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남자가 숨죽여 울고 있다. 하얀 백발의 머리가 가만가만 흔들린다. 결국, 오열하며 폭포처럼 쏟아놓는 마음속 이야기.
"아버지, 내 약속 잘 지켰지예. 이만하면 내 잘 살았지예. 근데 내 진짜 힘들었거든예."
- ▲영화 '국제시장'
창밖에 화려한 도시의 밤 풍경이 펼쳐지고 가족들의 환한 웃음소리가 낭자한데 남자는 끊임없이 울고 있다. 그 풍경 위로 내 아버지가 떠오른다. (영화 <국제시장> 중에서)
평생을 일만 하고 가신 아버지. 늘 작업복 차림에 돈 아끼겠다고 한여름 뙤약볕에도 땀을 뻘뻘 흘리며 집에 와서 점심을 드셨다. 그저 묵묵히 일만 하시는 분이셨다. 큰소리 한 번 내시는 것을 본 적도 없고, 누군가와 정답게 말을 나누는 것을 본 적도 없다. 난 우리 아버지는 그런 사람인 줄 알고 살았다. 아버지도 꿈이 푸른 청춘이 있었다는 생각을 해 본 적도 없었다.
내가 결혼을 하고도 한참을 흐른 어느 날 동생한테서 전화가 왔다. 아버지가 무공훈장을 받는다는 것이다. 아니 찾지 못한 무공훈장을 찾는다는 것이다. 아버지가 6.25 전쟁 때 전쟁에 나가셨던 것은 알고 있었지만, 무공훈장이라니 어안이 벙벙했다. 아버지가? 무공훈장을? 어떻게? 왜? 끊임없이 물음표가 따라 붙었다.
영화 속에서 보면 훈장을 받는 사람들은 용감무쌍했다. 남보다 더 용감해야 했고 남보다 더 잘 싸워야 했고 남보다 더 생각이 진취적이어야 했다. 그런데 그것과는 전혀 어울리지 않는 아버지가 무공훈장이라니 말이 안 된다고 생각했다. 말은 어눌했고 행동은 진중하시다 못해 답답하기까지 하셨다. 그런데 난데없는 무공훈장이라니….
1952년 겨울. 아버지는 대관령 전투 현장에 계셨다. 부대는 적군에 포위되어 전멸할 지경에 놓였는데 무전기마저 불통이 되었단다. 누군가 포위망을 뚫고 나가 이 사실을 알려야 했는데 아버지가 그 일을 하셨단다. 눈은 허리까지 쌓여 걷기도 힘들지만 걷는 대로 사람 지나간 자리가 날 것은 뻔한 이치. 잡히는 것은 시간문제였을 것이다. 그리고 대관령이란 산은 또 얼마나 험준한 곳인가. 그곳에서 적군의 포위망을 뚫고 나간다고? 그것을 아버지가 하셨고 부대는 구출되었다고 한다. 지금도 믿기지 않는 얘기다.
우리들의 아버지가 할아버지가 우리들의 웃음소리 뒤에는 묵묵히 버티고 계셨다. 그렇게 묵묵히 자신들을 버리고 우리들의 바람막이가 되었다. 우리의 행복한 삶을 꽃피우게 해 주셨다. 그런데 우리는 얼마나 한 남자의 가슴속에 숨겨져 있는 아픔을 헤아리고 살았을까. 생각해보면 영화 속 자식들처럼 자기가 잘 나 지금처럼 잘살고 있다는 착각 속에 빠져 산다. 내가 그랬고 내 자식들이 그렇다.
이 <국제시장>을 만든 윤제균 감독은 “아버지에게 감사하다는 얘기를 하고 싶어 만든 영화”라고 말했다. 나도 가끔은 이 윤제균 감독처럼 영화는 못 만들지만, 아버지에 관한 글을 쓰고 싶다. 아버지의 청춘은 어땠는지, 아버지도 내 어머니를 만나기 전 사랑하던 여자가 있었는지, 대관령 전투에서 아버지의 활약이 얼마나 큰 것이었는지.
난 못난 자식이었다. 분명 아버지에게도 꿈이 있었고 사랑도 있었을 것이다. 삶이 힘들어 남몰래 눈물을 흘렸을 때도 있었을 것이다, 그 아버지 속을 단 한 번도 들여다보지 못한 못난 자식이었다. 영화 속 아버지처럼 삶이 얼마나 힘들었으면 평생을 잔잔한 정하나 제대로 표현할 수 없는 삶을 살았는지 돌아오는 내내 마음속에 눈물이 흐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