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지지/나의 이야기

펌)평생에 가장 부끄러운 말

그대 그리고 나/포항 2017. 8. 30. 02:00

평생에 가장 부끄러운 말

곽 흥 렬

   느지막이 수업을 끝내고 서둘러 귀갓길에 올랐다. 강의실에서 거처까지 장장 삼백오십 여 리, 고속도로를 세 번이나 갈아타면서 두 시간 넘게 달려야 하는 만만치 않은 거리다. 말상대해 줄 옆 사람도 없이 갑갑한 차 안에 오래 갇혀 있다 보니 급작스럽게 오후의 피로가 몰려온다.

   나른함을 쫓기 위해 라디오를 틀었다. 평소 즐겨 듣는 불교 방송 <무명을 밝히고> 프로에 주파수를 맞춘다. 한국불교대학 회주이신 우학又學 스님의 금강경 강의가 흘러나온다. 큰스님의 강의는 특유의 입담과 재치 있는 화법으로, 들으면 들을수록 깊이 빠져들게 하는 묘한 마력을 지녔다. 오늘은 금강경의 핵심 사상인 사상四相에 대하여 설법이 펼쳐지고 있다.

   “스님, 지금 꺼내신 이야기는 예전에 벌써 몇 번이나 들은 내용이잖아요.”

   스님은 한창 말씀을 이어가다 말고는, 신도 가운데 강의 중간에 이따금 그런 소리를 하는 사람이 있다며 혀를 차신다.

   법문이 설해지는 순간, 큰스님의 사자후가 예리한 화살이 되어 나에게로 와 꽂혔다. 당신께서 지적하신 그 신도의 말은 영락없이 내 입에서 튀어나온 불평이었다.

   학부 시절, 나 역시도 은사님들의 강의 도중에 그런 볼멘소리를 심심찮게 중얼거렸었다. 왜 같은 이야기를 두 번 세 번 되풀이해서 말씀하실까에 대해서는 조금치도 헤아려 볼 생각을 하지 않았다.

   그것이 얼마나 어리석고 지각없는 마음가짐이었는지 스님의 법문은 내게 죽비소리로 후려치고 있었다. 그 매는 이날 이때까지 살아오면서 받은 그 어떤 벌보다 나를 아프게 하는 채찍이었고, 평생에 스스로를 가장 부끄럽게 하는 질책이었다. 그동안 내 안에 얼마나 단단한 거드름 덩어리가 똘똘 똬리를 틀고 있었던가를 절절히 뉘우치게 만들었다. 어쩌면 지금보다는 훨씬 많이 생겨났을 수 있었을 법한 알량한 식견마저 제대로 지니지 못하고 요 모양 요 꼴이 되고 만 것도 마음 한구석에 항시 예전에 이미 들었던 이야기인데를 앞세우고 지내 온 자아류의 독선 때문일 터이다. 금강경 오천 삼백여 자 가운데 가장 중심 되는 사상이 아상我相을 없애라는 가르침이라고 하지 않는가. 그렇게나 버리라며 거듭거듭 강조를 하는데도 그것이 뭐기에 죽으라고 움켜잡고만 있었으니, 덜 떨어져도 한참 덜 떨어진 위인이라는 소리를 듣는대도 아예 변명의 여지가 없다. 큰스님의 귀하디귀한 한 소식을 진즉에 만날 수 있었더라면 이렇게 가슴이 아리도록 후회스러운 마음은 갖지 않아도 되었을 것을…….

   아! 이제 가로 늦게서야 깨치게 되었다, 우리 삶에서 가장 가치 있는 말은 천 번 만 번 거듭 하여도 지나침이 없다는 사실을. 절집에서 아침저녁으로 독송하는 반야심경이나 예배당에서 날이 날마다 외우는 주기도문을 지난날 수도 없이 들었던 소리라고 이야기하는 사람이 이 세상에 어느 누가 있을 것인가. 천만 번을 듣고 또 들어도 기분 좋은 말이 사랑이라는 유행가 가사처럼, 천 번 만 번 되풀이하여 듣고 들어도 늘 모자라는 것이 인생살이에 살이 되고 피가 되는 진리의 말씀 아니던가.

   오늘 우연찮게 들은 우학 스님의 법문은 내가 이제껏 기회 있을 때마다 만났던 그 어떤 선지식의 법문보다 간명하면서도 진정 내 안의 무명無明을 밝혀 주는 지혜의 등불이었다.

   큰스님의 위없는 가르침에 합장예배 올리며 마음속으로 굳게굳게 다짐을 놓는다. ‘이제 앞으로 어느 누구로부터 무슨 이야기를 듣든 두 번 다신 예전에 이미 들은 말이라는 소리는 결코 하지 않아야지하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