽃 지는 모습 지저분하다고 말하지 말라

순백의 눈도 녹으면 질척거리는 것을

지는 모습까지 아름답기를 바라는가

그대를 향한 사랑의 끝이

피는 꽃처럼 아름답기를 바라는가

지는 동백처럼

일순간에 져버리는 순교를 바라는가

아무래도 그렇게는 돌아서지 못 하겠다

구름에 달처럼은 가지 말라 청춘이여

돌아보라 사람아

없었으면 더욱 좋았을 기억의 비늘들이

타다 남은 편지처럼 날린대서

미친 사랑의 증거가 저리 남았대서

두려운가

사랑했으므로

사랑해버렸으므로

그대를 향해 뿜었던 분수 같은 열정이

피딱지처럼 엉켜서

상처로 기억되는 그런 사랑일지라도

낫지 않고 싶어라

이대로 한 열흘만이라도 더 앓고 싶어라

 

**희망을 만드는 사람이 되라**

 

이세상 사람들 모두 잠들고

어둠 속에 갇혀서 꿈조차 잠이 들 때

홀로 일어난 새벽을 두려워 말고

별을 보고 걸어가는 사람이 되라

희망을 만드는 사람이 되라

 

겨울밤은 깊어서 눈만 내리어

돌아갈 길 없는 오늘 눈 오는 밤도

하루의 일을 끝낼 작업장 부근

촛불도 꺼져가는 어둔 방에서

슬픔을 사랑하는 사람이 되라

희망을 만드는 사람이 되라

 

절망도 없는 이 절망의 세상

슬픔도 없는 이 슬픔의 세상

사랑하며 살아가면 봄눈이 온다

 

**갈대/신경림**

 

언제부턴가 갈대는 속으로

조용히 울고 있었다

그런 어느 밤 이었을 것이다.갈대는

그의 온몸이 흔들리고 있는 것을 알았다

 

바람도 달빛도 아닌 것

갈대는 저를 흔드는 것이 제 조용한 울음인것을

까맣게 몰랐다

-산다는 것은 속으로 이렇게 조용히 울고 있는 것이란 것을

그는 몰랐다

 

**다시/박노해**

 

희망찬 사람은

그 자신이 희망이다

 

길 찾는 사람은

그 자신이 새 길이다

 

참 좋은 사람은

그 자신이 이미 좋은 세상이다

 

사람 속에 들어 있다

사람에서 시작된다

 

다시

사람만이 희망이다

 

**사랑하는 별 하나/이성선**

 

나도 별과 같은 사람이

될 수 있을까

외로워 쳐다보면

눈 마주쳐 마음 비쳐주는

그런 사람이 될 수 있을까

 

나도 꽃이 될 수 있을까

세상일이 괴로워 쓸쓸히 밖으로 나서는 날에

가슴에 화안히 안기어

눈물짓듯 웃어주는

하얀 들꽃이 될 수 있을까

 

가슴에 사랑하는 별 하나를 갖고 싶다

외로울 때 부르면 다가오는

별 하나를 갖고 싶다

 

마음 어두운 밤 깊을수록

우러러 쳐다보면

반짝이는 그 맑은 눈빛으로 나를 씻어

길을 비추어주는

그런 사람 하나 갖고 싶다

 

**이별의 노래/박목월 시, 김성태 작곡**

 

기러기 울어 예는 하늘 구만 리

바람이 싸늘 불어 가을은 깊었네

아 너도 가고 나도 가야지

한낮이 끝나면 밤이 오듯이

우리의 사랑도 저물었네

나 너도 가고 나도 가야지

 

산촌에 눈이 쌓인 어느 날 밤에

촛불을 밝혀두고 홀로 울리라

아 너도 가고 나도 가야지

 

-유부남 교수 박목월과 여대생의 연애기간, 제주도 가출 당시 연시

 

**배경/박목월**

 

제주읍에서는

어디로 가나, 등 뒤에

수평선이 걸린다

황홀한 이 띠를 감고

때로는 토주를 마시고

때로는 시를 읊고

그리고 해질녘에는

서사에 들르고

먹구슬나무 나직한 돌담 문전에서

친구를 찾는다

그럴 때마다 나의 등 뒤에는

수평선이

한결같이 따라온다

아아 이 숙명을, 숙명같은 꿈을

마리아의 눈동자를

눈물어린 신앙을

먼 종소리를

애절하게 풍성한 음악을

나는 어쩔 수 없다

 

**그날 나는 슬픔도 배불렀다/함민복**

 

아래층에서 물 틀면 단수가 되는

좁은 계단을 올라야 하는 전세방에서

만학을 하는 나의 동록금을 위해

사글셋방으로 이사를 떠나는 형님네

달그락거리던 밥그릇들

베니어판으로 된 농짝을 리어카로 나르고

집안 형편을 적나라하게 까 보이던 이삿짐

가슴이 한참 덜컹거리고 이사가 끝났다

형은 시장 골목에서 자장면을 시켜 주고

쉽게 정리될 살림살이를 정리하러 갔다

나는 전날 친구들과 깡소주를 마신 대가로

냉수 한 대접으로 조갈증을 풀면서

자장면을 앞에 놓고

이상한 중국집 젊은 부부를 보았다

바쁜 점심시간 맞춰 잠 자 주는 아기를 고마워하며

젊은 부부는 밀가루, 그 연약한 반죽으로

튼튼한 미래를 꿈꾸듯 명랑하게 전화를 받고

서둘러 배달을 나갔다

나는 그 모습이 눈물처럼 아름다워

물배가 부른데도 자장면을 남기기 미안하여

마지막 면발까지 다 먹고 나니

더부록하게 배가 불렀다. 살아간다는 게

 

그날 나는 분명 슬픔도 배불렀다

 

**눈물은 왜 짠가/함민복**

 

지난 여름이었습니다 가세가 기울어 갈 곳이 없어진 어머니를 고향 이모님댁에 모셔다 드릴 때의 일입니다.

어머니는 차 시간도 있고 하니까 요기를 하고 가자시며 고깃국을 먹으로 가자고 하셨습니다.

어머니는 한평생 중이염을 앓아 고기만 드시면 귀에서 고름이 나오곤 했습니다.

그런 어머니가 나를 위해 고깃국을 먹으로 가자고 하시는 마음을 읽자 어머니 이마의 주름살이 더 깊게 보였습니다.

설렁탕집에 들어가 물수건으로 이마에 흐르는 땀을 닦았습니다

"더운 때일수록 고기를 먹어야 더위를 안 먹는다 고기를 먹어야 하는데...고깃국물이라도 되게 먹어 둬라"

설렁탕에 다대기를 풀어 한 댓 숟가락 국물을 떠먹었을 때였습니다.

어머니가 주인 아저씨를 불렀습니다 주인아저씨는 뭐 잘못된 게 있나 싶었던지 고개를 앞으로 빼고 의아해 하며 다가왔습니다

어머니는 설렁탕에 소금을 너무 많이 풀어 짜서 그런다며 국물을 더 달라고 했습니다 주인아저씨는 흔쾌히 국물을 더 갖다주었습니다

어머니는 주인아저씨가 안 보고 있다 싶어지자 내 투가리에 국물을 부어 주셨습니다

나는 당황하여 주인아저씨를 흘금거리며 국물을 더 받았습니다

주인아저씨는 넌지시 우리 모자의 행동을 보고 애써 시선을 외면해 주는 게 역력했습니다

나는 국물을 그만 따르시라고 내 투가리로 어머니 투가리를 툭, 부딪쳤습니다 순간 투가리가 부딪히며 내는 소리가 왜 그렇게 서럽게 들리던지

나는 울컥 치받치는 감정을 억제하려고 설렁탕에 만 밥과 깍두기를 마구 씹어 댔습니다

그러자 주인아저씨는 우리 모자가 미안한 마음 안 느끼게 조심, 다가와 성냥갑만한 깍두기 한 접시를 놓고 돌아서는 거였습니다.

일순, 나는 참고 있던 눈물을 찔끔 흘리고 말았습니다

나는 얼른 아마에 흐른 땀을 훔쳐 내려 눈물을 땀인 양 만들어놓고 나서, 아주 천천히 물수건으로 눈동자에서 난 땀을 씻어 냈습니다

그러면서 속으로 중얼거렸습니다

눈물은 왜 짠가

.

<<20171019 시가 마음을 만지다/2009, 최영아 essay수록 시>>

 

**내가 나의 감옥이다/유안진**

 

한눈팔고 사는 줄은 진즉 알았지만

두 눈 다 팔고 살아

온 줄은 까맣게 몰랐다

 

언제 어디에서 한눈을 팔았는지

무엇에다 두 눈 다 팔아먹었는지

나는 못 보고 타인들만 보였지

내 안은 안 보이고 내 바깥만 보였지

 

눈 없는 나를 바라보는 남의 눈들 피하느라

나를 내 속으로 가두곤 했지

 

가시껍데기로 가두고도

떫은 속껍질에 또 갇힌 밤송이

마음이 바라면 피곤체질이 거절하고

몸이 갈망하면 바늘편견이 시큰둥해져

겹겹으로 가두어져 여기까지 왔어라

 

<지란지교를 꿈꾸며/유안진>

 

**지란지교 (芝蘭之交) :지초와 난초의 사귐이라는 뜻으로, 벗 사이의 높고 맑은 사귐을 이르는 말

 

 

저녁을 먹고 나면 허물없이 찾아가

차 한 잔을 마시고 싶다고 말할 수 있는 친구가 있었으면 좋겠다

입은 옷을 갈아입지 않고 김치냄새가 좀 나더라고

흉보지 않을 친구가 우리 집 가까이에 있었으면 좋겠다

비오는 오후나 눈 내리는 밤에 고무신을 끌고 찾아가도 좋을 친구

밤늦도록 공허한 마음도 마음놓고 보일 수 있고

악의없이 남의 얘기를 주고받고 나서도

말이 날까 걱정되지 않는 친구가... 

 

사람이 자기 아내나 남편, 제 형제나 제 자식하고만 사랑을 나눈다면

어찌 행복해 질 수 있으랴

영원히 없을수록

영원을 꿈꾸도록

서로 돕는 진실한 친구가 필요하리라

 

그는 여성이어도 좋고 남성이어도 좋다

나보다 나이가 많아도 좋고 동갑이거나 적어도 좋다

다만 그의 인품이 맑은 강물처럼 조용하고 은근하며 깊고 신선하며

예술과 인생을 소중히 여길만큼 성숙한 사람이면 된다

그는 반드시 잘 생길 필요가 없고

수수하나 멋을 알고 중후한 몸가짐을 할 수 있으면 된다

 

때로 약간의 변덕과 신경질을 부려도 그것이 애교로 통할 수 있을 정도면 괜찮고

나의 변덕과 괜한 흥분에도 적절히 맞장구를 쳐주고 나서

얼마의 시간이 흘러 내가 평온해지거든

부드럽고 세련된 표현으로 충고를 아끼지 않았으면 좋겠다

 

나는 많은 사람을 사랑하고 싶진 않다

많은 사람과 사귀는 것도 원치 않는다

나의 일생에 한 두 사람과 끊어지지 않는 아름답고 향기로운 인연으로

죽기까지 지속되길 바란다

나는 여러 나라 여러 곳을 여행하면서

끼니와 잠을 아껴 될수록 많은 것을 구경하였다

그럼에도 지금은 그 많은 구경 중에 기막힌 감회로 남는 것은 거의 없다

만약 내가 한 두 곳 한 두 가지만 제대로 감상했더라면,

두고두고 되새겨질 자산이 되었을 걸

 

우정이라 하면 사람들은 관포지교를 말한다

그러나 나는 친구를 괴롭히고 싶지 않듯이

나 또한 끝없는 인내로 베풀기만 할 재간이 없다

나는 도 닦으며 살기를 바라지 않고, 내 친구도 성현 같아지기를 바라지 않는다

나는 될수록 정직하게 살고 싶고

내 친구도 재미나 위안을 위해서 그저 제 자리에서 탄로 나는

약간의 거짓말을 하는 재치와 위트를 가졌으면 바랄 뿐이다

 

나는 때로 맛있는 것을 내가 더 먹고 싶을 테고

내가 더 예뻐 보이기를 바라겠지만

금방 그 마음을 지울 줄도 알 것이다

때로 나는 얼음 풀리는 냇물이나 가을 갈대 숲 기러기 울음을

친구보다 더 좋아할 수 있겠으나

결국은 우정을 제일로 여길 것이다

 

우리는 흰 눈 속 참대 같은 기상을 지녔으나 들꽃처럼 나약할 수 있고

아첨 같은 양보는 싫어하지만 이따금 밑지며 사는 아량도 갖기를 바란다

 

우리는 명성과 권세, 재력을 중시하지도 부러워하지도 경멸하지도 않을 것이며

그보다는 자기답게 사는 데 더 매력을 느끼려 애쓸 것이다.

 

우리는 항상 지혜롭지 못하더라도

자기의 곤란을 벗어나기 위해 비록 진실일지라도 타인을 팔진 않을 것이다

오해를 받더라도 묵묵할 수 있는 어리석음과 배짱을 지니기를 바란다

우리의 외모가 아름답지 않다 해도 우리의 향기만은 아름답게 지니리라

 

우리는 시기하는 마음 없이 남의 성공을 얘기하며

경쟁하지 않고 자기 일을 하되, 미친 듯 몰두하게 되기를 바란다

우리는 우정과 애정을 소중히 여기되, 묵숨을 거는 만용은 피할 것이다

그래서 우리의 우정은 애정과도 같으며, 우리의 애정 또한 우정과 같아서

요란한 빛깔과 시끄러운 소리도 피할 것이다.

 

나는 반닫이를 닦다가 그를 생각할 것이며

화초에 물을 주다가, 안개 낀 아침 창문을 열다가

가을 하늘의 흰 구름을 바라보다가

까닭없이 현기증을 느끼다가 문득 그가 보고 싶어지며

그도 그럴 때 나를 찾을 것이다

 

그는 때로 울고 싶어지기도 하겠고

내게도 울 수 있는 눈물과 추억이 있을 것이다

우리에겐 다시 젊어질 수 있는 추억이 있으나

늙는 일에 초조하지 않을 웃음도 만들어 낼 것이다

우리는 눈물을 사랑하되 헤프지 않게

 

가지는 멋보다 풍기는 멋을 사랑하며

냉면을 먹을 때는 농부처럼 먹을 줄 알며

스테이크 자를 때는 여왕처럼 품위 있게

군밤을 아이처럼 까먹고

차를 마실 때는 백작보다 우아해 지리라

 

우리는 푼돈을 벌기 위해 하기 싫은 일은 하지 않을 것이며

천 년을 늙어도 항상 가락을 지니는 오동나무처럼

일생을 춥게 살아도 향기를 팔지 않는 매화처럼

자유로운 제 모습을 잃지 않고 살고자 애쓰며 격려하리라

 

우리는 누구도 미워하지 않으며

특별히 한 두 사람을 사랑한다 하여 많은 사람을 싫어하진 않으리라

우리가 멋진 글을 못 쓰더라도 쓰는 일을 택한 것을 후회하지 않듯이

남의 약점도 안쓰럽게 여기리라

 

내가 길을 가다가 한 묶음의 꽃을 사서 그에게 들려줘도

그는 날 주착이라고 나무라지 않으며

건널목이 아닌 데로 찻길을 건너도 나의 교양을 비웃지 않을 게다

나 또한 더러 그의 눈에 눈꼽이 끼더라도

이 사이에 고춧가루가 끼었다 해도

그의 숙녀됨이나 신사다움을 의심하지 않으며

오히려 인간적인 유유함을 느끼게 될 게다

 

우리의 손이 비록 작고 여리나, 서로를 버티어 주는 기둥이 될 것이며

우리의 눈에 핏발이 서더라도 총기가 사라진 것은 아니며

눈빛이 흐리고 시력이 어두워질수록 서로를 살펴 주는 불빛이 되리라

 

그러다가 어느 날이 홀연히 오더라도 축복처럼

웨당드레스처럼 수의를 입게 되리라

같은 날 또는 다른 날이라도

 

세월이 흐르거든 묻힌 자리에서 더 고운 품종의 지란이 돋아나며

맑고 높은 향기로 다시 만나지리라

 

*식사법/김경미**

 

콩나물처럼 끝까지 익힌 마음일 것

쌀알빛 고요 한 톨도 흘리지 말 것

인내 속 아무 설탕의 경지 없어도 묵묵히 다 먹을 것

고통. 식빵처럼 가장자리 떼어버리지 말 것

성실의 딱 한 가지 반찬만일 것

 

새삼 괜한 짓을 하는 건 아닌지

제 명에나 뭇 죽는 건 아닌지

두려움과 후회의 돌들이 우두둑 깨물리곤 해도

그깟것 마저 다 낭비해버리고푼 멸치똥 같은 날들이어도

야채처럼 유순한 눈빛을 보다 많이 섭취할 것

생의 규칙적인 좌절에도 생선처럼 기끈하게 빠져나와

한 벌의 수저처럼 몸과 마음을 가지런히 할 것

 

한 모금 식후 물처럼 또 한 번의 삶을 잘 넘길 것

 

-인생살이 법

 

**마음의 달/천양희**

 

가시나무 울타리에 달빛 한 채 걸려 있습니다

마음이 또 생각 끝에 저뭅니다

망초꽃까지 다 피어나

들판 한 쪽이 기울 것 같은 보름밤입니다

달빛이 너무 환해서

나는 그만 어둠을 내려놓았습니다

둥글게 살지 못한 사람들이

달보고 자꾸 절을 합니다

바라보는 것이 바라는 만큼이나 간절합니다

무엇엔가 찔려본 사람들은 알 것입니다

달도 때로 빛이 꺾인다는 것을

한 달도 반 꺾이면 보름이듯이

꺾어지는 것은 무릅이 아니라 마음입니다

마음을 들고 달빛 아래 섰습니다

들숨 속으로 들어온 달이

마음속에 떴습니다

달빛이 가시나무 울타리를 넘어설 무렵

마음은 벌써 보름달입니다

 

**말의 힘/황인숙**

 

기분 좋은 말을 생각해보자

파랗다, 하얗다, 깨끗하다, 싱그럽다

신선하다, 짜릿하다, 후련하다,

기분 좋은 말을 소리내보자

시원하다, 달콤하다, 아늑하다, 아이스크림.

얼음, 바람, 아아아, 사랑하는, 소중한, 달린다.

비!

머릿속에 가득 기분 좋은

느낌표를 밟아보자.

느낌표들을 밟아보자, 만져보자, 핥아보자.

깨물어보자, 맞아보자, 터뜨려보자!

 

**비망록/문정희**

 

남을 사랑하는 사람이 되고 싶었는데

남보다 나를 더 사랑하는 사람이

되고 말았다

 

가난한 식사 앞에서

기도를 하고

밤이면 고요히

일기를 쓰는 사람이 되고 싶었는데

구겨진 속옷을 내보이듯

매양 허물만 내보이는 사람이 되고 말았다

 

사랑하는 사람아

너는 내 가슴에 아직도

눈에 익은 별처럼 박혀 있고

 

나는 박힌 별이 돌처럼 아파서

이렇게 한 생애를 허둥거린다

 

**상한 영혼을 위하여/고정희**

 

상한 갈대라도 하늘 아래선

한 계절 넉넉히 흔들리거니

뿌리 깊으면야

밑둥 잘리어도 새 순은 돋거니

충분히 흔들리자 상한 영혼이여

충분히 흔들리며 고통에게로 가자

 

뿌리없이 흔들리는 부평초 잎이라도

물 고이면 꽃은 피거니

이 세상 어디서나 개울은 흐르고

이세상 어디서나 등불은 켜지듯

가자 고통이여 살 맞대고 가자

외롭기로 작정하면 어딘들 못 가랴

가기로 작정하면 지는 해가 문제랴

 

고통과 설음의 땅 훨훨 지나서

뿌리 깊은 벌판에 서자

두팔로 막아도 바람은 불 듯

영원한 눈물이란 없느니라

영원한 비탄이란 없느니라

 

캄캄한 밤이라도 하늘 아래선

마주잡을 손 하나 오고 있거니

 

**동해바다-후포에서/신경림**

 

친구가 원수보다 더 미워지는 날이 많다

티끌만한 잘못이 맷방석만 하게

동산만 하게 커 보이는

때가 많다

그래서 세상이 어지러울수록

남에게는 엄격해지고 내게는 너그러워지나보다

돌처럼 잘아지고 굳어지나보다

 

멀리 동해바다를 내려다보며 생각한다

널따란 바다처럼 너그러워질 수는 없을까

깊고 짙푸른 바다처럼

감싸고 끌어안고 받아들일 수는 없을까

스스로 억센 파도로 다스리면서

제 몸은 맵고 모진 매로 채찍질하면서

 

**흰 부추꽃으로/박남준**

 

몸이 서툴다 사는 일이 늘 그렇다

나무를 하다보면 자주 손등이나 다리 어디 찢기고 긁혀

돌아오는 길이 절뚝거린다 하루해가 저문다

비로소 어듬이 고요한 것들을 빛나게 한다

별빛이 차다 불을 지펴야겠군

 

이것들 한때 숲을 이루며 저마다 깊어졌던 것들

아궁이 속에서 어떤 것 더 활활 타오르며

거픔을 무는 것이 있다

몇 번이나 도끼질이 빗나가던 옹이 박힌 나무다

그건 상처다 상처받은 나무

이승의 여기저기에 등뼈를 꺾여

그리하여 일그러진 것들도 한 번은 무섭게 타오를 수 있는가

 

언제쯤이나 사는 일이 서툴지 않을까

내 삶의 무거운 옹이들도 불길을 타고

먼지처럼 날았으면 좋겠어

타오르는 것들은 허공에 올라 재를 남긴다

흰 재, 저 흰 재 부추밭에 뿌려야지

흰 부추꽃이 피어나면 목숨이 환해질까

흰 부추꽃 그 환한 환생

**관계/정채원**

 

뭉그러진 복숭아를 골라낸다

저마다 단단한 씨앗을 아집처럼 품고도

가슴 부빈 자리마다 단물이 흥건하다

서로 밀착된 만큼 깊이 멍드는

사이를 조금씩 벌려 놓는다

너와 나 너무 가까워

그 누구도

끼어들지 못하는 사이

나는 네 그늘에 가려

너는 내 솜털가시에 찔려

소리없이 신음하고 있었으리라

그 동안, 몇 번의 천둥이 울고 비바람이 쳤는가

무너진 봉분 위에 복사꽃 지듯

가슴에 붉은 기억 흩어져 있다

어미의 젖꽂지를 문 신생아처럼

진한 초유의 젖냄새 온몸에 펴져 나가던 시절

초산의 젖몸살에 눈물 흘리던 시절은 이미

늙은 어미의 뭉그러진 젖무덤이다

나는 너에게, 너는 나에게

흠 없는 영혼으로 남을 수는 없을까

몇 발짝 떨어져 서로를 바라다본다

너와 나 사이로 빠져 나가는 바람이

아직 단단한 추억의 개수를 헤아린다

어딘선가 뽀얀 젖냄새 실어 오는 바람 속

허공에 기댄 생이 너를 향해 기우뚱

가슴 잠시 탱탱해진다

 

**돌맹이/나태주**

 

흐르는 맑은 물결 속에 잠겨

보일 듯 말 듯 일렁이는 얼룩무늬 돌멩이 하나

돌아가는 길에 가져가야지

집어 올려 바위 위에

놓아두고 잠시

다른 볼일보고 돌아와

찾으려니 도무지

어느 자리에 두었는지

찾을 수 없다

 

혹시 그 돌멩이, 나 아니었을까

 

**연탄 한 장/안도현**

 

또 다른 말도 많고 많지만

삶이란

나 아닌 그 누구에게

기꺼이 연탄 한 장 되는 것

 

방구들 선득선득해지는 날부터 이듬해 봄까지

조선팔도 거리에서 제일 아름다운 것은

연탄차가 부릉부릉

힘쓰며 언덕길 오르는 거라네

해야 할 일이 무엇인가를 알고 있다는 듯이

연탄은, 일단 제몸에 불이 옮겨 붙었다 하면

하염없이 뜨거워지는 것

매일 따스한 밥과 국물 퍼먹으면서도 몰랐네

온 몸으로 사랑하고 나면

한 덩이 재로 쓸쓸하게 남는 게 두려워

여태껏 나는 그 누구에게 연탄 한 장도 되지 못하였네

생각하면

삶이란

나를 산산이 으깨는 일

 

눈 내려 세상이 미끄러운 어느 이른 아침에

나 아닌 그 누가 마음 놓고 걸어갈

그 길을 만들 줄도 몰라었네, 나는

 

<<20171026 황동규의 시 세계>>

-황동규;1938년생,18세 때 '즐거운 편지' 작시, 부친 황순원, 김소월, 한용운 영향,평생 문우 마중기, 조병화 선생의 추천으로 등단

            시 창작의 모티브를 호기심이라 함

 

**즐거운 편지/황동규**

 

내 그대를 생각함은

항상 그대가 앉아 있는 배경에서

해가 지고 바람이 부는 일처럼 사소한 일일 것이나

언젠가 그대가 한 없이 괴로움 속을 헤매일 때에

오랫동안 전해오던 그 사소함으로 그대를 불러보리라

 

진실로 진실로

내가 그대를 사랑하는 까닭은

내 나의 사랑을 한없이 잇닿은 그 기다림으로 바꾸어 버린 데 있었다.

밤이 들면서 골짜기엔 눈이 퍼붓기 시작했다.

내 사랑도 어디쯤에서 반드시 그칠 것을 믿는다,

다만, 그 때 내 기다림의 자세를 생각하는 것 뿐이다.

그 동안에 눈이 그치고 꽃이 피어나고

낙엽이 떨어지고 또 눈이 퍼붓고 할 것을 믿는다

 

-친구 누나에 대한 연정이 작시 모티브

 

**진달래꽃/김소월**

 

나 보기가 역겨워

가실 때에는

말없이 고이 보내 드리우리다

 

영변에 약산

진달래꽃

아름 따다 가실 길에 뿌리우리다

 

가시는 걸음걸음

놓인 그 꽃을

사뿐히 즈려밟고 가시옵소서

 

나 보기가 역겨워

가실 때에는

죽어도 아니 눈물 흘리우리라

 

**동천冬天/서정주**

 

내 마음 속 우리 님의 고운 눈썹을

*즈문 밤의 꿈으로 맑게 씻어서          즈문; 千

하늘에다 옮기어 심어 놨더니

동지 섣달 나는 매서운 새가

그걸 알고 시늉하며 비끼어 가네

 

**님의 침묵/한용운**

 

님은 갔습니다,

아아, 사랑하는 나의 님은 갔습니다

푸른 산빛을 깨치고 단풍나무 숲을 향하여 난 작은 길을 걸어서 차마 떨치고 갔습니다

황금의 꽃같이 굳고 빛나던 옛 맹세는 차디찬 티끌이 되어서 한숨의 미풍에 날아갔습니다

날카로운 첫 키스의 추억은 나의 운명의 지침을 돌려놓고 뒷걸음쳐서 사라졌습니다

나는 향기로운 님의 말소리에 귀먹고 꽃다운 님의 얼굴에 눈멀었습니다

사랑도 사람의 일이라 만날 때에 미리 떠날 것을 염려하고 경계하지 아니한 것은 아니지만,

이별은 뜻밖의 일이 되고, 놀란 가슴은 새로운 슬픔에 커집니다.

그러나 이별을 쓸데없는 눈물의 원천을 만들고 마는 것은 스스로 사랑을 깨치는 것인 줄 아는 까닭에

걷잡을 수 없는 슬픔의 힘을 옮겨서 새 희망의 정수받이에 들어부었습니다

우리는 만날 때에 떠날 것을 염려하는 것과 같이 떠날 때에 다시 만날 것을 믿습니다

아아, 님은 갔지마는 나는 님을 보내지 아니하였습니다

제 곡조를 못 이기는 사랑의 노래는 님의 침묵을 휩싸고 돕니다

 

**산유화/김소월**

 

산에는 꽃 피네

꽃이 피네

갈 봄 여름 없이

꽃이 피네

 

산에 산에

피는 꽃은

저만치 혼자서 피어 있네

 

산에서 우는 작은 새여

꽃이 좋아

산에서 사노라네

 

산에는 꽃 지네

꽃이 지네

갈 봄 여름 없이

꽃이 지네

 

**쨍한 사랑의 노래/홍동규 시집- 우연에 기댈 때도 있었다**

 

게처럼 꼭 물고 놓지 않으려는 마음을

게 발처럼 뚝뚝 끊어버리고

마음없이 살고 싶다

조용히, 방금 스쳐간 구름보다도 조용히

마음 비우고가 아니라

그냥 마음없이 살고 싶다

저물녘, 마음속 흐르던 강물들 서로 얽혀

온 길 갈 길 잃고 헤맬 때

어떤 강물은 가슴 답답해 둔치에 기어올랐다가

할 수 없이 흘러내린다

그 흘러간 자리를

마음 사라진 자리로 삼고 싶다

내림 줄 쳐진 시간 본 적이 있는가?           ???

 

**풍장1/황동규**

 

내 세상 뜨면 풍장시켜다오

섭섭하지 않게

옷은 입은 채로 전자시계는 가는 채로

손목에 달아 놓고

아주 춥지는 않게

가죽가방에 넣어 전세 택시에 싣고 군산에 가서

검색이 심하면

공소쯤에 가서

통통배에 옮겨 실어다오

가방 속에서 다리 오그리고

그러나 편안히 누워 있다가

선유도 지나 무인도 지나 퉁통소리 지나

배가 육지에 허리 대는 기척에

잠시 정신을 잃고

가방 벗기우고 옷 벗기우고

무인도의 늦가을 차가운 햇빛 속에

구두와 양말도 벗기우고

손목시계 부서질 때

남몰래 시간을 떨어트리고

바람 속에 익은 붉은 열매에서 툭툭 튕기는 씨들을

무연히 안 보이듯 바라보며

살을 말리게 해다오

어금니에 박혀 녹스는 백금 조각도

바람 속에 빛나게 해 다오

바람 이불처럼 덮고

화장도 해탈도 없이

이불 여미듯 바람을 여미고

마지막으로 몸의 피가 다 마를 때까지

바람과 놀게 해다오

 

**풍장 70/황동규**

 

냇물 위로 뻗은 마른 나뭇가지 끝

저녁 햇빛 속에

조그만 물새 하나 앉아 있다

수척한 물새 하나

생각에 잠겼는가

냇물을 굽어보는가

물에 비친 자신의 모습을 보는가

조으는가

조으는가

꿈도 없이

 

**바람의 말/마종기**

 

우리가 모두 떠난 뒤

내 영혼이 당신 옆을 스치면

설마라도 봄 나뭇가지 흔드는

바람이라고 생각지는 마

 

나 오늘 그대 알았던

땅 그림자 한 모서리에

꽃나무 하나 심어놓으려니

그 나무 자라서 꽃피우면

우리가 알아서 얻은 모든 괴로움이

꽃잎 되어서 날아가버릴거야

 

꽃잎 되어서 날아가버린다

참을 수 없게 아득하고 헛된 일이지만

어쩌면 세상의 모든 일을

지척의 자로만 재고 살 건가

가끔 바람 부는 쪽으로 귀기울이면

착한 당신, 피곤해져도 잊지 마

아득하게 멀리서 오는 바람의 말을

 

**조그만 사랑노래/황동규 시집;나는 바퀴를 보면 굴리고 싶어진다**

 

어제를 동여맨 편지를 받았다

늘 그대 뒤를 따르던

길 문득 사라지고

길 아닌 것들도 사라지고

여기저기서 어린 날

우리와 놀아주던 돌들이

얼굴을 가리고 박혀 있다

사랑한다 사랑한다, 추위 환한 저녁 하늘에

찬찬히 깨어진 금들이 보인다                  ???

성긴 눈 날린다

땅 어디에 내려앉지 못하고

눈뜨고 떨며 한없이 떠다니는

몇 송이 눈

 

**시월/황동규**

 

1, 내 사랑하리 시월의 강물을

석양이 짙어가는 푸른 모래톱

지난날 가졌던 슬픈 여정들을, 아득한 기대를

이제는 홀로 남아 따뜻이 기다리리

 

2,지난 이야기를 해서 무엇하리

두견이 우는 숲 새를 건너서

낮은 돌담에 흐르는 달빛 속에

울리던 목금소리 목금소리 목금소리

 

3,며칠내 바람이 싸늘히 불고

오늘은 안개 속에 찬비가 뿌렸다

가을비 소리에 온 마음 끌림은

잊고 싶은 약속을 못다한 탓이리

 

4,아늬, 석등 곁에 밤 물소리             ???

누이야 무엇 하나 달이 지는데

밀물 지는 고물에서 눈을 감듯이         ????

바람은 사면에서 빈 가지를

하나 남은 사랑처럼 흔들고 있다

아늬, 석등 곁에 밤 몰소리

 

5,낡은 단청 밖으론 바람이 이는 가을날

잔잔히 다가오는 저녁 어스름

며칠내 며칠내 낙엽이 내리고 혹 싸늘히 비가 뿌려와서...

 

절 뒷울 안에 서서 마을을 내려다보면

낙엽 지는 느릅나무며 우물이며 초가집이며

그리고 방금 켜지기 시작한 등불들이 어스름 속에서

알 수 없는 어느 하나에로 합쳐짐을 나는 본다

 

6,창 밖에 가득히 낙엽이 내리는 저녁

나는 끝임없이 불빛이 그리웠다

 

바람은 조금도 불지않고 등불들은 다만

그 숱한 향수와 같은 것에 싸여가고

주위는 자꾸 어두워 갔다

 

이제 나도 한 잎의 낙엽으로

좀 더 낮은 곳으로 내리고 싶다

 

**마지막 날 2/황동규 시집. 연옥의 봄**

 

원한다고 될 일은 아니겠지만

사방에 녹음 넘칠 때 가고 싶다

초여름 농사철 막 끝난 후

조금 한가해진 신작로를 걷다 가고 싶다

녹음이 자연의 본색이라서가 아니다

겨울밤, 낮에 물고기 잡은 얼음 구멍에서

크고 작은 두 별이 도란대며 나란히 헤엄치는 모습처럼

자연의 품을 더 살갑게 보여주는 것도 있지 않은가?

 

냄새 자욱한 밤꽃이 가실 무렵

모든 추억의 냄새가 녹음처럼 다 비슷비슷해 질 때

우회도로 난 후

길 한가운데까지 쳐들어온 자갈과 풀에 신경주지 않고 걷다

갈림길에서 그만 길을 잃는다

두 길이 양옆에서 춤추듯 설렌다

평생 한 길 취하고 다른 한 길 버리는 일 하고 살았으니

마지막 한 번쯤 한꺼번에 둘 다 취해볼 수 있지 않을까?

 

**연옥의 봄 4**

 

휴대폰은 주머니에 넣은 채 갈 거다

마음 데리고 다닌 세상 곳곳에 널어뒀던 추억들

생각나는 대로 거둬 들고 갈 거다

개펄에서 결사적으로 손가락에 매달렸던 게

그 조그맣고 예리했던 아픔 되살려 갖고 갈거다

 

대낮이다. 밥집으로 갈까.

쥐똥나무 꽃 하얗게 핀 낮은 울타리 길을 걸을까?

꽃은 떨어져 훍으로 돌아가는데

떨어지는 높이가 낮을수록 뭔가 아쉽다는 생각이 든다................굴곡지지 않은 삶에 회의

흙이 아니면 아스팔트면?

피곤한 아스팔트 같은 삶의 피부에 비천상飛天像 하나 새기다

퍼뜩 정신 들어 손 털고 일어나 갈 거다

 

**푸르른 날/서정주**

 

눈이 부시게 푸르른 날은

그리운 사람을 그리워하자

 

저기 저기 저, 가을 꽃자리

초록이 지쳐 단풍드는데

 

눈이 내리면 어이 하리야

봄이 또오면 어이 하리야

내가 죽고서 네가 산다면

네가 죽고서 내가 산다면

 

눈이 부시게 푸르른 날은

그리운 사람을 그리워하자

 

**알 수 없어요/한용운**

 

바람도 없는 공중에 수직의 파문을 내며 고요히 떨어지는 오동잎은 누구의 발자취입니까?

지리한 장마 끝에 서풍에 몰려가는 무서운 검은 구름의 터진 틈으로, 언떳언뜻 보이는 푸른 하늘은 누구의 얼굴입니까?

꽃도 없는 깊은 나무에 푸른 이끼를 거쳐서, 옛 탑 위의 고요한 하늘을 스치는 알 수 없는 향기는 누구의 입김입니까?

근원을 알지도 못할 곳에서 나서 돌부리를 울리고, 가늘게 흐르는 작은 시내는 굽이굽이 누구의 노래입니까?

연꽃 같은 발끔치로 가이없는 바다를 밟고, 옥같은 손으로 끝없는 하늘을 만지면서, 떨어지는 해를 곱게 단장하는 저녁놀은 누구의 시입니까?

타고 남은 재가 다시 기름이 됩니다

그칠 줄 모르고 타는 나의 가슴은 누구의 밤을 지키는 약한 등불입니까?

 

**삼남에 내리는 눈/황동규**

 

봉준이가 운다.

무식하게 무식하게 일자 무식하게,

아 한문만 알았던들 부드럽게 우는 법만 알았던들

 

왕 뒤에 큰 왕이 있고 큰 왕의 채찍!

마패없이 거듭 국경을 넘는 저 보마步馬의 겨울 안개 아래 부챗살로 갈라지는 땅들

포砲들이 얼굴 망가진 아이들처럼 울어 찬 눈에 홀로 볼 비빌 것을 알았던들

계룡산에 들어 조용히 밭에 목매었으련만 목매었으련만,

대국낫도 왜낫도 잘 들었으련만

눈이 내린다.

우리가 무심히 건너는 돌다리에

형제의 아버지가 남몰래 앓는 초가 그늘에 귀기울여 보아라.

눈이 내린다. 무심히. 갑갑하게 내려앉은 하늘 아래 무식하게 무식하게

 

**이름 부르기/마종기**

 

우리는 아직 서로 부르고 있는 것일까

검은 새 한 마리 나뭇가지에 앉아

막막한 소리로 거듭 울어대면

어느 틈에 비슷한 새 한 마리 날아와

시치미 떼고 옆 가지에 앉았다

가까이서 날개로 바람도 만들었다

 

아직도 서로 부르고 있는 것일까

그 새가 언제부턴가 오지 않는다

아무리 이름 불러도 보이지 않는다

한적하고 가문 밤에는 잠꼬대 되어

같은 가지에서 자기 새를 찾는 새

 

방 안 가득 무거운 편견이 가라앉고 멀리 이끼 낀 기적소리가 낯설게

밤과 밤 사이를 뚫다가 사라진다

가로등이 하나씩 꺼지는 게 보인다

부서진 마음도 보도에 굴러다닌다

 

이름까지 감추고 모두 혼자가 되었다

우리는 아직도 서로 부르고 있는 것일까

 

<<20171102 당신을 부르며 살았다/마종기 시작 에세이>>

 

-각자 시 해석후 이 책을 읽기

시인과 의사 사람아 사람아

2015. 5. 8. 5:23

복사 http://blog.naver.com/wmc7000/2203531747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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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포스트를 보낸곳 (1)

 마종기 (76)는 의사이면서 시인이다.

그는 낮에는 미국 사람, 밤에는 한국 사람으로 평생을 살았다.

주중에는 의사로 일했지만 주말이 되면 골방에서 한국어로

시를 썼다. 미국으로 이민한 후에도 고국에서 꾸준히 시를

발표해 쉽고 평이한 언어로 인간에 대한 애정 어린 통찰을

담은 문학세계를 구축했다. 그의 고된 삶을 추동한 것은

고국에 대한 그리움이었다.

 

그의 아버지는우리나라 아동문학의 개척자 마해송(1905~1966)이다.

아들이 거의 반세기 만에 방문한 이 집은 부자(父子)간 추억이 곳곳에

짙게 서려 있다. 아버지는 건넌방 작은 소반에 무릎을 꿇고 글을 썼다.

 

" 한 번은 의대생 시절 시험 준비 하느라 밤늦게까지 공부하다 화장실에

가려고 마당으로 내려왔다. 마당에서 대여섯 발자국 떨어지지 않은 아버지

방문이 열려있었고 아버지는 건넛집 지붕에 피어 있는 흰 박꽃을 망연히

보고 계셨다. 나도 모르게 아버지 방 옆 툇마루로 다가갔는데, 아버지가

황급히 옷소매로 눈물을 훔쳐내는 것을 보았다. 아버지와 나는 환한 달밤에

청초하게 피어 있는 박꽃을 바라보며 꿈꾸듯 앉아 있었다. 그렇게 아름다운

박꽃을 본 적이 없었다. "

 

 

' 박꽃이 저렇게 아름답구나/ 네/ 아버지 방 툇마루에 앉아서 나눈 한마디/

얼마나 또 오래 딴생각을 하며/ 박꽃을 보고 꽃의 나머지 이야기를 들었을까/

이제 들어가 자려무나/ 네, 아버지/ 문득 돌아본 아버지는 눈물을 닦고 계셨다/

오래 잊었던 그 밤이 왜 갑자기 생각났을까/.../ 그분의 눈물은 이제야 가슴에

절절이 다가와....' (' 박꽃' 중에서 )

 

- 평생을 의사이자 시인으로 살았다. 두 분야는 접점을 찾기 어려울 것 같은데.

 

" 둘 다 고통에서 출발한다. 의학은 육체를 치유하고, 문학은 정신과 영혼을

치유한다. 인간을 치유한다는 공통점을 가지고 있다. 그 둘의 만남은 어쩌면

자연스러운 일이다. 시인과 의사는 다른 사람의 상처와 고통을 내 것으로

앓아야 한다는 점이다. "

 

- 부검하는 장면을 시로 표현하기도 했다. 그 끔찍한 장면이 어떻게 문학이

될 수 있는가 ?

 

" 의과대학 시절 시체를 찢고 자르던 해부학 시간은 충격적인 경험이자

시를 쓰게 만드는 촉매제가 되었다. 삶과 죽음에 대해 깊게 생각하게

만들고,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물음을 던졌다. "

 

- 시 쓰기가 즐거운 게 아니라 괴로운 과정이 될 것 같다.

 

" 나는 울면서 시를 썼다. 처음 미국 병원에서 1년 동안 인턴 생활을 하면서

100여명이 죽어가는 과정을 지켜보았다. 삶과 죽음의 갈림길에서 고통으로

신음하면서도 삶에 대한 절절한 희망을 놓지 않는 그들이 숨을 거두면서

얼굴을 적시는 눈물을 보았다. 가끔은 병실에서 이야기를 나누며 친구가

된 환자가 시름시름 앓다가 죽게 되면 부검을 하는 경우가 많은데, 며칠

전까지 자기 애인에 대해 이야기를 하던 환자 친구의 머리뼈를 전기톱으로

잘라내 뇌를 끄집어내고, 몸을 열어  폐와 심장, 간을 잘라내어 사인을

조사했다. 나같이 허약한 사람에게는 감당할 수 없는 괴로움이자 슬픔

이었다. "

 

- 보통사람으로는 견디기 어려운 상황이었을 것 같다.

 

" ...시가 나를 살려주었다. 몇 해 동안 이렇게 혹독한 인턴 생활은

엉뚱하게도 내 문학의 자양분이 되었다. 이런 과정이 없었다면 시를

쓰지 못했을 것이다. 시는 생명수이자 등대였다. 나에게 살 용기를

주었다. 낯선 이국 땅에서 유일한 위로였다. "

 

- 의사로서 수많은 죽음을 보았다. 마지막 순간, 그들의 얼굴에

무엇이 나타나던가 ?

 

" 금방 죽은 사람의 얼굴을 보면 거의 대부분 살아 있을 때보다

평온하다. 그런데 그 평화로운 표정의 죽은 이를 다시 자세히

보면 거의 언제나 한 줄기 눈물이 뺨을 적시고 있는 것을 발견

할 수 있다. 아는 병리학자에게 물어보니 죽은 후 눈물샘이

기능을 잃게 되어 생기는 현상이라고 했다. "

 

- 어떤 시가 좋은 시인가 ?

 

" 무엇보다 진실해야 한다.

문학은 억지로 만드는 것이 아니다.

가슴에서 우러나오는 거짓 없는 표현이어야 한다.

그런 시는 단순하고 이해하기도 쉽다. "

 

- 당신에게 인생은 무엇인가 ?

 

" 의사와 문인, 내게는 동전의 양면이었다.

이 둘 사이에서 때로 허둥대기도 했지만, 나중에 보니

서로 돕는 관계였다. 나는 시인이었기 때문에 외국에서

힘들다는 의사 생활을 잘 견뎌냈고, 내가 의사였기에

위안을 얻기 위해서라도 계속 시를 써올 수 있었다.

인생은 여행과 같다. 가고 싶어 길을 떠나기도 하지만,

가기 싫어도 할 수 없이 떠밀려가는 경우도 있다. 자기

뜻대로 떠난 여행이 아니더라도 값어치가 없는 건 아니다. "

 

시인은 눈물이 많았다.

명륜동 옛집을 구경하거나 먼저 간 동생 이야기를 할 때

그리고 아버지에 대한 추억에 잠길 무렵이면 어김없이

어린아이처럼 눈물이 가득 고였다. 그 눈물은 그의 작품

처럼 맑고 깨끗했다.

< 2015. 5. 2, 조선일보 Why ? 의사시인 마종기 인터뷰 중에서 >

 

시는 그의 친구이자 동반자였습니다.

시는 그에게 신앙이자  치료제였습니다.

의사의 눈으로  환자의 육신을 치료했지만

시인의 눈으로 환자에게 다가가려 했습니다.

환자를 상처 많고 깨어지기 쉬운 질그릇 같은

존재로 이해하려는, 마음 따뜻한 의사가 많

**정신과 병동/마종기**

 

비 오는 가을 오후에

정신과 병동은 서 있다

지금은 봄이지요, 봄 다음엔 겨울이 오고 다음엔 도둑놈이 옵니다. 몇 살이냐고요? 오백두 살입니다. 내 색시는 스물한 명이지요

 

고시를 공부하다 지쳐버린

튼튼한 이 청년은 서 있다

죽어가는 나무가 웃는다

글쎄, 바그너의 작풍이 문제라니 내가 웃고 말밖에 없죠

안 그렇습니까?

 

정신과 병동은 구석마다

원시의 이끼가 자란다

나르시스의 수면이

비에 젖어 반짝인다

 

이제 모두들 제자리에 돌아왔습니다

추상을 하다, 추상을 하다

추상이 되어버린 미술 학도

온종일 백지만 보면서도

지겹지 않고.-

가운 입은 삐에로는

비 오는 것만 쓸쓸하다

 

이제 모두들 깨어났습니다.

 

**시인의 등단 시

골다공증

                          -마종기

1
당신의 골수를 열 달이나 받아먹고
어머니, 내가 생겨났습니다.
동생들도 당신 뼈에 구멍만 뚫어
해 지난 갈대같이 속 빈 몸,
골다공증으로 늙으신 어머니,
당신 뼈가 얼마나 가벼워졌으면
바람까지 들락거리는 큰 길 사이로
먼 데 어디 날아가실 준비까지 하시는지.

2
나는 덱사 스캔과 간단한 숫자 계산으로 수많은 공다공증을 진단해주고 돈을 벌었다. 당신의 뼈에는 5천 개의 구멍, 당신의 살에는 8천 개의 구멍, 당신은 구멍 난 풍선이나 타이어처럼 매일 몸이 줄어들고 목숨의 생기도 빠져나간다. 정신이 누추해져서 잠들지 못하는 밤이면 뼈들은 답답해서 자기 가슴에 구멍을 뚫고, 신산한 세상살이의 대못과 시달림, 아파서 못을 뺀 자리에 피투성이 구멍들.

3
아무도 관심 없는 일이기는 하지만
이제 나도 모든 것을 덮을 때가 되었다.
돌아보면 구멍 많은 당신도 가엽고
바닥 터진 내 지나온 날들도 가엽다.
숨지 마라, 지 지은 지상의 모든 구멍들
암, 다시 보면 세상에 가엽지 않은 게 없지.

벌거벗은 뼈들이 추위를 더 느끼는가.
의과대학 해부학 시간 사람의 뼈들
동맥도 정맥도 더 이상 도착하지 않고
내 마른 손바닥만 핏빛으로 적시던
잊지 마라, 섬세해진 그대 몸짓 속에서
빈 뼈가 서로 만나 불 지피던 날들.

뼈가 운다. 운율 맑은 피리 되어
비 내리는 어두움에 외톨이로 운다.
얇고 가늘어진 뼈 대책 없이 부러지고
안타까웠던 집착도 아픔만으로 기억될 뿐,
더 기다릴 명분도 신음 소리 하나로 떠나고
뼈를 태워 불치의 재가 되어 내가 떠난다.

 
**물빛/마종기** 

 

내가 죽어서 물이 된다는 것을 생각하면 가끔 쓸쓸해 집니다. 산골짝 도랑에 섞여 흘러내릴 때 그 작은 물소리를 들으면서 누가 내 목소리를 알아 들을까요

냇물에 섞인 나는 물이 되었다고 해도 처음에는 깨끗하지 않겠지요. 흐르면서 또 흐르면서 생전에 지은 죄를 조금씩 씻어내고 생전에 맺혀 있던 여한도 씻어내고

외로웠던 저녁 슬펐던 앙금들을 한 개씩 씻어내다보면 결국에 욕심 다 벗은 깨끗한 물이 될까요 정말 깨끗한 물이 될 수 있다면 그때는 내가 당신을 부르겠습니다

당신은 그 물속에 당신을 비쳐 보여주세요 내 목소리를 귀담아 들어주세요 나는 허황스러운 몸짓을 털어내고 웃으면서 당신과 오래 같이 살고 싶었다고 고백하겠습니다

당신은 그제서야 처음으로 내 온 몸과 맘을 함께 가지게 될 것입니다 누가 누구를 송두리째 가진다는 뜻을 알 것 같습니까 부디 당신이 그 물을 떠서 손도 씻고 목도 축이세요 당신의 피곤했던 한 세월의 목마름도 조금은 가셔 지겠지요 그러면 나는 당신의 몸 안에서 당신이 될 것입니다

그리고 나는 내가 죽어서 물이 된 것이 전혀 쓸쓸한 일이 아닌 것을 비로소 알게 될 것입니다

 

**박꽃/마종기**

 

그날 밤은 보름당이었다

건넛집 지붕에는 흰 박꽃이

수없이 펼쳐져 피어 있었다

한밤의 달빛이 푸른 아우라로

박꽃의 주위를 감싸고 있었다

-박꽃이 저렇게 아름답구나

-네, 아버지

문득 돌아본 아버지는 눈물을 닦고 계셨다

 

오래 잊었던 그 밤이 왜 갑자기 생각났을까

내 아이들은 박꽃이 무엇인지 한번 보지도 못하고

하나씩 나이 차서 집을 떠났고

그분의 눈물은 이제야 가슴에 절절이 다가와

떨어져 잇는 것이 하나 외롭지 않고

내게는 귀하게만 여겨지네

 

**우화의 강1/마종기**

 

사람이 사람을 만나 서로 좋아하면

두 사람 사이에 물길이 튼다

한쪽이 슬퍼지면 친구도 가슴이 메이고

기뻐서 출렁거리면 그 물살은 맑게 빛나서

친구의 웃음소리가 강물의 끝에서도 들린다

 

처음 열린 물길은 짧고 어색해서

서로 물을 보내고 자주 섞여야겠지만

한세상 유장한 정성의 물길이 흔할 수야 없겠지

넘치지도 마르지도 않는 수려한 강물이 흔할 수야 없겠지

 

긴말 전하지 않아도 미리 물살로 알아듣고

몇 해쯤 만나지 못해도 밤잠이 어렵지 않은 강

아무려면 큰 강이 아무 의미도 없이 흐르고 있으랴

세상에서 사람을 만나 오래 좋아하는 것이

죽고 사는 일처럼 쉽고 가벼울 수 있으랴

 

큰 강의 시작과 끝은 어차피 알 수 없는 일이지만

물길을 항상 맑게 고집하는 사람과 친하고 싶다

내 혼이 잠잘 때 그대가 나를 지켜보아주고

그대를 생각할 때면 언제나 싱싱한 강물이 보이는

시원하고 고운 사람을 친하고 싶다

 

**담쟁이 꽃/마종기**

 

내가 그대를 죄 속에서 만나고

죄 속으로 이제 돌아가느니

아무리 말이 없어도 꽃은

깊은 고통 속에서 피어난다

 

죄 없는 땅이 어느 천지에 있던가

죽은 목슴이 몸서리치며 털어버린

핏줄의 모든 값이 산불이 되어,,,,,,,,,???

내 몸이 어지럽고 따뜻하구나

 

따듯하구나, 보지도 못하는 그대의 눈

누가 언제 나는 살고 싶ㄹ다며

새 가지에 새순을 펼쳐내던가

무진한 꽃 만들어 장식하던가

또 몸 풀 듯 꽃잎 다 날리고

헐벗은 몸으로 작은 열매를 키우던가

누구에겐가 밀려가며 사는 것도

눈물겨운 우리의 내력이다

나와 그대의 숨어 있는 뒷일도

꽃잎 타고 가는 저 생의 내력이다

 

**꽃의 이유/마종기**

 

꽃이 피는 이유를

전에는 몰랐다

꽃이 필 적마다 꽃나무 전체가

작게 떠는 것도 몰랐다

 

꽃이 지는 이유도

전에는 몰랐다

꽃이 질 적마다 나무 주위에는

잠에서 깨어나는

물 젖은 바람 소리

 

사랑해본 적이 있는가

누가 물어보면 어쩔까

 

**비 오는 날/마종기**

 

구름이 구름을 만나면

큰 소리를 내듯이

아, 하고 나도 모르게 소리치면서

그렇게 만나고 싶다, 당신을

 

구름이 구름을 갑자기 만날 때

훤한 불을 일시에 켜듯이

나도 당신을 만나서

잃어버린 내 길을 찾고 싶다

 

비가 부르는 노래의 높고 낮음을

나는 같이 따라 부를 수가 없지만

비는 비끼리 만나야 서로 젖는다고

당신은 눈부시게 내게 알려준다

 

**하늘/박두진**

 

하늘이 내게로 온다

여릿여릿

머얼리서 온다

 

하늘은, 머얼리서 오는 하늘은

호수처럼 푸르다

 

호수처럼 푸른 하늘에

내가 안긴다 온몸이 안긴다

 

가슴으로, 가슴으로

스미어드는 하늘

향기로운 하늘의 호흡

 

따가운 볕

초가을 햇볕으로

목을씻고

나는 하늘을 마신다

자꾸 목말라 마신다

 

마시는 하늘에

내가 익는다

능금처럼 마음이 익는

 

**추억/조병화**

 

잊어버리자고

바다 기슭을 걸어보던 날이

 

하루

이틀

사흘

 

여름 가고

가을 가고

 

조개 줍는 해녀의 무리 사라진 겨울

 

잊어버리자고

바다 기슭을 걸어보던 날이

 

하루

이틀

사흘

 

**늘, 혹은/조병화**

 

늘, 혹은 때때로

생각나는 사람이 있다는 건

얼마나 즐거운 일인가

 

늘, 혹은 때때로

보고 싶은 사람이 있다는 건

얼마나 즐거운 일인가

 

카랑카랑 세상을 떠나는

시간들 속에서

 

늘, 혹은 때때로

그리워지는 사람이 있다는 건

얼마나 인생다운 일인가

 

그로 인하여

적적히 비어 있는 이 인생을

가득하게 채워 가며 살아 갈 수 있다는 건

얼마나 고마운 일인가

 

가까이, 멀리, 때로는 아주 멀리

보이지 않는 곳에서라도

끊임없이 생각나고, 보고 싶고

그리워지는 사람이 있다는 건

얼마나 지금, 내가

아직도 살아 있다는 명확한 확인인가

 

아, 그러한 네가 있다는 건

얼마나 따사로운 나의 저녘 노을인가

 

<171130김용택의 시집/울고 들어온 너에게/창비>

-중심어: 살다, 어느 날

-글이란 체험의 생활철학을 쉽게 쓰는 것

 

**울고 들어온 너에게**

 

따듯한  아랫목에 앉아 엉덩이 밑으로 두 손 넣고 엉덩이를 들었다 놨다 되작거리다보면 손도 마음도 따뜻해진다.

그러면 나는 꽝꽝 언 들을 헤메다 들어온 네 얼굴을 두 손으로 감싼다

 

**어느날**

 

나는

어느날이라는 말이 좋다

 

어느날 나는 태어났고

어느날 당신도 만났으니까

 

그리고 오늘도 어느날이니까.

 

나의 시는

어느날의 일이고

어느날에 썼다

 

**쉬는 날**

 

사느라고 애들 쓴다

오늘은 시도 읽지 말고 모두 그냥 쉬어라

맑은 가을 하늘가에 서서

시드는 햇볕이나 발로 툭툭 차며 놀아라

 

**받아쓰다**

 

어머니는 글자를 모른다. 글자를 모르는 어머니는 자연이 하는 말을 받아 땅 위에 적었다. 봄비가 오면 참깨 모종을 들고 밭으로 달려갔고, 가을 햇살이 좋으면 돌담에 호박쪼가리를 널어두었다가 점심때 와서 다시 뒤집어 널었다. 아침에 비가 오면 "아침 비 맞고는 서울도 간다"고 비옷을 챙기지 않았고 "야야, 빗낯 들었다"며 비의 얼굴을 미리 보고 장독을 덮고 들에 나갔다. 평생 바다를 보지 못했어도 아침저녁 못자리에 뜨는 볍씨를 보고 조금과 사리를 알았다. 감잎에 떨어지는 소낙비, 밤에 우는 소쩍새, 새벽하늘 구석의 조각달, 달무리 속에 갇힌 보름달, 하얗게 뒤집어지는 참나무 잎, 서산머리의 샛별이 글자였다. 난관에 처할 때마다 어머니는 살다가보면 무슨 수가 난다고 했다. 세상에는 내가 가보지 못한 수가 얼마나 많은가. 마을에서 일어나는 일이 남의일 같지 않다고 했다. 사람이 그러면 못쓴다고 했다. 어머니는 해와 달이, 별과 바람이 시키는 일을 알고 그것들이 하는 말을 땅에 받아적으며 있는 힘을 다하여 살았다

 

**그동안**

 

농부의 아들로 태어났다

초등학교 선생이 되어 살았다

글을 썼다

쓴 글 모아보았다

꼬막 껍데기 반의반도 차지 않았다

회한이 어찌 없었겠는가

힘들 때는 혼자 울면서 말했다

울기 싫다고 그렇다고

궂은일만 있었던 것은 아니다

덜 것도

더할 것도 없다

살았다

 

**생각하기 전**

 

앞산에 바람 분다

나는 마른 참나무 잎 부딪치는 소리를 들으면서도 잠이 든다

떳떳한 아침 소낙비

오후 늦게서야 시작하는 걱정없는 부슬비

싸리나무 노란 잎이 지는 소리에도

나는 밖을 내다보지 않는다

소쩍새가 산에서 운다

그 산이 어느 편 산일까 분간하지 않는다

때로 밤을 새워 구른 자갈들이 내 등을 파고 들 때도 있다

그러나 나는 산그늘 뒤를 따라 내려오며 서리피는 어둠을

두려워하지 않는다

어떤 날은 돌아누운 앞산 어께에 팔을 두르고 허리에 오른발을 얹고 근심없이 잔 날도 있다

그러나 그런 것들이

나에게 다 무슨 소용인가

생각하기 전에 본 그대 얼굴이 나는 좋다

 

**오래된 손**

 

김제 가서 할머니들에게 강연하였다

살아온 날들을 확인시켜주었다

저 어른들이 짊어진 짐 위에 더 무엇을 얹는단 말인가

지금까지 짊어지고 걸어온 짐만 해도 힘에 겨운 한짐이다

할머니들은 고개를 끄덕이며 나를 환하게 바라보았다

좋은 말 들었다며, 자기 속을 들어갔다 나온 것 같다며

오래된 두 손으로 내 두 손을 덮어주었다

 

**오래 한 생각**

 

어느날이었

산 아래

물가에 앉아 생각하였다

많은 일들이 있었고

또 있겠지만

산같이 온순하고

물같이 선하고

바람같이 쉬운 시를 쓰고 싶다고

사랑의 아픔들을 겪으며

여기까지 왔는데 바람의 괴로움을

내 어찌 모르겠는가

 

나는 이런

생각을 오래 하였다

 

**건널목**

 

나는 많은 것을 배웠다

그러나

배운대로 살지 못했다

늦어도 한참 늦지만

지내놓고 나서야

그것은 이랬어야 했음을 알았다

나는 모르는 것이 많다

다음 발길이 닿을

그곳을 어찌 알겠는가

그래도 한걸음 딛고

한걸음 나아가 낯모르는 사람들과 함께

신호를 기다리며

이렇게 건널목에 서 있다

 

**우주에서**

 

어머니와 치과에 다녀왔다

몸이 자꾸 한쪽으로 기울어지는

어머니 손을 잡았다

어머니가 내 손을 꼭 쥐며 나를 올려다본다

어머니의 눈에는 깊고도 아득한

인류의 그 무엇이 있다

살아온 날들이 지나간다

어머니, 그리고 어머니

 

**개도 안 짖는다**

 

무엇인가를 잘못 눌러

써놓은 시들이 다 날아갔다

머릿속이 하애졌다

 

며칠 후 세편이 돌아왔다

한편은

마당에 우두커니 서 있고

두편은 뭐가 불편한지

자꾸 밖을 내다본다

 

돌아오지 않은 몇편 중에

어떤 시는 눈썹이 생각나기도 하고

어떤 시는 아랫입술이 생각나기도 하고

어떤 시는 귓불 밑 까만 점이 생각난다

언젠가는

그것들이 모습을 갖추고

돌아올지도 모른다

 

개의치 않겠다

나머지는 어디로 갔는지

이웃집 개도 안 짖었다

 

**도착**

 

도착했다

몇해를 걸었어도

도로 여기다

아버지는 지게 밑에 앉아

담뱃진 밴 손가락 끝까지

담뱃불을 빨아들이며

내가 죽으면 여기 묻어라, 하셨다

살아서도 죽어서도 여기다

일어나 문을 열면 물이고 누우면 산이다

무슨일이 있었는가

해가 떴다가 졌다

아버지와 아버지 그 아버지들, 실은 오래된 것이 없다,,,,,???

하루에도 몇 번씩 물을 건넜다

모든 것이 어제였고

오늘이었으며 어느 순간이 되었다.

비로소

나는 아버지의 빈손을 보았다

흘러가는 물에서는

달빛 말고 건져올 것이 없구나

아버지가 창살에 비친 새벽빛을 맞으러 물가에 이르렀듯

또다른 생인 것처럼 나는

오늘 아버지의 물가에 도착하였다

 

<<171207 밥 관련 시>>

 

**밥숟가락에 우주가 얹혀있다/김종구**

 

그렇다

해의 살점이다

바람의 뼈다

물의 핏더이다

흙의 기름이다

우주가 꼴깍 넘어가자

밤하늘에 쌀별

반짝반짝 눈뜨고 있다

 

**밥/이무원**

 

어머니 누워 계신 봉분

고봉밥 같다

꽁보리밥

풋나물 죽

먹어도 먹어도 배가 고픈데

늘 남아도는 밥이 있었다

더 먹어라

많이 먹어라

나는 배 안고프다

남아돌던

어머니의 밥

저승에 가서도 배곯으셨나

옆구리가 약간 기울었다

 

**마당밥/안도현**

 

일찍 나온 초저녁별이

지붕 끝에서 울기에

평상에 내려와서

밥 먹고 울어라, 했더니

그날 식구들 밥그릇 속에는

별이 참 많이 뜨더라

찬없이 보리밥 물 말아먹는 저녁

옆에, 아버지 계시지 않더라

 

**밥에 대한 예의/문성해**

 

폭설 내리고 한 달

나무들은 제 그늘 속에

아직도 녹지 않은 눈을 내달고 있다

나중에 먹으려고 남겨둔

식은 밥처럼

 

인근 취로사업장에서 이곳 공원으로 찾아든 아낙들이

도시락을 먹는다

그동안 흰 눈밥이 너무 싱거웠던가

물씬 피아나는 파김치와 깻잎 장아찌 냄새에

조용하던 나뭇가지 한 순간 일렁인다

 

어서 흰 밥덩이를 모두 해치우고

또 보드블록을 교체하러 가야 하는 저이들

밀어넣은 밥숟갈이 너무 크다

크고 헐렁한 위장은 또 얼마나 위대한가

 

그러나

나무들은 천천히 눈밥을 녹여가며 먹는다

저번 눈밥보다 맛이 어떤가 음미하면서

서서히 뿌리가 가지로  맛을 전하면서

제 뭄의 기관들 일제히 물오르는 소릴 들으면서

나무들은 할 수 있는 모든 예우를 다 갖추어

눈밥을 떠 먹는다

 

**길 위의 식사**

 

사발에 담긴 둥글고 따뜻한 밥이 아니라

비닐 속에 든 각진 찬 밥이다

둘러앉아 도란도란 함께 먹는 밥이 아니라

가축이 사료를 삼키듯

선 채로 혼자서 허겁지겁 먹는 밥이다

고수레도 아닌데 길 위에 밥알 흘리기도 하며 먹는 밥이다

반찬없이 국물없이 목메게 먹는 밥이다

울컥, 몸 안쪽에서 비릿한 설음 치밀어 올라 오는 밥이다

피가 도는 밥이 아니라 으스스 몸에 한기가 드는 밥이다

 

**객지밥/이덕규**

 

빈 그릇에 소복이 고봉으로 담아놓으니

꼭 무슨 등불 같네

한 밤을 건너기 위해

혼자서 그 흰 별 무리들을 어두운 몸속으로

꾸역꾸역 밀어넣는 밤

누가 또 엎어버렸나

흰 쌀밥의 그늘에 가려 무엇 하나 밝혀내지 못한

억울한 시간의 밥상 같은

창 밖, 저 깜깜하게 흉년 든 하늘

개다리 소반위에

듬성듬성 흩어져 반짝이는 밥풀들을

허기진 눈빛으로 정신없이 주워 먹다

목 메이는 어둠 속

덩그러니, 불 꺼진 밥 그릇 하나

 

**새벽밥/김승희**

 

새벽에 너무 어두워

밥솥을 열어 봅니다

하얀 별들이 밥이 되어

으스러져라 껴안고 있습니다

별이 쌀이 될 때까지

쌀이 밥이 될 때까지 살아야합니다

그런 사랑 무르익고 있습니다

 

**밥/장석주**

 

귀 떨어진 개다리 소반 위에

밥 한 그릇 받아놓고 생각한다

사람은 왜 밥을 먹는가

살려고 먹는다면 왜 사는가

한 그릇의 더운 밥을 먹기 위하여

나는 몇 번이나 죄를 짓고

몇 번이나 자신을 속였는가

밥 한 그릇의 사슬에 매달려 있는 목숨

나는 굽히고 싶지않은 머리를 조아리고

마음에 없는 말을 지껄이고

가고 싶지 않은 곳에 발을 들여놓고

잡고 싶지 않은 손을 잡고

정작 해야 할 말을 숨겼으며

가고 싶은 곳을 가지 못했으며

잡고 싶은 손을 잡지 못했다

나는 왜 밥을 먹는가, 오늘 다시 생각하며

내가 마땅히했어야 할 양심의 말들을 파기하고

또는 목구멍 속에 가두고

그 대가로 받았던 몇 번의 끼니에 대하여 부끄러워한다

밥 한 그릇 앞에 놓고,

아아 나는 가롯 유다가 되지 않기 위하여 기도한다

밥 한 그릇에 나를 팔지 않기 위하여

 

**쌀 한 톨/정호승**

 

쌀 한 톨 앞에 무릎을 꿇다

고마움을 통해 인생이 부유해진다는

아버님의 말씀을 잊지 않으려고

쌀 한 톨 안으로 난 길을 따라 걷다가

해질녘

어깨에 삽을 걸치고 돌아가는 사람들을 향해

무릎을 꿇고 기도한다

 

** 밥 생각/김기택**

 

차가운 바람 퇴근길 더디 오는 버스 어둡고 긴 거리

희고 둥근 한 그릇 밥을 생각한다

텅 비어 쭈글쭈글해진 위장을 탱탱하게 펴 줄 밥

꾸륵꾸륵 소리 나는 배를 부드럽게 만져줄 밥

춥고 음침한 뱃곡을 따뜻하게 데워 줄 밥

잡 생각들을 말끔하게 치워 버려주고

깨끗해진 머리속에 단정하게 들어오는

하얀 사기 그릇 하얀 김 하얀 밥

머리 가득 밥 생각 마음 가득 밥 생각

밥 생각으로 점점 배불러지는 밥 생각

한 그릇 밥처럼 환해지고 동그래지는 얼굴

그러나 밥을 먹고 나면 배가 든든해지면

다시 난폭하게 말려 들어올 오만가지 잡생각

머릿속이 뚱뚱해지고 지저분 해지면

멀리 아주 멀리 사라져 버릴 밥 생각

 

**긍정적인 밥/함민복**

 

시 한편에 삼만 원이면

너무 박하다 싶다가도

쌀이 두 말인데 생각하면

금방 마음이 따뜻한 밥이 되네

 

시집 한 권에 삼천원이면

든 공에 비해 헐하다 싶다가도

국밥이 한 그릇인데

내 시집이 국밥 한 그릇만큼

사람들 가슴을 따뜻하게 덥혀 줄 수 있을까

생각하면 아직 멀기만 하네

 

시집이 한 권 팔리면

내게 삼백 원이 돌아온다

박리다 싶다가도

굵은 소금이 한 됫박인데 생각하면

푸른 바다처럼 상할 마음 하나 없네

 

**술과 밥/김소월**

 

못 먹어 아니 죽는 술이로다

안 먹고는 못 사는 밥이로다

별하다 이 세상아 모를 일아

술을 좀 답지 않게 못 여길가

 

술 한 잔 먹자하면 친구로다

밥 한 술 나누자면 남이로다

술 한 합에 돈 닷 돈 쌀은 서 돈

비싼 술을 주니 살틀턴가

 

술이야 계집이야 좋다마는

밥 발라 올 때에도 그러할까

별하다 이 세상아 모를 일아

밥 나눌 친구 하나 못생길까

 

*본명 김정식 출몰1902-34, 32세 자살,약관 20세이던 1922-27 왕성한 활동

초혼


  김소월



산산이 부서진 이름이여!
허공중에 헤어진 이름이여!

불러도 주인 없는 이름이여!
부르다가 내가 죽을 이름이여!


심중에 남아 있는 말 한 마디는
끝끝내 마저 하지 못하였구나.

사랑하던 그 사람이여!
사랑하던 그 사람이여!


붉은 해는 서산 마루에 걸리었다.
사슴의 무리도 슬피 운다.

떨어져 나가 앉은 산 위에서,,,,,,,,,,,,,????????
나는 그대의 이름을 부르노라.


설움에 겹도록 부르노라.
설움에 겹도록 부르노라.

부르는 소리는 빗겨 가지만
하늘과 땅 사이가 너무 넓구나.


선 채로 이 자리에 돌이 되어도
부르다가 내가 죽을 이름이여!

사랑하던 그 사람이여!
사랑하던 그 사람이여!

 

 **김소월(金素月 1902 ∼1934).

한국을 대표하는 민족시인.

1904년 처가로 가던 부친 김성도는 정주군과 곽산군을 잇는
철도 공사장의 일본인 목도꾼들에게 폭행당한 후 정신 이상자가 되었다.
이후 김소월은 광산을 경영하는 조부의 손에서 컸다.
김소월에게 이야기의 재미를 가르쳐 주어 영향을 끼친 숙모
계희영을 만난 것도 이 무렵이다.
남산보통학교를 졸업하고 1915년 오산학교에서 조만식선생과
평생 문학의 스승이 될 김억을 만났다.
김억의 격려를 받아 1920년 동인지 《창조》5호에 처음으로 시를 발표했다.
오산학교를 다니는 동안 김소월은 왕성한 작품 활동을 했으며,
1925년에는 생전의 유일한 시집인 《진달래꽃》을 발간했다.
1916년 오산학교 재학 시절 고향 구성군 평지면의 홍단실과 결혼했다.
3·1 운동 이후 오산학교가 문을 닫자 배재고보 5학년에 편입해서 졸업했다.
1923년에는 도교 상업대학교에 입학하였으나, 같은 해 9월에
관동대지진이 발생하자 중퇴하고 귀국했다.


이 무렵 서울 청담동에서 나도향과 만나 친구가 되었고《영대》동인으로 활동했다.
김소월은 고향으로 돌아간 후 조부가 경영하는 광산일을 도왔으나
일이 실패하자 처가인 구성군으로 이사하였다.
구성군 남시에서 개설한 동아일보 지국마저 실패하는 바람에
극도의 빈곤에 시달렸다.본래 예민했던 그는 정신적으로 큰 타격을 받고
술로 세월을 보냈으며, 친척들로부터도 천시를 당했다.
1934년 12월 24일 곽산에서 아편을 먹고 음독자살한 시체로 발견되었다.
사후 43년만인 1977년 그의 시작 노트가 발견되었는데,
여기에 실린 시들 중에 스승 김억의 시로 이미 발표된 것들이 있어
사람들을 놀라게 했다.김억이 제자의 시를 자신의 시로 둔갑시켜 발표했던 것이다.
1981년 금관 문화훈장이 추서되었으며 서울 남산에 그를 기리는 시비가 있다.



소월 김정식 시비. 서울 남산공원 소재

 

 

초혼(招魂)은 1925년 12월, 김소월이 펴낸 시집 《진달래꽃》에서 처음 발표된 시다.
초혼은 임의 죽음으로 인한 슬픔과 그리움을 담고 있다.
시의 갈래는 서정시, 자유시이며 민요적, 전통적, 격정적, 애상적 성격을 가졌다.
7.5조의 3음보로 쓰였으며 슬픔을 격정적으로 표현한 것이 특징이다

  

이 시에서 소월이 표현하고 있는 죽은 대상이 누구인지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소월이 설움에 겹도록 부르고 있는, 사랑하는 사람은 누구일까?
시인이 애타게 부르고 있는 이름의 주인공은 소월이 사랑했던 여성
"오순" 이라는 이름의 여인이었다고 한다.
그렇다면 소월과 "오순"이라는 여성은 어떤 사이였을까?
소월은 십대 초반 같은 동네에 살고있는 3살 위의 여자아이 오순을 만난다.
둘의 관계는 친구사이의 우정에서 이성간에 느끼게 되는 사랑으로 발전한다.
둘은 남산에 있는 냉천터 폭포수 아래서 몰래 만나기를 즐겨했다고 한다.
그러나 두 사람의 사랑은 평탄치 않았다.
소월의 할아버지가 친구의 손녀 홍실단이와 정혼을 약속했기 때문이다.
소월은 14세가 되던 해 할아버지가 정혼한 대로 맘속에는 오순에게의
사랑을 간직한 채로 홍실단이와 혼인을 한다.
소월과 오순은 사랑하지만 만날 수 없는 사이가 되고 만다.
오순은 소월이 19세가 되던 무렵 결혼을 한다.
하지만 그녀의 결혼은 불행했다고 한다.
그녀의 남편은 의처증이 심했고, 그로 인해 오순은 남편으로부터
가혹한 학대를 받아야 했다.
소월이 22세 되던 해에 오순이 세상을 떠난다.
그녀는 대꼬챙이처럼 말라죽었다고 전해지는데 이는
소월에 대한 상사의 아픔 때문이었다고 한다.
그로부터 2년 후 소월은 "진달래꽃"에 <초혼>을 발표한다.
소월은 33세가 되던해 마약덩이를 먹고 자살한다.  

 

**흰 밥/김용택**

 

해는 높고

하늘이 푸르른 날

소와 쟁기와 사람이 논을 고르고

사람들이 맨발로 논에 들어가

하루종일 모를 낸다

왼손에 쥐어진

파란 못잎을 보았느냐

캄캄한 흙 속에 들어갔다 나온

아름다운 오른손을 보았느냐

그 모들이

바람을 타고 쓰러질 듯 쓰러질 듯 파랗게

뭄을 굽히며 오래오래 자라더니

흰 쌀이 되어 우리 발 아래 쏟아져

길을 비추고

흰 밥이 되어

우리 어둔 눈이 열린다

 

흰 밥이 어둔 입으로 들어갈 때 생각하라

사람이 이 때에 할 짓이 무엇이더냐

 

**유리창/박형준**

 

국자별이                                                              ->국자 모양의 별

어머니의 옹이 진 손이 뚝뚝 떠내는 밀가루 반죽처럼

유리창에 주르륵 흘러내린다

 

멀건 수제비 국물에 비친

어린아이의 울음을 데리고 온 별이

고요히 끓고 있다

부엌 아궁이에 얼굴을 밀어넣고

생솔 타는 연기에

눈이 붉어지시던 어머니

 

유리창에 꼬리만 남은 저 저녁빛

 

<<171214 69년생 박지웅 시인 시 중심/시집-빈 손가락에 나비가 앉았다>>

 

**우리 엄마/박지웅**

 

엄마는 쥐구멍이었다
나 살다가 궁지에 몰리면
언제나 줄달음치는 곳
어떤 손아귀도 들어올 수 없는
운명도 멈추어 기다리는 곳
신도 손댈 수 없는 성지
파괴되지 않는 끄떡없는 별이었다
나 살다가 길 잃으면
예서 다시 고개 내밀라고
가슴 오려 쥐구멍으로 살았다
볕 들 날도 없이
엄마는 마지막 한 방울까지 엄마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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