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펌)성경섭 칼럼 <8> 고슴도치 콘셉트 / 심성락

그대 그리고 나/포항 2016. 9. 11. 11:10

성경섭 칼럼 <8> 고슴도치 콘셉트 / 심성락
 
  작성자: 사색의향기   /  작성일 : 2016-08-09 12:50
고슴도치 콘셉트 / “즐기는 것에 성공의 비결이 있다”
심성락 / 바람의 노래를 들려주는 연주가
 
- 성경섭 방송인
 
 
고슴도치 콘셉트 / “즐기는 것에 성공의 비결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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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가 숲속 길섶에 숨어서 고슴도치를 기다리고 있다. 아무 것도 모른 채 지나가는 고슴도치를 덮칠 계획이다. 때 마침 채 고슴도치 한 마리가 다가온다. 고슴도치를 낚아채기 위해 여우가 후다닥 뛰쳐나간다. 하지만 고슴도치는 잽싸게 몸을 돌돌 말아 가시가 돋친 공으로 변신한다. 가시에 찔린 여우는 눈물을 머금고 고슴도치 잡기를 포기한다.
고슴도치와 여우는 이솝우화에 등장하는 단골손님들이다. 여우는 항상 고슴도치를 못 잡아먹어 으르렁대지만 둘의 싸움에서 이기는 쪽은 언제나 고슴도치다. 민첩하고 교활한 여우지만 자신을 지키는 방법 하나만은 확실하게 알고 있는 고슴도치를 당해내지 못하는 것이다.
 
요즘 유행어 중에 ‘덕업일치’라는 말이 있다. 어떤 분야에 마니아 이상의 열정과 흥미를 가진 사람이란 뜻으로 1970년대 일본에서 등장한 신조어 ‘오타쿠(オタク)’를 한국식 발음으로 바꿔 부른 말이 ‘오덕후’이고 ‘덕후’는 ‘오덕후’의 줄임말이다. 그러니까 ‘덕업일치’란 마니아 이상의 열정과 흥미를 가진 일을 직업으로 삼는다는 의미가 담긴 말이다.
‘덕업일치’의 모델케이스가 된 젊은이들의 얘기도 화젯거리다. ‘강박증’이라고 할 만큼 수집과 정리에 몰두했던 젊은이는 사전 만들기에 빠져 방대한 검색 웹 사전을 만들어 냈다. 어린 시절 영화 ‘아름다운 비행’을 보고 비행기에 매료됐던 또 다른 젊은이는 조선의 발명가인 정평구가 임진왜란 때 만들어 사용했다고 전해지는 ‘비거(飛車)’를 재현해 냈다. 비행기에 대한 열정으로 항공우주공학을 전공하고 군대도 공군정비병으로 다녀왔다. ‘덕후’들의 호기심과 열정이 때로는 세상을 바꾸는 동력이 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사례다.
 
다시 고슴도치로 돌아가서..
 
세계적인 경영학자 짐 콜린스는 그의 저서 ‘좋은 기업을 넘어, 위대한 기업으로’에서 ‘고슴도치 콘셉트(hedgehog concept)’를 제시한다. 고슴도치는 단순하다. 위험이 닥치면 가시 돋친 몸을 뭉쳐 방어하는 그것 하나밖에 모른다. 모든 것을 하나의 개념이나 원리로 단순화하고 이에 맞추는 것이다.  위대한 기업들을 보면 하나같이 이 고슴도치와 같은 특성을 가지고 있다는 것이다.
짐 콜린스가 말한 ‘고슴도치 콘셉트’는 고대 그리스 우화를 소재로 한 영국의 철학자 이사야 벌린(Isaiah Berlin)의 수필 ‘고슴도치와 여우(The Hedgehog and the Fox)’에서 따온 것이다. 이사야 벌린은 그리스 시인 아르킬로쿠스(Archilochus)의 ‘여우는 많은 것을 알고 있지만 고슴도치는 한 가지 큰 것을 알고 있다’는 시 구절을 인용하면서 역사학자와 철학자들을 여우 형과 고슴도치 형으로 나눈다. 여우 형은 사물의 세세한 부분까지 골고루 알고 있는 반면, 고슴도치 형은 사물을 단순화해 전체로의 큰 틀로 이해한다.
 
벌린은 이 우화에 빗대 사람들을 여우 형과 고슴도치 형의 두 그룹으로 나누었다. 여우 형은 많이 알고는 있지만 자신의 생각을 하나로 통합해 비전을 만들어 내지 못한다. 반면 고슴도치 형은 아무리 복잡한 사안이라도 지나치다 싶을 정도로 단순화한다. 본질적인 것 외엔 전혀 관심이 없다. 무의식의 정신세계를 개념화한 정신분석학의 창시자 프로이드나 상대성 이론을 수립한 물리학자 아인슈타인이 대표적인 고슴도치 형 인간들이다. 이들은 복잡한 세계를 해석해 ‘고슴도치 콘셉트’로 단순화한다.
 
고슴도치 콘셉트란 비교우위 관점에서 가장 잘하는 것, 남보다 잘할 수 있는 것, 열정을 가진 것의 세 가지를 모두 포괄할 수 있는 것을 선택해 전략적 위치(strategic position)를 확고하게 구축하는 것이다. 그 중에서도 가장 중요한 것은 ‘열정이 가는 일’을 발견하는 것이다. 어느 곳으로 향한 열정은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다. 열정이 가는 일은 차라리 운명과도 같은 것이다. 만드는 것이 아니라 찾는 것이다.
 
"노벨상 수상자로서 젊은 과학자에게 조언을 해달라는 요청을 받으면 이렇게 되묻습니다. 지금 하고 있는 연구를 본인이 재미있다고 생각하는지, 또 모든 열정을 그 연구에 쏟아 붓고 있느냐고요. 훌륭한 과학자가 되고 싶으면 이 두 가지만 생각하면 됩니다." 2001년 노벨 생리의학상 수상자인 폴 너스 영국왕립학회 회장은 '과학을 대하는 자세'를 이렇게 설명한다.
그는 "어떤 연구 분야가 미래에 유망하다거나, 어떤 분야가 돈을 많이 번다든지 하는 '유행'이 넘쳐나는 세상이지만 이렇게 유행을 좇는 것은 진짜 과학이 아니다"면서 "자신이 하고 싶은 과학을 해야 성공할 수 있다"고 말한다. 영국 옥스퍼드대 교수, 미국 록펠러 대 총장을 지낸 폴 너스 회장은 세포분열과 세포의 생명을 조절하는 핵심 단백질 '사이클린'을 발견한 공로로 노벨상을 받았다. 1660년 설립된 왕립학회 회원 중에는 노벨상 수상자만 80명에 이른다.
 
공자님 말씀에도 고슴도치 콘셉트가 담겨져 있다. ‘아는 것은 좋아하는 것만 못하고 좋아하는 것은 즐기는 것만 못하다(知之者不如好之者, 好之者不如樂之者)’ 아무리 좋아하더라도 자신이 잘 해낼 수 없는 것이면 안 된다. 잘 해낼 수 없다면 오래갈 수 없다. 좋아하는 것을 잘 해내기 위해서 필요한 것이 바로 즐기는 것이고 열정을 갖는 것이다.
 
 
심성락 / 바람의 노래를 들려주는 연주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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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25한국전쟁이 끝난 직후 피란민들로 북적이던 부산.. 명문 경남고등학교 모자와 교복을 입은 학생이 문화극장 앞 ‘애음당’ 레코드가게 앞에서 스피커에서 흘러나오는 유행가 가사를 받아 적고 있었다. 이 모습을 희한하게 생각한 가게 점원이 그 학생을 가게 안으로 불러들인다. 그리고 고생스럽게 적지 말라며 유행가 가사가 적인 홍보전단 뭉치를 건넨다.
그 고등학생이 바로 한국 대중음악계의 주춧돌이 된 아코디어니스트 심성락이다. 그는 50년이 넘게 아코디언 반주자로 일하다 2009년 ‘바람의 노래를 들어라’란 타이틀로 자신의 이름을 건 첫 앨범을 내면서 국내 대중가요사상 최고령 뮤지션의 앨범이란 기록을 세웠다. 항상 대중가요 스타들의 뒷전에 있었지만, 이미자 조용필에서부터 김건모 장윤정에 이르기까지 그의 연주를 거치지 않은 가수가 없다. ‘봄날은 간다’ ‘효자동 이발사’ 등 여러 편의 영화 OST에서 직접 연주를 맡았다.
 
심성락을 음악으로 이끈 건 24살 차이가 나는 그의 큰 형과 또 한명 경남고 단짝 친구 두 사람이다. 해방 직후 사업상 외국인들과 자주 만나던 큰 형은 음악을 좋아하는 사람이었다. 집에는 ‘빅스타’ 축음기와 외국 친구들이 선물한 해외 음반이 즐비했다. 집에 오면 만날 음악을 듣는 형 곁에서 자연스럽게 음악과 친해질 수 있었다. 경남고 단짝 친구는 알아주는 야구 투수였는데, 기타도 제법 치고 노래를 잘 불렀다. 당시엔 변변한 노래책 구하기도 힘든 때라 유행가 가사를 받아 적기위해 매일 ‘애음당’으로 출근하다시피 한 것 이었다.
 
‘애음당 사건’은 그의 음악인생이 시작되는 계기가 됐다. 가게 점원과 친해지면서 주인아저씨도 알게 되고 급할 때는 대신 가게를 봐주기도 했다. 그러던 중 서울에서 악기점을 하다 피난 내려온 분이 레코드가게 절반을 인수해 악기점을 차리게 된다. 가게를 대신 봐주던 어느 날 심성락은 진열대 한 쪽에 놓인 아코디언 만지다 호기심에 두 손가락으로 건반을 눌러봤다. ‘목포의 눈물’이었는데 신기하게도 소리가 났다. 주인아저씨가 자리를 비울 때마다 연주 아닌 연주연습이 계속됐다. 제멋대로 당겨보기도 하고 눌러보기도 하면서 혼자 터득해 나갔다. 자면서도 눈앞에 아코디언 건반이 어른거렸다. 독학으로 제법 연주 실력이 갖춰질 무렵 주인아저씨에게 ‘도둑 연주’를 들켜버렸다. 다행히 제법이라며 ‘맘 놓고 연습해도 된다’는 허락을 받았다.
 
때마침 실력을 발휘할 기회가 왔다. KBS부산 방송국에 노래자랑 프로그램이 새로 생긴 것이다. 그런데 예심에서부터 일반인의 다양한 출전 곡들을 반주 해줘야 하는 아코디언 반주자가 미군부대 공연을 주로 한 사람이라 국내 가요는 잘 모르는 게 문제였다. 악기점 주인아저씨가 친분이 있던 방송국 악단장에게 심성락을 소개했다. 밤잠을 설쳐가며 그동안 익혀온 멜로디들을 ‘상상’만으로 연주했다. 첫 무대에서 떨리는지도 모르게 신명이 나서 연주를 마쳤다. ‘상상’이상의 성과였다.
전쟁 통에 형님이 행방불명되면서 홀어머니를 모시고 살던 그는 수업료가 밀려 학교가 가기 싫던 차에 학업을 중단하고 본격 연주자로 나섰다. ‘쥐꼬리’만한 연주료로 근근이 생활을 꾸려나갔다. 말하자면 ‘생계형 연주자’였다. 노래자랑 프로그램에서 실력을 인정받은 덕분에 전속악단이 생기면서 전속단원 자리도 챙겼다. 주변에서 ‘실력이 늘었다’는 소리를 들을 때마다 그는 속으로 ‘나는 아직도 멀었다’고 생각하며 더 열심히 노력했다.
 
심성락은 어릴 적 친구들과 놀다 왼손 새끼손가락 끝마디를 다쳤다. 아코디언에 관심을 가지게 된 것도 처음엔 기타를 치며 노래를 불렀지만, 코드를 제대로 짚기 힘들었기 때문이다. 다섯 손가락을 모두 써야하는 아코디언 연주지만, 네 손가락을 사용하는 자신만의 ‘운지법’을 만들어 냈다. 하지만 한계는 있었다. 클래식이나 재즈 연주는 네 손가락으로는 ‘죽었다 깨어나도’ 안됐다. 알고 보면 이 핸디캡이 심성락을 대중가요 반주에서 일가를 이루게 한 것이다.
 
심성락의 연주는 특이하다. 보통 반주와 달리 노래를 부르듯 멜로디를 연주하기 때문이다. 그의 연주를 들으면 가사가 떠오른다. 본인도 연주를 할 때는 맘속으로 노래를 부른다고 한다. 워낙 ‘벨로즈’라는 주름 통에서 나오는 ‘바람의 소리’가 애잔하긴 하지만, 네 손가락의 핸디캡을 극복하듯 바이올린처럼 반의 반음까지 영역을 넓힌 그의 연주는 피아노 같은 건반악기가 따라가기 힘든 부분이 있다.
 
청송감호소에서 위문공연을 할 때 일화 한토막이다. 문주란의 ‘동숙의 노래’를 연주했는데, 공연장의 수감자들이 모두 눈물바다가 됐다. 즐겁게 해주자고 한 위문공연인데 슬프게 만들었으니 마음이 좋지 않았다. 돌아오는 길에 피아노연주자의 말을 듣고서야 이유를 깨달았다. ‘돌이킬 수 없는 죄 저질러 놓고..후회하면서 울어도 때는 늦으리’ 배신한 짝사랑을 죽이려다 살인미수로 감옥살이를 하는 ‘동숙’이란 처녀의 사연이 담긴 노래였던 것이다. 연주가 얼마나 리얼했으면 가사를 떠올린 수감자들이 눈물범벅이 됐을까 상상이 간다.
 
심성락은 정규 음악교육을 받은 적이 없기에 악보를 읽을 줄도 몰랐다. 집에 있는 형님의 축음기로 들은 음악들, 당시 부산에서 국내 방송보다 더 잘 들리던 일본 규슈나 본토에서 오는 방송을 들으며 귀로 익힌 멜로디들을 아코디언으로 재생해 냈다. 남보다 치열한 노력이 필요했던 이유다. 카바레 악단에서 아코디언 아르바이트를 할 때의 일이다. 악보 없이 ‘1번곡’ ‘2번곡’ 이런 식으로 신호에 맞춰 즉흥연주를 했다. 전주를 듣고 보니 예전 형님이 축음기에서 듣고 외웠던 곡이었다. 기억을 되살려 그대로 연주했다. 연주자의 ‘애드리브’가 섞였으니 원곡과 다른 것은 당연했다. 연주가 끝난 뒤 악단장이 ‘야 이놈 봐라’하는 표정으로 물었다. “너 예전에 이 곡 연주해 봤니?” ‘상상연주’가 그대로 ‘현실연주’로 빛을 발하는 순간이었다.
심성락은 아코디언을 배우러 오는 후학들에게 자신처럼 확실히 미칠 수 있냐고 먼저 묻는다. 그에게는 재능보다 후천적인 노력이 중요하다는 생각이다. 얼마나 심취해서 노력하느냐에 따라 달라진다고 믿는 것이다.
 
심성락의 본명은 심임섭이다. 아코디언을 본격 시작하면서 심성락으로 개명했다. 당시 도레미레코드 한복남 사장이 지어준 이름이다. ‘소리 성(聲)에 즐거울 낙(樂)’.. 그는 이름에 담긴 대로 50년 넘게 스스로 소리를 즐기며 소리로 사람들을 즐겁게 해왔다.  “음악에 미치다 보면 아코디언이 무거운지 가벼운지도 모른다..” 팔순의 老 연주자는 오늘도 30킬로그램이 넘는 아코디언을 쥐락펴락하며 우리에게 ‘바람의 노래’ 들려주고 있다.

 

 

https://youtu.be/ysnB0UlsWGQ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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