펌) 성경섭 칼럼 <3> 여우와 신포도 / 장정헌
성경섭 칼럼 <3> 여우와 신포도 / 장정헌 |
작성자: 사색의향기 / 작성일 : 2016-05-30 17:54 |
여우와 신포도/“문제와 곤경을 구분해서 대처하라”
- 성경섭 방송인
여우와 신포도/“문제와 곤경을 구분해서 대처하라” ![]()
철학자 아브라함 카플란은 잘 풀리지 않는 세상사를 ‘문제(problem)’와 ‘곤경(predicament)’ 두 가지로 나눠 설명한다. 무언가 적절히 대처할 방안이 있다면 문제, 그저 손 놓고 아무 것도 할 수 없다면 곤경이라는 것이다. 곤경은 문제와 달리 적절히 다루고 인내해야 할 무엇이다. “이 또한 지나가리라..”하는 마음으로 관조하며 시간을 버는 것이다. 곤경을 해결할 수 있는 문제라고 착각하면 쓸데없이 ‘자신을 들볶으며’ 에너지를 낭비하다 결국 터무니없는 결정을 내리는 경우가 많다. 돌파구가 없는 곤경에 처했을 때 요구되는 것이 있다면 바로 ‘손닿지 않는 포도송이’ 밑에 선 여우와 같은 긍정적인 태도다.
인간이 대처할 수 없는 가장 큰 곤경은 바로 죽음이다. 젊은이들에 비해 노인들이 죽음에 대해 느끼는 불안은 더 클 수밖에 없다. 어차피 피할 수 없는 일이라면 받아들이고 오히려 즐길 수는 없을까? 세계10대 와인산지로 꼽히는 뉴질랜드 훅스베이 지역에는 자신이 나중에 사용할 관을 직접 짜는 ‘DIY 관 짜기 클럽’이 있다. 매주 한 차례씩 만나 목수 출신 회원들의 도움을 받아 관을 짜는데, 특히 은퇴한 노인들 사이에서 인기를 끌고 있다, 관은 바로 사용할 게 아니기 때문에 평소엔 책상이나 포도주 저장고로 유용하게 쓰인다. 여벌로 짠 성인용과 유아용 관은 병원에 기증하기도 한다.
물론 눈앞에 닥친 일이 곤경인가 문제인가를 정확하게 판단하기에는 인간능력에 한계가 있다. 하지만 다행스럽게도 앞으로 벌어질 상황을 바꿀 수는 없지만 태도를 바꿀 수는 있다. 앞서 얘기한 뉴질랜드 훅스베이 노인들의 경우처럼 죽음이라는 피할 수 없는 곤경의 문제를 담담하게 관조하는 태도로 받아들이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 문제와 곤경 앞에서 어떤 태도를 취할 것인가는 전적으로 자신의 책임이며, 태도는 결과에도 적지 않은 영향을 미친다. ‘태도는 좋은 친구이자 동시에 나쁜 친구’인 셈이다.
우리에게 실제로 일어나는 일들은 삶의 10퍼센트에 불과하고, 나머지 90퍼센트는 그 일에 대한 우리의 대응이라는 말이 있다. 우리가 어떤 태도를 갖느냐에 따라 우리 인생 자체가 바뀔 수도 있다는 말이다. ‘열 번 찍어 안 넘어가는 나무 없다’는 속담을 예로 들어보자. 곧이곧대로 열 번이고 스무 번이고 도끼질을 해대다 낭패를 보기보다는 ‘도끼날이 먹히지 않을 것 같은 나무’는 피해가면서 찍어보는 것이 지혜로운 태도일 것이다.
연예계 스타 못지않은 인기를 누리고 있는 TV 예능프로그램 연출자 김 모 피디 얘기다. TV 드라마나 예능 프로그램은 출연자 섭외나 캐스팅이 성패를 좌우한다. ‘스타 출연자’가 없는 프로그램은 ‘팥소 없는 찐빵’과 다름없다. ‘스타 캐스팅’은 마당발 인맥도 중요하지만 선구안이 크게 작용한다. 백발백중 섭외 성공률을 자랑한다는 김 피디는 비결을 묻는 대답에 이렇게 얘기한다. “나는 열 번 찍어 안 넘어가는 나무 없다는 말을 믿지 않는다.. 다만 열 번 찍어도 안 넘어갈 나무를 미리 알아보기 위해 노력한다.” 설사 도끼자루가 부러지는 경우와 같이 예상 밖으로 최악의 상황이 벌어졌을 때, 절망의 늪에 빠지지 않고 반성과 재기의 기회로 삼을 수 있는 비결, 그것이 바로 태도의 힘이다. 태도의 근본이 되는 생각과 말, 행동을 긍정적으로 조화시킬 수 있다면, 그때부터 인생은 바람직한 방향으로 술술 풀려 나간다.
장정헌 세탁소 주인이 미국 1%부자가 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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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2년 LA지사장으로 있던 동아기업 본사가 부도가 나면서 ‘끈 떨어진 갓’ 신세가 됐다. 수중에 남은 돈은 달랑 3백 달러. 한국으로 돌아갈 비행기 삯도 되지 않았다. 부부는 수영장 청소에서 페인트 아르바이트까지 닥치는 대로 막노동을 뛰었다. 봉제공장에서 새벽 무렵에 퇴근하는 아내를 데리러 간 어느 날엔 차 뒷좌석에 구겨진 채 잠든 두 딸을 보며 ‘희망 없는 삶’에 절망해 부둥켜안고 울었다. 이들 부부가 할 수 있는 거라곤 ‘이 또한 지나가리니’ 하면서 참고 견디는 일 뿐이었다.
그러던 중 첫 기회와 고비가 찾아왔다. 캘리포니아지역이 골드러시 이후 최대라는 부동산 경기호황을 맞았다. 집값의 5%만 내고 대출로 산 3만 3백 불짜리 집이 단박에 7만 8천불로 뛰었다. 호사다마라고나 할까 이번엔 생계를 돕는다며 구두수선 일을 하던 아내가 노동자들이 신는 워커 밑창을 갈아 끼우다 날카로운 구두칼에 손을 크게 베인다. 신발 찾으러 올 시간에 맞춰 다친 손으로 계속 일을 하다 출혈이 심해 쓰러진 아내는 구급차에 실려 병원에 옮겨진 뒤 이틀 만에 의식이 돌아 왔다. 문득 장인어른의 말씀이 떠올랐다. “사내자식이 남대문시장에서 궤짝을 뒤집어 놓고 군고구마 장사를 해도 자기 사업을 해야지..” 그는 집을 팔고 은행융자를 받아 세탁소사업에 뛰어든다. 말이 좋아 사업이지 유태인 지역에 있던 세탁소를 인수한 그는 ‘비싼 옷을 어떻게 동양인에게 맡기냐’며 외면하는 유태인 할머니들을 설득하는 게 하루 일과였다.
월 매출이 4천불이란 말에 솔깃해 넘겨받은 세탁소가 문을 닫을 지경이 됐다. 차라리 사고를 위장해 자살을 하자는 마음이 들었다. 보험금 50만 달러면 아이들도 대학까지 걱정이 없을 듯 했다. 덜컥 생명보험에 들고 세탁물 배달 나가는 길에 예행연습까지 마쳤다. 산타모니카 해안도로를 달리면서 어디에서 구르면 가장 자연스러울까 생각했다. 막상 결행을 하자니 아내의 얼굴이 떠올랐다. 나 하나 믿고 의지하던 아내가 너무 가여웠다. ‘죽으려고 생각하면 뭘 못할까’하는 생각이 들었다. 해질녘에야 돌아온 그에게 아내는 “무슨 배달이 이렇게 늦어졌냐”며 화를 벌컥 냈다. 자살은 미수에 그쳤고, 현실이 다시 눈앞에 닥쳐왔다.
장씨 부부는 영업 전략을 바꿨다. 일단 세탁소에 들어온 손님은 그냥 돌려보내지 않는다. 할아버지 대부터 3대째 가업이라고 둘러댄다. 옷이 망가지면 보험처리 하고, 맘에 안 들면 세탁비를 받지 않겠다고 약속한다. 완고하던 노인들이 점차 마음을 열었다. 문을 닫기 직전까지 갔던 세탁소는 14년 동안 영업을 계속했다. 일단 문제가 해결되자 일은 술술 풀려나갔다. 그는 세탁소를 발판 삼아 본격적으로 사업에 뛰어들었다. 예전에 동아기업에서 배운 무역 업무를 바탕으로 폐지수집 재활용 사업에 성공한 뒤, 염색 공장 USDF를 인수해 캘리포니아 굴지의 회사로 성장시켰다. 금융업에도 진출해 유니은행 금융지주회사의 회장 자리에 오른다.
하지만 승승장구의 세월만 있었던 것은 아니다. 그가 주택임대사업을 하던 시절 맞닥뜨린 LA폭동과 지진사태는 ‘화불단행-불행은 연달아 온다’는 걸 실감하게 했다. 미국사회가 뿌리째 흔들리면서 파괴와 약탈이 잇달았다. 경찰은 백인 동네를 보호하기 위해 한인 타운에서 벌어지는 약탈행위에는 팔짱을 끼었다. 공실이 늘고 임대료는 폭락하면서 수입이 삼분의 일로 줄어들었다. 은행 빚을 해결하지 못하고 브로커의 농간까지 겹쳐 결국 파산지경에 이르렀다. 대책 없는 ‘곤경’이 제대로 닥친 것이다. “너도 죽이고 나도 죽겠다”며 야외사격장에 사격 연습을 하는 극한 상황까지 갔다. 당시 그는 모교인 동국대 LA재단 부이사장을 맡고 있었는데, 마침 LA에 와있던 본교의 ‘큰 스님’이 숙소로 그를 불렀다. 문을 열고 들어가니 찬찬히 얼굴을 들여다보던 큰 스님은, “무슨 원한이 있어서 젊은 사람 눈에 살기가 있나” 물었다. 울컥하는 마음에 눈물을 쏟으며 억울하고 힘든 얘기를 다 털어놓았다. 큰 스님은 “이 사람아 불로써 어찌 불을 끌 수 있으며, 물로써 어찌 물을 막을 수 있겠는가..한을 어떻게 한으로 풀고, 원망을 어떻게 원망으로 풀겠는가.. 그 악순환의 고리를 누가 감당하겠는가..끊어라 끊고 일어나라..”며 다독여 주셨다. 다 털어놓고 울고 나니 사람이 바뀐 듯 했다. 집에 있던 십여 자루의 총을 경찰서에 맡기고 생각을 고쳐먹었다.
돌파구가 없는 곤경의 순간을 무탈하게 지나갈 수 있었던 데는 아내의 힘이 컸다. 파산을 목전에 뒀던 어느 날.. 장 회장은 서재에서 이런저런 생각을 하며 새벽까지 잠들지 못했다. 여차하면 모든 걸 날려버릴 절체절명의 순간이었다. 하지만 아내는 달랐다. “당신 뭐해요..그런다고 해결될 일도 아닌데 그만 자요..”하며 불을 끄고 방으로 들어가 버리는 것이었다. 잠자리에서 힘든 상황을 아내에게 하소연 했다. “이번 일이 안돼서 무너지면 다시 시작할 수 있을까?” 정말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을 용기를 낸 것인데 아내는 짐짓 아무렇지도 않게 대답했다. “여보, 아무 것도 모르고 세탁소도 했는데..세탁소 14년인데..시작하면 뭐 그까짓 게 어려워요..” 장 회장은 갑자기 천군만마를 얻은 기분이 들었다.
이민 1세로서 아메리칸 드림을 실현하는 과정에서 맞닥뜨린 수많은 문제와 곤경들을 때론 행운으로, 때론 지혜롭게 해결해오면서 그가 체득한 핵심 포인트는 현장을 중시하라는 것이다. 사업을 하면서도 현장 경영을 입버릇처럼 달고 다닌 탓에 ‘액션 테이커(Action taker)’라는 별명도 얻었다. “행동하지 않는 사람은 인생의 파도를 넘을 수 없다.” 돌파구가 있는 문제인지, 아니면 참고 지나가야 하는 곤경인지..답은 바로 현장에 있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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