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지지/나의 이야기

성경섭 칼럼 <10> 쿨 타임 시간관리법

그대 그리고 나/포항 2016. 9. 6. 12:43

성경섭 칼럼 <10> 쿨 타임 시간관리법 / 김훈
 
  작성자: 사색의향기   /  작성일 : 2016-09-05 16:50
쿨 타임 시간관리법 / "시간은 똑같은 길이가 아니다"
김훈 / '지우개 똥'이 산처럼 쌓일 때까지
 
 
- 성경섭 방송인
 
 
쿨 타임 시간관리법 / "시간은 똑같은 길이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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년은 쉬 늙고 학문을 이루기는 어려우니 한순간이라도 헛되이 보내지 마라 (少年易老 學難成 一寸光陰 不可輕)’. 흐르는 시간은 나를 위해 기다려주지 않는 법이니 쉼 없이 학문에 정진할 것을 권고하는 주자의 ‘권학문’이다. 주자의 가르침을 받은 세대에게 공부(혹은 일)하지 않는 시간은 단지 ‘허송세월’로 치부됐다. 그러나 일 못지않게 휴식을 중요시하는 요즈음은 시간활용에 대한 개념이 바뀌고 있는 추세다.
 
대포와 같은 대형화기를 연속으로 사격하려면 포신이 휘거나 파열되지 않도록 식혀주는 ‘쿨링  타임(cooling time)’이 필요하다. 네티즌들 사이에선 ‘쿨 타임’으로 줄여 컴퓨터 게임에서 하나의 기술을 사용하고 다시 사용할 때까지의 공백을 의미하는 용어로 통용된다. 비단 기계 뿐 아니라 잠시만 멈춰서면 큰일 날 것 같은 인간의 심장에도 실은 ‘쿨 타임’이 있다. 좌우 심실과 심방 4개가 돌아가며 수축과 이완하는 사이의 휴식기다.
 
심장이 움직이는 시간과 쉬는 시간 대략 5 대 1의 비율로 알려져 있다. 주5일 근무제는 심장의 휴식 시스템과 닮은꼴이다. 누구에게나 학창시절의 기억 속에 ‘놀기만 하는 것 같은데 성적은 항상 좋은’ 친구가 한두 명쯤 있다. 하루 24시간은 누구에게나 공평하게 주어지지만 활용방법에 따라 결과는 천차만별로 나타나기 마련이다. 성과를 내기 위해서는 똑같이 부여받은 시간일지라도 남다르게 활용할 수 있는 ‘쿨 타임’의 시간 관리법이 필요한 것이다.
 
‘성공을 위한 시간 관리법’의 핵심은 계획을 짜고 우선순위를 정하는 데 시간을 할애하는 것이다. 그리고 내게 능률이 최고조에 이르는 시간이 언제인가를 파악하고, 그 시간에는 가장 중요한 일을 하는 것이다. 중요한 일과 덜 중요한 일을 가려내고 중요한 때 적시에 ‘한 방'을 날리는 것과 같은 ’선택과 집중‘이 중요하다. 야구경기에서 타율보다 타점이 승률을 높이는 것처럼  ’시(時)테크‘에서도 선택과 집중이 필요하다.
그러기 위해서는 일의 중요성과 긴급성을 따져 우선순위를 정하는 것이 필수다. 중요한 일이란 목표를 달성하는데 도움을 주는 일로서 당장 급하지 않더라도 ‘장기적’인 영향을 끼친다. 반면 긴급한 일이란 대체로 ‘단기적’이며 목표 달성과 관계가 있을 수도 있고 무관할 수도 있다. 그렇기 때문에 긴급한 일과 중요한 일 사이에는 괴리감이 생길수도 있다. 세심하게 주의를 기울여 우선순위를 매기지 않는다면 자칫 일을 그르칠 수도 있다.
 
또 한 가지는 자신의 에너지가 가장 왕성한 시간이 언제인지를 알아내는 것이다. 에너지가 충만한 시간대에 우선순위가 높은 일을 할 수 있다면 능률도 오르고 귀중한 시간을 벌 수 있는 것이다. 이처럼 능률이 최고조에 이르는 시간을 ‘키스톤 타임(keystone time)’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우리말로 치면 ‘버팀돌’ 정도의 의미인데, 하루 중 외부로부터 그 어떤 방해도 받지 않고 일할 수 있는 황금시간대를 이르는 말이기도 하다.
 
아프리카 수단 남부에 사는 누에르족의 시간 개념은 ‘키스톤 타임’의 시간활용법과 흡사하다. 나일강 기슭과 사바나 지역에서 목축과 농경을 하는 누에르족은 시간의 흐름을 자연의 변화가 아닌 인간의 활동을 기준으로 이해한다. 우기에는 높은 언덕위의 마을에서 경작을 하고, 건기에는 소를 몰고 나일 강가에서 야영 생활을 하는데, 1년 동안의 시간의 가치는 계절의 변화가 아닌 소를 키우고 작물을 재배하는 경제활동의 중요성에 따라 달라진다. 목축을 하느라 분주한 건기의 시간 가치를 농사를 지으며 한가한 우기의 시간 가치보다 높게 인식한다. 물리적으로 정해져 있는 시간이지만 시간의 절대 양보다는 상대적 질을 중시하고 시간의 흐름을 인간 활동을 중심으로 주관적으로 재해석하는 것이다.  
 
‘아침형 인간’이냐 ‘저녁형 인간’이냐에 따라 다르지만, 대체로 생체리듬을 고려할 때 ‘키스톤 타임’은 오전 10시 전후라는 게 통설이다. 일부 기업의 ‘조기출퇴근제’는 업무능률을 올리고 퇴근 이후 자기계발 시간을 준다는 취지로 ‘키스톤 타임’을 활용한 측면이 있다. 중요한 일은 가장 능률이 오르는 시간에 처리하고, 사소한 일들은 한꺼번에 묶어 처리하면 일의 효율성을 높일 수 있다. ‘책상머리’에 붙어 있다고 해서 생산성이 높아지는 것은 아니다. ‘쿨 타임’ 시간 관리법에서는 ‘열심히 일하기’보다는 ‘창의적 일하기’를 강조한다.
 
시간은 돈과 같다. 자신의 지갑에서 누군가 돈을 빼 가는 것을 가만히 보고만 있을 사람은 없다. 하지만 헛된 일로 시간을 빼앗아 가는 ‘시간도둑’에 대해서는 우리는 대체로 관대한 편이다. 꼭 해야 하는 일로 잘못 알고 정신을 빼앗겨 정작 중요한 일을 지나친 적은 없었는지, 불요불급한 일로 ‘키스톤 타임’을 낭비한 경우는 없었는지 되돌아보는 것, 그것이 ‘쿨 타임’ 시간 관리법의 요체다.
 
 
김훈 / '지우개 똥'이 산처럼 쌓일 때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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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문학에 벼락처럼 쏟아진 축복’이라는 평을 받는 김훈 작가. 기자생활을 하다 마흔 일곱이란 늦깎이로 데뷔했지만 대중성과 작품성을 고루 갖춘 소설을 잇달아 선보이며 유수의 문학상을 휩쓴다. 유려한 문장과 '생사를 넘나드는 그의 소설세계‘는 사람들의 혼을 빼놓기에 충분하다. 실제로 그는 병자호란 당시 남한산성에 고립무원으로 갇힌 조선 조정의 고통스런 기록, 소설 남한산성을 통해 쨍하게 추운 겨울 날씨처럼 건조하고 폐부를 깊숙이 찌르는 듯한 삭막한 문체를 선보였다. “독자들이 무언가를 깨닫게 하기 위해서는 독자들을 도저히 도망갈 수 없는 벽으로 고통스럽고도 가혹하게 몰아붙일 수밖에 없었다.”며 그는 소설 남한산성의 ’가혹한‘ 문투가 의도된 글쓰기였음을 털어놓았다.
 
이처럼 독자들을 쥐락펴락 할 수 있는 김훈 작가의 글쓰기 능력은 어디에서 오는 것일까?
그는 글쓰기는 순수한 노동이라고 말한다. 그만큼 그의 글쓰기는 노동의 생산성, ‘투여한 시간 대비 생산된 글의 질과 양’을 중요시 한다는 얘기다. 그는 하루밤새 글 한 편을 뚝딱 써 내려가는 타고난 ‘글재주’란 것을 믿지 않는다. 오히려 밤새 글을 쓰고 또 써도 진도가 안 나가면 ‘생계에 지장이 올 것을 걱정하게 된다’는 것이 김훈 작가의 솔직한 고백이다.
 
김훈 작가의 글쓰기 비결은 생산성이 높은 시간대에 집중하는 것이다. 누가 곁에 있으면 글이 나오지 않으니 인기척이 없는 ‘적막강산’과도 같은 시간대에 주로 글을 쓴다. 쓰다가 지울 수 있기 때문에 볼펜도 만년필도 아닌 연필만을 고집한다는 그는 “글을 쓰다 밤이 되면 지우개 가루가 책상에 눈처럼 내려앉았다. 그러면 그걸 다 쓸어내리고 다음 날 또 쓰곤 했다.”고 말한다. 헤밍웨이는 “글이 잘 풀리는 날에는 연필 일곱 자루가 닳아 없어졌다”는 식으로 노동량을 종이가 아닌 연필단위로 기록했다고 한다. 김훈 작가는 그와는 반대로 “글이 잘 풀리지 않는 날에는 쓰레받기 일곱 개 분량의 지우개가루가 나왔다”고 표현해야 할지 모르겠다. 
 
김훈 작가가 글을 쓸 때 대체로 제목을 먼저 정하는 편인데, “제목을 정하면 편하다. 제목이 멀리서 등대처럼 깜빡이면서 글을 인도해 주는 힘이 있다.”고 말한다. 충무공 이순신장군의 인간적인 모습을 그린 그의 출세작 ‘칼의 노래’는 예외적으로 원래 생각했던 제목이 바뀐 경우다. 광화문 네거리를 지나다 길 한복판에 우뚝 선 이순신장군의 동상을 보고 ‘광화문 그 사내’란 제목을 달았다가 나중에 출판사에서 극구 반대해 ‘칼의 노래’로 개명을 했다. 제목이 한몫을 거든 덕분인지 ‘칼의 노래’는 공전의 히트를 기록했다.
 
언론인이었던 그의 선친과 얽힌 일화 한 토막이다.
광복 후 혼란기에 지식인들 가운데는 집밖으로만 나도는 이들이 꽤 있었는데 김훈 작가의 선친도 그 중 한 분 이었던 모양이다. 중학생이던 김훈이 한 달이면 한 두 번이나 집에 들를까 말까 하는 아버지께 어느 날 나름 작심을 하고 당차게 물었다. “아버지는 집에 안 들어오시고 도대체 어딜 그렇게 다니십니까?” 그런데 아버지의 돌아온 대답이 걸작이었다. “야 이놈아.. 광야를 달리는 말이 마구간을 돌아볼 수 있겠냐?”
 
부전자전이랄까. 김훈 작가도 글을 쓰고 책을 내는 틈틈이 ‘풍륜(風輪)’이라는 애칭을 가진 자전거로 스페인 산티아고 순례길을 비롯한 국내외 여기저기를 누비고 다니면서 새삼 ‘아버지의 광야’를 떠올린다고 하는데.. 무의식 속에 잠재한 ‘아버지의 광야’야 말로 그의 글의 무궁무진한 원천이며 뒷배가 아닐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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