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펌)풋사랑에 실패한 여인이 남자와 재회한 뒤 읊은 시

그대 그리고 나/포항 2014. 10. 15. 23: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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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풋사랑에 실패한 여인이 남자와 재회한 뒤 읊은 시

  • 문갑식 블로그
    편집국
    E-mail : gsmoon@chosun.com
    1962년생, 연세대 행정학과 졸업. 연세대 행정학석사와 한양대..

입력 : 2014.10.15 14:12

윌리엄 워즈워드와 The Lake(上)

‘여기 적힌 먹빛이 희미해 질수록
그대를 향한 마음 희미해진다면
이 먹빛이 하얗게 마르는 날
나는 그대를 잊을수 있겠습니다.
초원의 빛이여.
꽃의 영광이여…
다시는 돌아갈수 없다해도 서러워 말지어다.
차라리 그 속 깊이 간직한 오묘한 세월을 찾으소서.
초원의 빛이여.
그 빛 빛날 때 그대 영광빛을 얻으소서.
한때는 그토록 찬란했던 빛이었건만
이제는 덧없이 사라져 돌이킬수 없는
초원의 빛이여
꽃의 영광이여.
다시는 찾을길 없더라도
결코 서러워 말자..
우리는 여기 남아 굳세게 살리라.
존재의 영원함을
티없는 가슴에 품고.
인간의 고뇌를 사색으로 달래며
죽음의 눈빛으로 부수듯
티없는 믿음으로 세월속에 남으리라.’

1961년 만들어진 영화 ‘초원의 빛’에 등장하는 시입니다. 제목이 ‘Splendor in the grass’지요. 시는 영국 계관시인 윌리엄 워즈워드(1770~1850)가 쓴 원문(原文)과 다른 번역본입니다. 원문은 이렇게 전개됩니다.

What though the radiance which was once so bright
Be now for ever taken from my sight,
Though nothing can bring back the hour
Of splendor in the grass, of glory in the flower
We will grieve not, rather find
Strength in what remains behind;
In the primal sympathy
Which having been must ever be;
In the soothing thoughts that spring
Out of human suffering;
In the faith that looks through death,
In years that bring the philosophic mind.

조병화 시인이 영화에 나오는 시를 번역했다고 하는데 원문과 비교하면 무엇이 더 서정적인지 알 수 없을 정도입니다. 문학에서 의역(意譯)도 창작이 될 수 있다는 사례라고 봅니다. 한국문학 대가(大家)의 힘입니다.

올드팬들은 영화가 뇌리에 생생하실겁니다. 고교생역(役)인 워렌 비티(버드)와 나탈리 우드(윌마)의 풋사랑 이야기지요. 남자 때문에 충격을 받아 정신병에 걸렸다 회복한 윌마는 결혼한 버드와 목장에서 재회합니다. 흘러간 세월이 돌아오지 않듯, 떠나간 사랑은 결코 회복할 수 없다는 걸 안 윌마가 돌아오는 찻속에서 눈물을 글썽이며 시를 읖지요. 바로 워즈워드의 ‘초원의 빛’입니다. 한때 찬란했던 광채가 사라지는 지금 가을처럼.
워즈워드가 행복한 한때를 보냈던 도브코티지 앞에 있는 호수의 그림 같은 풍경이다. 지금은 다포딜이란 호텔에 가려 일부만 보이지만 시인의 감성을 자극하기에 충분하다./사진=이서현
워즈워드가 행복한 한때를 보냈던 도브코티지 앞에 있는 호수의 그림 같은 풍경이다. 지금은 다포딜이란 호텔에 가려 일부만 보이지만 시인의 감성을 자극하기에 충분하다./사진=이서현

7월에 갔을 때 호수 주변엔 꽃들이 만발해 있었다. 북쪽 호수지구에서 윈더미어로 가는 길에 잠시 멈춰섰을 때 포착한 장면이다./사진=이서현
7월에 갔을 때 호수 주변엔 꽃들이 만발해 있었다. 북쪽 호수지구에서 윈더미어로 가는 길에 잠시 멈춰섰을 때 포착한 장면이다./사진=이서현

호수에 황혼이 내렸다. 아마 워즈워드도 이 광경을 보며 시상을 가다듬었을 것이다./사진=이서현
호수에 황혼이 내렸다. 아마 워즈워드도 이 광경을 보며 시상을 가다듬었을 것이다./사진=이서현

윌리엄 워즈워드의 시집. 젊었을 적 모습이다./사진=이서현
윌리엄 워즈워드의 시집. 젊었을 적 모습이다./사진=이서현
‘초원의 빛’이 한국에서 처음 상영된 게 1962년 중앙극장에서였습니다. 1971년 헐리우드극장에서 재개봉돼 우울했던 당시 청춘(靑春)의 심금을 울리지요. 그해 최무룡-윤정희 주연의 동명작이 나올만큼 대단했습니다. 대체 영어(English), 영문학은 언제 지금같은 골격을 갖추게된 걸까요? 대가들의 자취를 좇다 부닥치게된 질문입니다. 윌리엄 세익스피어(1564~1616)라는 설(說)이 있습니다. 그들은 다양한 사례를 제시합니다.

컴퓨터로 분석해보니 세익스피어는 자기 작품(作品)에서 2만8829개의 단어를 사용했다고 합니다. 현대인들은 그 두배가 넘는 6만여개를 쓰고 있다지요. 그런데 세익스피어의 희곡에서는 신조어만 1700여개나 나옵니다. ‘햄릿’ 한편에 600개가 등장하는데 이런 것들입니다. ‘셀수 없는(countless)’ ‘서두르다(hurry)’ ‘외로운(lonely)’ ‘우울한(gloomy)…. 단어를 몇개씩 이어서 만드는 신조어도 그의 능기(能技) 가운데 하나였다지요. ‘침묵을 깨다(break the ice)’ ‘명백한 진실(naked truth)’ 같은 것들입니다. ‘로미오와 줄리엣’에서 연인(戀人)들이 사랑을 나누다 헤어지며 이런 말을 남기기도합니다. ‘이별은 달콤한 슬픔(sweet sorrow)이다.’

세익스피어가 진정 영문학의 비조(鼻祖)일까요? 영국(United kingdom of Great and Northern Ireland)이란 명칭이 공식 등장한 건 1927년입니다. 이 팩트는 영국이란 나라, 영문학의 ‘정체성’을 생각하게 합니다. 학자들은 영문학을 고대(로마 철수~노르만 정복-대표작 ‘베어울프’), 중세(~1499-대표작 제프리 초서 ‘캔터베리 이야기)의 순서로 나눕니다. 옥스포드대 교수 존 위클리프가 성경을 영역(英譯)해 대중화시키던 시기지요.

르네상스기(1500~1650)에 이르러 우리가 아는 존 던, 에드먼드 스펜서 같은 시인이 비로소 등장합니다. 이 시기 영국은 유럽의 변방에서 초강국으로 일약 발돋움합니다. 엘리자베스1세 여왕(1558~1603) 재위기간입니다. 산문(散文)작가로는 ‘유토피아’를 쓴 토마스 모어, 여러 에세이로 유명한 프란시스 베어컨, 윌리엄 세익스피어가 있습니다. 영국(국가)이 발전하면서 영어(언어)의 지위까지 동반상승하는 전형을 보여주는 사례입니다.

1660년부터 1798년까지를 신고전주의 시대라고 하는데 이때부터 영문학은 화려하게 개화(開花)합니다. ‘실락원’의 존 밀턴, 풍자의 대가 존 드라이언, ‘천로역정’의 존 번얀 등이 나오지만 주인공은 따로 있습니다. 바로 이번에 다룰 낭만주의 시의 거장(巨匠) 윌리엄 워즈워드입니다. 워즈워드 이후 영국문학은 비평가 찰스 램, 소설가 월터 스콧·제인 오스틴, 시인 셀리·키츠·바이런 같은 ‘스타’들을 양산합니다. 전성기 초입이지요. 이후 토마스 칼라일, 존 스튜어트 밀, 존 러스킨 같은 사상가 겸 문학가와 샬럿·에밀리 브론테 자매, 찰스 디킨스, 조지 엘리엇, 토마스 하디, 알프레드 테니슨이 등장하며 영문학은 세계문학의 주류(主流)가 됩니다.(계속)
이 집이 바로 도브코티지이다. 골목을 들어서면 바로 보인다. 전 세계에서 시를 사랑하는 이들이 반드시 찾아보고 싶은 곳이다./사진=이서현
이 집이 바로 도브코티지이다. 골목을 들어서면 바로 보인다. 전 세계에서 시를 사랑하는 이들이 반드시 찾아보고 싶은 곳이다./사진=이서현

뒷동산에서 바라본 도브코티지(왼쪽 아랫부분). 가운데로 자세히 보면 호수가 보인다./사진=이서현
뒷동산에서 바라본 도브코티지(왼쪽 아랫부분). 가운데로 자세히 보면 호수가 보인다./사진=이서현

돌담길 사이로 흰색 도브코티지가 보인다. 워즈워드는 이곳에서 결혼해서 아이 4명을 낳았다./사진=이서현
돌담길 사이로 흰색 도브코티지가 보인다. 워즈워드는 이곳에서 결혼해서 아이 4명을 낳았다./사진=이서현

도브코티지로 들어가는 입구. 나지막한 문에 시 한구절이 적혀있다. 금방이라도 워즈워드가 산책하기위해 걸어나올 것 같다./사진=이서현
도브코티지로 들어가는 입구. 나지막한 문에 시 한구절이 적혀있다. 금방이라도 워즈워드가 산책하기위해 걸어나올 것 같다./사진=이서현

도브코티지에서 도보로 10분 거리에 있는 교회. 이곳에 워즈워드의 가족들이 잠들어 있다. 글래스미어의 중앙에 위치해 있다./사진=이서현
도브코티지에서 도보로 10분 거리에 있는 교회. 이곳에 워즈워드의 가족들이 잠들어 있다. 글래스미어의 중앙에 위치해 있다./사진=이서현

라이달마운트의 워즈워드 저택은 규모도 크고 위치도 좋았다. 가장 오래산 집답게 보존도 잘돼있다. 코커마우스의 생가와 도브코티지는 내셔널트러스트에서 관리하지만 이집은 워즈워드 후손들이 가꾸고있다./사진=이서현
라이달마운트의 워즈워드 저택은 규모도 크고 위치도 좋았다. 가장 오래산 집답게 보존도 잘돼있다. 코커마우스의 생가와 도브코티지는 내셔널트러스트에서 관리하지만 이집은 워즈워드 후손들이 가꾸고있다./사진=이서현

코커마우스의 워즈워드 생가. 변호사 아버지의 집답게 규모가 크지만 워즈워드는 어려서 부모를 잃었다./사진=이서현
코커마우스의 워즈워드 생가. 변호사 아버지의 집답게 규모가 크지만 워즈워드는 어려서 부모를 잃었다./사진=이서현

파란 하늘을 뒤로 하고 서있는 허수아비. 마치 한국의 풍경같지만 워즈워드 생가 뒤편 정원에 서있는 것이다./사진=이서현
파란 하늘을 뒤로 하고 서있는 허수아비. 마치 한국의 풍경같지만 워즈워드 생가 뒤편 정원에 서있는 것이다./사진=이서현

워즈워드 생가 뒷편 정원에는 꽃과 풀과 시를 적은 석판들이 있다. 워즈워드가 살아있던 시절, 여동생 도로시가 가꿨던 정원을 재현한 것이다./사진=이서현
워즈워드 생가 뒷편 정원에는 꽃과 풀과 시를 적은 석판들이 있다. 워즈워드가 살아있던 시절, 여동생 도로시가 가꿨던 정원을 재현한 것이다./사진=이서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