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0629 문목 시
1 메아리/ 최하림
오래된 우물에 갔었지요
갈대숲에 가려 수시간을 헤맨 끝에 간신히 바위 아래 숨은 우물을 발경했습니다
마을 장로들의 말씀으로는 성호 이익 선생께서 파셨다고도 하고 성호 문하에서 파셨다고도 하고 그보다 오래전 사람들이 파셨다고도 했습니다
마무려면 어떻겠습니까마는 좌우지간 예사 우믈은 아닌 것 같았습니다
나는 천천히 고개를 숙이고 벌컥벌컥 물을 마신 다음 우리가 살아야할 근사한 이유라도 있는 것이냐고 가만히 물어보았습니다
우리가 살아야 할 근사한 이유라도....이유라도....
하고 메아리가 일었습니다
그와 함께 수면이 산산조각 깨어지고 얼굴이 달아났습니다
나는 놀래어 일어났지만 수면은 계속 파장을 일으키며 공중으로 펴져가고 있었습니다
-계간 (창작과 비평) 2003 여름호
이 시는 고요 속으로 가만히 내려간다. 바깥을 응시하던 시선이 내면을 응시한다. "나"는 숨어 있는 옛 우물을 찾아간다. 목을 축인후에 그 우물에 묻는다. 우리가 이처럼 살아야 할 그럴듯하게 괜찮은 이유가 있느냐고 우물의 수면에는 자신의 얼굴이 비치고 있었을 것이므로 이 물음은 자신을 향해 던진 물음이기도 하다. 최하림 시인의 시는 시적 화자가 풍경의 주체가 되지 않고 풍경 일부가 되는 특징이 있다는 평가를 받는다. 담담하게 풍졍을 바라보았기 때문이다
이 시를 읽으면서 요즘의 우리에게 이 시처럼 바깥 풍경에 대한 조용한 응시의 시간이 과연 있는 것일까 생각했다. 다른 누군가에게 물을 것도 없이 나에게 먼저 물어보았다.
다섯을 셀 동안에 걸쳐 하나의 바같 풍경을 오래 응시한 적이 있었던가. 쫓기는 사람처럼 살고 있는 것은 아닐까
-문태준 시인 ( 나는 첫 문장을 기다렸다) 중에서
*필독요/ 최하림 시 전집 - 이슬 방울 속으로 우산을 쓰고 갔다
2 담쟁이 넝쿨/ 조원
두 손이 바들거려요 그렇다고 허공을 잡을 수 없잖아요
누치를 끌어올리는 그물처럼 우리도 서로를 엮어 보아요
뼈가 없는 것들은 무엇이든 잡아야 일어선다는데
사흘 밤낯 찬바람에 찧어낸 풀실로 맨 몸을 친친 감아요
그나마 담벼락이, 그나마 나무가. 그나마 바위가, 그나마 꽃이 ,
그나마 비빌 언덕이니 얼마나 좋아요
당신과 내가 맞잡은 풀실이 나무의 움막을 짜고 벽의 이불을 짜고 꽃의 치마를 짜다
먼저랄 것 없이 바늘 코를 놓을 수도 있겠지요
올실 풀려나가 구멍으로 쫓아 들던 날실이 숯덩이만한 매듭을 짓거나
이리저리 흔들리며 벌레 먹힌 이력을 서로에게 남기거나
바람이 먼지를 엎질러 숭숭 뜯기고 얼룩지기도 하겠지만
그래요, 혼자서는 팽팽할 수 없어 엉켜 사는 거예요
찢긴 구멍으로 달빛이 빠져나가도 우리 신경 쓰지 말아요
반듯하게 깎아놓은 계단도, 숨 고를 의자도 없는
매일 한 타래씩 올을 풀어 벽을 타고 오르는 일이
쉽지만은 않겠지요 오르다 보면 담벼락 어딘가에
평지 하나 있을지 모르잖아요,
혹여, 허공을 붙잡고 사는 마법이 생길지 누가 알겠어요
따박따박 날갯짓하는 나비 한 마리 등에 앉았네요
자. 손을 잡고 조심조심 올라가요
한참을 휘감다 돌아설 그때도 곁에 있을 당신
*담쟁이를 뜨게질로 환치
*습작 필시제- 담쟁이, 우선 담쟁이의 생태 파악 필수
3 가방/ 오정순
끼워 넣을 내가 많아 어제보다 무거워요
하루가 흔들리며 어깨를 짓누르는데
거품만 빼면 될까요 나, 라는 무게에서
한쪽으로 쏠리는 기울기를 읽지 못해
때로 실밥 터지고 걸음 뒤똥거려도
넣지도 빼지도 못해요 나, 라는 이력서
비구름 몰려 있는 귀퉁이 우산 한 개
바닥을 탈탈 털어 잿빛 날들 고백할까요
마음껏 펼치고 싶어요 나, 라는 햇살 목록
*~나. ~ 새로운 창법
*필수 창작 시제
4 경운기 소리/ 윤보영
경운기에 시동을 걸었다
달달달달
오르막길을 올라가고 있다
탕탕탕탕
얕은 개울물을 건너고 있다
퉁퉁퉁퉁
자갈밭 길을 지나가고 있다
탈탈탈탈
골자기 밭에 도착한 경운기가
올라온 길을 되새김질하고 있다
덜덜덜덜덜
*동시는 간결, 재미가 있어야 함
5 정동진역/ 김영남
겨울이 다른 곳보다 일찍 도착하는 바닷가
그 마을에 가면
정동진이라는 억새풀 같은 간이역이 있다
계절마다 쓸쓸한 꽃들과 벤치를 내려놓고
가끔 두 칸 열차 가득
조개껍질이 되어버린 몸들을 싣고 떠나는 역
여개에 혼자 뒹굴기에 좋은 모래사장이 있고
해안선을 잡아넣고 끓이는 라면집과
파도를 의자에 앉혀놓고
잔을 주고받기 좋은 소줏잔이 있다
그리고 밤이 되면
외로운 방들 위에 영롱한 불빛을 다는
아름다운 천장도 볼 수 있다
강릉에서 20분, 7번 국도를 따라가면
바닷바람에 철로 쪽으호 휘어진 소나무 한 그루와
푸른 깃발로 열차를 세우는 역사,
같은 그녀를 만날 수 있다
1 (묘사시 숙제) 비들의 반란
티브이에 홍수가 났다
엘로우스톤
빗물이 콧잔등의 온갖 주름을 다잡고 양쪽 송곳니를 한껏 드러내고 있다
집이 난파선이다
집이 구겨지지도 않고 통째로 떠내려간다
갓 쪄낸 팥시루떡 쪽 떨어지듯 흙 살점 붙은 아스팔트 껍질 떼어먹는다
닥치는 대로 허겁지겁 다 먹는 잡식동물이다
허기진 빗물의 용트림에 공포의 멀미가 난다
빗물의 째려봄이 살갗을 뚫는다
물의 손아귀가 스치는 순간마다 낚아챌 줄이야
물의 입이 그렇게 클 줄이야
물의 배가 그렇게 똥배일 줄이야
사람의 손들은 그저 맨손일 뿐
어찌어찌해 볼 수도 없는 순간
어의만이 눈물과 낙담을 뒷발로 찰 뿐
하염없는 빗발, 요강은 찰랑 찰랑인 데 풀린 오줌발은 쉬이 멈출 수 없듯 쏟아져 내리고
한 통 속, 그 위쪽 빙하도 녹아 홍수를 거들었다니
저 멀리 폴리스라인만 하염없이 넋을 잃고 서 있다
* 시어 순화요
* 진술/ 설명 더 삭제 필요
*풍유 활용 노력 필요
2 *이별이 오늘 만나자고 한다*r1
조용히 만나자면
미리 식은땀 난다
식은 말 하는
마누라가 그러하듯
만나자고 하는 이유를
아무래도 못 찾겠다
못하는 술 넘치도록 급유하고
실성한 듯 재롱으로 모면할까
근엄하게 받아칠까.
요에 오줌 싼 강아지처럼 벌렁 나자빠질까
뭔 종이 내밀면 그냥 도장 찍어줄까
보지도 말고 박박 찢어 얼굴에 내던져줄까
순순히 도장 찍는 게 님을 더 님답게할 수도 있을까
눈에 선한 애들의 눈물이
내 바짓가랑이를 잡아당긴다
미운 정 고운 정
또 한 페이지 넘기자
처음 눈꺼풀 꼈을 때 생각하며
r1 이병률 시집명 차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