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펌/보고 싶었어요

그대 그리고 나/포항 2021. 6. 5. 00:50

펌/신동욱 앵커의 시선] 보고 싶었어요
등록 2021.06.04 21:48수정 2021.06.04 21:55

예전에 노부부들을 모셔 낱말 알아맞히기를 하던 퀴즈 쇼가 있었지요. 그때 한 장면이 시가 됐습니다.

"천생연분을 설명해야 하는 할아버지. 여보, 우리 같은 사이를 뭐라고 하지? 웬수. 당황한 할아버지 손가락 넷을 펴 보이며, 아니 네 글자. 평생 웬수…"

그래서 부부는 "주름살 속에 산다"고 하는 모양입니다.

70년 해로한 아내를 앞세우고 열흘 뒤 따라 떠난 노시인처럼 말입니다.

"오십 년이 넘도록 하루같이 붙어 다니느라, 비록 때묻고 이 빠졌을망정, 함께 있어야만 제격인 사발과 대접"

지난해 스페인 어느 요양병원이 코로나로 폐쇄된 지 백일 만에 가족 면회를 재개하자 여든한 살 할머니가 달려왔습니다. 비닐막과 마스크 위로 할아버지와 뜨거운 입맞춤을 나눕니다. 비닐로 싼 팔을 넣어 꼭 끌어안습니다. 눈물과 감격에 젖은 부부의 두 눈이 모든 것을 말해줍니다.

"잘 있었냐고?" "영감 보고 싶어서… 그냥 죽겠어, 보고 싶어서, 궁금하고…"

여든여덟 살 할머니가 70년을 해로한 할아버지와 나란히 앉아 두 손을 꼭 쥔 곳은 비닐 천막이 아닙니다.

할아버지가 외롭게 누워 있던 요양병원 병상입니다. 1년 넉 달 만에 할아버지와 얼굴을 맞댄 할머니가 눈물을 쏟아냅니다.

"울지 말아, 울지 말아, 괜찮아"

백신을 맞은 환자와 가족 친지가 마주앉아 숨결과 온기를 나눌 수 있게 되면서 요양병원마다 노부부의 재회가 애틋합니다.

코로나 이산부부 상봉입니다.

코로나가 기승을 부리면서 요양병원은 한때 방치되다시피 했습니다. 가족들 발길은 끊겼고, 현대판 고려장이라는 아우성까지 터져 나왔습니다.

"환자들과... 모든 사람들은 침몰하는 배에 갇혀 있는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고립과 고독은 코로나보다 위험합니다. 그래서 브라질 병동에는 환자의 손을 감싸주는 고무장갑이 등장했습니다. 의료 장갑에 따뜻한 물을 채워, 가족의 체온을 그리워하는 환자를 위로하는 겁니다. 이제 우리는, 누구보다 절절한 노부부들부터 손을 맞잡아 체온을 나누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면서 모두들 되뇌고 계실 겁니다. '백신 맞기를 백번 잘했다'고… 부부는 그렇게 또 삶의 한 고개를 넘으면서, 서로에게 더 깊이 스며들어 더 애틋하게 살아가겠지요.

6월 4일 앵커의 시선은 '보고 싶었어요' 였습니다.

**부부/황성희**

낱말을 설명해 맞추는 TV 노인 프로그램에서
천생연분을 설명해야 하는 할아버지
"여보 우리 같은 사이를 뭐라고 하지?"
"웬수"
당황한 할아버지 손가락 넷을 펴 보이며
"아니 네 글자"
"평생 웬수"

어머니의 눈망울 속 가랑잎이 떨어져 내린다
충돌과 충돌의 포연 속에서
본능과 본능의 골짜구니 사이에서
힘겹게 꾸려온 나날의 시간들이
36.5 말의 체온 속에서

사무치게 그리운
평생의 웬수

**夫婦/김종길**


어두운 부뚜막이나
낡은 탁자 위 같은 데서
어쩌다 비쳐드는 저녁 햇살이라도 받아야
잠시 제 모습을 드러내는 한 쌍의 빈 그릇

놋쇠든 사기이든 오지든
오십 년 넘도록 하루같이 함께 붙어다니느라
비록 때묻고 이 빠졌을망정
늘 함께 있어야만 제격인 사발과 대접

적잖은 자식 낳아 길러
짝지워 다 내어보내고
이제는 둘만 남아
이렇게 이따금 서로의 성근 흰 머리칼
눈가의 잔주름 눈여겨 바라보며

깨어지더라도 함께 깨어질 수는 없는 것일까
부질없이 서로 웃으며 되새겨보면
창밖엔 저무는 날의 남은 햇빛
그 햇빛에 희뜩이는 때아닌 이슬방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