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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군가를 기다리는 밥상이 덜 쓸쓸한 법이지ㅡ못 가 본 길이 더 아름답다/박완서 산문집
그대 그리고 나/포항
2022. 1. 1. 18:04
요즘 나의 아침상은 새와의 겸상이다. 산수유 붉은 열매를 찾아오는 새들은 참새과일 듯싶은 작은 새들이다. 떼로 날아오는 새도 있고 혼자 외로이 날아오는 새도 있다. 한 마리도 안 날아오는 날도 많다. 입맛이 없는 날은 새가 날아오길 하염없이 기다릴 적도 있다. 기다릴 사람 없는 밥상보다는 누군가를 기다리는 밥상이 훨씬 덜 쓸쓸하다. 산수유 붉은 열매를 쪼던 새가 목을 뒤쪽으로 젖히는 순간을 포착하면 나는 진밥을 먹다가도 목이 메어 된장국 한 모금을 떠 넣고는 목을 뒤로 젖힌다. 그리고 나를 목메게 하는 건 진밥이 아니라 여태까지 살아온 세월의 더께. 터무니없이 무거운 돌대가리와, 누추하고 육중한 몸으로 감히 창공의 자유를 꿈꾼 헛된 욕망이라 걸 깨닫는다. 아무렇지도 않은 것 같은 시가 와서 나의 아무렇지도 않은 시간과 만나니
나 같은 속물도 철학을 하게 만든다. 시의 힘이여 위대하도다./191~192쪽
*새/문태준
새는 날아오네
산수유 열매 붉은 둘레에
새는 오늘도 날아와 앉네
붉은 밥 한 그릇만 있는 추운 식탁에
고두밥을 먹느냐
목을 자주 뒤쪽으로 젖히는 새는
(문태준 시집/그늘의 발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