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펌[신동욱 앵커의 시선] 포옹의 힘
그대 그리고 나/포항
2021. 11. 12. 23:41
등록 2021.11.12 21:52
수정 2021.11.12 22:29
폴란드 여배우 할리나는 어려서 친구 카롤과 함께 연극을 했습니다. 열두 살 때 첫 무대 '안티고네'부터 둘은 주역을 맡았지요. 훗날 카롤이 교황에 등극하자 그녀가 교황청 광장 알현행사에 찾아갔습니다. 군중 속에서 교황을 향해 고향 '바도비체'를 외쳐보다 돌아섰습니다. 그런데 아침식사를 하자는 전갈이 왔습니다. 교황은 어쩔 줄 몰라하는 그녀를 안아주며 "진정해, 안티고네" 라고 했습니다. 근 50년 전 함께했던 연극의 여주인공 이름을 불러준 것이지요.
미국 어느 법정에서 절도범이 머리를 감싸쥐고 통곡합니다. 판사가 중학교 동창이었던 겁니다. 그가 형기를 마치고 출소한 날 뜻밖에 그 동창생 판사가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그녀는 옛 친구를 안아주며 "누군가를 위해 좋은 일을 할 수 있을 거"라고 다독였습니다.
포옹은 교감과 유대, 배려와 위안의 몸짓입니다. 며칠 전 고열이 오른 아기를 태우고 응급실로 가던 엄마가 접촉사고를 냈습니다. 병원으로 달려간 남편은 아내와 아기를 챙긴 뒤 보험사로 보낼 블랙박스를 확인하다 뜻밖의 영상을 봤습니다. 당황해 울먹이는 아내를, 앞차 운전자가 꼭 껴안고 얼굴을 쓰다듬어 주고 있었습니다. 중년의 여성 운전자는 "나는 괜찮으니 빨리 병원부터 가라"고 아내 걱정을 해줬다고 합니다.
"(사고 나면) 서로가 찡그리는 얼굴로 하는 그 모습이 싫었거든요. 그랬는데 저는 순간 그 여자분을 볼 때 너무 마음이 아팠어요"
지난달 한 여중생은, 젊은 여성이 난간가에서 5미터 아래 지하도로 뛰어내리려는 모습을 보고 다가갔습니다. 이야기를 들어주면서 마음을 가라앉히는 사이, 지나가던 친구들에게 신고해달라고 했습니다. 소녀는 경찰이 올 때까지 언니 같은 여성을 안아주고 있었다고 합니다. 비바람 속에 일인시위를 하는 장애인에게 한 시간 동안 우산을 받쳐주던 경찰관부터, 소방서에 조용히 요소수 세 통을 놓고 사라진 남성까지. 작은 듯 작지 않고, 덤덤한 듯 뜨거운 마음의 포옹들을 떠올립니다.
그 인간의 향기를 시인이 노래합니다.
"사람의 몸은 참 따뜻해. 7초간 포옹했을 뿐인데, 비 그친 후의 태양처럼 향기롭지. 외로운 눈동자가 달콤한 이슬비로 젖지"
갑자기 날씨가 차가워졌습니다. 다들 잔뜩 웅크린 채 종종걸음을 칩니다. 주말 저녁 따스한 집으로 돌아와 잠시 서로 안고 안기며 체온을 나누셨을 가족들을 생각합니다.
11월 12일 앵커의 시선은 '포옹의 힘' 이었습니다.
**관련 시 정리**
**7초간의 포옹 1 신현림**
너무나 고달프게 그리워한 눈
너무나 고달프게 달려온 밤
너무나 고달파서 낡은 손을 내봐요
손을 잡으면 슬픈 사람이
금세 안정을 찾는다죠
따스히 손잡는 일은
세상이 넓어 보이는 일이었어요
살아서 할 일은 힘든 손 잡고
안아 주는 일임을 알았어요
당신을 안으면 힘이 나시겠죠
더 넓어 보이는 하늘
빨개지는 당신 손
**7초간의 포옹 2**
사람의 몸은 참 따뜻해
7초간 포옹했을 뿐인데
비 그친 후의 태양처럼 향기롭지
사람끼리 닿으면 참 많은 것을 낫게 해
상처가 낫고 슬픔이 가라앉고
외로운 눈동자가 달콤한 이슬비에 젖지
닿고 싶어, 낫고 싶어
온통 기쁨을 낳고 싶어
당신과의
가슴 뭉클한
7초간의 포옹
-신현림시집 [7초간의 포옹]. 믿음사. 2020. 02. 1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