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지지/나의 이야기

큰애야... 나는 너를 믿는다

그대 그리고 나/포항 2015. 7. 28. 06:13

    큰애야... 나는 너를 믿는다


    떨리는 마음으로 네 손을 잡고
    결혼식장 들어서던 때가 엊그제 같은데
    벌써 손자가 생겼다니
    정말 세월은 화살보다 빠르구나.

    엄마 없는 결혼식이라
    신부인 네가 더 걱정스럽고 애가 타서 잠 못 이뤘을 것이다.
    네 손에 들려 있던 화사한 부케가
    너의 마음처럼 바르르 떨리던 기억이 아직도 선하다.

    결혼식 끝나고도 이내 발걸음이 떨어지지 않아
    한참을 그곳에 남아 서성거렸단다.
    울지 않으려고 했는데
    어느새 붉어진 네 눈자위가 그만 아비의 울음보를 터뜨렸지.
    화장실에서 한참을 울다 당숙의 손에 이끌려
    겨우겨우 나왔단다.

    큰애야.
    편지 한 장 쓰지 않고 지내다가 손자가 생겼다는
    기쁜 소식을 받고 이렇게 펜을 들었다.

    마음이야 한걸음에 달려가고 싶지만
    시어른이 계시니 전화하기도 불편하고
    아비 마음 전하기도 쉽지 않다.
    친정엄마가 있었으면 내 속이 이리 어렵진 않았을 텐데
    못난 아비가 한없이 한심스럽다.

    읍내 장에 나가 참깨를 팔아서 금은방에 들렀다.
    손주 녀석 은수저 한 벌을 고르고 그릇도 한 벌 사 왔다.
    건강하게 잘 크라는 외할아버지 마음까지
    한 바구니 담아 백일쯤에 전 해주려 하는구나.
    이다음 손주 녀석이 크면 외할아버지 사랑도
    알아줬으면 하는 마음이겠지

    아이가 건강하다니 무엇보다 큰 다행이구나.
    산후 우울증으로 고생하는 모양인데
    이 세상에서 부모 되는 일은 그리 수월하지 않다고 들었다.
    행여라도 네 엄마가 생각나서 그런 거라면
    아비 편지 받고 곧 잊어라.
    귀여운 여린 것 봐서라도
    네가 건강한 마음을 먹어야 하는 거 알고 있겠지?

    슬프고 안타까운 네 속을 아비는 안다.
    너그럽게 마음 가다듬고 좋은 생각만 하여라.
    앞으로 어렵고 힘든 일 생기더라도
    슬기롭게 극복해 가리라 믿고 있겠다.

    시어른들 잘 받들고
    남편 잘 섬기고
    아이하고 건강하게 지내기를 날마다 기도한단다.
    아비는 혼자 있어도 외롭지 않다.
    노인정에 나가서 친구도 만나고
    쉬엄쉬엄 농사일도 하고 있으니
    내 걱정은 말고 어서 몸 추슬러 잘 살아라.

    큰애야.
    나는 너를 믿는다. 곱게 살 거라.

    - 내 인생의 편지 한 장 中 '아버지가 보낸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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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힘들어도 힘들지 않고,
    보고 싶어도 보고 싶지 않다고 하는
    이 땅의 모든 부모님은 가장 착한 거짓말쟁이입니다.


    # 오늘의 명언
    행복한 결혼 생활에서 중요한 것은
    서로 얼마나 잘 맞는가보다 다른 점을 어떻게 극복해나가는가이다.
    - 레프 톨스토이 -

    <출처; 따듯한 하루>