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지지/나의 이야기

펌) 성경섭 칼럼 <4> 촉견폐일의 반면교사 / 안숙선

그대 그리고 나/포항 2016. 9. 20. 11:01

 

성경섭 칼럼 <4> 촉견폐일의 반면교사 / 안숙선
 
  작성자: 사색의향기   /  작성일 : 2016-06-14 14:18

 

촉견폐일의 반면교사 / “내 탓이요, 당신 덕이요 하라”
안숙선 / “자신을 탓하라”는 스승의 가르침을 마음에 새기다

 

 

- 성경섭 방송인

 

 

촉견폐일의 반면교사/“내 탓이요 당신 덕이요 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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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천요리는 기름지지 않고 매운 맛이 강해 중국 음식 가운데 비교적 우리 입맛에 잘 맞는다. 그 사천요리의 본 고장이 바로 사천(四川)이다. 중국식 발음으로는 쓰촨이다. 펜더의 고향이기도 한 사천은 우리에겐 지진으로 더 잘 알려졌다. 2008년 리히터 규모 8.0의 대지진이 발생해 10만 명에 이르는 사망실종자가 나왔고, 5년 뒤인 2013년에도 7.0의 강진으로 200명이 넘는 사망자 발생했다.

'쓰촨'은 삼국지의 유비가 세운 촉한(蜀漢)의 역사를 간직하고 있다. 산으로 둘러싸인 험준한 지형 탓에 접근이 어려웠는데, 깎아지른 절벽의 바위에 구멍을 뚫어 사다리 형태로 길을 낸 '잔도(棧道)'를 거쳐야 했다. 유비가 촉을 정벌하기 위해 군사를 이끌고 '촉도(蜀道)'를 힘겹게 통과하는 삼국지의 한 장면이 연상된다. 쓰촨 요리가 매운 것도 더위와 추위가 심한 내륙성 기후를 이겨내기 위해 마늘 ·파 ·고추 등 향신료를 많이 쓴 까닭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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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지리적인 특성 때문에 나온 고사성어가 ‘촉나라 개가 해를 보며  짖는다’는 뜻의 ‘蜀犬吠日(촉견폐일)’이다. 촉나라에서는 주변의 평원에서 넘어온 구름과 안개에 가려 좀처럼 해를 보기 어려웠는데, 가끔 날씨가 좋아서 해가 뜨면 개들이 이상하게 여겨 해를 보고 짖어댔다는 것이다. ‘촉견’은 흔히 자신이 아는 것만을 진리인양 우기거나, 남의 의견은 아예 무시하는 사람, 혹은 의심부터 하거나 비난을 일삼는 사람에 비유된다. 설익은 생각으로 다른 이들의 학식과 경륜을 얕잡아보고 저지르는 무책임한 언동이 딱 맞아떨어지는 ‘촉견폐일’인 셈이다.

 

우리나라에도 ‘달 보고 짖는 개’라는 속담이 있다. 남의 일에 대해 잘 알지도 못하면서 떠들어 대거나 대수롭지도 않은 일에 공연히 놀라거나 겁을 내서 떠들썩하는 싱거운 사람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이다. 못난 사람이 잘난 사람을 오히려 흉보며 떠들어 댈 때도 쓰이는 말이다. 달보고 짖는 개보다 덩달아 짖어대는 개들이 더 문제다.

‘촉견폐일’이 공연히 남을 탓하는 것이라면 ‘계견승천(鷄犬昇天)’은 공연히 남의 덕에 편승하는 것이다. 직역하면 신선도 아닌 닭이나 개 따위가 승천을 했다는 뜻인데, 남의 덕에 빌붙어 권세를 누리는 것을 지칭한다.

 

늙지 않고 영원히 사는 길이 없을까 늘 고심하던 왕이 있었다. 그러다가 어떤 신선을 만나  먹으면 늙지도 죽지도 않게 된다는 신비로운 약의 제조법을 배우게 되었다. 왕은 신선이 알려준 대로 약을 만들어 먹고 하늘로 올라가 죽지 않는 신선이 되었다. 그런데 그가 하늘로 올라간 후 재미있는 일이 벌어졌다. 궁에 살던 닭과 개들까지도 남은 약을 주워 먹고 모두 하늘로 올라가 신선이 되었던 것이다. 중국 한(漢)나라 때 회남(淮南) 지방의 왕이었던 유안(劉安)의 설화다. 별다른 능력도 없으면서 혈연이나 학연, 지연을 빌미로 권세나 돈에 아부해 출세하는 이들을 주인을 따라 하늘로 올라간 닭과 개에 빗대 '계견승천(鷄犬昇天)'이라고 하는 것이다.

 

우리말에도 ‘소쿠리 비행기’라는 것이 있다. 소쿠리는 대나무나 싸리나무로 엮어 테가 있게 만든 바구니다. 주로 식재료나 음식물을 담는 용기인데 튼튼한 테두리가 있기 때문에 어른들이 아이들을 태우고 놀아준 데서 ‘소쿠리 비행기’라는 말이 나온듯하다. 빈 말이라도 칭찬을 들으면 공연히 들떠서 중심을 잃게 되는 경우에 ‘소쿠리 비행기’란 표현을 쓰기도 한다.

‘소쿠리 비행기’를 탄 어린아이는 하늘을 나는 기분이겠지만 잠시 후면 다시 내려오거나 추락하는 불상사가 생기기도 할 것이다. 신선의 세계는 잘 알려진 바가 없지만 모르긴 몰라도 하늘에 올라간 ‘신선 닭’ ‘신선 개’ 역시 한동안 인간세계가 발 아래로 보일 것이다. 하지만 결국 신선들의 애완용이나 식용의 신세를 면하지는 못했을 것이다.

 

 

 

안숙선 “자신을 탓하라”는 스승의 가르침을 마음에 새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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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숙선 명창은 어릴 적에 아버지가 돌아가셨다. 바느질 솜씨가 좋았던 어머니는 삯바느질로 3남 2녀를 키웠지만, 형편이 어려웠다. 어린 숙선은 어머니 한숨과 푸념을 들을 때면 효도해야겠다는 생각이 간절했다. 고향 남원의 광한루를 지나 학교에 가던 초등학교 시절 오작교 밑 연못에 뛰어노는 잉어들을 보며, 나도 아버지 눈을 뜨게 하기 위해 인당수에 몸을 던진 심청처럼 물에 뛰어 들 수 있을까하는 생각도 해보았다. 그녀가 어린 나이에 소리꾼의 길에 접어든 것도 가족들의 생계에 조금이라도 보탬이 되고 싶은 생각 때문이었다.

 

체구가 너무 작아서 눈에 잘 띄지 않고, 내성적이라 남 앞에 서기를 꺼리던 어린 숙선은 맡은 일에는 늘 열심이어서 국악원에 다니던 시절 “숙선이 본 받아라”는 어르신들의 칭찬을 독차지했다. 어릴 적부터 일찌감치 심청가와 춘향가를 뗀 안 명창은 겉모습은 심청에 가까웠지만, 정작 마음속으론 춘향을 흠모했다. 자신이 가지지 못한 부분을 구구절절 풀어내는 ‘당찬’ 춘향이가 되고 싶었던 것이다. 작고 여린 그녀의 체구에서 뿜어져 나오는 엄청난 에너지는 맘속에 꼭꼭 숨겨온 그런 열망의 표현인지도 모른다.

안 명창에겐 명창의 산실 남원 춘향제에 얽힌 일화가 있다. 1985년 춘향제가 대통령상으로 격상되면서 출전을 결심했지만 고향의 대선배가 나온 것을 보고 ‘선배와 대결은 어불성설’이라며 마음을 접었다. 그리고 이듬해인 1986년 남원 춘향제의 전국명창경연대회에서 대통령상을 받은 뒤 ‘명창’의 반열에 오른다. 겸손은 나를 낮추는 게 아니라 남을 배려하는 것이란 걸 깨닫게 해주는 대목이다.

 

소리를 잘 하는 사람이 명창이라면, 잘 듣는 이는 ‘귀 명창’이다. 서양음악 공연은 끝까지 다 듣고 박수를 치지만, 우리 소리마당은 중간에 추임새도 넣고 박수도 치며 관중과 호흡한다. 안명창의 공연엔 빠지지 않는 홍씨 할아버지란 ‘귀 명창’이 있었다. 소리를 듣다 마음에 드는 대목에선 “잘 한다..”며 벼락 같이 소리를 치는 통에 다른 관객들이 “저 사람 좀 들어내라..”며 불만을 쏟아냈다. 안명창도 처음엔 놀라 소리에 집중하기 힘들었다. 그런데 꼭 나올 대목에서만 추임새가 나온다는 걸 깨달은 후엔, 그 분의 “잘 한다” 소리가 안 나오는 날엔 괜스레 관중석을 둘러보기도 했다.

 

안 명창의 외가는 국악계에서 알아주는 명문가다. 동편제 판소리의 ‘적자(嫡子)’인 강도근 명창이 외당숙, 이모는 가야금 명인 강순영이다. 어릴 때부터 자연스럽게 국악에 접했고, 아홉 살 때 주광덕 명창의 문하로 들어갔다. 숙선은 남원의 ‘아기 명창’이었다. 그럼에도 소리꾼은 기량을 타고 나야 한다는 게 안명창의 생각이다. 성량이나 음색으로 소리의 느낌을 주는 ‘시김새’는 선천적인 재질이라는 것인데, 심금을 울리는 소리가 나지 않는다면  조상 탓, 부모 탓이 아닌 열심히 하지 않은 ‘내 탓’을 해야 한다는 거다.

 

어느 인터뷰 한 대목이다 “국립창극단에 들어가면서 내가 갖고 있는 소리가 형편없다는 걸 알았어요. 연습을 안 할 수가 없었어요. 집에 와서도 소리를 입에 달고 살고.. 당시 창극단이 지금 국립극장의 달오름 극장 자리에 있었는데 어느 날 연습하다보면 큰 유리창 밖으로 낙엽이 떨어지는 거예요. 그러면 '아, 가을이네∼'하고 눈물을 짓다가 또 연습하고, 연습하다 또 내다보면 눈이 내리고 있고…. 그렇게 연습을 했어요.”

판소리 다섯 바탕을 완창 한 몇 안 되는 소리꾼인 안 명창은 “진정한 소리에 도달하려면 소리에 빠져 헤어나지 못할 때까지 소리를 달고 살아야 한다”고 말한다. 춘향가만 7시간, 심청가 6시간, 수궁가와 흥보가 적벽가가 각각 서너 시간 안팎이니 하루가 꼬박 걸리는 다섯 바탕 완창은 가사를 외우기만도 벅차다. 길을 가면서도, 집안일을 하면서도 소리를 입에 달고 사는데, 하루 이틀만 쉬어도 거짓말처럼 ‘필름’이 끊긴다. “한 시간이라도 허투루 보내면 하늘이 무너지는 줄 알았다. 소리는 잠시만 놓아도 멀리 달아났다.”

 

19살에 만난 만정 김소희 선생은 소리뿐 아니라 인생의 귀한 스승이다. 선생님을 만나고서 어른들이 시키는 대로 따라하던 소리를 왜 하는지를 깨닫게 된다. “소리꾼은 만인 앞에 서야하는 공인이다. 소리도 잘해야 하지만 인격을 갖춰야 한다.”며 조금이라도 잘못하면 짐을 싸서 시골로 내려가라며 불호령이 떨어지곤 했다.

그러던 스승님이 회복되지 못할 상태에서 입원해 계시던 시절이다. 방송에 나온 제자의 모습을 보시고 쓰신 편지를 전해왔다. “천 사람이 만 사람이 너를 최고라 할지라도, 어떤 한 사람이 저거 아니라고 하는 말을 명심해라. 그렇게 우쭐거려서는 안 된다”는 내용이었다. “제가 열심히 해도 모자란데 어쭙잖게 어른들 흉내를 낸 거죠. 재담을 했거든요..농담을 깔고.. 선생님이 보시고 저 아이가 저렇게 해서는 안 되겠다 생각하신 것 같아요.” 선생님은 편지 말미에 “내가 아니고서는 누가 너에게 이런 말을 해 주겠니, 어디를 잘못했는지 모르겠으면 나한테 와서 물어 보거라” 이렇게 적으셨다.

안타깝게도 스승님은 편지를 보내신지 며칠 뒤에 세상을 뜨셨다. 안 명창은 지금도 시간이 나면 스승님의 편지를 꺼내어 본다. 그리고 무대에서 인기를 의식해 ‘오버’하려는 마음이 조금이라도 들라치면 스승님의 편지를 생각하며 ‘이게 아니야..내가 가진 것만을 관객들에게 보여줘야지..“마음을 다지게 된다. 스승님의 애정 어린 쓴 소리는 소리뿐 아니라 삶에 대한 자세까지도 바꾸어줬다.

 

안 명창은 자신이 걸어온 득음의 길을 ‘항상 채워도 빈 공간이 생기는 항아리’에 비유한다. “음만 얻어서 그게 득음인줄 아는데, 도를 깨우치듯 아 이 것 이었구나 깨닫고 그것이 다 된 줄 알고 가다보면 독에 물이 새어나간 것처럼 빈 공간이 생긴다. 그것을 다시 채우고 또 비우고 하는 것이다.” 소리의 대 선배들이 “아 이제 소리 맛 좀 알게 되니까 나 (저승에) 가게 되었네..”  하던 말뜻을 고희를 바라보는 이제 와서야 어렴풋이 깨닫게 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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