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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좋은 시의 조건 10가지'/ 박남희

그대 그리고 나/포항 2016. 10. 12. 14:02

■ '좋은 시의 조건 10가지'/ 박남희

1. 함축성이 있고 입체적인 시를 써라 

시와 산문이 다른 점은 시가 지니고 있는 함축성 때문이다. 시는 평면적인 글을 의미전환 시키거나 이미지화해서 그 속에 새로운 의미를 갖게 해준다. 시에서 다양한 수사법(은유, 상징, 역설, 알레고리, 아이러니 등)을 사용하는 것도 평면적인 글을 입체적이고 함축적인 글로 만들려는 노력인 것이다. 그러므로 시인은 어떤 대상을 바라볼 때 그 대상을 있는 그대로 바라보지 않고 인간이나 사회의 어떤 현상과 연결시켜서 바라보고, 그것을 새롭게 인식하고 재해석해내려는 노력을 기울이게 된다. 

우리가 시를 쓸 때 세계 속에서 자아를 발견하고(동화-assimilation) 자아 속에서 세계를 발견하려는 것(투사-projection)도 이러한 노력의 일환인 것이다. 동화는 세계(사물)를 자신의 내면으로 끌어들여 동일화시키는 것을 말하고, 이를 다른 말로 세계의 자아화라고 말한다. 이에 반해 투사는 자아의 감정을 세계(사물)에 이입시켜서 자아를 세계와 동일화시키는 것을 말하며, 이를 요약해서 자아의 세계화라고 말한다. 동화는 대상을 주관적으로 바라보고 주관적으로 해석하는 방법이기 때문에 어디까지나 자아에 중점이 주어지는데 반해, 투사는 이와 반대로 자아를 대상에 상상적으로 감정이입 시켜서 자아와 세계가 일체감을 갖도록 하는 방법으로 세계(사물)에 중점이 주어진다는 점이 다르다. 자아와 세계를 동일화하려는 것은 서정시의 가장 본질적인 성격이다. 


● 나는 가끔 주머니를 어머니로 읽는다 / 박남희 

어머니를 뒤지니 동전 몇 개가 나온다 
오래된 먼지도 나오고 
시간을 측량할 수 없는 체온의 흔적과 
오래 씹다가 다시 싸둔 
눅눅한 껌도 나온다 

어쩌다, 오래 전 구석에 처박혀 있던 
어머니를 뒤지면 
달도 나오고 별도 나온다 
옛날이야기가 줄줄이 끌려나온다 

심심할 때 어머니를 훌러덩 뒤집어보면 
온갖 잡동사니 사랑을 한꺼번에 다 토해낸다 

뒤집힌 어머니의 안쪽이 뜯어져 
저녁 햇빛에 
너덜너덜 환하게 웃고있다 

 
● 팽이/ 최문자 

세상이 꽁꽁 얼어붙었습니다 하나님, 
팽이 치러 나오세요 
무명 타래 엮은 줄로 나를 챙챙 감았다가 
얼음판 위에 휙 내던지고, 괜찮아요 
심장을 퍽퍽 갈기세요 
죽었다가도 일어설게요 
뺨을 맞고 하얘진 얼굴로 
아무 기둥도 없이 서 있는 
이게, 
선 줄 알면 
다시 쓰러지는 이게 
제 사랑입니다 하나님 


2. 관점과 표현이 새로워야 한다- 다르게 보기와 낯설게 하기 

좋은 시는 시인이 대상을 새로운 관점에서 바라보고 그것을 얼마나 신선하고 새로운 언어로 표현하는가에 따라서 결정된다. 우리는 세상을 살아가면서 이미 너무나도 낯익은 것들에 길들여져 있어서 낯익은 것들을 새롭게 바라보지 못하고 기계적이고 관습적으로 바라보는 경우가 많다. 시인은 이처럼 관습적이고 기계적인 것들을 일깨워서 새로운 생명을 불어넣어 재창조해내는 자이다. 시에서 가장 중요하게 여기는 요소 중의 하나인 상상력이나 창의력은 대상을 다른 사람과 다르게 바라보고 이것을 자신의 표현법으로 낯설고 새롭게 표현해 내는데서 생겨난다. 

이처럼 시를 새로운 관점에서 새로운 표현법으로 창작하기 위해서는 우선 고정관념을 없애야 한다. 우리 주변에는 무수한 사람과 사물들이 존재하는데, 이들은 하나같이 고정된 이미지를 가지고 있다. 그러므로 시인은 이러한 주체나 대상이 지니고 있는 고정관념을 없애고 자유로운 상상력이나 사유(생각)를 통해서 그것들을 새롭게 바라보고 재해석해서 새롭게 표현을 하게 되는 것이다. 우리 시문학사를 더듬어 볼 때, 실험시나 해체시가 반복적이고 주기적으로 등장하게 되는 것도 시적 ‘새로움’에 대한 시인의 열망이 반영된 결과인 것이다. 

우리가 고정관념의 틀에서 빠져나오려면 우리의 정신과 생각을 자유롭게 풀어주어야 한다. 그렇게 하기 위해서는 우선 발상의 전환이 필요하다. 분열된 몽고의 부족을 결집하여 중국과 유럽을 정복한 징기스칸이 만약에 유목민의 후예가 아니었다면 아마도 그런 큰 역사는 이루지 못했을 것이다. 유목을 뜻하는 노마드(nomad/nomade)는 들뢰즈가 그의 저서 『차이와 반복』(1968)에서 노마드의 세계를 '시각이 돌아다니는 세계'로 묘사하면서 현대 철학의 한 개념으로 자리 잡게 되었다. 이러한 유목의 개념은 현대에 이르러서 어떤 특정한 가치와 삶의 방식에 얽매이지 않으면서 끊임없이 자기를 부정하고 새로운 자아를 찾아가는 창조적인 행위를 일컫는 말로 정착되면서 새로운 문화적 트랜드로 떠오르게 된다. 이러한 노마드적인 정신은 시를 쓸 때도 필요하다. 좋은 시를 쓰려면 기존에 가지고 있던 고정관념을 부수고 자아와 사물의 고정적인 이미지를 지워버리고 그 위에 새로운 상상력을 펼칠 수 있어야 한다. 새로운 상상력은 자유로운 정신에서 나오고, 이것이야말로 새롭고 좋은 시의 원천이 된다 


● 둥근 발작 / 조말선 

사과 묘목을 심기 전에 
굵은 철사 줄과 말뚝으로 분위기를 장악하십시오 
흰 사과 꽃이 흩날리는 자유와 
억압의 이중구조 안에서 신경증적인 열매가 맺힐 것입니다 
곁가지가 뻗으면 반드시 철사 줄에 동여매세요 
자기성향이 굳어지기 전에 굴종을 주입하세요 
무엇보다 가장 중요한 것은 성장억제입니다 
원예가의 눈높이 이상은 금물입니다 
나를 닮도록 강요하세요 
나무에서 인간으로 퇴화시키세요 
안된다, 안된다, 안된다 부정하세요 
단단한 돌처럼 사과가 주렁주렁 열릴 것입니다 
하지마, 하지마, 하지마 억누르세요 
뺨이 벌겋게 달아오를 것입니다 
극심한 감정교차는 빛깔을 결정합니다 
폭염에는 모차르트를 
우기에는 쇼스타코비치를 권합니다 
한 가지 감상이 깊어지지 않도록 경계하세요 
나른한 태양, 출중한 달빛, 잎을 들까부는 미풍 
양질의 폭식은 품질을 저하시키는 원인입니다 
위로 뻗을 때마다 쾅쾅 말뚝을 박으세요 
열매가 풍성할수록 꽁꽁 철사 줄에 동여매세요 
자유와 억압의 이중구조 안에서 둥근 발작을 유도하세요 


● 거리에서 / 이원 

내 몸의 사방에 플러그가 
빠져나와 있다 
탯줄같은 그 플러그들을 매단 채 
문을 열고 밖으로 나온다 
비린 공기가 
플러그 끝에 주렁주렁 매달려 있다 
곳곳에서 사람들이 
몸 밖에 플러그를 덜렁거리며 걸어간다 
세계와의 불화가 에너지인 사람들 
사이로 공기를 덧입은 돌들이 
둥둥 떠다닌다 


3. 현실의 구체성과 진정성에 토대를 두고 상상의 나래를 펼치라 

좋은 시는 우선 허황되지가 않다. 집도 토대가 튼튼해야 좋은 집이 될 수 있듯이, 시도 체험의 구체성이나 진정성 위에 서 있어야 감동을 줄 수 있다. 관념이나 허황된 상상만으로는 좋은 시가 될 수 없다. 관념도 시의 소재가 될 수는 있으나 그것을 객관적인 상관물로 사물화하지 못하면 독해가 불가능한 난해시나 주관적이고 피상적인 시 밖에 되지 못한다. 그러므로 아무리 기발한 상상력이 나타나 있는 시라 할지라도 현실과의 연관성이 아주 없거나 너무 희박해서는 곤란하다. 요즘 젊은 시인들의 시 가운데 객관적으로 독해가 불가능한 시가 종종 보이는 것은 이러한 부분에 대한 통찰이 부족하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너무 체험이나 기억에 의존한 시를 쓰는 것도 바람직한 것은 아니다. 좋은 시는 체험과 기억과 상상력이 조화를 이루면서 우리의 경험이나 감동의 영역을 무한히 확장시켜줄 수 있는 시이다. 우리가 시를 읽고 공감하게 되는 것은 시의 내용이나 주제가 현실과 일정한 소통의 통로를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시적 표현이나 상상력, 시적 사유 등이 현실과 연결되어있으면서도 현실에 매몰되어 있거나 잠들어 있는 부분을 일깨워줄 수 있는 새로운 감각을 지니고 있는 시가 좋은 시이다. 우리가 좋은 시를 읽으면서 우리 안에 잠들어있던 생각이나 상상력이 새로운 충격으로 되살아나는 듯한 느낌을 받게 되는 것도 좋은 시 속에 들어있는 신선한 감각의 힘 때문이라고 말할 수 있다 


● 땡볕 / 허수경 

소나무는 제 사투리로 말하고 
콩밭 콩꽃 제 사투리로 흔드는 대궁이 
김 매는 울 엄니 무슨 사투리로 일하나 
김 매는 울 올케 사투리로 몸을 터는 흙덩이 

울 엄니 지고 가는 소쿠리에 
출렁 출렁 사투리 넌출 
울 올케 사투리 정갈함이란 
갈천 조약돌 이빨 같아야 


● 물 만드는 여자 / 문정희 

딸아, 아무 데나 서서 오줌을 누지 말아라 
푸른 나무 아래 앉아서 가만가만 누어라 
아름다운 네 몸 속의 강물이 따스한 리듬을 타고 
흙 속에 스미는 소리에 귀 기울여 보아라 
그 소리에 세상의 풀들이 무성히 자라고 
네가 대지의 어머니가 되어가는 소리를 
때때로 편견처럼 완강한 바위에다 
오줌을 갈겨 주고 싶을 때도 있겠지만 
그럴 때일수록 
제의를 치르듯 조용히 치마를 걷어올리고 
보름달 탐스러운 네 하초를 대지에다 살짝 대어라 
그리고는 쉬이 쉬이 네 몸 속의 강물이 
따스한 리듬을 타고 흙 속에 스밀 때 
비로소 너와 대지가 한 몸이 되는 소리를 들어보아라 
푸른 생명들이 환호하는 소리를 들어보아라 
내 귀한 여자야 


● 간통 / 문인수 

이녁의 허리가 갈수록 부실했다. 소문의 꼬리는 길었다. 검은 윤기가 흘렀다. 선무당네는 삼단 같은 머리채를 곱게 빗어 쪽지고 동백기름을 바르고 다녔다. 언제나 발끝 쪽으로 눈 내리깔고 다녔다. 어느 날 이녁은 또 샐 녘에사 들어왔다. 입은 채로 떨어지더니 코를 골았다. 소리 죽여 일어나 밖으로 나가 봤다. 댓돌 위엔 검정 고무신이 아무렇게나 엎어졌고, 달빛에 달빛가루 같은 흰내의 모래가 흥건히 쏟아져 있었다. 내친김에 허둥지둥 선무당네로 달려갔다. 방올음산 꼭대기에 걸린 달도 허둥지둥 따라왔다. 해묵은 싸릿대 삽짝을 지긋이 밀었다. 두어 번 낮게 요령 소리가 났다. 뛰는 가슴 쓸어 내리며 마당으로 들어섰다. 댓돌 위엔 반 듯 누운 옥색 고무신, 고무신 속을 들여다봤다. 아니나 다를까 달빛에, 달빛가루 같은 흰내의 모래가 오지게도 들었구나. 내 서방을 다 마셨구나. 남의 농사 망칠 년이! 방문 벌컥 열고 년의 머리끄댕이를 잡아챘다. 동네방네 몰고 다녔다. 
소문의 꼬리가 잡혔다. 한 줌 달빛이었다 


4. 전체적인 통일성과 내용과 형식의 조화에 유념하라 


시를 쓰다보면 처음과 끝의 발상이나 주제가 다르고 형식적인 통일성도 없이 산만하게 시가 써지는 경우가 있다. 이러한 과오는 초보자일수록 더욱 자주 범하게 되는데, 그것은 아직도 자신만의 시작법을 터득하지 못하고 시에 대한 막연한 개념만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좋은 시는 처음 읽을 때는 어렵게 느껴질지라도 꼼꼼히 읽어보면 낯선 표현 속에서 일정한 시적 문맥과 흐름을 찾을 수 있게 해준다. 이런 시들은 시 속에 텐션(긴장)이 들어있어서 시를 읽는 맛이 새로운 경우가 많다. 그러므로 우리는 다중적 구조를 지닌 다층시와 독해 불가능한 난해시를 구분할 줄 알아야 한다. 전체적인 통일성이 결여되고 내용과 형식의 불균형을 이루고 있는 시는 난해시라기보다는 미숙한 시라고 보아야 한다. 그리고 시를 쓴 자신도 설명 불가능한 난해시도 역시 시적 숙련도가 덜된 시에 포함된다. 

요즘의 젊은 시인들의 시가 난해시나 환상시, 해체시의 포즈를 취하면서 지극히 주관적인 난해시로 빠져들고 있는 것은 경계해야 할 일이다. 요즘은 정보화 시대에 접어들면서 모든 지식들이 인터넷으로 공유할 수 있는 네트워크의 성격이 강화되고 있다. 이런 시대에 유독 시만이 소통불가능을 고집하고 있는 것은 시대에 맞지 않는다. 좋은 시는 익숙함과 새로움, 경험과 상상력, 자유로움과 질서, 모호성과 선명성, 자아와 세계가 서로 소통하면서 조화를 이루고 있는 시이다 


● 아름다운 수작 / 배한봉 

봄비 그치자 햇살이 더 환하다 
씀바귀 꽃잎 위에서 
무당벌레 한 마리 슬금슬금 수작을 건다 
둥글고 검은 무늬의 빨간 비단옷 
이 멋쟁이 신사를 믿어도 될까 
간짓간짓 꽃대 흔드는 저 촌색시 
초록 치맛자락에 
촉촉한 미풍 한 소절 싸안는 거 본다 
그때, 맺힌 물방울 하나가 떨어졌던가 
잠시 꽃술이 떨렸던가 
나 태어나기 전부터 
수억 겁 싱싱한 사랑으로 살아왔을 
생명들의 아름다운 수작 
나는 오늘 
그 햇살 그물에 걸려 
황홀하게 까무러치는 세상 하나 본다 


● 풍향계 / 이덕규 

꼬리지느러미가 푸르르 떨린다 

그가 열심히 헤엄쳐가는 쪽으로 지상의 모든 시선이 집중되고 있다 

그러나, 그 꼬리 뒤로 빛의 속도보다 더 빠르게 더 멀리 사라져가는 

초고속 후폭풍後爆風의 뒤통수가 보인다 

그 배후가 궁금하다 


● 흉터 속의 새 / 유홍준 

새의 부리만한 
흉터가 내 허벅지에 있다 열다섯 살 저녁 때 
새가 날아와서 갇혔다 

꺼내 줄까 새야 
꺼내 줄까 새야 

혼자가 되면 
나는 흉터를 긁는다 
허벅지에 갇힌 새가, 꿈틀거린다 


5. 장식적인 수사를 피하고 명징한 이미지와 행간의 미학에 유념하라 

시만큼 언어적 수사에 민감한 장르도 찾아보기 힘들다. 시에서 언어적 수사는 옷과 같다. 옷을 어떻게 입느냐에 따라서 사람이 달라보이듯이, 시 또한 수사적 표현에 따라 느낌이나 의미가 달라지는 경우가 많이 있다. 하지만 화려한 옷이 모든 사람의 몸에 맞는 것이 아니듯이 불필요한 장식적인 수사법이 때로는 그 시를 망칠 때가 있다. 시에서는 화려한 수사법보다는 오히려 명징한 이미지가 더 중요하다. 시에서 명징한 이미지는 그 시의 구심점이 되어서 단순한 주제를 중의적으로 전경화 시켜준다. 대부분의 좋은 시에는 명징한 중심 이미지가 존재한다. 좋은 시는 그러한 중심 이미지를 구심점으로 체험과 상상력을 짜임새 있게 조화시키고 확장시켜나간다. 이미지는 시인이 자신의 생각을 직접적으로 설명하려는 것을 간접화시켜서 보여줌으로써 설명에 갇히기 쉬운 상상력을 무한히 확장시켜주는 역할을 한다. 

이와 함께 우리가 유념해야 할 사항은 시의 행간과 행간 사이의 긴장감을 유지하라는 것이다. 산문적 진술은 화자가 대부분의 상황을 직접 진술하기 때문에 행간과 행간 사이의 긴장감이 없다. 하지만 시는 생략과 침묵과 낯설게 하기를 통해서 행간과 행간 사이의 긴장감을 높인다. 이러한 시적 긴장감은 시적 화자가 아직 말하지 않은 것들이 행간 사이에 무수히 숨어있다는 것을 의미해준다. 고급 독자는 시인이 설명하지 않고 행간 사이에 감추어놓은 새로운 의미를 찾아내는 과정을 통해서 시의 묘미를 느낀다. 압축과 생략이 시가 지니고 있는 중요한 덕목 중에 하나로 꼽히는 것도 이러한 이유 때문이다. 


● 섬 / 함민복



물울타리를 둘렀다 

울타리가 가장 낮다 

울타리가 모두 길이다

 

 
● 섬 / 정현종 


사람들 사이에 섬이있다 

그 섬에 가고 싶다 


● 꽃 먼저 와서 / 류인서 

횡단보도 신호들이 파란불로 바뀔 동안 
도둑고양이 한 마리 어슬렁어슬렁 도로를 질러갈 동안 
나 잠시 한눈팔 동안, 

꽃 먼저 피고 말았다 

쥐똥나무 울타리에는 개나리꽃이 
탱자나무에는 살구꽃이 
민들레 톱니진 잎겨드랑이에는 오랑캐꽃이 
하얗게 붉게 샛노랗게, 뒤죽박죽 앞뒤 없이 꽃피고 말았다 

이 환한 봄날, 

세상천지 난만하게 
꽃들이 먼저 와서, 피고 말았다 


6. 계산된 논리보다는 자유로운 연상(상상력)을 활용하라 

시의 길은 쭉 뻗은 고속도로나 아스팔트길 같은 것이 아니다. 시의 길은 오히려 꾸불꾸불한 시골길이나 출렁이는 물길과 흡사하다. 그렇기 때문에 그것은 한눈에 빤히 보이거나 쉽게 측량되지 않는다. 현대화된 길은 이미 계획된 설계도에 의해서 만들어진 길이지만 시골길이나 물길은 만들어진 길이 아니라 자연 그대로의 길이다. 시의 길 역시 자연에 가까운 길이다. 그렇기 때문에 좋은 시는 친자연적이다. 우리는 종종 이미 계획된 논리를 바탕으로 시를 쓰려고 할 때가 있다. 하지만 이렇게 씌어진 시는 너무 논리적이어서 풍부한 상상력이 끼어들 여지를 주지 않는다. 그렇기 때문에 내용이 빤한 알레고리 시에 머물거나, 머리로 쓴 작위적인 시가 되는 경우가 많이 있다. 논리적인 시는 새로움과 놀라움이 없다. 물길은 늘 요동하면서 수시로 변화무쌍한 모습을 우리에게 보여준다. 우리의 마음도 물길과 같다. 인간의 마음을 논리적으로 표현하는 데는 한계가 있다. 어쩌면 마음은 물길보다도 더 알 수 없는 것인지도 모른다. 천길 물속은 알아도 한길 마음속은 모른다는 속담은 시사해주는 바가 크다. 

그러므로 시를 쓸 때는 계산된 논리를 버리고 시상을 자유로운 연상에 맡겨야 한다. 우리의 마음과 자연 속에는 무한한 상상력이 숨어있다. 시를 쓰는 작업은 이러한 숨어있는 상상력을 캐내어 자아와 타자 사이의 동질성을 발견하고 이를 중심적인 주제나 이미지로 응집시켜나가는 것이다. 상상력이 깊고 넓은 시는 바다와 같은 심호함이 있다. 작은 냇물은 가뭄에 말라서 없어지지만 바다는 죽지 않는다. 바다 속에는 무수한 생명체들이 살고 있다 


● 시작법을 위한 기도 / 박현수 

저희에게 
한 번도 성대를 거친 적이 없는 
발성법을 주옵시며 
나날이 낯선 
마을에 당도한 바람의 눈으로 
세상에 서게 하소서 
의도대로 시가 
이루어지지 않도록 하옵시며 
상상력의 홀씨가 
생을 가득 떠돌게 하소서 
회고는 
노쇠의 증좌임을 믿사오니 
사물에서 과거를 
연상하지 않게 하옵시며 
밤벌레처럼 유년을 
파먹으며 생을 허비하지 않게 하소서 
거짓 희망으로 
시를 끝내지 않게 하옵시며 
삶이란 글자 속에 
시가 이미 겹쳐 있듯이 
영원토록 
살갗처럼 시를 입게 하소서 


● 거리 / 문태준 

오늘 풀뱀이 배를 스쳐 여린 풀잎을 눕힌 자리같이 
거위가 울며 울며 우리로 되돌아가는 저 저녁의 깊이와 같이 
거위를 따라 걷다 문득 뒤돌아볼 때 내가 좀 전에 서 있었던 곳까지 
한 계절 전 눈보라 올 때 한 채의 상여가 산 밑까지 밀고 간 들길같이 
그보다 더 오래 전, 죽은 지 사흘 된 숙부의 종아리가 장맛비처럼 아직 물렁물렁할 때 
누구도 나에게 말해주지 않았던 거리距離 


● 이동식 화장실에서 / 이대흠 

사각의 공간에 구더기들은 
활자처럼 꼬물거린다 
화장실은 
작고 촘촘한 글씨로 가득 찬 
불경 같다 
살아 꿈틀대는 말씀들을 
나는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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