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펌)독일 남녀혼탕 사우나

그대 그리고 나/포항 2014. 2. 4. 16: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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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 남녀혼탕 사우나에 들어갔다가 "오 마이 갓!"

  • 허원주
    동아대 의대 교수
    E-mail : wjhur@daunet.donga.ac.kr
    56년 원숭이 띠. 눈웃음을 치는 얼굴이라 어릴 때부터 동네 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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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 2014.02.04 15: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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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 마이 갓!”
    내입에선 소스라치듯 비명이 터져 나왔다. 본능적으로 옆에 둔 타월로 무방비 상태의 앞을 가렸다. 꿈이 아니다. 여탕을 착각하고 잘못 들어왔단 말인가.
    한 평 남짓 고온 사우나 도크. 계단식 좌대에 막 자리를 틀고, 채 열기에 젖어들기도 전에 아름다운 금발 아가씨가 노크도 없이 들어선 것이다. 그녀는 실오라기 하나 걸치지 않고 내 앞에 마주섰다. 당황하여 어쩔 줄 모르는 동양남자의 모습을 보며 여자는 오히려 걱정스레 묻고 있었다.
    “아 유 올라잇?”
    정신을 수습하기도 전에 이번엔 당당한 체구의 중년 독일남성이 거리낌 없이 들이닥쳤다. 점입가경, 역시 알몸이다. 그렇다면 여탕은 아니라는 이야기다. 남자는 먼저 들어온 아가씨의 존재는 전혀 개의치 않고 전신을 노출시킨 채 내 옆에 털썩 앉았다. 곧바로 한 손으로 턱을 괴며 로댕의 생각하는 사람의 자세로 돌입한다. 무슨 이런 막 가는 경우가 다 있단 말인가.
    독일 남녀혼탕 사우나에 들어갔다가 "오 마이 갓!"
    시간이 지나면서 상황이 정리되기 시작하였다. 북유럽 여행을 하고 돌아왔던 친구가 해 주던 이야기가 떠올랐다. 유럽 사우나는 대부분 남녀 혼탕이라 타월은 땀 닦을 때만 사용하고 항상 알몸으로 있어야 된다는 것이다.
    그런데 지금 나는 온 신경을 곤두세워 타월로 앞을 가리는 데 급급하다. 맞은편에 자리 잡은 독일 아가씨는 이국적인 눈동자에 여전히 걱정스런 눈빛을 담아 날 주시하고 있었다. 눈이 마주쳤다. 살짝 미소를 짓는 모습이 어느 외국영화에 나오는 여주인공과 영판 닮았다. 왕성하고 굴곡진 몸매가 시선을 붙들었지만 나는 애써 외면하였다. 하지만 눈 둘 곳을 찾기가 힘들다. 잠깐 천장을 응시하다 출입구 쪽으로 시선을 돌렸다. 젊은 여성의 알몸을 의식하니 눈이 점점 가자미를 닮아가는 것 같다.

    나이가 들수록 해외여행은 체력적으로 참 힘들어진다. 특히 시차 적응은 죽을 맛이라 가능하면 동서로 길게 이동하는 미주나 유럽여행은 자제하는 편이다. 하지만 유럽은 얼마나 매력적인 곳이던가. 도처에 역사가 살아있고 발길 닿는 곳마다 예술의 향기가 짙게 배어 있다. 나는 삼사 년에 한 번씩 유럽 학회 일정을 잡아두고 학회 후 주위 몇 나라를 둘러보곤 하였다.

    독일에서 열리는 이번 학회는 방사선치료의 최신지견을 나누는 세미나 형태의 모임이다. “바트 쏘로우”라 불리는 동베를린 근처의 유명한 온천휴양지에서 열흘 넘게 머리를 싸매야 할 판이다. 특별히 이번 여행은 막 대학에 들어간 아들놈을 데리고 부자간의 추억을 만들기 위해 나선 것인데 첫날부터 희한한 목욕문화에 이질감을 넘어 황당한 사건이 벌어지고 있었다.
    사우나 안에는 두 명의 중년 독일 여성이 더 합류하였다. 하나같이 건강한 알몸이다. 그런데 혼자 타월로 앞을 가리고 있자니 앞에 앉은 여성들이 자꾸 나만 쳐다보는 것 같다. 빨리 전신을 공개하라는 무언의 압력처럼 느껴진다. 말이 될 법한 경우인가, 동방예의지국에서 온 점잖은 의사선생인데. 나는 도저히 더 이상 버티기 힘들어 흘러내리는 타월을 꼭 붙들고 앞을 가리며 자리에서 일어섰다. 이런 상황에서 내 알몸을 외국 여성들 앞에 공개하고 더구나 옆에 앉은 독일남성과 비교대상이 된다는 것은 참으로 자존심 상하는 일이다. 이마는 온통 열기에 젖은 땀으로 범벅이다. 타월로 앞을 가리는 데 급급했으니 흘러내린 땀이 눈 안을 적셔 한껏 쓰렸다.

    그런데 사우나 밖으로 나오자 더 큰 일이 벌어지고 있다. 막 옥외 풀장에서 수영을 마친 아들놈이 저쪽 스팀 사우나로 들어서는 것이 보였다. 이건 보통일이 아니다. 한창 혈기 왕성한 놈이 모델 같은 젊은 서양여성들의 알몸을 본다면 눈이 휘둥그레질 것이 분명하다. 어쩌면 주체 못할 본능에 어설픈 신체변화를 보이기라도 한다면 이런 문화에 익숙한 현지인들에게 큰 실례가 될지도 모른다. 사우나에 들어가지 말라고 말려야 한다!

    애당초 다 큰 놈을 데리고 해외여행을 온 게 잘못이었다. 스무 살쯤 된 사내자식이면 또래 친구들과 국내든, 국외든 배낭여행이나 가도록 해주는 편이 훗날 인생에 더 도움이 되었을지 모른다. 하지만 중학교 때 부터 뉴질랜드에 유학을 보내고 방학 때만 잠깐씩 보던 아들이다. 그런데 2주간 학회 출장과 아들의 겨울방학 시작이 겹쳐버렸다. 일 년 만에 보는 아들과 바로 헤어지는 것이 서운해 아비와 유럽여행에 동행할 것을 넌지시 권유하였다. 그런데 의외로 선선히 따라나서겠단다. 마침 뉴질랜드에서 귀국하는 항공편에 유럽 왕복항공권을 묶어 파는 소위, 왕창 저가 패키지세일이 있었다. 숙소도 추가비용 없이 한 방을 쓰면 될 것이니 부자의 유럽여행이 아주 저렴한 비용으로 깔끔하게 계획되었다.
    세미나 장소에 하루 전에 도착한 우리는 자전거를 빌려서 만추의 온천휴양지를 둘러보며 유럽 풍광에 깊이 심취하며 행복해 하고 있었다. 그런데 이런 예기치 못한 상황이 벌어지다니.

    아들은 말릴 틈도 없이 이미 사우나 도크 안으로 사라져 버렸다. 순간, 흔히 회자되고 있는 탁발승과 동행했던 어린 제자의 이야기가 뇌리를 스쳤다. 우연히 계곡에서 젊은 여성들의 목욕장면을 같이 목격한 뒤, 한참 길을 가다 갑자기 어린 제자는 스승께서 왜 그런 장면을 넋 놓고 보고 있었느냐고 따지는 것이다. 스승의 대답인즉, 이놈아, 나는 그 장면을 벌써 머리에서 지웠는데 넌 아직 그 여인들 생각에 집착하고 있구나. 한창 공부에 전념해야 할 아들놈도 이런 충격적인 장면을 두고두고 곱씹는다면 어쩔 것인가.

    숙소인 호텔 방에 돌아와서도 어지러운 상념에 사로 잡혀 있었다. 세미나 준비를 해야 되는데 머릿속은 온통 사우나에서 겪었던 일로 혼란스럽다. 그런데 아들 녀석은 사우나가 파하는 시간쯤 돌아와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취침 준비를 한다. 사우나 도크를 골고루 탐방하며 뭇 독일여성들의 알몸을 감상하고 온 것이 틀림없다. 그런데 아비 앞에 저렇게 내숭을 떨고 있다니 참 영악한 놈.
    잠자리에 드는 아들 눈치를 보면서 뜸을 들이다 넌지시 물어 보았다.
    “어이 아들, 오늘 남녀 혼탕 사우나를 본 느낌 어땠어?”
    그러자 졸린 목소리의 대답이 돌아왔다.
    “그런 여자들 사진 인터넷에 쫙 깔렸어요. 독일 여자들 멋대가리 없이 키만 크고 우람하던데··· 내일부터 그냥 방에서 샤워나 할래요.”
    누가 탁발승이고 누가 어린 제자인지 헷갈린다.
    그래, 세상이 우리 때와는 많이 바뀌었지. 온갖 정보들이 인터넷에 난무하니. 하긴, 이 사람들이 누구인가. 게르만의 후예들이다. 나름 수백 년 내려온 목욕문화의 전통 속에서 남녀 간의 자연스런 모습을 받아들이는 기회로 삼고 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나는 이성 간의 신비감을 유지하는 우리 목욕문화가 훨씬 더 좋다.
    아들은 벌써 꿈나라로 가버렸다. 젊은 놈이라 시차 적응도 빠른 모양이다. 이방인으로 황당한 목욕문화에 이질감을 느꼈던 나는 오늘따라 시차적응이 더 힘들 것 같다. 베를린의 첫날밤이 참으로 더디게 지나가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