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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물 한 방울/ 이어령

그대 그리고 나/포항 2022. 12. 10. 20:59

1 이어령 약력

  초대 문화부장관 문학평론가 호는 능소 1934년 충남 아산생 서울대 문리과대학 및 동 대학원을 졸업하고 단국대학교 대학원에서 박사 학위를 취득

대표 저서로는 저항의 문학, 흙 속에 저 바람 속에, 축소지향의 일본인, 디지로그, 지성에서 영성으로, 생명이 자본이다. 거시기 머시기등

 

2 서문

  믈음표와 느김표 사이를 쉴 새 없이 오간 게 내 인생이다. 물음표가 씨앗이라면 느김표는 꽃이다. 가장 중요한 것은 우선 호기심을 갖는 것, 그리고 왜 그런지 이유를 찾아내는 것이다. 내게 마지막에 남은 것은 "디지로그" "생명자본"에 이은 "눈물 한 방울"이었다. 눈물만이 우리가 인간이라는 걸 증명해준다. 정서적 눈물은 사람만이 흘릴 수 있다.우리가 경험해보지 못한 것이 눈물, 즉 박애다. 나를 위해서가 아니라 모르는 타인을 위해서 흘리는 눈물, 인간의 따스한 체온이 담긴 눈물, 관용의 "눈물 한 방울"이 아닌가. 나와 다른 이도 함께 품고 살아가는 세상 말이다. 인간을 이해한다는 건 인간이 흘리는 눔물을 이해한다는 것이다. 수정이 되고 진주가 되는 "눈물 한 방울' 피와 땀을 붙여주는 "눈물 한 방울" 쓸 수 없을 때 쓰는 마지막 "눈물 한 방울"

 

3 본문 요약

 

-p 012/2019년 10 24새벽, 이것은 낙서가 아니고 승서(昇書 떠오르는 글)다 

 

"엄마를 얼마나 사랑하지?"

 

"하늘 땅땅 모래 수만큼요!"

어머니...나는 지금 아직도 모래알을 세고 있습니다. 어머니의 사랑 다 해지 못하고 떠납니다.

 

-p 014 심심해서 하도 심심해서

 

심심하다는 無爲다. 슴슴하다는 無味다. 심심할 때 나는 나에게로 돌아온다. 아무것도 하지 않는 시간, 아무 맛도 없는 음식을 먹는 것, 일상으로부터 도망칠 때이다. 조용한 공백 속에서 음악이 들려오듯이, 모든 의미는 여백을 살해할 때 출현한다. 여백을 죽인 죄는 크다. 짜고 매운 음식을 만든 죄는 크다. 죄의 대가는 죽음이다. 

 

-p 022 먼 달은 보듯 내가 나를 본다

 

아무도 달을 쳐다보지 않으면 달은 없다. 아무도 나를 보아주지 않는다면 나는 투명 인간처럼 유렻처럼 이 세상에 존재할 수 없다. 내 이름을 누가 불러주지 않으면 나에게는 이름이 없는 것과 같다. 내가 내 이름을 부른다 내가 왼손의 맥을 오른손으로 짚는다. 나는 그 순간 둘로 분열된다. 탈자奪自, 내가 나 밖으로 나가야만 나 혼자서도 그 존재와 이름이 유효하다. 나는 감옥인 게다. 감옥에서 벗어나면 황홀한 자유다. 이상은 마치 두 개의 태양처럼 마주 보며 낄낄거리는 나의 존재를 말한 적이 있다. <날개> 서두에 나오는 경구의 하나로, 달을 보듯이 먼 달을 보듯이 내가 나를 봐야 나는 존재한다. 오른손으로 왼손의 맥을 짚어본다. 맥이 뛴다. 살아 있다. 아! 내가 살아 있다.

 

-p 25 인간의 상대성 원리

 

이 세상에 절대란 말은 없다. 신이 존재한다면 그 존재가 바로 "절대"다. 

어머니는 늘 사이좋게 놀라고 말씀하셨다. 아이들과 싸우지 말고 노는 것이 사이가 좋은 것이다. "사이"는 너와 나 사이의 빈칸에 있다. 내가 너에게 네가 나에게 오지 말고 이 빈칸에서 만나ㄷ자. 한가운데, 그 사이에서 만나려면 힘이 든다. 나도 너도 아닌 그 사이에 네가 있고 내가 있다.

 

-p 27 아무렇캐나 쓰자

 

40년 만에 처음으로 손 글씨를 쓴다. 컴퓨터 자판으로 써왔는데 이제 늙어서 더 이상 더불클릭도 힘들게 되면서 다시 옛날의 손 글씨로 돌아갔다. 처음 글씨를 배우는 초딩 글씨가 될 수밖에 없다. 하지만 아련한 기억이 돌아온다. 지렁이 지나간 글씨 하나마다. 추웠던 겨울의 문풍지 소리, 원고지를 구겨서 발기발기 찢어 쓰레기통에 던지던 소리. 찹쌀떡 사려! 문을 열고 나가면 골묵의 어둠만 있던 자취 생활 방, 글씨 모양, 가지각색의 필적이 슬픈 기억 속에서 콩나물시루처럼 자란다.

 

-P 29 늙다와 낡다

 

옷은 낡아도 몸은 낡는다고 하지 않는다. 물건은 죽을 수 없다. 산 적도 없고 생명은 부서지지 않는다. 늙은이는 안심해도 좋다. 낡은 겡 이니라 늙은 것이다. 늙은이여, 쫄지 마.

 

- p 036 원고지는 행복했다

 

원고지에 글을 쓰던 시절 나는 행복했다. 글이 써지지 않으면 원고지를 씾을 수 있었기에 박박 찢고 꼬깃꼬깃 구겨서 쓰레기통도 아닌 방바닥에 던진다. .종이는 만만하다. 종처럼 유순하다. 찢고 구기고 던져도 상처를 내지 않는다. 종이 말고 내 마음 내키는 대로 구길 수 있는게 아무리 생각해도 없다. 글이 써지지 않는 밤, 나는 어둠을 찢고 별들까지도 구길 수 있었다. 컴퓨처의 액정판에 찍힌 내 글들은 아무리  해도 찢어지지도 구겨지지도 않는다.

 

-p 039

 

  카메라맨이 말했다. 사진을 찍기 전에 렌즈를 닦아라. 시인이 말했다. 글을 짓기 전에 마음을 씻어라. 하나님이 말씀하셨다. 비가 멈추어야 무지개가 뜬다. 렌즈를 닦는 일도 마음을 씻는 일도 멈춘다. 죽음은 무지개인가 보다.

 

-p 041 지우개 달린 연필

 

  어떤 지우개로도 지울 수 없는 한마디 말을 위하여 저에게 세상에서 가장 뭉클한 지우개를 주소서. 그리고 세상에서 가장 향기로운 연필 한 자루를 깎을 수 있는 칼 하나도 함께 주소서. 심장을 찌를 수 있는 칼 한 자루도 주소서

 

-p 046 나는 노숙자

 

  아침에 눈을 뜨면

그 위에 천장이 있다는 것

그것이 하루의 행복이라는 것을

알기 위해서는 노숙자로 살아야 한다

 

아침에 눈을 뜨면

곁에 한 사람이 있다는 것

그것이 하루의 보람이라는 것을

알기 위해서는 노숙자로 살아야 한다.

 

노숙자는 노숙자路宿子가 아니라

노숙자露宿子인 게다

 

이슬을 맞으며

잠든 사람

노숙자의 눈물은 눈물이 

아닌 게다

이슬인 게다

 

-p 053 박수 소리

 

나는 박수 소리가 좋다

그것은 물방울 하나하나가

모여 작은 도랑물로 흐르다

어느 마을 냇가로 흐르다

벌판으로 흐르는 큰 강물

 

나는 박수 소리가 좋다

잠든 영혼을 깨워

내 마음에서 너의 마음으로

너의 마음에서 온 세상

그들의 마음가지 울려

 

나는 박수 소리가 좋다

내 눈을 감을 때 손뼉을 쳐다오

눈물 대신, 만가 대신 박수를 쳐다오

내 영혼은 큰 가뭄을 타고

황량한 사막을 적시리라

 

-p 055 제기 차는 소년

 

어렸을 적 제기를 만들어 찼다. 발로 차는 배드민턴. 손재주란 말은 있어도 발재주란 말은 들은 적이 별로 없다. 그래서 제기차기는 재미있다. 거꾸로 가는 세상은 아이고 어른이고 흥분시킨다. 그것은 반란이고 혁명이고 반체제이기 때문이다. 물구나무를 서거나 가랑이 사이로 보는 풍경은 그야말로 소스트라네니, 낯설게 하기의 일종이다. 일상의 습관에서 반복과 지루한 동어반복으로부터의 탈출이다. 재기차기는 실패를 위한 것이다. 언젠가 제기는 땅에 떨어진다. 

 

-p060 그림, 그리기

 

그림이 없었다면

사방의 벽은

벽의 공허는

무엇으로 채우나

 

그림이 없었다면

화가의 마음은

마음의 공허는

무엇으로 채우나

 

그림은 그리다에서

나온 말인가 본에

그리다는 그리움이기도 하다

그리움이 없었다면

잃어버린 시간은

시간의 공허는

무엇으로 채우나

 

오늘 그 공허로 하여

그림을 그린다

모든 것들 그리워한다

그리다는 그림이고 그리움이다.

 

-p 065 

  나는 어렸을 때 죽음을 알았고

나는 늙었을 때 생을 알았다

거꾸로 산 것이다.

 

-p 067 배달되지 않은 책

 

  오늘이 마지막이다. 가로 하면서도 책을 주문한다

읽기 위해서가 아니다. 그럴 힘도 이제 남아 있지 않다

몇 구절 서평 속에 나와 있는 것이 궁금해서, 호기심을 참지 못해서다.

 

내가 마지막 주문할 책은 가연 어떤 것일까?

무엇이 또 알고 싶고 궁금한 것이 있어 또 책을 주문한 걸까.

아마 그 책이 배달되기 전에 나는 더 이상 이 세상에 없을지도 모른다.

 

그것이 내 마지막 우물 파기가 될 것이다

죽음이라는 낱말 말고 다른 궁금한 말이 암아 있었는가?

배달된 책보다 먼저 떠난다면 내가 호기심으로 찾던 

그 말들은 닫힌 책갈피 속에 남을 것이다.

열지 않은 책속에 책갈피 속에, 읽지 않은 몇 마디 말

몇 줄의 글...그게 무엇인지 알고 싶다.

이미 배달되었는데 읽지 않는 말들도 있지 않은가?

잊힌 책, 버린 책, 서고에서 영원히 잠든 책들,

나보다 먼저 죽은 책들도 있고 나보다 뒤에 죽는 책들도 있다

 

배달되지 않은 책 표지가 무슨 색인지 알고 싶다. 

 

-p  070 디지로그

 

점은 디지털이고 선은 아날로그다. 물레로 실을 뽑는 것은 연속체인 아날로그이고, 그것으로 씨줄 날중에 북을 오가며 천을 짜는 베틀은 디지털이다. 아날로그와 디지털의 영원한 평행선을 하나로 융합하려는 되대의 도전, 그것이 디지로그이다.

 

- p 079 모멘토모리

젊은이에게 해줄 수 있는 단 한마디. momento mori, 죽음을 생각하라는 말이다. 늙어서 죽음을 알게 되면 비극이지만 젊어서 그것을 알면 축복인 게다. 

 

-p094 참새

  참새는 화려한 빛깔이 없다, 하지만 채색화보다 때론 수묵화가 훨씬 더 아취가 있고 깊은 맛이 있듯이 참새는 볼수록 아름다운 새다. 사람하고 제일 친해서 새에다 참 자를 붙여 "참새"다. 그 많던 참새들은 더디로 갔나? 보이지 않는 것이 보이는 것보다 더 가깝고 정겨울 때가 있다.

 

-p 112 화폐의 가치

나를 위해 스는 돈이 아깝지 않듯이 너를 위해서 쓰는 돈이 아깝지 않다면 나는 너를 사랑하는 것이다. 

 

-p 123 옛 명문 시어

."참꽃에 볼때기 덴 넌"-진달래똧에 볼을 덴 넌

."저 달빛엔 꽃가지도 휘이겠구나"-나뭇가지 위로 뜬 달을 열매로 비유

"술잔에 든 달을 마시고 배 속에 달빛이 가득 차 있다.

-p 175 암 선고를 받고 난 뒤로 어젯밤에 처음

어머니 영정 앞에서 울었다. 통곡을 했다

80년 전 어머니 앞에서 울던 그 울음소리다.

 

울면 긑이라고 생각했다. 이를 악물고 울음을 참아야

암세포들이, 죽음의 입자들이 날 건드리지 못한다고 생각햇다.

 

차돌이 되어야지, 불안, 공토 그리고 비애 앞에서 아무것도 

감각할 수 없는 차돌이 되어야지, 그렇게 생각했다

어제 그런데 울었다.. "엄마 나 어떻게 해."

 

울고 또 울었다. 엉엉 울었다.

 

-p 179 한 발짝이라도 걸을 수 있을 때까지 걷자.

한 호흡이라도 쉴 수 있을 때까지 숨 쉬자

한 마디 말이라도 할 수 있을 때까지 말하자

한 획이라도 글씨를 쓸 수 있을 대까지 글을 쓰자

돌맹이, 참새, 그름, 흙, 어렸을 때 내가 가지고 놀던 것

쫓아다니던 것, 물그러미 바라다본 것

그것들이 내가 사랑하는 것들이었음을 알 때까지

사랑하자.

 

-p 181 기병대처럼 아침이 왔다

햇살이 나팔 소리처럼 먼 데서 들려오더니

 

밤새 어둠가 사워 이불 위에 넝마처럼 스러진 미라 같은 내 몸에 기병대처럼 아침이ㅣ 왔다

 

디 밤이 마지막이라고 생각했던

2021년 10.025일 새벽 한 시

아침이 되기에는 아직도 여섯 시간 더 기다려야 하는데

기병대는 모든 전투가 긑나고 화살이 부러지고, 포랑 마차가

불타고 죽은 소녀의 오르골이 울릴 무렵에야 즞게 온다.

 

불을 켜놓고 처음 잠을 잣다

밤이 무섭다.

 

-p 182 신문 없는 날

 

신문 없는 날은 좋더라

새 소식이 없으니

새우는 소리가 들리더라

 

신문에도 얼굴이 있어서

면이라고 부르는데

아침마다 그 얼굴을 안 보니

잃어버렸던 얼이 보이더라

 

신문 없는 날은 좋더라

아무 일도 없으니

정치고 경제도 사회도

그리고 문화마저도 보이지 않으니

 

하늘이 보이더라

땅이 없으니

별이 보이고 그르이 보이고

해가 떠오르더라

 

-p 184 이제는 내 손으로라도 끝내자

참을 수 없는 밥들을 더 기다리지 말고

그 밤을 찢어버리자

내 손으로 이제는 밤이 없도록

어느 저녁 노을을

아침 노을이라 생각하고

서쪽을 동쪽이라 생각하고

이제 엎드려 저 한 번 하고 떠나자

지겨운 남은 밤들을 떠나자.

 

-p 185 할렐루야 변비

배설에 비하면

먹는 것처럼 쉬운 것이 없다

 

그런데 지금 나는 그 배설의 순간을

고도를 기다리듯 기다리고 있다.

벼비 끝에 대변이 나오면 정말 나는 경건한 기도,

기쁨의 찬미를 부르듯 "할렐루야"라고 환성을 지른다.

 

-p187 이제 떠납니다

감사합니다

많은 우물을 팠지만

마지막 우물 파기는

힘들었습니다

 

만약 물이 나왔더라면

그 물로 사하라 사막을

젖게 하여

선인장 아님 장미같은 백합간은

아니면

우리 뒷동산 개나리를 피웠을 것입니다. 

 

-p 192 소독 냄새 나는 환자의 말

여기에 남은 여백만큼만 

살게 하소서

병마와 싸우다가도

행복한 날에는 건너뛰고

글로 남기지 않았습니다

그러니, 여기 남긴 글들은

어둡고 좁은 골목길

저녁 짓는 연기로 매운

빈터이기는 하나

 

그래도 내 뭄을 받아줄

빈터인 줄 아오니

여백만큼 살게 하소서

시인의 기도였으면 좋겠는데

환자의 말에는 모두가

소독 냄새가 납니다.

용서하소서/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