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펌/동아일보 ㅡ 봄꽃 구경[관계의 재발견/고수리]동아일보입력 2022-04-08 03:00:00업데이트 2022-04-08 05:25:
그대 그리고 나/포항
2022. 4. 8. 17:45
나는 분식집에서 봄꽃을 보았다. 떡볶이를 먹다가 테이블가에 우뚝 솟은 줄기 위에 새초롬하니 희게 핀 꽃을 보았다. 꽃줄기엔 화분 대신 멜라민 분식집 그릇이, 그릇에는 무가 담겨 있었다. “무에서 꽃이 핀 거예요?”
주인아주머니는 알아봐 줘서 기쁘다는 얼굴로 싹싹하게 대답했다. “무꽃이에요. 무대가리 댕강 잘라다가 엎어두고 물 주면 그리도 쑥쑥 자라 꽃 펴요. 무꽃이 얼마나 예쁜지들 모른다니까.” 깍두기 담다가 남겨둔 무청에서 피어난 무꽃. 처음 본 무꽃은 여리여리하게 예뻤다. 제멋대로 자란 투박한 잎사귀에 나비처럼 내려앉은 무꽃이 분식집 구석구석 피어 있었다.
동네 골목에서 진달래도 만났다. 제법 키가 큰 진달래나무가 화분에 심어져 있었다. 도시의 골목에서 마주한 진달래가 하도 신기해서 가만 보고 있노라니 화분에 물을 주던 아주머니가 도란도란 말해줬다. “지난봄에 울 아부지 묻어드리고 그 산에서 가져온 나무요. 죽었는가 했는데 봄 왔다고 이리 꽃을 피워 주네. 고와라. 곱디곱다. 이 꽃을 몇 번이나 볼란가.” 볼그스름 핀 골목의 진달래를 잊을 수 없다.
엄마가 바닥에 핀 꽃 사진을 찍어 보냈기에 전화를 걸었다. “나이가 들수록 봄꽃이 예뻐 보이는 이유를 아니? 죽기 전에 몇 번이나 꽃을 보게 될까 생각하면 그렇게 애틋하고 예쁠 수가 없단다. 딸아, 이제 나는 스무 번이나 꽃을 볼까나.” 엄마의 말에 그것보다야 더 많이많이 볼 테지 부루퉁 대꾸하지만 나는 속절없는 마음이 된다.
사는 동안 몇 번이나 꽃을 볼까. 순간 피었다가 저버리는 꽃은 꼭 오늘 하루 같다. 우리는 오늘이 생애 단 하루 인지도 모르고, 금방 저버릴 줄도 모르고 아무렇게나 보내버리곤 하니까. 무럭무럭 자라서 애쓰며 피어난 자신이 얼마나 예쁜지도 모르고, 사는 거 바쁘다고 힘들다고 바닥만 보다가 하루를 지나쳐 버린다.
“아가, 꽃 봐라. 속상한 거는 생각도 하지 말고 너는 이쁜 거만 봐라.” 어느 소설에서 읽었던 할머니의 말이 떠오른다. 오늘은 속상한 거 힘든 거 생각 말고 바깥에 핀 봄꽃 구경하며 보내라고. 모두에게 안부를 전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