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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뼈저린 꿈에서만/ 전봉건*

그대 그리고 나/포항 2022. 12. 23. 08:49
*뼈저린 꿈에서만/ 전봉건*
 
 
그리라 하면 그리겠습니다
 
개울물에 어리는 풀포기 하나
 
개울물속에 빛나는 돌멩이 하나
 
그렇습니다. 고향의 것이라면
 
무엇 하나도 빠뜨리지 않고
 
지금도 똑똑하게 틀리는 일없이
 
얼마든지 그리겠습니다
 
 
 
말을 하라면 말하겠습니다
 
우물가엔 늘어선 미루나무는 여섯 그루
 
우물 속에 노니는 큰 붕어도 여섯 마리
 
그렇습니다. 고향의 일이라면
 
무엇 하나도 빠뜨리지 않고
 
지금도 생생하게 틀리는 일없이
 
얼마든지 말하겠습니다
 
 
 
마당 끝 큰 홰나무 아래로
 
삶은 강냉이 한 바가지 드시고
 
나를 찾으시던 어머님의 모습
 
가만히 옮기시던
 
그 발걸음 하나하나
 
조용히 웃으시던
 
그 얼굴의 빛 무늬 하나하나
 
나는 지금도 말하고 그릴 수가 있습니다
 
 
 
그러나 아무리 애써도 한 가지만은
 
그러나 아무리 몸부림 쳐도 그것만은
 
내가 그리질 못하고 말도 못합니다
 
강이 산으로 변하길 두 번
 
산이 강으로 변하길 두 번
 
그리고도 더 많이 흐른 세월이
 
가로 세로 파 놓은 어머님 이마의
 
어둡고 아픈 주름살
 
 
 
어머님
 
꿈에 보는 어머님 주름살을
 
말로 하려면 목이 먼저 메이고
 
어머님
 
꿈에 보는 어머님 주름살을
 
그림으로 그리라면 눈앞이 먼저 흐려집니다
 
아아 이십육년
 
뼈저린 꿈에서만 뫼시는 어머님이시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