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물과 땀으로 썼다, ‘억대 작가 스토리’
눈물과 땀으로 썼다, ‘억대 작가 스토리’
‘올드보이’, ‘광해’를 쓴 충무로 스타 작가, 황조윤 작가도 타고난 글쟁이는 아니었다.
드라마 ‘시그널’을 쓴 장르물의 대가, 김은희 작가도 글은 ‘엉덩이의 힘’이라고 했다.
오늘도 고통스럽지만 인내와 투지로 글을 쓰는 이야기꾼의 삶을 들어가 봤다.
입력 : 2017.01.10 17:09
[Story: 더 참신하고 더 재미있게… 창작의 고통 견디며 고군분투하는 이야기꾼의 세계]
황조윤(47)은 충무로의 스타 작가다. 1200만명을 돌파한 영화 ‘광해, 왕이 된 남자’로 2012년 대종상영화제 시나리오상을 받았다. ‘올드보이’ ‘야수와 미녀’ ‘이대로, 죽을 순 없다’ 등도 썼다. 로맨틱 코미디부터 액션, 미스터리·스릴러까지 다양한 장르를 넘나든다. 황 작가는 “흉내를 잘 내는 편”이라며 웃었다. 그는 자신이 만든 인물에 오롯이 몰입해 생생한 캐릭터를 만들어낸다. 데뷔 영화 ‘봄날의 곰을 좋아하세요?’를 본 사람은 대부분 그가 여자 작가인 줄 알았단다. “웬만한 장르는 다 써봤는데 호러랑 정치·사회물은 안 맞고, 스릴러가 딱 제 취향이더라고요.” 올해 그가 각본을 쓴 영화 ‘살인자의 기억법’과 각색한 ‘공조’ 2편이 개봉한다.
타고난 글쟁이는 아니었다. 어릴 적부터 사실에 허구를 약간 보태 남에게 재미있게 들려주기 좋아하는 이야기꾼 기질이 있었다. 작가의 길로 들어선 것도 서른이 넘어서다. 연세대에서 신학을 전공했지만 연극 동아리가 그의 진로를 이야기꾼으로 바꿨다. 결코 쉬운 길은 아니었다. 창작은 피를 쏟는 고통이 따르지만, 그 고통의 무게를 인정받을 기회가 언제나 오는 것도 아니었다. “초고 작업까지는 재미있지만 때에 따라 열 번이고 스무 번이고 같은 이야기를 반복적으로 고쳐야 해 그 과정이 굉장히 힘들고 고통스럽지요.” 감독이나 배우가 누가 되느냐에 따라 원고가 수정되는 일도 다반사. 황 작가는 “시나리오 작가는 결국 혼자”라고 했다. “아무도 도와줄 수 없고, 이해를 구할 수도, 소통할 수도 없는 시간이 오는데 그 시간을 즐기고 버틸 수 있는 사람만이 살아남을 수 있습니다.”스토리는 감동이자 돈이다. 그 지난한 고통을 딛고 황조윤은 시나리오 한 편에 억대를 부르는 스타 작가가 됐다.

원형 콘텐츠 하나를 활용해 영화, 드라마, 웹툰, 소설 등 다양한 장르로 활용되는 ‘원 소스 멀티 유스(one source multi-use)’가 부각되면서 이야기의 가치는 더욱 커지고 있다. 다음카카오의 ‘스토리펀딩’은 누구나 이야기를 올리고 그 이야기에 공감하는 사람들이 후원금을 모아주는 시스템으로 큰 인기를 끌고 있다. 아예 시나리오 작가, 인디 밴드, 일러스트레이터 등 창작자를 후원하는 ‘피플펀딩’까지 출시했다. CJ E&M은 드라마·영화 등 신인 작가 발굴을 위해 2020년까지 약 130억원을 투자하겠다고 밝혔다. 신인 작가를 발굴·육성해 데뷔까지 지원하는 사업 ‘오펜(O’PEN)’을 출범시켜 연초부터 작가 지망생들의 마음을 설레게 하고 있다.
문제는 이야기다. 누가 더 참신하고 재미있고 감동적인 이야기를 써내느냐는 것이다. 어니스트 헤밍웨이는 말했다. “글을 쓰는 데 별다른 비결은 없다. 작가가 할 수 있는 일은 그저 타자기 앞에서 피를 흘리는 것뿐.” 무라카미 하루키는 작품 소재를 얻고자 물리도록 사람들을 만났다고 한다. 그중 하나가 단골 미장원 미용사였다. 각양각색 손님들 이야기를 하루키에게 무궁무진하게 들려줬기 때문이다.
당신은 지금 어떤 이야기를 꿈꾸는가? 그 이야기를 창조해내는 데 피를 쏟을 각오가 돼 있는가? 고통스럽지만 아름다운 이야기꾼들의 삶으로 들어가 봤다.

스타작가도, 작가 지망생도 “엉덩이 힘으로 씁니다”
‘대한민국 스토리 공모대전’ 수상 작가들의 일상 탐구
드라마 ‘시그널’ 작가 김은희는 ‘장르물의 대가’라 불린다. ‘싸인’ ‘유령’ ‘쓰리 데이즈’ 등 여러 범죄·수사극을 히트시키며 한국에선 ‘로코(로맨틱 코미디)’만이 통한다는 고정관념을 깨고 드라마 역사를 다시 썼다. 영화감독 장항준 아내이기도 한 김 작가는 초등학생 딸아이의 엄마이기도 하다. 색종이와 부직포로 만든 눈사람, 열매나무 등 아이가 만든 작품이 그득한 작업실에서 그녀는 치밀한 범죄 수사극을 탄생시켰다.
지난 5일 찾아간 김 작가의 여의도 작업실은 생각보다 소탈했다. 책상에는 컴퓨터와 서류 뭉치, 책 몇 권이 전부. 김 작가는 “디지털 시대니 다 컴퓨터로 작업한다”며 “수첩을 써본 게 언제더라?” 하며 머리를 긁적였다.

일상은 단조롭다. 드라마처럼 호화찬란하거나 미스터리한 일은 없다. 온종일 글을 쓰거나 보조 작가들과 회의하는 게 전부다. 가끔 자료 조사차 경찰서나 도서관에 다녀온다. 글을 쓰다 밤을 지새우기 일쑤. 밤새우고 아침까지 글 쓰는 데 익숙해지다 보니 낮과 밤이 바뀌다 못해 한 바퀴를 돌아 다시 제 사이클로 가기도 한단다.
결론은 ‘엉덩이의 힘’! 스타 작가나 작가 지망생이나 글은 인내와 투지로 쓴다. 제아무리 기발하고 재미난 아이디어가 있어도 끝을 맺지 못하면 이야기는 완성되지 않는다. 김수현, 김은숙, 김은희 같은 작가가 되고자 오늘도 수많은 글쟁이가 이야기와 싸운다. 아카데미 수상을 목표로 미국으로 건너간 30대 ‘싱글남’ 작가, 쌍둥이 두 아들을 키우며 글을 쓰는 40대 엄마 작가, 칠전팔기 끝에 스토리 공모전에 당선된 50대 골드미스터, 퇴근 후 모여 시나리오를 함께 작업하는 청년 작가팀 3명 등 평범한 듯 평범하지 않은 그들의 일상을 들여다봤다.
스토리 국가고시 ‘대상’ 작가 강동원씨
게으른 집 고양이 ‘블루’는 같이 사는 성가신 개 ‘해피’가 애견센터에 끌려가 죽을 위기에 처했다는 말을 듣자 그토록 싫어하던 개로 위장 잠입해 해피를 구해오는 임무를 맡는다. 친화력 제로에 ‘시니컬 대마왕’ 고양이 블루는 과연 사교력 만점, 무한 긍정 강아지로 거듭날 수 있을까?
지난해 문화체육관광부·조선일보·KBS가 공동 주최한 ‘대한민국 스토리 공모대전’에서 상금 1억원 상당의 대상을 거머쥔 ‘고양이가 멍멍’의 줄거리다. 인조 개털과 개코를 붙이고 개처럼 재롱을 떨며 ‘개 중의 개’로 거듭나는 고양이 블루의 이야기는 심사위원들을 울리고 웃겼다.
영예의 주인공은 올해 서른세 살 싱글남 강동원씨. 그는 어릴 적 누나가 비디오로 녹화해 놓은 ‘미국 아카데미 시상식’을 몇 번씩 돌려보며 작가의 꿈을 키웠다. 동국대 영화영상학과를 졸업하고 시나리오를 쓰기 시작했지만, 작가의 문턱은 높았다. 친구들에게 “시나리오가 재미있긴 한데 미국 스타일인 것 같다”는 말을 듣고 무작정 미국 LA로 떠났다. 혈혈단신, 미국에 아는 이 하나 없었지만 한국에서 번역해간 초고를 계속 수정해가며 미국의 각종 영화 시나리오 공모전에 도전했다. 캘리포니아 필름 어워즈, 뉴욕 스크린플레이 콘테스트, 베벌리힐스 필름 페스티벌 등 크고 작은 공모전에서 수상했다.
대상작 “고양이가 멍멍”,
3년간 구상해 10일 만에 완성
“할리우드 진출이 목표”
4년간 해외에 머물면서 국내 공모전도 소홀히 하지 않았다. 그 결과 ‘대한민국 스토리 공모대전’에서 당당히 대상을 수상했다. 최종 목표는 세계인과 소통하는 스토리텔러가 되는 것. “잠시 쉬다 다시 미국으로 돌아가 코미디 작품을 계속 쓰려고요. 코미디는 문화를 알아야 웃음 포인트를 잡을 수 있기 때문에 언어 장벽이 높은 편이거든요.” 요즘엔 좀비를 소재로 한 코미디물을 작업 중이다.
시나리오를 쓰는 시간은 빠른 편이다. ‘고양이가 멍멍’도 열흘 만에 완성했다. “대신 구상을 많이 해요. ‘고양이가 멍멍’도 3년 전 처음 구상했어요. 걸어 다니면서 머릿속에서 구상하고 그때그때 휴대전화에 제목, 소재 등을 간단히 적고. 대강 줄거리가 잡히면 집필을 시작하죠.” 강씨는 어릴 적부터 일기장에 상상한 이야기를 적어놓거나 망상을 즐겼다. 나이 차이 나는 두 누나가 비디오 영화를 즐겨 봐서 어릴 적부터 자연스레 이야기에 젖어 살았다.
글을 잘 쓰기 위한 그만의 습관은 ‘질문 던지기’다. “평소 사람들이 당연시하는 상황들에 질문을 던져보는 것을 좋아해요. 왜 슬픈 노래에 맞춰 탭댄스를 추면 안 되지? 뱀파이어가 좀비를 물면 어떻게 될까? 이런 엉뚱한 질문들을 끊임없이 하다 보면 사물을 색다른 관점에서 바라보는 습관이 생겨요. ‘고양이가 멍멍’도 왜 ‘고양이도 개처럼 산책을 시키면 왜 안 되지?’란 질문에서 탄생했죠(웃음).”
육아와 작가 두 마리 토끼 잡은 권정희씨
프리랜서 작가로 활동하는 권정희(43)씨는 네 살배기 쌍둥이 아들을 키운다. 소설, 시, 에세이, 영화 시나리오, 웹툰 등 글이라면 장르를 가리지 않고 쓰는 다작가다. 시작은 시(詩)였다. 1993년 지방지 신춘문예에 시가 당선되며 지금까지 하이틴 시집 3권을 출간했다. “어릴 적 엄마 손잡고 청계천 헌책방에 가서 책을 사와 읽곤 했는데 참 좋았어요. 학창 시절 때 우연히 엄마가 고등학교 문예지에 쓴 ‘딸기코 아저씨’라는 소설을 봤는데 그때 작가가 돼야겠다는 숙명을 느꼈죠.”
권씨의 작품은 허를 찌르는 신선함이 있다. 이번 대한민국 스토리 공모전에 최우수상을 수상한 작품 ‘이선동 클린센터’는 귀신을 보는 청년 유품정리사의 얘기. 2015년까지 네이버에 연재해 젊은 층에 큰 공감을 얻었던 웹툰 ‘장미아파트 공경비’는 20대 경비원의 취업과 사랑을 그렸다. 수입이 일정치 않은 작가라는 직업 특성상 생계유지를 위해 드라마·영화 각본 작업 등에도 참여하고 있지만 그가 가장 쓰고 싶은 글은 미국 드라마 ‘라스트 십’ ‘더 클로저’ 등처럼 스릴러와 코미디가 적절히 어우러진 수사물이다. “저는 비주류라 불리는 사람들의 뭉클한 삶의 이야기를 쓰고 싶어요. 유품정리사 이선동도 그렇고 장미아파트 공경비도 그랬고요.” 권씨는 쌍둥이 아들 키우랴, 글 쓰랴 정신없지만 야무지게 두 마리 토끼를 잡는 중이다. “우선 육아에 집중하고 남는 시간에 무조건 글을 써요. 글쓰기가 저에겐 육아 스트레스 해소법이죠. 하하!”

7전8기로 수상한 늦깎이 작가 김태곤씨
쌍둥이 아들 키우면서
글 쓴 주부 프리랜서
‘7전8기’가 뭔지 보여준
50代 늦깎이 작가도
김태곤(55)씨는 원래 대학에서 건축을 전공했다. 글쟁이로 직업을 바꾼 이유는 하나. “만화나 영화를 볼 때 가장 행복하더라”였다. 서른 넘어 시작한 작가 생활이 어느덧 20여 년. 그런데 막상 글을 써보니 돈벌이가 안 돼 행복하지 않더란다. 돈이 없어 막노동할 때가 다반사. 그래도 각종 공모전에 응시하며 상금으로 근근이 버텼다. 대한민국 스토리 공모전은 1회 때부터 응모해 8회 차인 지난해 우수상을 거머쥐었다. 김씨는 “7전8기라는 말을 고사성어로만 알고 있었는데 대한민국 스토리 공모전에 8번 만에 붙으면서 7전8기를 몸소 깨달았다”며 크게 웃었다.
이번에 수상한 작품 ‘골드 로드’는 6·25전쟁 당시 한국은행에 남겨진 금 260㎏과 은 15t의 행방을 둘러싼 인간 군상들의 욕망에 관한 이야기다. 긴박감 있는 사건 전개와 인물들의 내밀한 심리 묘사로 호평을 받았다. 지금까지 당선된 공모전만 21개인 그는 공모전 응시 노하우도 귀띔했다. “공모전별로 취지를 잘 알아야 해요. 소재의 독창성이나 창의성은 어딜 가나 공통이죠.”
김씨는 늦깎이 작가 지망생들에게 희망의 메시지를 전했다. “간절히 원하니 길이 보이더군요. 서른 살부터 각종 공모전에 응모해 마흔 살에 처음 당선됐어요. 단편영화 시나리오에서 대상을 받았죠. 10년 하다 포기하려고 했는데 그게 쥐약이 됐죠. 아, 어쩜 나한테 재능이 있는지도 모르겠다 싶어 계속 글을 쓰고 있습니다. 작가로서 자기 가능성을 테스트해 보면 좋을 것 같습니다. 물론 경제적으로는 쉽지 않아요. 저도 글 쓰는 게 힘들고 어렵지만 이걸 안 하면 더 힘들어질 것 같아 계속 글을 씁니다. 슬픈 행복이죠. 글 쓰느라 이 나이까지 결혼도 못했어요. 하하!”
협업 작가 이은지·정한진·한은영씨
3명이 한 팀을 이뤄 시나리오를 작업하는 이은지(37)·정한진(31)·한은영(36)씨는 한국예술종합학교 영상원 영화과 선후배 지간이다. 한씨는 “셋 다 영화를 전공해 작가, 영화감독 등을 꿈꿨지만 혼자 글쓰기가 쉽지 않더라”며 “졸업 후 직장 생활하면서 우리만의 스토리를 개발했으면 좋겠다고 생각해 2014년 ‘필름모색’이라는 영화창작집단을 만들었다”고 했다. 작업실은 서울시에서 지원하는 녹번동 서울혁신센터 내 ‘청년청’. 필름모색에는 영화감독 지망생, 영상 편집자, 카메라 촬영맨, 작가 등 다양하게 모여 있다. 그 안에서 혼자, 둘이, 셋이 자유롭게 작업한다.
이번 대한민국 스토리 공모전에 우수상을 받은 ‘험도: 죽음의 길’은 이들이 모여 만든 첫 작품이다. 기획부터 시나리오 쓰기까지 석 달가량 걸렸다. 정씨는 “자료 조사는 굉장히 다양한 방식으로 한다. 책이나 신문라이브러리는 물론이고 다큐멘터리, 유튜브 등 이야기될 만한 인물과 플롯을 찾기 위해 다소 무식하게 리서치를 하는 편”이라고 했다. 세종대왕 시절 북방 여진족을 정탐하던 ‘체탐인’들 삶을 소재로 한 ‘험도’도 조선왕조실록을 토대로 이야기를 만들었다.
공동 작업하다 보면 트러블이 생기진 않을까? “누구는 인물의 캐릭터를 잘 살리고, 누구는 스토리 구조를 잘 잡아 협업하는 과정에서 오히려 시너지 효과가 났어요.” 의견 차이는 물론 있다. 하지만 토론을 통해 스토리를 좀 더 복합적이고 다면적으로 만들 수 있다. “공동 작업은 적어도 작업자 3명 모두 스토리를 이해하는 수준이 돼야 하니 아무래도 완성도가 높아집니다.”

“참신한 소재는 기본… 현재 시류를 반영하기보다 예측하는 게 중요”
심사위원들이 말하는 ‘팔리는 이야기’

‘대한민국 스토리 공모대전’은 작가 지망생들 사이에 ‘스토리 국가고시’로 꼽힌다. 상금도 1억원대로 어마어마하지만 일단 당선되면 소설·영화·드라마·애니메이션 등으로 원작이 다양하게 활용된다. 지난해 한류를 주도한 KBS 드라마 ‘태양의 후예’ 원작도 스토리 공모전 당선작이다. 김원석 작가의 ‘국경없는 의사회’가 원작이고, ‘드라마 히트 제조기’ ‘시청률 보증수표’ 등으로 불리는 김은숙 작가가 각색했다. 드라마 ‘야경꾼 일지’ ‘닥터 이방인’ ‘조선 총잡이’도 스토리 공모전 당선작들이다.
당연히 경쟁이 치열하다. 2016년 대한민국 스토리 공모대전에는 총 1214편이 응모돼 단 18편만이 상을 받았다. 대상·최우수상 각 1편, 우수상 16편이었다. 장르는 사극과 스릴러가 양대 산맥을 이룬다. 그래서 손해를 보기도 한다. 신선도가 떨어지는 탓이다. “특히 광해, 사도세자, 정조 등은 단골 주제라 아주 독창적인 발상이 아니면 피하는 게 좋다”는 게 심사위원들 충고다. 또 같은 역사물이라도 조선시대 말고 요즘 연구가 활발한 일제강점기를 공략하는 게 유리하다.
소재의 참신함도 중요하지만 해외 판매 가능성, 제작 가능성도 염두에 두어야 한다. 음악이 소재인 영화가 불리한 이유다. 작품성이 아무리 높아도 저작권, 음원 구입비가 너무 비싸 실제 콘텐츠 제작 확률이 제로(0)에 가까울 수 있기 때문이다.
황조윤 작가는 “현 시류를 반영하는 이야기가 잘 팔릴 거라 생각하기 쉽지만, 창작자 입장에서 보면 시류를 따르는 것보다는 예측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조언했다. “관객은 영화를 통해 현실에서 결핍된 정서를 충족시키고 싶어 하지 현실의 결핍을 재생하고 싶어하진 않아요. 게다가 내가 지금 쓰고 있는 스토리는 최소 2~3년 후에 개봉될 영화라는 걸 고려해야 하죠. 그런 의미에서 보자면 작년 유행했던 비판적 사회물은 이미 현실 정치에 대한 피로감이 쌓인 상태라 올해는 외려 현실에서 눈을 돌릴 수 있는 판타지나 장르성이 강한 스토리가 잘 팔릴 겁니다.”
김은희 작가는 자료 조사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김 작가는 “머리로 쓴 대본과 발로 쓴 대본은 확 차이가 난다. 신인 작가라면 캐릭터의 실제 모델을 직접 만나 인터뷰하는 게 어려울 수도 있지만 최대한 발로 뛰어 만나야 한다”며 “신인 작가라면 좋아하는 작가의 글을 한번 따라 써보는 것도 좋은 공부가 된다”고 귀띔했다.
입문반부터 SF·웹툰 전문교실까지 다양… 글쓰기 막막할 땐 문 두드려 보세요
스토리텔러를 위한 강좌

‘글쓰기 프로듀싱’이 필요한 초보자든, 글 좀 쓴다는 작가든 ‘이야기 짓는’ 능력을 갖는 건 쉬운 일이 아니다. 무슨 이야기를 하고, 어떻게 이야기를 풀 것인지 막막하다면 스토리텔러를 위한 아카데미 문을 두드려보는 것도 방법이다. 서울 합정동 출판문화공간 엑스플렉스(02-334-1412)는 다양한 장르의 강좌를 마련한다. 김지승 작가의 ‘당신, 삶, 이야기’는 입문자가 듣기 적합한 수업이다. 김 작가는 수강생들이 일상을 자유롭게 풀어낸 뒤 자신만의 언어를 발견할 수 있도록 돕는다. 수강생들은 단어가 문장이 되고 글이 되어가는 과정에 집중한다. 지난해 수업을 들었던 수강생들은 “매일 사용하던 익숙한 단어가 문장, 문단으로 연결되면서 이야기 짓기에 자신감이 생겼다” “남편과 함께 수업을 들으며 서로의 상처를 보듬어 주는 값진 시간이었다”는 후기를 남겼다. 수강 기간은 1월 12일~2월 9일 오후 7시 30분~9시 30분, 수강료 5강 15만원, 정원 15명.
‘나도 그림책 작가’ 수업은 벌써 10회째 진행될 정도로 인기다. 그림책 스토리텔링을 배우지만, 그림을 못 그린다고 낙담할 필요 없다. 고은경 작가는 “그림 실력을 1%도 따지지 않는 그림책 글쓰기”라며 “오직 ‘이야기’를 이미지로 풀어 상상할 줄 아는 엉뚱 발랄함만 갖추면 된다”고 설명했다. 1월 7일~2월 25일 오전 10시 30분~오후 1시, 7강 24만원, 정원 15명.
SF 이야기꾼이 되고 싶다면 김창규 작가의 ‘SF 글쓰기’ 강좌를 들을 만하다. 스토리텔링에 공상과학적 상상력을 더해 ‘타임머신과 인공지능을 좌·우뇌 속에 품고 글을 쓰는 방법’을 가르쳐준다. 1월 11일~3월 8일 오후 7시 30분~9시 30분, 8강 27만원, 정원 15명.
합정동 KT&G 상상마당 아카데미(02-330-6226)에서는 ‘마당을 나온 암탉’으로 유명한 황선미 작가의 강좌를 들을 수 있다. ‘황선미 작가의 공부방: 이야기 발견 Part2’는 창작 글쓰기는 물론이고 이야기꾼으로서 소양을 기를 수 있는 기회다. 대학생부터 프리랜서, 현업에서 두각을 나타내는 작가들까지 다양한 수강생들이 한자리에 모인다. 정원이 15명인데 신입 수강생은 5명만 뽑는다. 지난해 8~11월 진행됐던 ‘황 작가의 공부방 Part1’ 강좌 수강생들이 우선 고려 대상이다. 신입 수강생은 자기소개서와 자신의 신체(눈·점·손가락)에 대한 짧은 글쓰기 총 3개 작품을 1월 31일 자정까지 홈페이지(www.sangsangmadang.com)에 제출해야 한다. 1차 합격자에 한해 황 작가와 2월 초 인터뷰를 진행, 최종 수강생을 뽑는다. 2월 13일~5월 15일 오전 10시30분~오후 1시, 14강 45만원.
서울 창전동 (사)한국영상미디어교육협회가 운영하는 미디액트(02-3141-6300)에선 시나리오 스토리텔링에 도움을 주는 ‘시나리오를 위한 생각훈련’ 수업을 만날 수 있다. 영화 ‘협녀, 칼의 기억’ 각본을 맡았던 최아름 작가가 스토리텔러의 기본기를 가르쳐준다. 최 작가의 목표는 수강생들이 엉덩이를 의자에 붙여놓고 펜을 잡는 훈련, 즉 ‘엉덩이 힘’을 통해 시나리오 쓰기를 ‘지속 가능한 일’로 만드는 것이다. 최 작가는 “경험을 거짓으로 지어내는 가벼움, 글자 없이 그림으로 시나리오를 쓰는 방법 등 한 번도 해보지 않았던 방식으로 시나리오 쓰기에 대한 막연함을 떨친다”고 교육 내용을 설명했다. 1월 17일~4월 4일 오후 7시 30분~10시, 12강 25만원, 정원 14명.
웹툰 이야기꾼을 꿈꾼다면 합정동 와이랩 아카데미(02-334-0808)에서 운영하는 ‘스토리 클래스’를 주목할 만하다. 그림을 못 그리지만 스토리텔러가 되고 싶거나 그림 그리기는 자신 있는데 이야기, 연출이 약한 예비 작가들에게 걸맞은 수업이다. 네이버웹툰 ‘테러맨’ 한동우 작가가 수강생들이 만들고 싶은 스토리, 그 이야기를 풀어내는 막막함의 해결사가 되어준다. 구상부터 콘셉트, 시놉시스, 캐릭터 설정, 시나리오, 콘티까지 자세히 알려준다. 2월 10일~4월 28일 오후 2~5시, 12강 50만원, 정원 12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